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교육, 밥상머리에서 시작해야 ‘한국인의 밥상’ 100회 방영, 우리 음식문화 뿌리 성찰의 시간
이 시대의 아버지를 상징하는 최불암이 한국인의 밥상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국인, 그리고 밥상이라는 정겨우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단어와 이만큼 어울리는 이 또 누가 있을까.
우리 음식의 숨겨진 역사와 사연을 찾아 최불암씨의 따뜻한 목소리로 전하는 KBS1TV ‘한국인의 밥상’이 지난해 12월 20일 기준 100회를 맞았다. 45년 넘게 방송생활을 했지만, 지난 2년의 시간이 주는 의미는 그에게 유독 남다르다.
100회를 기점으로 한국인의 밥상 200회, 300회 비전을 준비하고 있는 최불암씨에게 우리 한국인의 밥상의 의미와 한식이 어떻게 해야 ‘세계인의 밥상’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었다.
흙길과 바닷길을 오가며 우리 한국의 아름다움을, 우리 음식의 역사를 소개했던 ‘한국인의 밥상’이 100회를 맞이했다. 한국인의 밥상은 음식의 기원과 발전과정을 역사와 문화, 과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는 푸드멘터리다. 지역의 풍광과 어우러진 음식문화의 뿌리, 그리고 그 음식이 그곳의 사람들과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푸근하고 정겹게, 때론 가슴 아픈 화면으로 담았다.
배우 최불암씨는 이 프로그램에서 직접 여정에 나서 사람들과 만나고, 또 특유의 따뜻한 목소리로 나레이션을 한다. 최불암씨는 지난 2년을 “개인적으로는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으로, 시청자는 우리 음식문화의 뿌리를 성찰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프로그램에서 그의 역할이 단순히 보이는 것에 그친다고 하면 서운할 일이다. 방송의 큰 틀과 프로세스는 제작진의 몫이라고 하더라도 방문할 지역의 역사와 음식문화 발전 배경, 또 그 문화를 느끼고 그것을 친근하게 풀어내는 것은 순전히 최불암의 삶의 연륜, 그리고 여전히 공부하는 자세에서 그 농도가 더욱 짙어지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 외식산업, 그리고 한식세계화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이유도 이처럼 그의 적극적인 밥상에 대한 애정에서 발현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밥상이 100회를 맞았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 연기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이 음식을 소개하는 것이 어색해 초반에는 좀 망설였는데, 지금은 내가 전력을 쏟는 일중 하나입니다. 그동안 전국 곳곳에서 마주한 밥상들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이 값졌습니다. 역사와 문화가 응축된 밥상이었고, 자연과의 풍광이 어우러진 밥상이었으며 이야기가 버무려져 있는 밥상이었지요. 우리 선조들의 삶과 지혜, 그리고 철학이 담겨 있는 발효음식들은 마주할 때마다 절로 탄복이 나왔습니다. 감정이 마를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에서 음식을 기반으로 삶의 의미, 쉼이라는 정서를 주는 프로그램이었다고 자평합니다.
▲한국인의 밥상을 진행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 우리 역사가 이렇게도 가난했는가를 되새긴 것이 가장 컸지요. 나 역시 나무껍질, 풀죽을 먹던 시절이 있었지만, 더 예전에 보릿고개를 넘으며 ‘연명’이라는 단어로 음식을 대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방송을 통해 다시금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가슴 아픈 역사를 통해 그동안 우리 선조들은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게 만들었고, 또 먹을거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만들어진 음식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을 방송을 통해 보여준다는 것이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모름지기 우리 음식의 중요성, 우리의 정체성을 음식을 통해 다시금 깨닫고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중요성을 한 번이라도 생각하게 된다면 그보다 보람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방송으로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없나요?
- 한번은 독일에 갔었습니다. 한국 음식점이 있다고 해서 방문했는데 1960∼1970년대 독일로 파견됐던 간호사 아주머니가 식당을 하고 있더군요. 그때가 독일에 간지 일주일쯤 됐을 때였는데 다들 한국음식이 그리워 안달이 난 상태였죠. 우리 스태프 한명이 “김치찌개 빨리 만들어 달라”고 재촉 했더니 갑자기 그 아주머니가 눈물을 글썽하며 “고작 일주일을 가지고 그렇게 먹고 싶어요? 난 30년을 그렇게 그리워하며 살았는데….” 이러는 겁니다. 우리 다 같이 붙잡고 펑펑 울었어요. 음식의 힘이 이런 것입니다. 30년을 떨어져 있어도 몸속의 DNA가 음식으로 문화를, 나라를 기억하는 것이죠.
