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학 -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전우를 위한 노래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가로 사용된 ‘백학’의 가사를 지은 시인 라술 감자토프. |
전쟁을 소재로 한 음악은 다양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치열한 전투 상황 묘사, 아군의 사기 증진, 승전 축하, 위대한 전쟁영웅 칭송 등 그 유형이 무척 많다. 여기에는 전쟁에서 죽은 자들을 위로하고, 평화와 화해를 염원하는 주제 역시 절대 빠질 수 없다.
'백학’의 곡을 붙인 작곡가 얀 프렌켈. |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곡
혹시 1995년도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던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곡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당시 SBS 광복 50주년 특별기획으로 제작된 이 드라마는 방송이 시작되면 거리가 한산해져 ‘귀가시계’로 불릴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그러면서 드라마 주제곡 역시 당시로는 아주 생소한 러시아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남자 가수가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듯 쏟아내는 목소리가 압권인 ‘백학(영어로 Crane, 러시아로 Zhuravli)’이다.
백학을 처음 부른 부른 가수 마르크 베르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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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술 감자토프의 시에 곡을 붙여
이 곡은 일반적으로 러시아 민요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렇지 않다. 중앙아시아의 체첸 근처에 위치한 다게스탄(Dagestan) 출신 서정시인 ‘라술 감자토프(Rasul Gamzatov)’가 쓴 시에 우크라이나 출신 작곡가 ‘얀 프렌켈(Yan Frenkel)’이 곡을 붙인 것이 원조다.
‘백학’ 덕분에 감자토프는 ‘레닌’상을 수상하며 ‘다게스탄의 인민시인’ 칭호를 얻었다.
시는 1950년대에 지어졌지만 노래가 완성된 건 1968년이다. 심지어 노래도 우크라이나 출신 배우이자 가수인 ‘마르크 베르네스(Mark Naumovich Bernes)’가 불렀다. 작사·작곡·노래 모두 러시아 민족이 아니다.
드라마를 통해 우리 귀에 익숙해진 노래는 베르네스 사후 ‘이오시프 코브존(Iosif Kovzon)’이 다시 녹음한 것이다. 가수들도 모두 유명해졌는데 베르네스는 1995년도 인민공연예술가에 올랐고, 코브존은 국회(하원)의원이 됐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들을 수 있는 ‘백학’의 목소리는 이오시프 코브존이 다시 녹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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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의 전우를 생각하며 작시
감자토프에게 영감을 준 사건은 바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참혹한 싸움이었으며, 중요한 전환점이 된 스탈린그라드 전투다. 이 전투에 참가해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그는 함께 싸우다 죽은 같은 민족 전우들을 가슴에 묻고 돌아와 그들을 생각하며 ‘백학’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시 배경부터가 이처럼 슬프고 애절하다.
시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동원돼 죽은 병사들이 고향에 묻히지 못하고, 낯선 땅에서 하얀 학이 되어 이승을 떠돌며 울부짖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쟁 승리를 노래한 것도 아니고, 영광된 죽음을 칭송한 것도 아니며 처절한 전투 현장을 묘사한 것도 아니다. 그저 전투에 참가해 죽은 전우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그들의 영혼을 달래는 노래, ‘진혼곡(鎭魂曲)’이다.
유혈의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이 낯선 땅에 쓰러져 백학이
돼버렸다는 생각이 가끔 드네
저들이 저 먼 시간에서 날아와
울부짖는 것은
우리가 자주 슬픔에 빠져 하늘을 보며
침묵하기 때문이 아닐까
피곤에 지친 새들이 떼를 지어 석양의
안개 속을 날아다니는데
저들 무리 속 작은 공간은 어쩌면
나를 위한 것은 아닌가
학의 무리처럼 새날이 찾아들면 나도
그들처럼 회색 안개 속을 훨훨 날아보리
이 땅에 남겨진 우리 모두에게 하늘
아래서 새처럼 울부짖으며…
전쟁 레퀴엠 - 코벤트리 대성당 재건을 기념해 제작
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코벤트리 대성당의 재건을 기념해 ‘전쟁 레퀴엠’을 작곡한 에드워드 벤저민 브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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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대표하는 브리튼의 작품
1962년에 발표된 ‘전쟁 레퀴엠(War Requiem)’은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며 피아니스트였던 ‘에드워드 벤저민 브리튼(Edward Benjamin Britten)’의 작품이다.
소프라노 가수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5살엔 노래, 7살엔 피아노곡, 9살엔 현악 4중주곡을 작곡할 정도였고, 16세에는 런던 왕립음악원에 입학해 본격적인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학창 시절에도 수준 높은 곡을 만들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고, 졸업 후에는 교향곡·협주곡·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미국에선 아스펜상, 핀란드에선 시벨리우스상, 덴마크에선 소낭그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에 널리 명성을 떨쳤다. 전쟁 레퀴엠 역시 그의 대표적인 명곡 중 하나로 평가된다.
재건된 코벤트리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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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폭력성 경고하고 평화 도모
전쟁 레퀴엠은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11월 독일군의 런던 공습으로 파괴된 ‘코벤트리 대성당(Coventry Cathedral)’의 재건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곡이다. 레퀴엠은 죽은(전쟁으로 희생된) 자의 영혼을 달래는 아주 특별한 진혼곡으로 종교음악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평화주의자였던 브리튼이 작곡한 레퀴엠은 당연히 전몰자를 위한 곡이기는 하지만, 이를 넘어 전쟁의 폭력성을 경고하고 세계 평화와 화합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이를 위해 브리튼은 몇 가지 상징적인 시도를 했다. 우선 대표적인 전쟁시인 오언의 시구를 실어 “영원한 안식(1부), 진노의 날(2부), 봉헌송(3부), 거룩하시다(4부), 신의 어린 양(5부), 풀어놓아 주소서(6부)”로 구성했고, 중립어인 라틴어로 가사를 붙였으며, 참전국 간 화합을 상징하기 위해 영국의 테너, 독일의 바리톤, 소련의 소프라노 가수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작곡했다. 그러나 초연에선 아쉽게도 소련 정부의 반대로 소프라노가 참석하지 못해 다른 사람으로 교체됐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런던 대공습으로 폐허가 된 코벤트리 성당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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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에서 전승기념일 등에 연주
곡은 어둡고도 엄숙한 분위기의 관현악으로 시작해, 절정을 지나 마지막으로 향하면서 종소리가 울리고, 전사자들의 장송 행렬이 지나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어린이들이 부르는 평화와 화합을 위한 기도와 찬송가가 올려퍼지며 마무리된다.
런던 초연 후 많은 찬사를 받았고, 세기의 명작으로 칭송되면서 영국을 필두로 세계 각국에서 널리 연주됐다. 진혼을 넘어 세계 평화와 화합을 지향했다는 차원에서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는 전사자를 위한 추도식, 전승기념일 등 전쟁 관련 각종 기념일이나 행사에 이 곡을 즐겨 연주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충일이나 6·25 관련 행사에서 종종 들을 수 있다.
<윤동일 북극성 안보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