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사람의 건강과 평안을 지켜주는 크고 아름다운 나무
언어로 표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제가 만나는 나무의 느낌을 언어로 모두 표현하는 게 최소한 제 깜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사진을 이용하지요. 조금이라도 더 나무를 온전히 표현할 방법을 생각하면서, 기계의 힘을 빌리는 셈이지요. 그래서 고급 기종의 사진기를 빼놓지 않고 들고 다닙니다. 비교적 무게가 있는 사진기여서, 늘 가지고 다니는 3개의 렌즈가 담긴 가방을 하루 종이 어깨에 메고 다니기는 좀 힘든 편입니다. 그래도 나무의 이미지를 제대로만 표현할 수 있다면,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진으로 나무의 이미지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나마 글로 채 표현하지 못하는 이미지를 보태주는 정도 이상은 되지 못합니다.
○ 언어로 사진으로 온전히 표현하기 어려운 나무의 느낌 ○
그나마 지난 20년 동안의 이력이 생겨서인지, 들녘에 홀로 서 있는 나무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큰 실수나 안타까움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진으로 나무의 이미지를 온전히 표현하는 것도 사실은 불가능합니다. 사진에 채 담을 수 없는 나무를 둘러싼 느낌, 서양말로 ‘아우라 aura’라고 할 만한 그것은 언어로도 사진으로도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홀로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라, 여러 그루가 모여 있는 숲을 표현하는 건 더더구나 언감생심입니다. 때로는 숲 안에 들어서 있는 한 그루의 큰 나무를 표현하려고 거의 하루 종일의 긴 시간을 소비하고도, 사진기에 찍힌 사진 속의 나무 이미지는 제가 느낀 나무의 이미지만큼이 되지 않는 결과를 얻고 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경남 창원에서 보낸 일박이일 동안 꽤 많은 나무를 만났습니다. 더 많은 나무를 보고 싶었기에 출발 전에 나무 사이의 이동 거리를 십 킬로미터 내외로 짧게 잡고, 몇 차례의 코스를 조정한 일정이었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많은 나무들을 만났습니다. 경남 의령군에서 시작해 창원시를 거쳐, 함안군, 그리고 다시 창원시로 연결한 코스였습니다. 전체적으로 백 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였지만, 그 사이에 만난 나무들이 죄다 반갑고 좋은 나무들이었습니다. 그 많은 나무들 가운데에 이번 답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창원 신방리 음나무군〉이었습니다.
○ 가파른 비탈에 무리지어 서서 마을의 평안을 지켜온 나무 ○
그러나 〈창원 신방리 음나무군〉의 장엄한 이미지는 도무지 사진으로 온전히 표현할 도리가 없습니다. 창원시 의창구 동읍 신방리의 신방초등학교 뒤편의 조붓한 도로 곁 비탈에 자리잡은 천연기념물 제164호 〈창원 신방리 음나무군〉은 모두 네 그루의 음나무가 이룬 작은 숲입니다. 주변에 어린 음나무들도 함께 자라고 있지만, 네 그루의 거대한 음나무가 풍경을 압도하는 탓에 다른 나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네 그루 가운데 가장 큰 음나무는 높이가 15미터를 넘는다고 하는데, 다른 세 그루의 나무도 그와 거의 비슷한 크기입니다. 거의 수평 방향으로 도로를 향해 뻗은 나무만 조금 작아 보일 뿐, 다른 세 그루 모두가 무척 장합니다. 가슴높이줄기둘레는 모두 3~4미터 정도 되는 크기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큰 음나무들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한 이 네 그루의 음나무가 신방리 마을의 비탈진 언덕에 자리잡은 건 대략 400년쯤 전이라고 짐작됩니다. 비탈의 경사가 급한 탓에 언덕 위로 올라가기는 조금 불편합니다. 이 숲을 찾은 그 날, 마침 가볍고, 밑창이 맨들맨들하게 닳아버린 운동화를 신고 있었지요. 자동차 뒤칸에 등산화가 두 켤레나 있었지만, 미처 갈아신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헤맨 겁니다. 이 언덕에서 나무가 오래도록 이만큼 온전히 잘 보존된 건, 마을 사람들이 이 작은 음나무 숲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믿어온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숲의 나무들이 마을로 들어오는 마귀를 막아준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 오래 전부터 마을로 들어오는 마귀를 막고 쫓아낸 숲 ○
음나무는 예로부터 귀신을 막아내는 나무로 여겨온 대표적인 나무입니다. 옛 사람들이 집의 울타리 곁에 한 그루씩 심어 키운 것이 그런 이유에서였다고 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음나무의 가지에는 무수히 많은 가시가 돋아나는데, 이 가시가 귀신으로부터 사람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옛 사람들은 믿은 겁니다. 즉 넓은 치맛자락이나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집으로 들어오려던 귀신들은 울타리 곁의 음나무 가시에 걸리게 되고, 순간적으로 귀신들이 “앗! 이 집에는 나를 붙잡을 만큼 뭔가 대단한 기운이 있는 모양”이라며 화들짝 놀라 도망가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나무를 키우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옆집에서 음나무 가지를 하나 구해서 대청의 담벼락에 걸어놓곤 했답니다.
