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몹시 부는 새벽, 거리에 낙옆을 쓸고 있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불어대는 초겨울 바람처럼 참으로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었지요. 낙옆은 거센 바람에 거리를 춤추고 있었고 남자가 쓸고 있는 낙옆 역시 빗자루에 고이 잡히지 않고 나풀대는 겁니다. 쓸어놓은지 수초도 되지 않아 다시 거리를 방황하는 낙옆들이었습니다.
남자는 왜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을까요? 그 남자는 환경미화원이니까요.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니까 공무원이나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그는 그런 쓸데없는 일이라도 한 눈을 팔 수 없는 겁니다. 낙옆이 춤추건 말건 제 할 일만 하면 그만이니까요. 참으로 성실한 공무원이지요.
게다가, 그의 가족들은 그를 믿고 그 차가운 신새벽 집에서 편안하게 잠들어 있을 겁니다. 성실한 가장인거죠.
낙옆의 감상에 잠시 빠졌다가, 나는 금방 차가운 현실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저 초겨울 바람부는 쓸쓸한 거리를 지키는 한낱 풍경이 아닌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엄연히 지켜야 할 치열한 현실이 숨어 있는 겁니다. 그의 곁을 비켜가는 저 역시도 그 새벽 생선을 사기 위해 어판장에 가고 있었으니까요.
새벽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현실인 모양입니다.
남자의 뒤에 숨어있던 안타까운 현실은 또 있었습니다. 문득, 생각납니다. 2007년 늦가을에 들어서 당시 민주노동당은 대선후보 경선에 시끄러웠지요. 그때 환경미화원들이 만든 노조가 민주연합노조였지요. 그때 그들이 권영길 후보를 100프로로 투표한 겁니다. 경악을 금할 수 없었죠. 북한 공산당도 아니고, 어떻게 100프로의 찬성이 나올수가.
난, 민주연합노조 위원장인 떡대를 불러서 따졌지요. 떡대는 대답했지요. 우리 노조원들은 일사불란 철저하고 단결이 잘 된답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서 알아차렸습니다. 지역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던 주사파 아이들의 장난이구나.
그리고 저는 민주노동당을 탈당을 하고 다음 해 봄 역시 국회의원 대가리 싸움에 불만을 품고 뛰쳐나온 노심조의 진보신당에 가입을 한 겁니다.
남자에게 현실은 아마 임금일 겁니다. 정치 조직에게 현실은 선거인가 봅니다. 그래서, 어거지를 부리고 부정을 저지르고 왜곡을 시키는가 봅니다.
남자의 소박한 거리 청소가 순진해 보이다가도, 이런 일들이 연상이 되면 그만 낭만적인 감성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퍼뜩 정신이 차려집니다. 저 역시도 어판장 입찰에 잠시 후 곤두서야 하니까요.
우리는, 치열한 현실 속에서도 가끔은 마음을 놓아버리고 감성과 감상과 연민과 아름다움의 시간을 만들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소박하고 순수함이 전부 사라진다면 인간은 도저히 물질만으로서 살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아무리 치열한 노동조합과 정치조직일지라도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조금이라도 스며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너무나 살벌해요. 너무나 목소리에 핏대가 서 있어요. 너무나 비장해요.
이제, 현실은 다른 곳에 이미 와 있다는 것을 좌파들은 모르고 있어요.
이미, 노동현장에는 프롤레타리아는 떠나고 없답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100년전 사라진 프롤래타리아에 집착해서 몸부림치는 이땅의 좌파들에게 측은함을 느낍니다.
프롤레타리아는, 우리들에게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는 겁니다.
그것이 이 겨울 거리에서 낙옆을 쓸고 있는 남자에게서 볼 수 있는 겁니다.
첫댓글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