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고교, 대학 졸업생 총 682명 가운데 프로에 지명받은 선수는 73명에 불과했다. 야구 선수 취업률이 11%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야구인들은 이와 같은 야구실업자 대란에 대한 해결책으로 독립리그를 제시하고 있다. 독립리그란 기존의 프로리그(1, 2군 리그)와는 별도로 자체 리그를 운영하는 것이다. |
최근 들어 야구계에 ‘독립리그’ 창설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갈수록 양산되는 야구실업자에 대한 고용창출 차원이다. 또한 타고난 소질에도 불구하고 부상과 다른 이유로 꽃망울을 터뜨려 보지도 못하고 시든 선수들에 대한 기회를 주는 방편이기도 하다. 나이 든 선수에게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장이 될 수도 있다. 한창 무르익고 있는 독립리그 창설 움직임, 그 가능성을 짚어본다.
야구실업자, 갈 곳이 없다
지난 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야구선수는 499명, 대학 졸업생은 183명이었다. 총 682명 가운데 프로에 지명을 받은 선수는 73명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야구선수의 취업률이 11%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고교 졸업생 가운덴 처음부터 프로진출 대신 대학진학을 원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프로 지명을 1차 목표로 둔다. 이 같은 수치는 국내 프로스포츠 가운데 최저인 것은 물론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낮다. 야구선수의 취업률이 낮은 것은 8개 프로팀 이외엔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실업연맹이 부활됐지만 이제 걸음마 단계이다 보니 야구를 계속 하고 싶어도 뜻을 펼 곳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마다 야구실업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협회는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9, 10구단 창단을 유도하고 있지만 가뜩이나 어려워진 경제사정으로 8개 구단 유지도 버거운 형편에 몰려 있다. 여기에 각 구단은 긴축재정을 펴 비용을 줄여 나가고 있다. 신인지명 수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야구선수의 프로진출이 ‘바늘구멍’처럼 좁아지면서 야구계에는 우려할 만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야구팀 수가 줄어들고, 대학에 진학한 선수들 가운덴 일찌감치 야구를 포기하고 다른 길로 나서는 경우도 많다. 부모들 역시 자식들에게 취업하기 어려운 야구를 시키려 하지 않는다. 최근 고등학생은 물론 중학교 선수까지 메이저리그 구단의 스카우트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어차피 먹고 살기 힘들 바엔 기회가 많고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미국을 택하는 것이다.
누가 독립리그에서 뛰나
야구인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독립리그를 제시하고 있다. 독립리그(Independent League)란 말 그대로 기존의 프로리그(1, 2군 리그)와는 별도로 자체적으로 리그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곳엔 프로에 지명받지 못해 오갈 데 없는 선수, 부상으로 팀에서 쫓겨난 선수 그리고 나이가 많아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줬지만 미련이 남아 있는 선수들이 모여서 뛴다. 한 마디로 ‘외인구단’인 셈이다.
우리의 경우 처음부터 여러 개의 팀을 만들어 리그를 구성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당장 1개 팀이라도 출범시켜 프로 2군 리그에 합류시킨 뒤 4개 팀 이상으로 늘어나면 리그를 만드는 방안이 합리적이다. 독립리그, 또는 독립팀이 만들어지면 야구선수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한편 마지막 기회를 엿볼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다. 재능있는 선수가 일찍 유니폼을 벗지 않아도 되고, 부상이나 나이 때문에 퇴출됐다고 해서 서둘러 다른 길을 찾지 않아도 된다. 독립리그에서 숨겨져 있던 기량을 맘껏 발휘한 선수는 프로 팀에 스카우트될 수 있다. 독립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그 ‘꿈’을 향해 비지땀을 흘린다. 야구선수들의 저변이 넓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연스럽게 한국야구의 수준도 높아진다.
독립리그 운영의 3가지 ‘숙제’
독립리그를 운영하기 위해선 제약도 많고 선결과제도 있다. 더욱이 한국 같이 인프라가 부족하고 야구팬 층이 엷은 나라에선 꾸려 나가기 만만치 않다.
가장 큰 걸림돌 3개는 ‘경영난’과 ‘야구장’ 그리고 ‘심판자질’ 문제다. 우선 팀을 만들 기업이 나서냐 하는 점이다. 선수 25명 안팎에 코칭스태프 3명으로 구성한다면 최소한 연간 8억~10억 원 가량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몇 명의 관중이 독립리그 경기를 찾을 것이며, 기업 홍보면에선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을 것인지 지금으로선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 이에 대해 독립리그 출범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허구연 야구발전실행위원회 위원장은 “숙소와 야구장은 지자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지방 중소도시에 기반을 둬 지역사회의 일원이란 인식을 갖는다면 기존의 프로팀과는 다른 차원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야구장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 제 아무리 팀을 만들 기업이 나선다고 해도 훈련하고 경기할 야구장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특히 독립리그에서 뛸 선수들은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프로선수들보다 몇 배 더 땀을 흘려야 한다. 다행히 몇 해 전부터 남해안을 중심으로 야구장이 들어섰거나 공사를 준비 중이어서 이 시설을 활용한다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훌륭한 심판을 양성해 보급하는 일도 시급한 과제다. KBO에서는 체계적이고 권위있는 심판학교 설립을 계획 중이어서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
현재로선 독립리그의 필요성은 절감하면서도 성사되기 까진 야구인 모두의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할 전망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또한 탁상공론의 전형이 돼 휴지통에 버려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