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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8일, 일요일.....
부산 유유자적여행자클럽을 따라 구례 오산 사성암과 구례군 토지면의
운조루와 곡전재를 둘러보고 왔습니다........
오산은 구례읍에서 남쪽으로 약 십여리 섬진강 건너편에 있습니다....
사성암으로 가는데는 산아래 주차장에서 마을 버스로 15분 정도, 걸어서 올라가면
40여분 걸린다 했는데 버스 2대를 타고간 일행들은 대부분 걸어 올라가기로 하였습니다.....
오르는 쪽이 음달인데다 길이 몹시 가파르기도 하였고 때마침 찾아온 한파에
몹시추워 바람을 맞는 귓볼이 따끈따끈 아팠습니다...
누가 쌓았는지 돌탑이 군데군데..... 무슨 염원을 담아 쌓았을까?
중턱쯤에 오르자 섬진강과 그너머 구례 시가지가 보입니다.....
중턱에 멋진 정자가 세워져 있었지만 바람과 추위때문에 대부분 그냥 지나쳐 올라 갔습니다.....
여름과 가을에 오른다면 멋진 등산로가 될것같은데......
오산은 산의 모습이 자라가 물위에 떠있는 형국이라 [큰 자라 오鰲]자를 써서
鰲山 또는 金鰲山이라 하였고 처음엔 오산암이라 불렀는데
네분의 수도 이후 성인들을 기려 四聖庵이라 하였다 합니다....
우리는 2번 산책로를 따라 가다가 5번 정자있는 곳으로 가로 질러 올라왔군요....
오산 정상은 약 500m 남았군요....
마을 버스가 올라오는 길에 올라섰습니다....
사성암은 법당 앞쪽만 트여있고 3면이 거대한 바위절벽에 둘러쌓여 있습니다.....
25m의 절벽 바위 벽면에 3.9m 높이로 새겨진 약사여래 마애불상을
그대로 암자안에 모셔 절을 지었기에.....
약사전은 20여m의 기둥들이 받치고 있답니다....
조선 인조 8년(1630) 벽암선사가 중건한 이후 오랜세월 방치되어 있다가.....
1997년 진실스님이 고증과 사적을 근거로 중창불사를 일으켜 지금의 모습으로 단장하였고
드라마 토지에서 서희가 기도하던 도솔암으로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답니다....
약사여래 마애불이 절벽에 새겨져 있는 [유리광전]은
신도들이 법회중이라 안을 볼수가 없었고 멀리 아래로 섬진강이 보입니다....
우선 오산 정상으로 올라가다가....
소원바위에 이르르니.....
소원을 적은 소지를 줄에 매달고 있는 등산객이 있더군요.....
도선굴 앞의 산왕전.....
상왕전 옆으로 도선굴이 .....
굴은 인위적으로 판것이 아니라 그냥 바위의 틈새였습니다.....
굴 밖으로 나오니 절벽이.....
오산 정상(508m)에 있는 정자에 올랐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불고 추운지.... 서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내려다 보이는 구례읍 시가지와 오산을 휘감고 흐르는 섬진강이
추위속에서도 아름답습니다.....
풍수학의 대가로 불리는 도선국사는
이곳 오산 정상에서 지리산과 섬진강이 빚어놓은 형체를 보며
풍수공부를 하여 개안하였다고 전해진답니다.....
도솔암 왼쪽에 있는 수령 800년의 귀목나무.......
도솔암을 내려와 구례장터에서 [수구례국밥]으로 점심을 먹고.....
그 다음에 들른 [운조루]는 사진 노출조절에 실패하여
사진이 정상이 아닙니다....ㅉㅉㅉㅉ
운조루(雲鳥樓)는 구례군 토지면 오지리의 천하 명당터에 자리잡은 고택으로 ........
강능의 선교장, 창녕의 아석헌과 함께 조선의 3대 명택으로 꼽힌답니다....
운조루(雲鳥樓)라는 택호는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의
운무심이출수(雲無心而出峀) 조권비이지환(鳥倦飛而知還)....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오네....란
글귀의 첫 머리글자를 취하여 지었고
[구름 날고 새 사는 집]이란 의미가 담겼다고 합니다....
