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blog.daum.net/pd-diary/17202163
당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거기 영웅이 살고 있어요.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 될 때 당신 마음 속을 들여다 보세요.
그리고 강해지세요.
언젠가 진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영웅은 바로 내 마음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 Mariah Carey / Hero 중에서
[연재 13] "황우석 박사만 주저앉히면 된다."
1.
기자들이 헷갈리시는게 있다.
바로 이 연구의 본질이다. 줄기세포 연구를 황우석의 황우석을 위한 황우석만의 단독연구로 보는 한 답은 뻔하다. 바꿔치기든 섞어심기든 연구방해를 당했건 모두 책임자 황우석 박사의 관리소홀이나 변명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 연구의 본질은 단독연구가 아니라 공동연구였다.
난자 제공은 미즈메디가, 체세포 핵이식을 통한 배반포 생성은 서울대 황우석팀이, 그리고 이후 줄기세포로의 배양과 검증은 미즈메디에서 파견된 연구원들이 각자의 담당영역을 확실하게 나눠 수행한 공동연구, 즉 '동업'이었다.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이견이 없다. 지난 2007년 1월30일, 법정에 출석한 노성일 미즈메디 이사장은 "예"라고 분명히 답했다.
검사 : 위와 같이 공동연구를 하기로 합의한뒤 피고인 황우석이 체세포 핵이식 및 배반포 단계까지의 연구를 담당하면서 연구총괄책임을 지고 증인(노성일)은 난자 제공과 연구원 파견을 통하여 배반포로부터 줄기세포 수립까지의 기술을 제공하고, 문신용 교수는 이 연구에 대한 자문역할 및 임상실험단계에서 각종 업무를 추진하기로 했지요?
노성일 : 예
검사 : 증인(노성일)은 위와 같은 공동연구 약정에 따라 2004년에는 박종혁, 김선종을 2005년에는 김선종을 서울대 황우석 연구팀에 연구원으로 파견했고, 줄기세포 연구용 난자도 공급했나요?
노성일 : 예
이처럼 그 연구는 공동연구였다. 그러면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가? 잘되면 서로 자신의 공이라고 하고 문제가 생기면 상대방에게 떠넘긴다. 동업의 숙명이다. 제 3자인 우리가 이 사건을 관전할 때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될 포인트였다. 그러나 언론도 서울대 조사도 모두 이 점을 놓쳐버린채 황 박사 한 사람만 주저앉히는데 주력했다.
2.
그 날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을까. 2005년 12월 15일 말이다.
노 이사장의 '줄기세포 하나도 없다' 언론폭로가 있기 몇 시간 전 서울대 병원에서.
"황 박사가 방문을 해달라고 아침 8시반인가 전화를 해서 의논할 사항 있다고 절 찾아서 갔습니다."
증인석에 앉은 노성일 이사장은 그 날 대화의 핵심은 줄기세포가 모두 미즈메디 것으로 나온 검증결과였다고 털어놨다.
"줄기세포가 지금 미즈메디 셀로 바뀌어있다고 청천 벽력같은 말씀을 하셔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또 2, 3번은?' 그렇게 물어보니 다 바뀐 것 같다고 황 박사 본인 입으로 처음 얘기했기 때문에..."
미즈메디 세포로 바뀌었다...여기에 하나가 더 있었다. 냉동된 나머지 세포 검증이 끝날때까지 언론에 엠바고 하기. 피고인 석에 앉아있던 황우석 박사의 법정 진술이다.
"검사를 해본 7개 줄기세포 중에서는 복제줄기세포가 아니고 미즈메디것으로 판명됐습니다. 그러나 아직 검사하지 않은 8개를 추후에 해동해서 이 중에라도 일부 (진짜)가 있을 가능성에 마지막 희망을 갖고 있으니 그 전까진 어떤 발표도 하지말고 결과가 나오면 저와 노박(노성일)이 국민앞에 사죄하고 이 사안을 정확하게 이야기합시다라고 (노이사장이) 나가는 뒤에도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황 박사는 가짜줄기세포의 범인이 노 이사장은 아니라고 믿은것같다. 미즈메디 배양책임자 김선종 연구원에 대한 검찰수사 의뢰를 준비하던 그 시점에 노 이사장에게 이러한 말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노 이사장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언론 폭로를 했다. 왜 일까.
3.
그는 당시 언론에 연구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릴 수 없어 진실을 말한다고 했지만....다른 이유가 있었다. 책임이 미즈메디로 전가되는게 두려워서였다.
변호인 : 증인(노성일)은 검찰조사에서, 기자회견을 한 이유는 황 교수의 미즈메디 줄기세포로 바뀌었다는 말이 미즈메디가 뭔가 책임을 져야 된다는 말로 여기고 위기를 느꼈고 책임이 미즈메디로 전가 될 것을 걱정해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했다고 이야기했죠?
노성일 : 예. (2007.1.30. 서울지법 417호 법정증언)
순간 속기를 하던 내 손가락이 움찔했다. 그랬었구나.
