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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시 쓰기 - ① 백석, 유년의 고향 / 공광규 시인
시는 자기 자신의 현재와 과거를 이야기하는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문학입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프루스트는 “작가에겐 상상이란 없다. 단지 기억만으로 글을 쓴다.”고 했습니다. 개인의 체험에 대한 기억뿐 아니라 책이나 영화, 문화전반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글을 쓴다는 말입니다. 소설가인 르 클레지오도 “작가란 집단적인 기억을 조금 더 어루만져서 작품을 쓰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시 역시 어쩌면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회고의 문학일지도 모릅니다. 현재에서 과거를 바라보거나, 과거를 통해서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 창작은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자기 자신의 기록이며, 그 기록을 통해서 확인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소설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자전적인 것처럼, 시 창작 역시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다는 면에서 자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생애나 그 일부를 소재로 쓴 소설을 자전소설이라고 한다면, 자기의 생애나 그 일부를 소재로 쓴 시를 자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차에는 백석, 서정주, 신경림 등의 자전적 시를 감상해 보고, 자기 자신의 생애나 그 일부를 어떻게 시로 쓰면 될 것인가를 설계하고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① 백석, 유년의 고향
평북 정주에서 출생한 백석(본명 백기행. 1912~1955)은 오산소학교, 오학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다녔으며, 오산학교의 선배시인 김소월을 선망했고 문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그 母와 아들」이 당선되어, 조선일보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동경 아오야마학원 영어사범학교에 유학하였습니다. 유학 중에는 당시 일본의 민중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문학에 심취하여 자신의 필명을 석천(石川)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후 1935년 「정주성」이라는 시를 발표하고 1936년 시집 『사슴』을 출판, 그러나 한국전쟁 후 남북 분단으로 북한에 있는 그의 시를 오랫동안 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시에 사투리를 즐겨 사용하였으나, 분단 이후 북한의 방언억제정책으로 활동을 못하였다고 합니다. 남한에서는 출판이 금지되었다가 1987년에 해금이 되어서야 그의 시를 마음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백석이 시를 발표하던 시기에 한국 문단은 서구형 모더니즘 계열의 문학활동이 활발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백석은 어떤 유파나 동인에 가담하지 않고 독자적인 시를 썼습니다. 백석 시의 특징은 식민지 치하의 조국의 상황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민족 공동체 의식을 독특하게 형상화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시에 서사, 즉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지방의 토속어로 한국적 전통을 지속적으로 탐구하였습니다. 백석은 유년의 기억을 소재로 하여 시를 형상화하는 게 특징입니다. 시적 화자를 ‘나’로 하여 유년기의 생활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래 시는 일인칭 화자중심 말하기를 과거 유년의 현재 시제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명절날 나는 엄마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 고무 고무의 딸 이녀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 고무 고무의 딸 승녀 아들 승동이
육십리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가 흰 옷이 정하든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접을 잘 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려 가기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니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뽁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집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데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히득거리다 잠이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청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백석, 「여우난골족」 전문
위 시는 4연으로 된 산문체 시입니다. 내용은 명절날 정겨운 풍경을 어린아이 시각에서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에서 보듯이 백석 역시 유년의 자전적 기억을 소재로 시적 형상화를 하는데 장기를 보여주는 시입니다. 그의 시는 화자를 일인칭 ‘나’로 하여 유년기의 생활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기억을 소재로 썼기 때문에 이 시에서 느끼는 정서는 그리움입니다.
