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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결에 ‘광릉수목원’을 갔어요. 물론 ‘혼 투‘입니다. 어머니네 아파트(진접)
에서 광릉까지 10분이면 도착한다고 봤을 때 서울-광릉까지 1시간거리가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광릉수목원은 50번 이상 간 것 같아요. 다 빼고
가족들과 야외스케치를 왔을 때, 20k마라톤 대회 러너로 완주 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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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찜질방의 추억들이 생각이 납니다. 아시다시피 광릉은 조선 7대
왕 세조와 그의 여신 정희 왕후의 무덤입니다. 원래 이곳은 왕들의 사냥터
이자 군사 훈련장이었다고 해요. 조선 초기에는 전국 어디서나 숲이 울창해
호랑이 곰 늑대 같은 최 상위 포식자들이 출몰했대요. 경복궁 근정전 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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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배회한 적도 있다고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답디다. 그러나 백성들이
장작과 숯을 땔감으로 이용하고 나무를 심지 않으면서 울창하던 숲이 점점
황폐해지기 시작했어요. 김 동인은 ‘붉은 산(1993)’에서 나라가 망하기 전에
숲이 먼저 헐벗고 붉은 산의 나라가 된 것을 리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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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는 세종대왕의 차남인데 죽지 않고 용케 임금이 된 케이스입니다.
형님인 문종이 병사한 후 어린 단종을 부탁하고 죽었는데 왕이 되자,
단 종을 폐위시켜버립니다. 드라마 ‘인수대비’에서는 거구 김 영호가 수양
역할을, 정희왕후 역은 김 미숙이 잘하더이다. 김 미숙은 채시라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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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나왔을 것입니다. 영화 판 수양 역 압권은 사냥터에서 멧돼지를
잡아 메고 나온 이정재가 원탑입니다. 그 한 컷에 수양의 카리스마가 풀풀
넘치더이다. 세조가 재위기간18년 동안 평생 죄책감으로 시달리다가
결국51세에 죽고 말아요. 그것도 종기로 말입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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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냐면 그래봤자 권불십년이란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리즈시절은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27세에서 45(18년)세까지 내 생애 빛나는 시절이었습니다.
사냥터로 쓰였던 수목원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세조의 광릉이 들어선
덕분입니다(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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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30년에는 포천 풍양 등 광릉 주변 지역을 강무장으로 지정해 벌목과
경작까지 금지했대요. 강무장은 왕이 수렵을 하고 군사훈련을 하는 장소로
이렇게 550년 동안 나뭇가지 하나 풀 한 포기 건드리는 것조차 금지하면서
광릉 숲이 잘 보존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얼마 전에 드라마 '인수대비'를
몰 빵 해서 아는 척 좀 하려고 광릉주차장에 들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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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비를 받지 않았고 투어 차지를 1000원 받더이다. 공휴일엔 일당이 더
나오니까 무료로 하지 않았을까요? 톨게이트 지나자마자 역사관이 정면에
보여요, 역시나 클로스입니다. 좌측으로 한옥 한 채가 딸랑 서있어요.
자세히 확인해보았더니 '재실'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옛 생각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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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몇 장 박았고요, 부엌의 부뚜막이 정겹네요. 퇫방(토방)마루를
뜯어다 느낌 있는 테이블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될 것입니다.
이곳을 지키는 사람을 능참봉이라고 한답니다. “나이 60에 능참봉”이란
속담이 생겼을 만큼 능참봉은 종9품의 말단 관리입니다. 능참봉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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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는 제사용품 관리, 왕릉 주변의 산불방지와 벌채를 막는 것이었대요.
능참봉도 부하가 있어요. 수복, 능수 호군, 산직 같은 직원 말이에요.
광릉에서는 능역 바깥의 마을에서 두 두인을 1명씩 뽑아서 산직을 도와
산불을 방지하고 분묘설치와 경작, 땔나무 채취를 막는 역할을 맡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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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다. 광릉은 동구능에 비해 사이즈가 작지면 '단일 능'만큼은
27대 왕조 중 최고인 것 같습니다. 저는 피라미트만큼 커보였어요.
제 생각에 정희 왕후가 오래해먹었잖아요. 세조-예종(친아들)-성종
(양아들)까지 무려 3대 동안 했고 덕종이 군으로 죽었는데 인수대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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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가 되려고 의경세자를 왕으로 추대하면서 어부지리를 한 셈입니다.