운조루는 조선 영조 때인 1776년 유이주(柳爾冑)라는 무인이
7년에 걸쳐 지었고 낙안군수와 삼수부사를 지냈다 합니다....
대들보와 섯가래의 나무무늬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못한것이 아쉽습니다.....
운조루는 99칸의 거대주택이지만 베품과 나눔을 실천한
적선지가(積善之家)였기 때문이라 합니다....
2만평의 논농사에서 연평균 200가마의 쌀을 수확했는데
그 중 20%정도인 36가마를 타인에게 베풀었다 합니다....
바로 이 통나무 뒤주에 쌀 2가마니 반을 넣어두고
하단부에 가로 5cm, 세로 10cm의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을 여닫는 마개에다 타인능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합니다....
타인능해란 다른 사람들도 이 구멍을 열 수 있다라는 뜻이랍니다....
각종 민란, 동학, 여순사건, 6.25전쟁등을 거치면서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은 것은 [타인능해]의 덕분이라 합니다....
운조루의 모든 굴뚝들은 1m이하로 만들어 연기가 마당에 깔리게 하여
높이 올라가지 않도록 한것은 굶고있는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합니다....
안방마님이 거쳐했던 안채입니다.....
운조루의 집터를 잡을때 땅 속에서 어린애 머리크기(25cm) 정도의 돌 거북이가 나왔는데.....
그 그북이가 말라죽지 않도록 부엌에 두었는데 1989년도에 도둑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 거북을 훔쳐간 도둑은 지금 잘살고 있을까? ......
안청마루의 시렁에 놓여있는 대 광주리들이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듯.....
아래층은 부억과 광... 2층은 다락방으로 만들어 공간을 잘 활용하였더군요.....
광안에는 여러가지 단지가 .....
대문 안쪽에 요강의 오줌을 붓는 [구유]가 있어 이곳에 요강을 비우면........
바깥쪽의 독으로 흘러들게 하여 오줌을 삭혀 거름으로 활용했다 합니다...
뒷켠의 우물에는 최근에 대리석 구조물을 얹었는데......
우물은 사용을 안하니 풀이 돋아나 있더군요.............
조선시대 상류층 사회에서는 집안에 [가빈터]라는 빈소를 설치하여
사망 한 후 3일만에 입관하여 가빈터에 모셔
3개월 동안 모시면서 조석으로 상식을 올리고 삭망에는 차례를 지냈다고 합니다....
문간방의 한켠에 공기가 잘 통하도록 통나무 창살로 창을 만든 가빈터를
해설사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흐릿한 모습이지만 운조루 대문의 모습입니다....
무인의 집 대문에는 호랑이의 뼈를 매달아 두었다고 하는데
양쪽에 뼈의 모형이 걸려 있었습니다....
운조루 앞 300여미터 앞에 [곡전재]라는 고택으로 갔습니다....
곡전재는 1940년 성주이씨 이 교신(호:곡전)씨가 인수하여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거처하고 있고
2003년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어됐다 합니다....
고택 오른쪽에 멋진 연못이 조성되어 있었고....
문간채, 사랑채, 안채가 모두 일자형으로 지어진 것이 특징이라 합니다....
뒷켠 북쪽은 대나무를 심어 바람을 막았고.....
장독대도 담장을 둘러쌓아 아담함을 뽐내고....
연못의 물레방아랑 징검다리 돌은 정말 탐이 나더군요....
연못의 물을 문간채 앞으로 흐르게 하여 멋진 정원을 만든것 또한 부러웠구요.....
집을 둘러싸고 있는 호박돌 담장엔 담쟁이 덩굴이 담을 꽉 부여잡고 있어
더욱 고풍스럽더군요.....
곡전재엔 삽사리 한마리가 오는 손님들을 따라 100여미터 떨어진 주차장까지 왔다가
버스가 떠나자 혼자서 쫄랑쫄랑 집으로 돌아 가더군요.......
흐릿한 사진을 끝까지 보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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