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4일 저희 집에
VR 기기인 HTC 사의 VIVE가 미국에서 공수되어 왔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시고 일부 어얼리 어댑터는 "와우 VIVE를 샀단 말이야.
나도 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이겠지만 대다수의 월요편지 독자분들은
"이게 뭔 소리야" 라는 반응이실 것입니다.
VR은 Virtual
Reality 즉 가상현실입니다. HTC는 대만의 핸드폰 제조사이고 VIVE는 그 회사에서 만든 VR 기기입니다. 즉 가상현실기기 하나가 저희 집에 들어왔다는 말입니다.
VR 기기는 많이 나와 있습니다.
국내 제품도 여러 가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가상현실의 맛을 보여주는 수준이고 그것을 가지고 가상현실을 제대로 즐기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 나와 있는 가상현실기기 중 최고가 바로 이
VIVE라는 놈입니다.
드론은 중국 회사 제품이 세계 최고입니다. 그런데 VR은 대만 회사 제품이 세계 최고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핸드폰에 집착할 때 중국은 드론, 대만은 VR에 집중하였던 모양입니다.
VIVE는
2016년
4월 15일 출시되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판매되고 있지 않습니다.
저도 아들을 시켜 미국에서 구매하여 한국으로 공수하는 불편함을 겪었습니다. VIVE는 간단히 이해하시면
360도 화면입니다. 방 전체가 극장이라고 생각하시면 정확합니다. 눈에 기기를 쓰고 있으면 완전히 다른 세상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현실이 아니라 가상현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현재 VIVE로 가장 많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게임입니다. 멋진 경치를 보는 여행 소프트웨어도 있지만 다 초보 수준이고 게임은 완성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제 나이에
VIVE로 게임을 할 처지는 아닌데 왜 이것을 구매하였는지 궁금해지실 것입니다. 가격도 799불이니 적지 않은 출혈을 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것을 샀을까요?
2016년
4월 21일 카이스트의 김지현 교수로부터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올 여러 가지 혁명적 변화를 설명하면서 New
Screen 시대가 온다는 표현을 하였습니다.
이제 인류는 TV와 같은 평면이 아닌 VR과 같은 New Screen으로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츠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HTC의 VIVE를 소개하였습니다. 그 당시는
VIVE가 출시된 지 보름도 안 되었을 때입니다.
저는 New
Screen이라는 말이 매우 매력적으로 들렸습니다. 비주얼에 관심이 많던 저로서는 새로운 화면이라는 말에 유혹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아들을 시켜 어떤
VR 기기가 가장 성능이 좋은지 알아보게 하였고, 그 리서치 결과 VIVE가 가장 우수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5월 초 이를 미국에서 구매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아들 친구가 배달받고 그가 한국에 공수하는 과정에 시간이 걸려 드디어
7월 14일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저는 궁금하였습니다. 핸드폰 매장에서 국산 저가 VR 기기를 사용해 보았을 때 화면이 선명하지 않고 머리가 아픈 기억이 있어 과연
VIVE는 어떨까 궁금하였던 것입니다.
한참 아들 녀석과 함께
VIVE와 씨름하며 설치하였습니다. 이미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인 밸브 사에서 HTC와 손잡고 VIVE 용 게임을 많이 개발해 놓았습니다. 저는 그중 가장 쉬운 슈팅 게임인 SPACE
PIRATE 이름하여 우주 해적이라는 게임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우주선 선장인데 레이저 포로 해적 우주선을 맞춰 추락시키는 게임입니다. 1978년 발매되어 공전의 히트를 쳤던 아케이드 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VR에서 맛보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차원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말입니다.
2차원 평면 스크린으로 게임을 하다가 3차원 공간에서 게임을 하니까요. 해적선이 쏘는 레이저 포를 피하는 방법도 과거에는 컨트롤러를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지금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화질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입니다.
이번에는 The Blue라는 게임을 해봅니다.
게임 명칭에서 직감적으로 느껴지듯 바닷속을 들어가 보는 게임입니다. 아름다운 바닷속입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바다입니다. 저 멀리서 물고기가 다가옵니다. 점점 가까워지니 물고기가 아니라 고래입니다. 갑자기 저도 모르게 몸을 피하게 됩니다. 고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헤엄쳐 사라집니다.
이번에는 난파선입니다. 해적선이었는지, 상선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오랜 세월 바닷속에 있어 바다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 갑판 위를 헤엄쳐 이동합니다. 제 생전에 어떻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대형화면을 통해 바닷속을 보며 경이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의 충격은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저 화면이 커진 것이 아니라 그 현실 속에 제가 있습니다.
아들 녀석이 꼭 보라고 권한 작품이 있습니다.
Irrational Exuberance: Prologue입니다.
이 게임은 금년 말 출시될 게임의 데모 영상입니다. 이 게임은 VIVE의 모든 가능성을 실험하는 게임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첫 장면은 제가 우주선 안에 있습니다. 양손에 쥔 컨트롤러를 흔들어 봅니다. 컨트롤러가 벽에 닿을 때마다 벽이 부서집니다. 양손의 컨트롤러를 마구 휘저어 벽을 부수니 우주 공간입니다. 이제 바닥만 남았습니다. 한 발자국만 앞으로 더 디디면 끝이 없는 우주 속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분명히 저는 거실에 서 있는데 제가 인식하는 현실은 우주 속입니다. 아래를 내려다보기가 무섭습니다. 간신히 바닥끝으로 나아가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혜성과 운석이 이리저리 날아다닙니다. 이때 갑자기 소행성들이 저를 향해 무더기로 날아듭니다. 몸을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과 몇 분이지만 경이로운 체험입니다. 프롤로그만 보고 이렇게 흥분이 되는데 게임이 출시되면 어떨까요.
10일 동안 몇 번
VR 기기를 사용하였습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세상과는 단절된 저만의 세상에서 놀고 있습니다.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화질이 HD 급이지만 풀 HD, 나아가 울트라
HD인 4K 수준에 이르면 가상현실을 진짜 현실로 착각할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하루 종일 PC 방에 있는 PC 폐인들이 많은데 VR 폐인들이 사회 문제가 될 것 같았습니다.
게임
Irrational Exuberance를 한국말로 번역하면 [비이성적 과열]입니다.
[Irrational Exuberance]는
1996년
12월 5일 닷컴 열풍으로 미국 주가가 거침없이 상승하자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위원회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비이성적 과열이 자산 가치를 지나치게 상승시켰다
(irrational exuberance has unduly escalated asset values)"고 주식시장을 경고하면서 처음 쓴 용어입니다.
저는 이 게임의 제목이
VR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VR 기기에 대한 비이성적 과열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문화 전문잡지
[와이어드]의 공동 창업자 케빈 켈리는 금년
6월 7일 출간된 [The Inevitable]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업데이트를 싫어하는가?
그러나 그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미래에 우리는 기술로 둘러싸여 항상 업데이트의 물결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항상 초보자일 것이다. 당신의 나이가 얼마이든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든 죽을 때까지 초보자(Endless Newbie)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의 새로운 숙명이다."
이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기기들을 평생 학습하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기기가 세상에 나오면 그 유용성 여부를 떠나 일단 사서 써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야 세상에 뒤처지지 않을 테니까요. 법학도인 제가 공학도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에 영원한 초보자로 잘 스며들어 살려면 최소한 이런 정도의 노력과 비용은 지불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6.7.25.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