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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 역사와 우리나라 역사 마지막 제10마당. → 이집트 역사와 우리나라 역사 총론.
상고시대(上古時代) 즉 고대사(古代史)를 인정(認定) 할려면은 조건이 있다.
첫째 그나라의 글자가 있어야 한다.
둘째 물증(物證)이 있어야 한다.
세째 그나라의 역사서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다른나라가 기록한 역사서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세가지 조건에서 한가지라도 있다면 그 나라의 고대사를 인정할 수가 있다.
역사서 라고 인정되는 것은 편찬자가 있어야 즉 저술자가 있어야 하고 편수책임자 편수기간 완성한 연도 서문 발문 등이 있어야 인정할 수가 있다.
곧 역사란 크게 정사(正史)와 위사(僞史)가 있다.
정사는 편수자 편수책임자 편수기간 완성년도 서문 등이 있으며
위사는 즉 일본의 정통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이러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고로 일본사람들은 자기 조상이 도데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역사나 서양의 역사나 중국의 역사나 우리나라의 역사서는 전부가 저술자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술자 등이 있을 때 그 역사서는 인정이 되는 것이다.
세계사에서 자기나라의 역사를 저술한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는 위대한 분이 있다.
사마천 사기보다 약 300년 전에 저술한 분이 바로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역사>라는 책을 저술했다.
중국의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는 13년에 걸쳐서 BC 91년에 130권의 역사서를 저술하여 완성하였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사마천 사기보다 약 300년 전인 BC 425년경에 운명하였다고 하였으므로 그전에 그리스와 페르시아와의 전쟁과 이집트를 직접 가서 피라미드 등의 이야기를 기록한 9권의 <역사>라는 책을 저술하여 완성했다.
이집트의 역사가 사제 마네톤은 프톨레미 3세의 명을 받아 그리스어판 30권으로 된 이집트사 를 BC 246년에 편찬해냈다.
로마의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 BC 49년부터 활약함)가 이집트에 침입했을 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까지 불태워버리는 바람에 이집트사 사본도 함께 타고 말았다.
세라피스 신전에 보관되었던 이집트사 원본은 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서기 391년에 내린 기독교 이외의 신전에 대한 폐쇄령에 따라 접근이 어려웠던 그것마저 화제로 소실되고 말았다.
그러나 마네톤의 이집트사는 이집트를 연구하는 데 워낙 중요한 서적이라 많은 사람들이 소실 이전부터 이 책을 인용했고 특히 기독교 교부들은 구약성서의 권위를 증명하기 위해 그들의 저술 속에 평소에 애독하던 마네톤의 문장을 자주 인용했기 때문에 다행히 그 존재 자체가 잊혀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역사가들의 업적으로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물증들도 현재까지 가지고 있어서 세계문화탐방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이집트의 이러한 고대사가 있었다는 것을 통해 우리나라 역사와 비교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 이집트 역사를 통하여 복희씨(伏羲氏)=포희씨(包羲氏)와 우리나라의 역사를 말하고자 합니다.
고대 이집트인의 시간과 달력을 사용한 시대가 BC 3500년 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나라 의 역사로 보면 제5대 태우의(太虞儀)한웅시대이며 재위는 BC 3512년 ~BC 3419년이며 재위 기간은 93년간 하였다.
복희씨(伏羲氏)는 BC 3528년~BC 3413년이며 제5대 한웅이신 태우의(太虞儀)한웅의 12아들 중 막내이며 대호(大皥) 태호(太皥)라 하며 또는 복희씨(伏羲氏) 또는 포희씨(包犧氏)라 한다.
한역(桓易)=희역(羲易)을 만들었으며 그리고 제6대 한웅이신 분이 바로 복희씨의 맏형인 다의발 (多儀發)한웅이다.
◉ 복희씨(伏羲氏)에 대하여 나오는 역사서나 책은 다음과 같다.
1. 주역(周易) 즉 역경(易經)의 계사전(繫辭傳)은 공자님의 말씀이며 이 역경(易經)의 계사전하 (繫辭傳下) 제2장에서 포희씨(包犧氏) 즉 복희씨(伏羲氏)와 신농씨(神農氏)와 즉 염제신농씨 (炎帝神農氏)와 황제(黃帝)와 즉 황제헌원(黃帝軒轅)과 요(堯)임금과 순(堯舜)임금에 대한 글을 올려놓았다. 즉 이 분들께서 천지만물의 그 변함에 통달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게으르지 않게 하여 생활을 윤택하게 힘쓰신 것이다. 라고 기록하였다.
