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병동
신준수
어린 날의 꿈과 추억들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곳. 때로는 즐거움이
때로는 슬픔이 동강의 물결처럼 흐르던 영월에 40년 세월을 묻어둔
채 너무도 낯선 도시로 떠나왔다 그런 낯설음도 다섯 달이 지나 이
젠 조금씩 정이 들어간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흐린 하늘, 바람이 세차게 불어 온다. 꽃샘추
위란다 그때 내 삶도 그랬었다. 아니 꽃샘추위가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쩜 한겨울의 그런 시간이었는지도...생각만 해도 마음이
시려 온다.
내 친구 가운데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14년 동안 속내를 내 보이
며 가깝게 지내던 은아 엄마가 있었다. 은아 엄마는 눈만 뜨면 모닝
커피를 마셔야 문화인이라며 아침마다 가게로 나와 커피를 나누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곤 했다.
그런 은아 엄마가 어쩐 일인지 한 동안 뜸하다 싶었다. 그래서 궁
금증을 못 이겨 커피를 타 가지고 찾아갔다.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간밤에 은아
아빠랑 부부 싸움이라도 했는지 아니면, 집안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어 어디 아프냐고 했더니 그는
다정스레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
리곤 내 얼굴을 아주 진지하게 바라다보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
다.
"나하고 병원 좀 같이 갈래? 혼자는 무서워서 못 가겠어."
"왜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아니, 아프진 않은데 기운이 없고 피곤하고 기분이 별로 안 좋
아”
친구의 보호자인양 그녀를 앞세우고 병원으로 갔다. 그는 내게 기
왕에 왔으니 같이 검진을 받아 보자며 접수를 했다. 나는 가벼운 마
음으로 검진을 받고 친구와 집으로 돌아왔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
주일을 기다리는 동안도 친구의 안색은 어둡기만 했다. 나는 그런 친
구를 위로하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친구에게 아무 일이 없기를 바
라며 우린 검진 결과를 보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 결과를 보고 나온 친구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화사한 봄
볕처럼 밝은 생기가 되돌아와 있었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순간 휴
대폰이 울린다. 병원인데 검사결과를 보러 오란다' 지금 대기실에 있
다고 했더니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직접 나와서 나를 부른다.
진찰실에 마주 앉아 무겁게 입을 떼는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는
암흑 속의 천둥소리처럼 들려왔다. '암... 암이라니 지금 난 이렇게
건강한데 내 얼굴빛이 사색이 되었다든가 나는 눈물이 흐르는 것조
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르게 진찰실을
나왔다. 궁금해하는 은아 엄마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푸르름에 시린 눈을 감는다. 잔뜩 얼어 가는
가슴을 숨기려 아니 주책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숨기려 올려다 본 하
늘 한 자락이 펄렁이고 있다. 세상이 흔들리고 있는 듯 청천병력이란
단어는 이럴 때 쓰여지는가 보다.
내가… 내가 암이라니 아니, 내가 잘못 들었던가 그도 아니면 검사
결과가 잘못 나왔던가 둘 중 하나일 거야 지금 난 이렇게 건강한데,
암' 이라니 억장이 무너졌다. 마음은 촛불처럼 창자 속에서 녹아 내
리고 있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큰 병원으로 가라는 말과 함께 원주 기독병원에 특진 예약
을 해 주었다.
나는 곧 입원 준비를 했다. 순간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이제 초등
학교 2학년과 6학년 아직은 내가 아니면 양말 한 짝 제대로 못 찾아
신는데..… 남편 얼굴도 떠오른다. 결혼하여 지금껏 가게 일이 바쁘다
는 핑계로 따뜻한 밥 한번 못 해주고 출퇴근 때 다정하게 인사 한번
못 했는데, 나와 내 가족이 살아온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았기에 여기
서 끝내기엔 너무도 억울했다. 내가 죽으면 뭐가 되어서 우리 가족들
을 지켜 줄까.