정희왕후와 인수대비까지 합하면 얼추50년이상 집, 땅, 재산 증식에
오즉이나 신경을 썼겠습니까? 하여간 이래저래 광릉은 명당이 됐다는
겁니다. 일제는 숲이 잘 보존된 광릉 숲을 임업 시험림으로 지정하여
(1912)묘목을 기르는 밭을 설치했어요. 지금도 ‘임업시험장’ 광릉출장소
(1929)가 건재하고 있었어요. 일제의 강제합병 이후 일본은 한국에서
쌀을 비롯한 많은 물자를 수탈해 갔어요. 당시 나무 수탈을 담당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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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농공상부 산림과 임업시험장에 아사카와 다쿠미 라는 일본
놈이 있었다는데 그들은 광릉 숲을 돌본 양심적 일본인이었다고 합니다.
한복을 즐겨 입었고 한국말을 썩 잘했다 네요. 놈들은 임업시험장의 평
직원으로 무려 19년간 일하면서 광릉을 관리 보존하는데 생을 받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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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두 일인은 망우리에 묻힌 유일한 외국인이라고 합니다. 광릉 숲을
한동안 패쇄 했었는데 오늘 보니 끝내주게 리 모델링을 해놓았어요.
그중 가장 눈에 띈 것은 봉선사부터 고모리 초입까지 방부 목 산책로가
만들어진 것이에요. 일부러 차를 세워두고 4k쯤 걸었어요. 누구 아이디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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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지만 굿 아이디어 같습니다. 피톤치드를 원도 없이 마셨더니 수명이
한 1년 쯤 늘어난 것 같습니다. 방부 목으로 만든 들레 길은 담양의 '관방
천'과 사이즈가 비슷해 보이네요. 물론 아름드리는 관방 천이 더 굵어요.
(500년)광릉 숲(200년) 명예의 전당에는 붉은 산을 녹화하는 데 뚜렷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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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 세운 6명의 부조가 있어요. 박통께서 식목일(1970)을 맞아 수목원에서
전나무, 잣나무 조림행사를 실시하면서 산림녹화의 시발점으로 삼았대요.
광릉수목원 안에 주차장이 있고 부스로 제대로 만들어놓았는데 주차비
3,000원을 받아요. 돈 없는 분들은 광릉에 파킹을 하면 공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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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 2240ha에는 식물 865종, 곤충 3925종, 조류 175종 등 모두 5710
종의 생물이 살고 있어요. 안에 식물원도 있고 애들 놀기에 적당한 시설들이
있는데 저는 광릉에 파킹을 시키고 들레 길을 걷는 게 더 낫다고 봅니다.
방부 목 들레 길은 봉선사에서 출발해 수목원-고모리 쪽으로 가다가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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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빠지면 축석 검문소가 나오고 직진을 하면 고모리 카페거리가 핫플
입니다. 도시계획을 해서 그런지 상권이 많이 들어섰어요, 과거 미사리와
흡사해요. 고모리쪽 호수 옆에 라이브카페가 하나있는데 스테이지 바로
앞에서 술을 마실 수가 있으니 추억 소환이나 데이트코스로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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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쯤 걸으면 '무교동 낙지', '욕쟁이 할머니네' 쌈밥이 먹을 만 하고
코로나 끝나면 '자동차 극장'에서 영화 한판 때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국립수목원' 간판이 멋져보입니다. 바위에 아크릴로 2중 로로를 한 것
같습니다. 저는 빈티지 숍에 들려 차 한 잔 얻어마셨어요. 맨손으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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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10년 만에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고 하더이다. 아이고 배야!
갑자기 배가 아픈 이유를 아시나요? 이 불황에 이것은 인간승리입니다.
제가 미군 용품 사업 접을 때 이 집에 물건을 1,000만원에 다 넘겼어요.
1억 되는 물건을 말입니다. 아, 내 인생의 봄날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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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인풋을 많이 해야 하지만 아무리 많이 읽은들 직접 써 보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잘 쓰려면 자꾸 써야 할 것입니다. 많이 생각
하든지, 읽든지, 경험하든지 해야 좋은 글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저는
글감을 위해 여행을 자주가고 사극 몰 빵을 추천합니다. 이처럼 글쓰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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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싸움이자, 엉덩이 싸움입니다. 생각의 연결, 충돌, 융합이 글로
바뀌려면 엉덩이의 끈질김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죽치고 앉아서 쓰고
또 쓰며, 고치고 또 고치는 수밖에 없어요. ‘무기여 잘 있거라.’ 는
헤밍웨이가 무려 39번이나 새로 썼다는 것 아닙니까? 매일 한줄이라도
2021.3.6.fri.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