2. 사마천의 사기(史記) 130권 중에서 열전(列傳)이 70권이며 이중에서 제67권 째인 일자열전 (日者列傳)은 복희씨(伏羲氏)가 팔괘(八卦)와 64괘를 만들었다는 것과 주나라 문왕은 이것을 더 윤택하게 하여 팔괘(八卦) 괘사(卦辭) 효사(爻辭)를 지었다는 것과 사마계주(司馬季主)의 점술가 (占術家)에 대한 이야기의 기록을 하였다.
즉 문왕팔괘로 만든 다음 64괘의 괘사(卦辭)와 각 괘마다 6효(爻)가 있으며 이 효가 변화하여 384효를 만들어 운용하여 천하를 다스려서 왕도를 바로잡았다 라는 것을 사마천 사기에 기록하고 있다.
이 일자열전에서 월왕 구천(句踐)은 문왕의 팔괘에 따라 점을 쳐서 그 결과로 적국을 깨뜨리고 천하의 패권(覇權)을 잡았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3. 북송시대의 소강절(邵康節)선생이 말하기를 즉 그의 저서인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의 제1편에서 역(易)에는 세가지가 있다고 했다. 이 모두 복희씨(伏羲氏)의 팔괘도에 근본을 두고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세가지 역이란?
하(夏)나라의 연산역(連山易)은 간괘(艮卦) 즉 산을 첫머리로 하고
은(殷)나라의 귀장역(歸藏易)은 곤괘(坤卦) 즉 땅을 첫머리로 하였으며
주(周)나라의 주역(周易)은 건괘(乾卦) 즉 하늘을 첫머리로 하였다. 라고 말하고 있다.
곧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의 주 내용은 황극(皇極: 중앙을 말함)은 임금이 세상을 경영하는 글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집안의 가장(家長)으로서 해야 할 일들과 사업을 경영하는 사장(社長) 등이 해야 할 일들을 이 속에 말하여 놓았다.
4. 우리나라의 위대한 역사서인 태백일사(太白逸史)에서 복희씨(伏羲氏)는 BC 3528년에 태어났으며 시대는 제5대 한웅이신 태우의(太虞儀)한웅의 12아들 중 막내이며 성(姓)은 풍(風)이며 대호(大皥) 또는 태호(太皥)라 하며 또는 복희씨(伏羲氏) 또는 포희씨(包犧氏)라 한다. 그는 한역(桓易) 즉 희역(羲易)을 만들었으며 그리고 제6대 한웅이 바로 복희씨의 맏형 이신 다의발(多儀發) 한웅이시다.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소강절선생보다 복희씨는 무려 4,539년 전에 이러한 우주만물의 리치 (理致)=이치인 삼극이 같으며 체와 용이 같으며 떨어질 수가 없다. 다만 체와 용은 쓰임이 다를 뿐이다. 라고 한 최고의 철학이며 최고의 학문인 경전을 만들어 홍익인간에 활용하도록 하여 현재 역(易)이라고 하여 내려오고 있다.
다시 말한다면 한역(桓易) 즉 희역(羲易)의 주 내용은
삼이 하나가 되는 것을 체(體)라 하고
하나가 삼이 되는 것을 용(用)이라 한다.
섞임과 묘함이 한 고리에 있으며 체와 용은 따로 갈라질 수 없도다.
다만 체와 용은 그 쓰임이 다를 뿐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곧 리기이원론=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나 리기일원론=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은 다 같은 리치=이치로 체와 용은 한 고리에서 움직이며 같은 고리에서 쓰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곧 태백일사(太白逸史)의 역사서란
태백일사(太白逸史)란 역사서는 연산군(燕山君)과 중종 때의 학자인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이 1520년(중종 15년)에 펴낸 것이다.
이 책을 조선말의 애국계몽운동가 이신 해학(海鶴) 이기(李沂)선생이 간직했던 책이다.
이 태백일사의 역사책은
표훈천사(表訓天詞: 신라 십성의 한사람인 표훈의 저서를 말함)와
조대기(朝代記: 대진국 즉 발해 때 만든 배달의 뿌리이며 단군조선의 뿌리인 우리나라 옛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를 말함)와
진역유기(震域留記: 고려말 공민왕 때 조대기를 보고 쓴 배달의 역사와 단군의 역사서를 말함)와
위서(魏書) 물길전(勿吉傳)과 진천문지[晋天文志: 창힐(蒼頡)과 고신(高辛)은 치우(蚩尤)씨의 후예 라고 나오는 역사서]와
고려팔관기(高麗八觀記)와 고려팔관잡기(高麗八觀雜記)와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자치통감(資治通鑑) 한서(漢書)와 송사(宋史) 등을 근간으로 하여 만든 위대한 역사책이다.
