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끈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로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앞 넓은 길을 울며 뒤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사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처 매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어휘풀이]
-인경 : 통행금지를 알리거나 해제하기 위해 치던 종으로, 여기서는 보신각을 나타냄.
-육조 : 조선시대 국가의 정무를 맡아보던 기관(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작가소개]
심훈(1901~1936)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되어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퇴학 당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였다가 1923년 돌와와 연극, 영화, 소설 집필에 몰두한 그는 특히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대표작으로 <상록수>, <영원의 미소>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 등이 있다.
출처:
『향기가 묻어나는 세계명시 150』
뜻있는 사람들
문영 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