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방송과 드라마로 이룬 ‘라디오 전성시대’
일제강점기의 교양 프로그램은 한국인의 문화 개발을 위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사상 선도에 중점을 두었다. 광복 후 다양한 교양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라디오 게임>은 퀴즈 프로그램의 효시로, 이후 <장학퀴즈>로 연결되었다. 1956년 <청실홍실>로 라디오 연속극 시대가 열렸다.
1960년대는 아직 TV가 보급되기 전이어서 그야말로 라디오의 전성시대였다. 방송국은 드라마를 30분 단위로 띠편성하기에 이르렀고, 대부분이 멜로물인 라디오 드라마는 인기를 누렸다. 인기 드라마는 대부분 영화로 제작 되었고, 책이나 음반으로도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았다. 1970년대는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시대다. 또한 차량이 본격 증가한 시기이기도 했다. 차량이 증가하면서 방송국마다 아침 교통 체증 시간에 교통방송을 편성했다. 버스 및 택시 운전기사들에게 교통 통신원 자격을 부여했고, 교통 통신원들은 시내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방송국에 전했다. 라디오는 TV와 생존경쟁을 벌였다.
속보성을 이용한 뉴스와 생활 정보 프로그램, 스포츠 중계, DJ 음악방송을 주로 편성하고 심야 및 새벽, 정오 무렵을 전략 시간대로 설정하며 살길을 모색했다.
라디오 키드의 출현
라디오를 들으며 성장기를 보내는 청춘들이 늘면서 인기 음악방송과 인기 DJ의 팬덤이 형성된 것도 이 시기였다. 1978년 당시 방송된 대표 음악방송으로는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와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TBC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DBS 라디오 <0시의 다이얼>, CBS 라디오 <꿈과 음악 사이> 등이 인기를 끌었다. 가요와 팝, 영화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송을 통해 라디오 키드는 다른 사람의 사연을 들으며 웃기도 하고, 자신의 사연을 엽서에 띄워 보내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 시대에 젊은 날을 보낸 청춘들은 전파를 타고 흐르는 언어와 소리를 통해 삶의 순간과 시대 감성을 공유했다.
방송국 표시장.
중계차용 마이크.
<MBC 예쁜 엽서전>에 출품된 엽서들.
<별이 빛나는 밤에> 목판 엽서.
<별이 빛나는 밤에> 사연 모음집.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시낭송 음반.
바람 소리 음향 효과 도구.
디지털 시대에 각광받는 라디오의 아날로그 감성
한국전쟁 중 전차나 천막에 모여 라디오로 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방송통신대학교와 방송통신고등학교가 개교하면서 라디오로 교육 기회를 누리기도 했다. 라디오는 외국어 학습에도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각 방송국은 아침 시간에 영어 강좌를 방송했고, AFKN 또한 영어 학습에 활용되었다. 초기 국악을 주로 방송하던 음악방송은 1960년대 들어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 심야 음악방송을 편성했다. 당시 라디오와 TV를 넘나들며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불어넣어준 방송인 황인용 씨는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분이 많다. 풍요로운 인생을 위해서는 아날로그 감성을 넓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라디오의 역할을 강조했다. 배현숙 서울역사박물관 관장은 “그 시절 라디오는 세상 소식을 듣는 통로이자 가족이 즐기는 대중문화 매체였다. 소통이 줄어든 언택트 시대의 현대인들에게 라디오가 다시금 의미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라디오가 오래전 그때처럼 시민의 삶에 활기와 에너지를 부여하는 빛과 소금이 되길 기대해본다.
황인용
전 아나운서, <밤을 잊은 그대에게> DJ
“지금도 많은 분이 황인용 하면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떠올립니다. 팝 프로그램 DJ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게 굉장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정부에서 방송국에 심야 프로그램을 아나운서에게 맡기라는 지시를 내려 제가 하게 된 것인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라디오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라디오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밤을 잊은 많은 ‘그대’와 함께할 수 있어서 진정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한국 라디오 연표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 개국
경성방송국 마이크.
1933년 4월 26일
이중방송(한국어, 일본어) 개시
1945년 8월 15일
일본 항복 방송
1946년 10월 18일
정시방송제 실시
1947년 9월 3일
호출부호 HL 배정
1948년 7월 29일
제14회 런던 올림픽 중계
런던 올림픽 기행.
1951년 4월 3일
라디오 청취료 폐지
조선방송협회 청취료 영수증.
1954년 12월 15일
기독교방송 개국
1961년 12월 2일
문화방송 개국
1963년 4월 25일
동아방송 개국
1964년 5월 9일
라디오서울 개국
1969년 3월 17일
문화방송 음악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 시작
1973년 3월 3일
한국방송공사 창립
그 시절 우리의 라디오 DJ
<1978, 우리 가족의 라디오>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는 1978년 서울 미아동에 있는 어느 한 가족의 주택을 재현해 1970년대 라디오 문화를 전시한다. 전시장에서는 당시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진행했던 DJ 황인용의 목소리를 통해 가족의 사연을 들을 수 있어 더욱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해당 전시는 9월 29일부터 사전 예약 관람제로 만나볼 수 있으며,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 VR 온라인 전시를 통해서도 관람할 수 있다.
서울생활사박물관
위치 노원구 동일로174길 27
문의 02-3399-2900
홈페이지 서울생활사박물관 https://museum.seoul.go.kr/sulm/index.do
홍현도
서울생활사박물관 학예사
“언택트 시대의 소통 수단으로 라디오에 주목했습니다. 라디오야말로 오랫동안 언택트하면서 서민과 소통해온 가장 두드러진 소통 수단이니까요. 이번 전시는 1970년대 서울 미아동에 사는 가상의 영희네 가족을 등장시켰습니다. 국내 최초의 국산 라디오와 1960~1970년대 라디오 편성표, 라디오 드라마 <전설따라 삼천리> LP판 등 다양한 기록물을 전시했습니다. 라디오 시대 속 서울의 소리를 듣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임지영 사진 한상무 일러스트 한성원 사진 제공 서울생활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