다시 말한다면 우리나라의 역사서와 세계역사서에서 최초 역사서는 배달유기(倍達留記)이다.
이 배달유기는 3대 가륵(嘉勒)단군께서 만든 한웅시대=신시시대=배달시대의 비장서(秘藏書: 귀중한 역사서)이다.
5. 곧 태백일사를 통하여 복희씨의 역사를 말한다면
BC 2692년에 황제헌원이 태어났으며 그 이전의 역사인 즉 황제헌원보다 526년 전에 태어나신 즉 BC 3218년에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가 태어나신 염제신농씨의 역사를 모른다고 분명히 사마천 사기 69권째인 화식열전(貨殖列傳)에는 기록하여 놓았다. 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복희씨(伏羲氏)는 황제헌원보다 836년 전에 태어나신 분이다.
즉 복희씨는 BC 3528년에 5대 한웅시대=배달시대=배달국=신시시대에 태어나셨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태백일사의 역사서에서 말하기를 염제신농씨와 그 전의 복희씨의 역사까지도 기록 보전하고 있다.
그리고 황제헌원은 염제신농씨의 자손인 소전(少典)에서 갈라져 나간 공손씨(公孫氏)의 자손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130권 중 본기(本紀)가 12권이며 제1권인 오제본기편(五帝本 紀篇)은 중국의 오제(五帝)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말하고 있는 오제는 즉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제(堯帝) 순제( 舜帝)에 대한 기록이다. 이곳에서 황제는 소전씨(少典氏)의 자손으로 성은 공손(公孫)이며 이름은 헌원(軒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결론으로 한웅시대에서 단군조선에게 전한 한역(桓易) 즉 희역(羲易)은 원방각 즉 무극 반극 태극이 같으며 체와 용은 전부 다가 같으며 떨어질 수가 없으며 이러한 리치(理致)는 홍익인간 을 위하는 바(所=事)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한다면 주리론(主理論)과 주기론(主氣論)은 같으며 리기이원론(理氣二原論)=이기이원론 과 리기일원론(理氣一原論)=이기일원론은 같으며 그 원리는 전부 다가 제5대 태우의(太虞儀) 한웅시대에 복희씨가 만든 한역(桓易) 즉 희역(羲易)에서 나온 이론들이다.
곧 이러한 한역 희역은 한마디로 홍익인간을 위한 학문(學問)이며 철학(哲學)이다.
역경(易經) 즉 역학(易學)에 통달한 분으로 시대적으로 그 연대를 말한다면
북송의 대학자 소강절(邵康節)은 1011년에 태어났으며
주돈이(周敦頤)는 1017년에 태어났으며
정이(程頤)=정이천(程伊川)은 1033년에 태어났으며
남송시대에 주자(朱子)=주희(朱熹)가 1130년에 태어났으며
조선시대에 서경덕(徐敬德)은 1489년(조선 9대 성종 20년)에 태어났으며
이언적(李彦迪: 조선 9대 성종 22년)은 1491년에 태어났으며
이황(李滉)은 1501년(조선 10대 연산군 7년)에 태어났으며
이이(李珥)는 1536(중종 31년)에 태어났다.
곧 이러한 분들이 나타나서 사람을 선한쪽으로 가르치기 위하여 무한히 노력을 한 분들이라고 봅니다. 곧 전쟁보다는 세계평화를 위하여 노력한 분들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하여 사서삼경도 중요하지만 이 사서삼경을 다 통달한 분들도 시기와 모함에 걸려 유배 등을 가게 되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살아갔다고 봅니다.
아무쪼록 사서삼경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알 때 대안 대책 방책 등이 나온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역사서가 있었기에 이집트의 역사와 비교하여 그 당시에 어느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이집트를 최초로 통일한 메네스는 왕을 파라오 라고 했으며 시대는 BC 3150년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면 제9대 양운(養雲)한웅시대이며 재위는 BC 3167년~BC 3071년 이며 재위기간은 96년간 하였다.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의 역사는 8대 안부련(安夫連)한웅시대 이다.
