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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다리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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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여행자료 스크랩 도산서원의 도산매(陶山梅)....9개월의 사랑, 20년의 이별과 사랑
이삭 추천 0 조회 97 12.11.28 19:21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지난 번 1박2일 안동여행의 마지막 여정은 도산서원이었다

                               서원에 가서 다른 것보다는 매화나무를 보고 싶었다.

                               도산매에는 450년 전, 조선 최고의 유학자인 퇴계선생과

                               기생이었던 두향의 애절한 사랑이 깃들어있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이다

                               선생의 사후, 선생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사당을 짓고 전교당(보물 제210호)과

                               동,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하였으며 선조임금에게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영남유학의 중심지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손되지않고 존속해왔다.  

                               

                               도산서원은 두어 번 들린 적이 있지만 가을에는 처음인데...

                               가을의 끝자락이었지만 서원의 가을풍경이 이토록 아름다울 줄은 미처 몰랐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서원으로 향하는 길.

길이 정말 이뻐서 한껏 여유를 부리며 느리게 걸었다. 

 

 

강건너편에 시사단(試士壇)이 보인다.

시사단은 조선시대 지방별과를 보였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정조대왕께서 선생의 덕을 추모하여

임금의 제문으로 제사지내게 하고 이곳 송림에서 어제로 과거를 보였는데 응시자가 7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안동댐 수몰로 송림은 없어지고 단(壇)만이 현 위치에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과거의 자리를 표해두고 있다. 

 

 

 

서원 앞마당.

앞에는 안동호로 흐르는 낙동강물이 여유롭고,

아담하고 짜임새있는 서원 뒤에는 아직 단풍이 곱다.

 

 

퇴계선생이 짓고 거처하셨다는 도산서당으로 들어가는 길.

 

 

서당앞에 있는 몽천.

몽매한 제자를 바른 길로 이끌어가는 스승의 도리와, 한방울 샘물이 솟아나와

 수많은 어려움을 거쳐 바다에 이르듯이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신의 뜻을 이룩하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서당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싸리문이 크게 보인다.

열어놓아도 닫아놓아도 별 다를게 없는, 닫아도 안이 들여다보이는 문.

집의 문도 마음의 문도 굳게 닫아놓는 요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서당건물.  잠시 마루에 앉아 대학자의 생활을 상상해보다.

 

 

서당곁에 있는 매화나무.

두 부인과 사별하고 아들마저 앞세운 대유학자를 안타까이 여긴 선조임금은

퇴계선생을 경치좋은 단양군수로 내려보냈고 두향은 단양의 관기였다.

마흔 여덟살의 대학자와, 총명하고 거문고와 시,그림에 능했던 열여덟의 두향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의 애틋한 사랑은 선생이 풍기군수로 떠나게 되면서 9 개월만에 이별을 맞았다.

 

                                  

두향은 매화를 몹시 좋아하는 퇴계선생께 이별의 정표로 매화를 선물했고 선생은 평생 그 매화를 곁에 두고 아꼈다고 한다.

세상을 떠날 때에도 매화를 먼저 걱정할 정도로 매화를 사랑한 선생. 어쩌면 선생에게 매화는 두향을 향한 마음이었을 지도 모른다.

선생과 이별한 두향은 기적에서 빠져나와 선생과 자주 거닐던 단양 강선대에 움막을 짓고 선생만을 그리워했다

선생은 69 세에 운명하셨고 이별한 지 20년만에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안동까지 달려와

멀리서 선생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난 뒤 단양으로 돌아가 남한강에 몸을 던졌다.

 

 

매화나무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많이 윤색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근엄하고 엄숙한 조선 최고유학자의 진솔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금도 퇴계선생의 종가에서는 매년 두향의 묘를 벌초하고 그녀의 넋을 기린다니 그역시 같은 마음일 것이다.

 

 

광명실.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 습해를 막기위해 누각형태로 지었다한다.

 

 

 퇴계선생의 친필인 광명실현판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서원의 전교당(보물 제210호)과 서재인 홍의재

 

 

동재인 박약재

 

 

도산서원의 편액은 명필가 석봉 한호선생이 선조임금앞에서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유생들이 공부하던 전교당.  글을 읽는 유생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서원으로 들어가는 문에 작은 북이 달려있다.

학교종처럼 공부를 시작하는 신호로 북을 친게 아닌가 나름대로 추측해본다.

 

 

다시 내려서는 길.  유유히 흐르는 강을 마주하고 ...

 

 

 

 

도산서원의 가을이 이토록 이쁠 줄이야...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인 농운정사.

제자들이 공부에 열중하기를 바라며 공(工)자 모양으로 짓도록 했다고 한다.

 

 

농운정사의 동편마루는 시습재라 하며 공부를 하던 곳이고

서편마루는 관란헌(觀瀾軒)이라 하며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도산서원의 전사청.  제사를 지낼 때 제수를 마련하여 두는 곳이다.

 

 

장판각.  서원에서 찍어낸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던 곳이다

목판 2,790장을 보관해오다 보존상의 문제로 지금은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했다고 한다.

 

 

비어있는 장판각의 서대.

 

 

계절을 잊고 피어난 꽃

 

 

늦가을의 도산서원에서 멋진 풍경과 아름다운 사랑얘기에 흠뻑 젖어들다.

 

 

 서원을 뒤로하고 나오는 길.  여전히 풍광은 아름답다.   

20 년동안 선생과 두향은 만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만나지 않은 것일 터이다

          두향은 선생의 명성에 누가 될까봐, 선생, 역시 두향에게 먼저 손을 내밀지 못했을 것이다    

                            서른의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랑이 애절하고 아름다운 이유이다.                        

 

一樹庭梅雪滿枝(일수정매설만지)   
    뜰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風塵湖海夢差池(풍진호해몽차지)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玉堂坐對春宵月(옥당좌대춘소월)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

鴻雁聲中有所思(홍안성중유소사)
  기러기 슬피 울 제 생각마다 산란하네

                                                                                               - 퇴계 이황의 "매화시첩"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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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11.28 23:06

    첫댓글 잘봤어요~

  • 12.11.28 23:16

    올봄에 다녀왔는데 그때랑 많이 다르군요
    조용하고 참 운치있는곳이죠
    특히 매화사랑에 감동받았던곳입니다
    아직 기억에 남는건 부엌에 딸린 조그마한 방
    사람은 잘수없을것같았고 암튼 너무작아서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 12.11.29 01:58

    아......


    감동입니다....^^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 12.11.30 15:16

    9월 20 일에 다녀왔는데 ~ 비가 내려서 우산들고 대충 견학하여 가을의 풍광이 실제 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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