사람을 귀신으로부터 지켜주는 음나무가 마을 어귀에 무리를 이뤘으니, 이곳 신방리 마을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편안했을 겁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숲이 마귀로부터 마을의 살림살이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믿어온 것이겠지요. 그런데 지금 이 〈창원 신방리 음나무군〉의 네 그루 큰 나무의 줄기나 가지에는 가시가 하나도 없습니다. 음나무가 가시가 내는 건, 사실 귀신을 막기 위한 게 아니라, 초식동물의 먹이로 사라지기 십상인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지요. 그런데 사백 년이나 살아온 이 음나무는 이제 어떤 초식동물보다 훨씬 큰 덩치로 자랐고, 이쯤되면 굳이 가시가 아니어도 초식동물의 먹이가 될 수 없게 된 겁니다. 가시를 낼 필요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 나무의 속살을 온전히 살펴볼 수 있는 겨울 숲 풍경 ○
〈창원 신방리 음나무군〉을 찾은 게 처음은 아닙니다. 몇 차례 찾아왔지만 기록을 돌아보니, 공교롭게도 모두가 여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숲의 다른 나무들도 푸른 잎이 울창할 때였어요. 그래서였는지, 이번 만남에서만큼의 큰 감동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네 그루의 음나무는 물론이고, 주변의 다른 나무들까지 모두 잎을 내려놓고, 줄기와 뿌리 부분이 고스란히 드러난 상황이어서 나무의 속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던 게 이번 음나무와의 만남이 감동적일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역시 겨울이야말로 나무의 본색을 더 꼼꼼히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계절입니다.
마침 나무 앞 도로의 인도에서 바로 곁의 신방초등학교의 한 어린 아이를 만났습니다. 아이를 마주 보며 혼잣말처럼 “나무가 참 훌륭하지 않니!”라고 허수로이 말했습니다. 아이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이 엄나무가 우리 학교를 지켜주는 나무예요.”라고 역시 혼잣말처럼 흘리며 지나갔습니다. 분명 나무들 앞의 입간판에 ‘음나무’라고 쓰여 있지만, 아이는 나무를 ‘엄나무’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 아이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음나무’ 보다 ‘엄나무’를 더 익숙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전국의 식당을 돌아다니며 살펴보면 ‘엄나무 백숙’은 있어도 ‘음나무 백숙’은 없잖아요. 음식 문화가 나무 문화를 앞서는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그 ‘엄나무 백숙’의 엄나무의 정확한 식물명이 바로 ‘음나무’입니다. 그리고 그 음나무 가운데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음나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곳 창원의 천연기념물 제164호 〈창원 신방리 음나무군〉입니다.
2020년 새해의 첫 달이 뒤숭숭하게 흘러가고 이제 이월입니다.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다치게 하는 일들이 이어지는 날들입니다. 여느 때보다 몸 조심 하셔서 건강한 날들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무슨 일이 벌어져도 그러해야 하겠지만, 지나친 근심으로 마음이 다치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모두 평안하십시오.
- 이 땅의 사람살이를 평안하게 지켜주는 숲을 생각하며 2월 3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