➜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건설된 BC 2650년은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면 제14대 자오지(慈烏支) 한웅=치우(蚩尤)천왕시대이며 재위는 BC 2707년~BC 2598년이며 재위기간은 109년 하였다. 신시(백두산)에서 청구국(지금의 중국 산동반도)으로 도읍을 옮겼다. 청구국(靑邱國)은 14대 치우천왕시대인 한웅시대의 국호였다.
➜ 피라미드의 수호신인 스핑크스가 건설된 BC 2500년은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면 제16대 축다리(祝多利)한웅시대이며 재위는 BC 2509년~BC 2453년이며 재위기간은 56년간 하였다.
➜ 이집트 고왕국시대의 종말시대는 2150년이며 이러한 시대에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제3대 가륵(嘉勒)단군시대이며 재위는 BC 2182년~ BC 2137년이며 재위기간은 45년간 하였다.
제3대 단군이신 가륵(嘉勒)단군께서 신시시대=배달시대인 즉 한웅시대의 역사서인 배달유기 倍達留記: 배달시대의 역사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가륵단군께서는 한글의 근원인 정음삼십팔자 (正音三十八字)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土)라 하니 즉 가림토문자(加臨土文字)=가림다문자 (加臨多文字)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위대한 말씀이 있다. 아마 세계에서도 이보다 더 위대한 말은 없을 것이다. 즉 가륵조서(嘉勒詔書)를 말한다.
이 가륵조서는 3대 단군이신 가륵(嘉勒)단군시대에 말씀한 것이다.
가륵단군께서 재위 3년에 즉 BC 2180년에 천하에서 가장 으뜸가는 근본인 가륵조서(嘉勒詔書) 즉 가륵칙서(嘉勒敕書)를 만들었다.
가륵조서=가륵칙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欲爲父者 斯父矣(욕위부자 사부의): 어버이가 되고자 하면은 어버이답게 하여야 하고
欲爲君者 斯君矣(욕위군자 사군의): 임금이 되고자 하면은 임금답게 하여야 하고
欲爲師者 斯師矣(욕위사자 사사의): 스승이 되고자 하면은 스승답게 하여야 하고
爲子爲臣爲徒者(위자위신위도자): 아들이 되고 제자가 되고 신하가 되고 일꾼이 되면은
亦斯子斯臣斯徒矣(역사자사신사도의): 이도 역시 아들답고 제자답고 신하답고 일꾼다워야 합니다. 라고 위대한 말씀을 하셨다.
➜ 모세가 이끈 유대인의 출애급(出埃及)=탈출기(脫出記)=이집트 탈출은 기원전 1200년은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면 제23대 아홀(阿忽)단군시대이며 재위는 BC 1237년~BC 1161년이며 재위기간은 76년간 하였다.
을유년(乙酉年)이며 재위 2년에 즉 BC 1236년에 남국(藍國)의 임금 금달(今達)과 청구(靑邱)의 임금 구려(句麗)가 주개(周愷)에서 회합하고 몽고리(蒙古里)의 병력을 합쳐 가는 곳마다 은나라 성책을 격파하고 깊숙이 오지로 들어가 회대(淮垈)의 땅을 평정하고 포고씨(蒲古氏)를 엄(淹) 땅에 영고씨(盈古氏)를 서방(徐邦) 땅에 방고씨(邦古氏)를 회(淮) 땅에 각각 임명하여 다스리게 하니 은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위세를 우러러보고 두려워하고 겁을 내어 감히 접근하지를 못하였다.
➜ 이러한 이집트의 위대한 역사는 그리스 로마시대에 지배당하고 그 후 이슬람시대에도 당하고 프랑스에게도 칩입당하고 영국에게 보호통치를 1822년~1922년까지 약 100년동안 당하고 그 후 1차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팔레스타인 전쟁 즉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을 4차례를 격고 자유장교단의 쿠데타가 1952년에 성공하여 즉 군사혁명이 성공하여 나세르 대통령을 지나 사다트 대통령이 1981년에 암살당하여 부통령이 대신 이어받았다.
그 후 역사는 2012년에 4년제에 당선이 되어 현재는 5대 대통령인 무함마드 무르시가 이집트 나라를 이끌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한다면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13년에 걸쳐서 BC 91년에 총 130권을 저술하였다. 이에 열전(列傳)이 70권이며 69권째인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말하기를 자기는 황제헌원(黃帝軒轅) 이후부터는 기록을 하였으며 황제헌원의 이전의 역사는 자기는 모른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즉 한웅시대인 BC 2707년에 즉위하신 14대 치우천왕(蚩尤天王)시대인 BC 2692년에 황제헌원이 태어났으며 그의 이전의 역사인 즉 황제헌원보다 526년 전에 태어나신 즉 BC 3218년에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가 태어나신 염제신농씨의 역사를 모른다고 분명히 기록하여 놓았다. 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복희씨(伏羲氏)는 황제헌원보다 836년 전에 태어나신 분이다.