고난받는 사람의 부르짖음을 모르는 체 하지 않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이제 나의 운명은 주님 손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를 지켜주십시오 나의 육신은 하나님께로 피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횡설수설 안절부절 못 하는 나에게 의사
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걱정 마세요 아직 초기니까 바로 수술하면 괜찮아요. 일찍 발견
되어서 다행이에요. 암은 말기가 될 때까지 아프거나 특별한 증상이
없기 때문에 이대로 6개월만 더 있었어도 가망 없다 소리 나와요. 하
지만 어머님은 운이 좋은 거예요.”
운이 좋다고! 지금 나보고 운이 좋다고!
내 운명에 화가 났지만 마음을 다잡고 입원을 했다. 수술에 필요한
채혈, 초음파 심전도 검사등을 거처 조직 검사를 한 후 이틀 뒤로 수
술 날짜가 잡혔다.
입원실엔 여덟 명의 환자들이 있었다. 조금 전 수술실에서 나온 사
람은 마취에서 막 깨어나는지 아프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움츠려 있
는 나를 더 움츠리게 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아 머리가 다 빠진 채
초췌한 모습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을 보며, 얼마 뒤 내
모습처럼 보여 두렵고 무서웠다. 창밖에는 눈물 속에서인지, 꿈속에
서인지 긴 세월동안 함부로 살아오지 않은 또 다른 내가 나를 지켜보
고 있다.
조직검사로 인해 내 기력은 옹기처럼 말라버렸고 한없이 흐르는
눈물은 주체할 수 없었다.
순간 언젠가 읽었던 도종환 님의 <암병동>이란 시가 생각났다.
희망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믿음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온 세상이 암울한 어둠뿐일 때도
우리들은 온 몸 던져 싸우거늘
희망이 있는 싸움은 진실로 행복하여라.
앞부분밖에 생각나지 않지만 수 없이 읊었다. 희망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믿음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수술 전날 밤은 밤이 새도록 <암병동>을 주문처럼 외웠다. 그러나
막상 수술실로 들어가는 나의 마음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였다. 아
무런 위험도 느끼지 않았다. 주께서 나를 보호 하시리란 믿음과 나
를 지켜 주시리란 확실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 시간의 기나긴 수술이 끝나고 아물하게 정신이 들 무렵 담당
의사가 와서 수술은 아주 잘 되었고 아주 초기라서 깨끗하고 방사선
치료는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말을 하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
다'를 번갈아 하는 남편과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가족들의 음성이
멀리서 들려오는 기차의 기적 소리처럼 가물가물 들려 왔다.
참으로 감사했다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고통의 날은 사라지
고 수술 10일만에 퇴원을 했다 그리고 14년 동안 운영하던 가게를
정리하고는 남편이 직장 때문에 오래 전부터 살고 있던 도시로 이사
준비를 했다. 이제는 떨어져 살지 말아야지. 그리고 온 가족이 오순
도순 살아야지 하는 생각 때문에 오랜 세월 일궈온 가게도 아낌없이
정리할 수 있었다.
세월은 흘러 벌써 이 도시의 시민이 된 지도 다섯 달이 지났다 이
제는 생활에 안정을 되찾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얼마 전 까지
만 해도 가슴 쓰리고 절망적인 일들을 겪었고 죽음과 삶의 강을 넘
나들며 고통은 얼마나 나를 힘들게 했던지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만이 참다운 인생을 안다'는 말이 있듯이, 이런 힘들고 쓰라린
일들을 겪었기에 이제는 다른 이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 할 줄도 알
며, 행복에도 기쁨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봄날에 후리지아를 닮은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 멀리 있는
다정한 이웃 은아 엄마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첫댓글 죽음과 삶의 강을 넘나들며 고통은 얼마나 나를 힘들게 했던지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만이 참다운 인생을 안다'는 말이 있듯이, 이런 힘들고 쓰라린
일들을 겪었기에 이제는 다른 이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 할 줄도 알
며, 행복에도 기쁨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