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무릎 꿇는다는 것
글쓴이/봉민근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다는 것은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 뜻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이다.
억지로 무릎 꿇는 것은 굴종이지 꿇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외식하는 것은 오히려 죄가 된다.
하나님은 결단코 인간의 자유의지를 꺽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음으로써의 비극을 아시면서도 강제로 제지하지 않으시고
마침내 하나님 자신이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갈 때에 마음 아파하시지만 스스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인격의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를 이처럼 인격적으로 대하심은
실로 놀라운 은총이 아닐 수가 없다.
우리는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만한 아무런 공로가 없는 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우리의 존재를 인정하시며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으신다.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그토록 존귀하게 여기시는지 인간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하나님은 죄 많은 나를 인격적으로 대하시는데 나는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지 못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죄와 허물이다.
죄인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고 의인은 의인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건만
하나님은 우리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의롭다 하신다.
무엇이 그리도 잘났다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는지
내게 만입이 있어도 그 은혜를 어찌 다 형용하겠는가!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며 사는 것이
믿음이요 하나님께 무릎 꿇는 것이다.
내 고집과 죄와 허물들을 그대로 두고 사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일이다.
하나님과 원수 되어 살아서야 어찌 그 생명을 보존하겠는가?
주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한다.
죽어도 갚지 못할 은혜다.
지존자요 전능하시고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인간 되심이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자료/ⓒ창골산 봉서방
기도가 깊어 갈수록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상처를 들고 주님 앞에 기도하다 보면
점점 절실하게 와 닿는 것은 주님이 받으신 상처를 보게 됩니다
극심한 고독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내놓고 기도하다 보면
주님도 이 땅위에 사는 동안 고독 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살면서 받은 아픔 때문에 눈물 흘리며 슬픔에 젖어
주님 앞에 기도하다 보면 주님의 슬픔을 만나게 됩니다.
기도의 무릎으로 나아가기 전에는 자신의 어떠함을 붙잡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그러나 기도로 더 깊이 주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자신의 기분 보다는 주님의 어떠함을 만지고 위로받고 치유 받고
회복 되는 것을 느낍니다.
점점 기도가 깊어지면 이제는 주님으로 충만한 영혼이 됩니다.
그에게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환경이 보이지 않습니다.
세찬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것 같다가도
조용한 바다 위를 걸으시는 주님만 보입니다
기도 없는 사람은 자기가 움직이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주님으로 움직입니다.
예수로 말하고 예수로 생각하고 예수를 표현하게 됩니다.
자기의 기쁨은 없어지고 자기의 슬픔도 없어지며
자기의 원한도 없어지고
자기의 행복도 없이 오직 예수의 상처, 예수의 소원,
예수의 심장, 예수의 슬픔으로
예수님을 가득하게 채움 받아 이 세상을 능력 있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선물
고난은 죄를 씻어준다.
고난은 인생을 씻어 깨끗하게 한다.
고난은 인생을 깊게 만든다.
이마 위에 깊은 주름살이 갈 때
마음속에 깊은 지혜가 생기고,
살을 뚫는 상처가 깊을 때
영혼에서 솟아오르는 향기가 높다.
평면적 세속적 인생관을 가진 사람은
고난의 잔을 마셔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난은 인생을 위대하게 만든다.
고난을 견디어 냄으로써 생명은 한 단계씩 진화한다.
핍박을 받음으로써 오히려 상대방을 포용하는 관대함이 생기고
궁지와 형벌을 참음으로써 자유와 고귀함을 얻을 수 있다.
개인에게나 민족에게나 위대한 성격은 고난의 선물이다.
예수님 빠진 설교
설교는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빠진 설교는 정신 빠진 잔 소리에 불과 합니다
예수님 빠진 설교는 알맹이 없는 껍질 입니다
앙꼬 없는 진 빵 과 같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예수님 빠진 설교를 했다면
그것은 죄악 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설교자인 당신을
예수님을 증거하라고
세우셨는데 이를 거역한게 되기 때문 입니다
흥미중심의 설교는 게그맨의 원맨쇼요
인기만을 추구하는 연예인에 불과 합니다
설교는 인기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예수님 없는 설교는 믿음 없는 민방위 교육과도 같습니다
도덕만을 강조하고 윤리만 강조하는 설교는
공자맹자 가르치는 서당과 다를바 없습니다
성도 입맛에 맞는 설교만 하는 설교자는 맛집 주인과 같으며
성도에게 아부하기 위해 주님의 뜻을 그릇되게 전하는 사단의 사술에 불과 합니다
성도가 듣기 싫어해도
천국과 지옥,예수천국을 설교해야 하며
이단이 극성을 부려도 재림신앙을 설교해야 합니다
똑 바로 믿지 않으면 안됨을 가르치는
저주도,축복도 함께 설교 해야 합니다
부활은 설교하면서 재림을 설교 못하는것은 '
마귀에게 항복하는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설교하면 예수님처럼 살게되고
예수님 설교하면 예수님처럼 말하게 되고
예수님 설교하면 예수님처럼 기도하게 됩니다
예수님 설교하면 예수님처럼 정직하게 살게 됩니다
예수님 설교하면 예수님처럼 능력있게 세상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 설교하면 예수님처럼 세상으로 부터도 존경 받는 성도들이 됩니다
목회자에게 잘하라고 설교도 중요하지만
이는 부질 없는 자기를 위한 설교 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은혜와 뜨거움을 늘 설교하면
성도는 변화 합니다
예수님께 잘하는 성도는
말하지 않아도 목회자에게 잘 합니다
도덕으로, 좋은 프로그램으로 성도들을 변화 시키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부흥도 오직 예수님 입니다
모든것에 정답은
오직 예수님 입니다. 글/ 봉민근
교회 일을 한다고 해서
교회 일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회사 일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일 자체가 그 일의 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과 신앙이
그 일의 의미를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느냐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품지 않고 섬긴다면
그가 아무리 거룩한 일을 하고 있어도
그는 자신의 일을 도모하고 있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