즉 복희씨는 BC 3528년에 태어나셨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는 염제신농씨와 그 전의 복희씨의 역사까지도 기록 보전하고 있다.
그리고 역경 즉 주역의 계사전은 공자님의 말씀이다. 계사전(繫辭傳)은 공자님께서 주역(周易) 즉 역경(易經)에 대하여 다시 설명을 한 것으로 계사전 상하가 각각 12장으로 되어있는데
계사전상(繫辭傳上)은 우주(宇宙) 대자연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계사전하(繫辭傳下)는 인사적(人事的)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계사전하 2장에 복희씨=포희씨(包犧氏)와 염제신농씨와 황제헌원과 요순의 말씀으로 천하를 이롭게 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곧 이러한 문헌외도 역사서나 사서삼경 등 증명이 되는 것이 많이 있다.
자우간에 각 나라의 역사를 통하여 연구하고 확인을 하게 되면 진리의 역사가 나오게 되어 있다.
이제부터라도 다시 재정립하여 올바른 역사를 찾아서 가르쳐야 한다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역사는 말하고 있다. 수 천년 수 만년의 역사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하였다.
결론으로 우리나라의 태백일사(太白逸史)외 그 전에 신라시대의 삼성기(三聖記) 대진국=발해 시대에 단기고사(檀奇古史)나 고려말 단군세기(檀君世紀)나 북부여기(北夫餘紀)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와 조선 숙종 때 규원사화(揆園史話)와 22대 정조시대의 유득공의 발해고 (渤海考)와 박정희대통령께서 발족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韓國民族文化大百科事典) 등의 역사서외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고 연구하여 미래를 이끌고 갈 화랑도(花郞道) 여랑도(女娘道) 들에게 물려주는 일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간략하게 말한다면
한인국(桓因國)=환인국 7대 → 한웅국(桓雄國)=환웅국 18대 → 단군조선(檀君朝鮮) 47대 [마지막 47대 고열가(高列加=古列加)단군은 진시황제에게 일부는 멸망하고 송화강의 아사달에 가셔서 별세하고 북부여의 해모수가 이어감] → 북부여 6대 → 고구려 고주몽이 나라를 세움.
그리고 왜놈 즉 일본 이라는 나라는 간악하고 간사스럽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조선왕조실록은 25대 철종까지는 우리의 선인이 기록을 하였다. 즉 조선 역사의 실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후에 기록한 고종과 마지막 순종의 실록은 일본이 간악 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예를들면 민비시해사건에서 철종 이후의 조선왕조실록에는 대원군이 마치 민비를 시해하기 위해 조정을 한 것처럼 꾸며놓았다. 왜놈의 간악한 짓을 숨기기 위해 실록의 역사마저도 조작을 하는 왜놈을 반드시 물리쳐야 역사가 바로설 수가 있으며 내 나라가 바로 걸어갈 수가 있다고 봅니다.
철종 이후의 조선왕조실록을 재조명하여 바로 세워서 일본의 간악한 짓을 밝혀서 다시 고종과 마지막 순종의 실록을 다시 써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농사 우리가 지어보세.
힘찬 하루 보내세요. 무더운 날씨에 몸 건강하세요.
상기의 글은 홍익역사단지(弘益歷史團誌) 천자문(千字文)의 본문에 나오는 글입니다. 현재 13마당 까지는 전자책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나머지는 열심히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곧 역사와 교훈의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역사란 많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 들어있다고 봅니다.
많은 지적과 많은 격려를 바라옵니다.
그 외 <당신이 수양대군이라면> <각 나라 흥망성쇠> 등을 전자책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학문과 사업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桓紀 9213년 神市開天 5914년 檀紀 4349년 丙申年(병신년) 西紀 2016년
7월 5일 화요일.
삼라만상을 좋아하는 心操彿山(심조불산) 庸史(용사)
* 나머지 자료와 참고문헌은 제 블로그(자료실 또는 홍보실) 첫 글인
천지인(天地人)방으로 http://blog.naver.com/hhs0203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