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法華經)에는
「나는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오직 무상도(無上道)를 아끼느니라」고 설(說)하셨으며,
열반경(涅槃經)에는
「차라리 신명(身命)을 잃을지라도
교(敎)를 숨기지 말지니라」고 훈계(訓誡)하셨느니라.
이번에 목숨을 아낀다면 어느 세상에 부처가 될 수가 있겠는가.
또한 어떠한 세상에서 부모(父母)·사장(師匠)도 구제(救濟)해 드릴 수 있을까 라고·
오로지 결단(決斷)을 내려서 말하기 시작하였더니,
생각한 대로
혹(或)은 거처(居處)를 쫓기고,
혹(或)은 매리(罵詈)당하고
혹(或)은 맞고
혹(或)은 상처(傷處)를 입었는데,
지난 홍장원년신유(弘長元年辛酉) 오월(五月) 십이일(十二日)에
감죄(勘罪)를 받아
이즈지방(伊豆地方)의 이토(伊東)에 유죄(流罪)되었다가
또한 같은 홍장삼년(弘長三年) 계해(癸亥) 이월(二月) 이십이일(二十二日)에
사면(赦免)되었느니라.
보은초(報恩抄)
어서 321쪽~322쪽
젊은날의 일기
1951년 1월 17일 (수) 쾌청 –23세-
「총(總)하여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은 자타피차(自他彼此)라는 마음없이 수어(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異體同心)이 되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더구나 지금 니치렌(日蓮)이 홍통(弘通)하는 바의 구극(究極)은 이것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도 이루어질 것이니라.
더군다나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중(中)에 이체이심(異體異心)의 자(者)가 있다면 예(例)컨대 성(城)안에 있는 자(者)가 성(城)을 파괴(破壞)하는 것과 같으니라」(〈생사일대사혈맥초〉어서 1337쪽)
날씨는 따뜻한데 몸 상태는 매우 나쁘다. 어제 하루 빠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 오전부터 업무에 분주. S씨 댁 등을 방문.
학회, 도다 선생님의 입정안국론 강의 개시.
청년의 마음은 더한층 고동친다.
밤에 오기쿠보에 있는 O씨 댁을 방문, 12시까지 협의했다.
돌아가는 길에 선생님 댁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K씨도 와서 자고 갔다.
역사 있는 하루하루를 뜻있게, 내 가슴속에 발자취를 남겨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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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1월 17일 (일) 비온 뒤 흐림 –26세-
보슬비.
오후에는 본부에 갔다.
M군, R군과 배부터 채우고, 야나기타 구니오 씨 댁에 《가치론》을 증정하러 갔다.
세이조(成城)학원, 부재중, 아쉽다.
6시부터 8시까지 제1회 반장 교학 시험을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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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월 17일 (화) 쾌청 한때 구름 –28세-
이른 아침의 도쿄 역, 가네코가 홀로 마중 나와 있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다. 일단 집으로. 10시가 되었다.
건강 제일이다. ― 생명력과 복운과 ―. 묘법으로 ― 신력, 행력으로.
6시, 본부. 시험 채점. 끝나고 청년부회(남자부) 지도. ― 도시마공회당.
귀가. 아름다운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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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1월 17일 (금) 맑음 –30세-
매화꽃은 ···.
샛노란 개나리꽃은 ···.
아침에 주사를 맞았다. 오랜만에 선생님을 차분하게 뵈었다.
본부에서 “다이사쿠, 오랜만이네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운 스승의 따뜻한 눈길. 스승의 커다란 사랑에 감동했다.
청년이여, 사악한 모든 권력에 저항하라.
내일부터 시간을 정해 독서하기로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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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월 17일 (토) 흐림 –31세-
아사히카와 역 ― 낮 12시 35분발 기차를 타고 유바리로 향했다.
홋카이도는 실로 웅대하다. 세계에서 으뜸가는 ― 정신계를 크게 개발하자고 결의했다.
언제인가, 이 대지에서 수많은 지도자가 배출될 날을.
유바리 역 ― 5시 30분 도착.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감사했다. 이러한 다부진 동지들이 있기에 ― 앞으로의 투쟁에 결코 지지 않으리라. 이 사람들을 위해 ― 나는 일어서야만 한다. 때는 ···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시대의 흐름인가. 요구인가. 숙명인가.
저녁 무렵 ― 눈이 조금 씩 내리는 속에 ― T지부장 댁으로.
밤 ― 영화관을 빌려 〈시조깅고전답서〉 어서 강의와 질문회.
입추의 여지없이 영화관을 가득 메운 이 열과 힘을 구도의 자세로 ― 결의는 더욱더 견고해 졌다.
탄노(炭勞) 사건 발생지.
은사가 젊은 시절, 교편을 잡으셨던 땅.
분쿄의 벗들이 구축한 역사의 땅.
밤늦게까지 T씨 댁에서 간부들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립고도 그리운 땅, 벗,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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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월 17일 (일) 쾌청 –31세-
오전에 계속 간사이 본부에 있었다.
오후에 화양회, 수호회, 지구부장회, 지구담당원회, 총블록장회 등 모든 회합에 참석.
피곤하지만 분투했다. 기관지염인지 가슴이 아팠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오후 6시 ― 간사이 총지부 간부회. 나카노시마공회당. 1만 명 이상이 참석하여 공회당 바깥에까지 사람이 넘쳤다고 한다. 두 차례 걸쳐 질문회 실시.
원칙론이나 추상론, 확신론 보다도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지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반성했다.
밤 9시부터 T군 입불식에 참석.
2시 넘어 취침.
첫댓글 감사합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