시골길 촬영 중에 갑자기 카메라 앞으로 뛰어든 아주머니도 생각납니다. 카메라는 멀리서 풀 숏으로 돌아가고 있고 나 혼자 다리 위를 걸으면서 독백하는 신이었어요.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 혼자 중얼거리며 강물 아래쪽을 쳐다보고 있으니, 이 아주머니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갑자기 뛰어들어 내 팔을 잡고 “죽지 말고 마음 고쳐 먹으라”며 따뜻한 점심 한 끼 차려줄테니 힘내라고 하더군요. 우리네 정이 그런겁니다. 모두 따뜻한 ‘밥’으로 통한다는 거죠.
▲한국인의 밥상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한식세계화에 대한 생각이 남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 지난 가을에 촬영차 뉴욕에 갔을 때입니다. 우연히 한식을 좋아한다는 외국인 부부를 만났는데요. 파란 눈의 젊은 외국인 부부가 차린 상에 우리 잡채, 만두, 장아찌가 한 상 거하게 차려져 있는 겁니다. 가족 건강을 위해 한식을 먹기 시작했다는데, 그 한식을 배운 계기도 참 대수롭지 않아요. 우리나라 한 젊은 여성이 SNS를 통해서 올리는 한식 레시피를 보고 그대로 따라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이 얼마나 쉽고 자연스러운 한식의 전파입니까? 한국음식 세계화의 가능성이 바로 이거다 싶었지요.
나는 한식의 세계화가 너무 거창한 구호와 함께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말한 사례처럼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도 한식을 자연스럽게 전파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미국의 마켓 등을 운영하는 사람의 70% 이상을 한국인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활용해서 식재료 등을 판매할 때 간단한 한식 레시피를 메모처럼 끼워서 판매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생선을 팔 때 한국식으로 조리하는 방법과 조미료를 간단하게 메모형식으로 제공하는 겁니다. 그러면 한국산 공산품 식재료도 함께 세계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급 식당에서 제공하는 휘황찬란한 한상차림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이걸 직접 해먹는 방법을 알려주면 더욱 생활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게 한식세계화의 기초가 될 것이고요.
정부차원의 5년, 10년, 20년 계획도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기록’과 이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국인의 밥상, 그리고 나 같은 사람도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밥상 프로그램은 방송으로 나가는 것 외에 훨씬 더 결이 생생한 원본자료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런 것을 학자들과 공유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한국음식의 재료를 필름으로, 책으로 기록하고 이것을 연구단이 주축이 되서 정리를 하는 겁니다. ‘한국음식은 이것이다’라는 명확하게 체계화된 기록, 그리고 전문가들의 분석,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한국인의 밥상을 시청하는 애청자들, 그리고 우리 외식인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 음식의 고귀함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밥상머리’교육부터 제대로 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워야할 밥상머리 교육이 환경이 변하면서 점차 줄어들고 위태로워지고 있어요. 밥상을 통해서 배워야할 인문학적 교육이 거의 부재한 것입니다. 가끔 김치를 먹을 때도 위에부터 먹지 않고 맨 위를 걷어내거나 헤집어서 먹는 친구들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밥상머리에는 딱딱한 예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배려, ‘휴머니티’도 있습니다. 기본 인성 교육이 이 밥상머리 앞에서 만들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외식인들에게도 할 말이 많습니다. 이들은 내 앞의 작은 이익보다 큰 책임감, 의무감을 가져야 할 분들입니다. 나는 크게 음식쓰레기 줄이기와 저염운동 확산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음식쓰레기가 8조원이라고 합니다. 굳이 쌀 한 톨이 귀하던 시절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만, 공익적인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우리 상이 좀 더 단순해지고 가벼워져서 음식쓰레기를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건강을 생각해 저염식도 더욱 늘어나야 겠지요. 손님들이 자극적인 맛을 추구하는 것을 알더라도 최대한 자연식에 가까운 음식을 제공하려는 음식점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가족의 가(家)는 지붕 아래 돼지 돈(豚)이 들어있는 한자에요. 먹을 것을 함께 먹는 것이 가족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고, 식당 경영주 분들 역시 가족을 생각하고 만든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고 봅니다. 행복의 핸들링은 밥상 앞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