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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변호사는 경기 의정부에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24년째 활동하고 있다. 그는 변호사 일과 별개로 17년째 노인학대 예방을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사진 이주형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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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지 않은 게 어디 있겠느냐마는 ….”
14일 통화에서 이주형(55) 변호사는 1년 전 가슴 아팠던 순간을 떠올렸다. 지난해 6월 경기북부노인보호전문기관(노보전)에서 사례판정위원으로 일하면서 아들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한 김모(80)씨 이야기를 접했을 때였다. 신고하고도 입을 꾹 다문 김씨를 수차례 설득한 뒤에야 기구한 사연이 드러났다. 김씨에겐 몇 년 전 뇌수술을 한 넷째아들(37)이 있었는데 술만 마시면 부모 집을 찾아 행패를 부렸다고 했다. 가정을 책임지던 첫째 아들이 공무집행방해죄로 수감되면서 자리를 비우자 벌어진 일이었다. 가해자인 넷째 아들은 상담을 거부했고 김씨도 미온적으로 대응하면서 경찰 신고만 반복됐다.
사례판정위원인 이 변호사는 이 사건을 넷째 아들에 의한 신체적·정서적 학대라고 봤다. 가정폭력 사건이 된다면 경찰이 접근 금지를 할 수 있지만, 당사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이 문제였다. 그는 “가해 아들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점을 고려해 응급입원 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보전의 기나긴 설득 끝에 넷째 아들은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게 됐다. 이 변호사는 “이 건은 그나마 낫다. 방도를 찾지 못하는 수많은 사연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2018년 12월 경기북부노인보호전문기관은 경기북부경찰청과 함께 경민대학교에서 노인 인권세미나를 열었다. 왼쪽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인물이 이주형 변호사. 사진 이주형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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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호사는 2006년 한 복지재단 이사장의 요청으로 법률 자문을 하면서 학대 노인과 처음 연을 맺었다. 자신이 학대 피해자란 걸 모르던 할머니, 노인의료복지시설에서 성적 학대를 당한 70대 노인 등 만나는 사례가 많아질수록 눈시울을 붉히는 날이 늘었다. 하지만 활동을 멈출 순 없었다고 한다. “지역마다 노보전은 이제 막 들어섰고 학대 사례는 많은데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그는 경기북부노보전과 중앙노보전의 사례판정위원을 맡아 매년 학대 의심사례 50여건을 판정했다. 노인복지법상 학대 해당 여부, 노인학대부양료청구 등 법적 다툼 소지가 있는 분야의 판례와 정보도 정리했다. 2019년엔 중앙노보전과 함께 노인 학대요인에 대한 분석 등을 담은 ‘노인 학대 개입 사례집’을 펴내기도 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
보건복지부의 2021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1만9391건으로 전년 대비 14.2% 증가했다. 재학대 건수도 739건으로 전년 대비 20.4% 늘었다. 실제 학대는 더 많을 것으로 보건당국은 추정한다. 이 변호사는 “학대 판정 시 방임까지 포함해 학대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시설에 대한 행정처분은 별도 기준을 만들어서 결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인 인권을 두텁게 보호해야 하지만 시설에 대한 행정적 처분은 신중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노인학대 예방과 권익 보호 향상에 기여한 공로가 알려지면서 이 변호사는 15일 7회 노인학대 예방의날 기념식에서 국민포장을 받게 됐다. 이 변호사는 “각 노보전은 예산상 법률과 의료 자문료가 책정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현장의 필요가 정책과 입법에 반영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