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사리 안길
아침저녁 기온이 많이 서늘해졌다. 이렇게 가을이 이슥해져 간다만 지난번 태풍이 경과한 이후 하늘은 쾌청하지 못하다. 올해는 코로나 확산으로 공장 가동이나 자동차 통행량이 줄게 되어 대기는 맑아졌다. 미세먼지가 예년에 비해 확실히 줄어듦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가을이면 대기가 맑아져 먼 산이 가까워 보여야 할 텐데 구름이 낀 하늘에 비가 부슬부슬 내린 날이 많다.
코로나 감염원에 노출될까 봐 퇴근 후 나가는 산책 동선이 단조로워 갑갑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시내버스로 얼마간 이동하면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는 갯가 산책이 가능한데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하고 있다. 근무지가 학교이다 보니 혹시라도 감염자와 접촉되어 동료나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전전긍긍한다. 학생들과 교직원이 천 명에 이르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다.
출근길 산책은 꾸준히 하고 있다. 이른 아침 와실에서 연사 들녘과 연초천 둑길을 빙글 둘러 교정으로 든다. 월요일 오후는 퇴근해 빈 배낭을 메고 그 들녘을 지나 연초삼거리 농협 마트로 나가 시장을 좀 봐 왔다. 찌개 끓일 재료가 되는 애호박과 두부와 함께 곡차도 여러 병 사 냉장고에 두었다. 화요일은 갑갑증을 떨치려고 새벽에 시내버스 첫차로 외포를 둘러 학교로 출근했다.
사람들 이동이 적은 새벽 시간대 운행한 버스를 타기도 했다. 날이 덜 밝은 어둠 속 연사정류소에서 대계로 가는 첫 운행 버스를 탔다. 대계에서 차를 돌려 외포를 거쳐 두모실고개까지 승객은 나뿐이었다. 장목과 하청을 지나면서 연초삼거리와 고현으로 나갈 사람이 몇 명 탔다. 그날은 새벽길 코에 바람을 쐬어 퇴근하고 와실로 곧장 들어 이른 저녁을 지어 먹고 잠도 일찍 들었다.
어제는 아침부터 낮까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퇴근 무렵 비는 그쳤다만 하늘은 흐렸다. 와실로 들어 옷차림을 바꾸어 연사 들녘을 지나 연초천 하류로 나가봤다. 고현 중곡지구 아파트에 사는 이들이 천변으로 산책을 더러 나왔다. 모두가 마스크를 끼고 걸었다. 천변은 밀물이 다가와 수위가 높아지는 때였다. 흰뺨검둥오리들이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백로와 왜가리들도 보였다.
귀로에 와실 골목 입구 식당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먹는 점심 식사 차림은 학생 중심 식단이라 내 취향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비롯해 햄이나 소시지가 그렇다. 와실에서 해결하는 아침저녁 끼니는 창원에서 가져온 찬이 있긴 하나 된장찌개가 주를 이룬다. 식당에 들어 생선구이를 시켰더니 넙치와 전갱이가 나왔다. 맑은 술을 반주로 들면서 한 끼 잘 때웠다.
구월 셋째 금요일이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퇴근길 우산을 받쳐 들고 학교 서편 농로를 따라 연사마을 앞들을 걸었다. 마을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들판이라 평소 잘 들리지 않았다. 연사고개로 오를 때 마을 안길을 지난 경우는 더러 있었다. 연사 들판처럼 농지는 벼농사를 주로 지었다. 벼가 영글어 고개를 숙여갔지만 태풍으로 작황을 그리 좋지 않았다.
농로를 따라 벼논이 끝나는 곳까지 가서 마을 안길을 걸었다. 규모가 제법 되는 연사리였다. 마을 안쪽이 연사 본동이고 가운데는 연중이고 바깥은 연행이다. 연사 본동은 골목이나 집들이 시골다운 모습이고 연중과 연행은 원룸이 들어서서 도농복합 마을이었다. 텃밭에는 석류가 익어 계절감이 느껴졌다. 노승처럼 늙은 호박은 배꼽을 드러내고 곁에는 애호박을 동자승처럼 거느렸다.
와실로 들어 씻어둔 쌀은 밥솥 전원을 넣어 찌개를 데워 버섯볶음으로 저녁밥을 들었다. 냉장고 비축해둔 곡차를 꺼내 반주로 곁들였다. 스스로 잔을 채우고 비우는 자작은 익숙해졌다. 양조장이 먼 옥수수 동동주를 두 병 비운 후 세탁기가 도는 사이 설거지를 끝냈다. 이후 말려둔 셔츠를 다림질하며 텔레비전을 켰더니 용이 되려는 자들은 우리보고 가제나 붕어나 개구리가 되라나.20.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