시적 화자는 현실의 세계가 아닌 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의 시적 대상은 어린 시절이라는 과거입니다. 백석은 많은 시편에서 어린이 화자를 내세워 과거의 공동체적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가족과 친척의 사랑과 인정을 친근감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인이 그리고 있는 화자의 고향 모습에서 명절날 흥겨웠던 가족 공동체의 삶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백석의 시를 통한 구체적인 고향 재현을, 조국 상실을 의식한 시인의 행위로 보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조국을 상실함에 따른 자아상실, 가족상실, 고향상실을 시를 토해 복원하려는 시인의 의지가 시의 대상을 의도적으로 고향을 다룸으로써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 시에 나타난 명사 중심의 주요 시어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인물 호칭어: 나, 엄매, 아매,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고무, 딸, 李女, 홀아비, 후처, 예수쟁이, 아들, 承女, 承동이, 과부, 洪女, 洪동이, 작은 洪동이, 삼춘, 삼춘 엄매, 사춘, 사춘 누이, 사춘 동생,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 시누이, 동세
(나) 신체어: 얼굴, 별자국, 눈, 살빛, 입술, 젖꼭지, 코, 눈물
(다) 대지어: 우리집, 큰집, 마을, 山, 해변, 섬, 배나무동산
(라) 생물어: 개. 홍게닭 등 동물, 배나무, 잔디, 고사리 등 식물
(마) 음식어: 매감탕, 반디젓, 송구떡, 콩가루차떡, 두부, 콩나물, 잔디, 고사리, 술, 도야지비계, 무우징게국
(바) 농촌공동체 및 노동어: 토방돌, 오리치, 안간, 외양간섶, 밭마당, 집안, 아르간, 웃간, 화디, 사기방등, 심지, 문창, 텅납새, 부엌, 샛문틈, 장지문틈
(사) 지명어: 여우난골, 新里, 土山, 큰골
(아) 민속어 및 놀이어: 명절날, 쥐잡이, 숨굴막질, 꼬리잡이,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이, 말타고 장가가는 놀이, 조아질, 쌈바이, 바리께돌림, 호박떼기, 제비손이구손이, 아릇묵싸움, 자리싸움
(자) 한자어: 族, 新里, 李女, 四十, 土山, 承女, 承, 山, 六十里, 洪女, 洪
(차) 동일 시어: 고무 고무의 딸(3), 따라(2), 내음새(3), 아이들(2), 나고(2), 하고(9), 밤이(2), 몇 번이나(2)
도입부에 명절날 엄마를 따라서 큰집에 가면 여우난골의 세계가 어떻게 펼칠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도 화목한 가족의 일원으로 따라가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 다음 단락에서는 신리 고모와 고모의 딸 등 친척들의 모습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백석의 창작 방법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어휘를 열거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대상을 화자를 통해 천진난만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또 방안의 새옷 냄새나 여러 가지 음식도 열거하고 있습니다. 풍요로운 기억의 유년 세계입니다. 저녁을 먹은 아이들이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며 밤이 어둡도록 놀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고 있는 것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백석 시를 읽어보면, 평안북도의 방언이 많이 나옵니다. 한 국어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용언(동사, 형용사)의 경우 평북방언이 대부분인데,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의 경우 다른 지역 방언도 12% 정도 나온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기억을 시로 쓴 다른 시를 보겠습니다.
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내려간지 오래다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아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다가
시악이 나서는 등 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다 던져버린다
장날 아츰에 앞 행길로 엄지 따러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크다란 소리로
―매지야 오나라
―매지야 오나라
새하려 가는 아배의 지게에 지워 나는 산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맞구멍난 토끼굴을 아배와 내가 막아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 다리 아래로 달아났다
나는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백석, 「오리 망아지 토끼」 전문
위 시는 3연으로 구성, 세 가지 이야기를 독립하여 3개 연에 배열하고 있습니다. 1연에서는 화자가 아배를 따라서 오리사냥을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리를 잡으러 간 아배가 날이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자 화가 난 시적 화자는 아배의 신발과 버선, 대님을 개울물에 던져버립니다. 화자의 친진난만한 행위가 재미있게 서술됩니다. 2연에서도 천진난만한 동심 세계가 펼쳐집니다. 시적 화자는 막무가내로 “망아지를 내라”고 조릅니다. 그러면 아배는 “매지야 오나라” 하고 망아지를 부르는 시늉을 합니다. 여기서는 대화체를 사용하고 있는데, 대화체는 시에 생동감을 줍니다. 3연은 아배를 따라가 체험한 토끼사냥에 대한 아쉬운 기억이 서술됩니다. 특히 토끼새끼가 언제나 다리 사이로 달아났다고 하는 사건이 재미있습니다.
백석의 시에는 지방어가 많이 나올 뿐만 아니라, 평북지역의 음식, 놀이, 민간신앙 등 여러 가지 민속적 소재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시를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러나 세부적인 의미는 모르더라도 전체적인 의미는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시인 박용철은 해득하기 어려운 약간의 어휘를 그냥 포함한 채로, 그 전체를 감상하고 느끼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모국어의 위대한 힘을 깨닫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박용철은 당시 일제 강점기에서 없어지고 있는 우리 언어에 대하여 순수를 지키려는 의식적 반발을 표시하고 있다며, 시어로 방언을 사용한 시들은 보편성을 가진 전 조선적 문학과 먼 거리에 놓인다며, 조선문학의 특성을 조선색이나 지방색에서 발견하려 한다면서 조선문학을 식민문학으로 조정화하려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시인 오장환은 백석의 시가 민족성과 지방색을 잃고 모방과 유행에 허덕이는 조선의 뼈 없는 문청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구실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변태적일 정도로 이상한 사투리와 뼛뼛한 어휘는 현대의 난삽한 기계문명에 마비된 젊은이들이 이상한 사투리에 일시적인 쾌감과 흥미를 느끼겠지만 지성의 결핍을 반증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오장환은 백석의 시가 갖는 사투리와 옛이야기, 연중행사의 묵은 기억 등을 질서도 없이 곳간에 볏섬 쌓듯 구겨넣는 데 지나지 않는다며 형식이 난잡하고 인식이 천박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반된 주장들을 보면 당시에 백석의 시가 상당히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조사에 의하면 현재 시인들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시인은 백석이었습니다.
-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공광규, 시인동네, 201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