그는 미즈메디로 튀는 불똥을 막으려고 먼저 선제 폭로를 한 것이다. 즉흥적이었다고 보기에는 너무 깔끔하고 정교했다. 일단 모든 줄기세포가 '미즈메디 것'으로 들통난 진실에서 '미즈메디'라는 단어를 쏙 빼고 '줄기세포는 하나도 없다'는 팩트로 바꿨다. 여기에 미국에 있던 미즈메디 출신 김선종 연구원(가짜줄기세포 조작)과 통화해 황 교수가 논문에 실을 사진조작을 지시한 정황을 덧붙였다. 스토리가 완성됐다. 줄기세포 하나도 없다. 논문은 조작이다. 황우석이 논문조작지시. 끝.
이것이 그날 그가 언론에 폭로한 '황우석 논문조작 프레임'이다.
놀라운 것은 그날 밤 MBC 뉴스데스크와 피디수첩은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이런 프레임으로 포문을 열었다. 다시 보기.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가 없다고 합니다."
"미즈메디 병원의 노성일 이사장은 오늘 MBC와의 인터뷰에서 줄기세포가 지금은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2005.12.15)
<'PD수첩은 왜 재검증 요구했나?'> 주요내용
최초 제보자 인터뷰 '줄기세포 가짜일것'
논문저자들의 인터뷰 '줄기세포 본 적 없다'
세포주은행 '특허출원 위한 줄기세포 기탁도 없었다'
김선종 인터뷰 '황 교수 지시로 논문 사진 부풀렸다'
자체검증결과 '황교수가 준 줄기세포 2번과 논문의 줄기세포 2번은 일치하지 않으며...'
(2005.12.15 밤 10시 특집 MBC PD수첩)
도대체 누가 미즈메디 세포로 뒤바꿔놨을까 하는 상식적인 질문이 도저히 나올 수 없게끔 '미즈메디'는 쏙 빠졌다. 대신 황우석 교수가 마치 수많은 논문저자들에게 줄기세포도 보여주지 않은 채 은밀히 뭔가를 꾸민것처럼 '줄기세포 본 적 없다'는 인터뷰가 나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 노성일 이사장이 있었다.
4.
그날 밤 부활한 피디수첩에서는 자신들이 예전에 찍어놓은 인터뷰 영상들이 공개됐다.
노 이사장의 얼굴도 나왔다. 그날의 폭로가 있기 한참전에 찍어둔 영상.
피디가 물었다. 실제로 줄기세포를 보신 적이 있느냐고. 그의 대답은 이랬다.
"본 적은 없습니다."
줄기세포를 본 적 없다구? 사실과 다른 말이다. 그는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의 이언 월머트와 함께 줄기세포를 본 적 있었다. 법정에서 진술했다.
"줄기세포를 이안 윌머트라고 영국에서 오신 분하고 같이 한 번 본 적은 있습니다."
(2007.1.30.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 검찰심문에 대한 진술 내용)
그런데 왜 피디수첩 인터뷰에선 다른 이야기를 했을까. 그것도 그날의 폭로가 있기 훨씬 전에 미리 찍어둔 영상에서. 혹시 그들은 미리 입을 맞춰둔 것인가.
5.
그것은 상식적인 수준의 질문도 답변도 아니었다. 이렇게 물어보고 답해야 정상이다.
"줄기세포를 보신 적 있습니까?"
"예."
"육안으로 보면 복제줄기세포(진짜)하고 수정란줄기세포(가짜)를 구분할 수 있나요?"
"아니요. 구분할 수 없습니다."
이게 줄기세포 법정에서 오간 정상적인 질문과 답변이다.
육안으로는 이게 서울대 세포인지 미즈메디 세포인지 구분할 수 없기에 DNA 지문분석을 의뢰하는데 그 검증 모두 미즈메디에서 파견된 김선종 연구원이 조작해 모두의 눈을 속였다. 그러나 노 이사장은 피디수첩과의 인터뷰에서 줄기세포 본 일도 없다고 말해, 마치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를 감춰놓고 조작한듯한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이후 피디수첩은 세포주 은행 관계자를 찾는다.
특허 출원을 하면서 이미 2004년 논문에서 밝힌 1번 세포를 기탁했기에 이후 만들어진 2005년 논문 세포는 굳이 기탁할 의무가 없다는 관계자의 말은 쏙 빼놓은 채 '특허출원하며 줄기세포 기탁도 하지않았다'고 말하며 미국으로 간다.
그리고 미즈메디 김선종 연구원을 만난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피디: 저희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황우석 선생님만 다쳤으면 좋겠어요.
김선종: 다친다니...
피디: 예, 황우석 선생님만...다른 사람들한테는 피해가 안 갔으면 합니다.
김선종: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중략) 황 교수님하고 직접 얘기하시죠.
피디: 저희가 그래서...진심으로 이건 진심이거든요. 같은 동년배로서 우리 세대에서 이것이 이럴 일은 아니다. 이건 황우석 박사님만 주저 앉히면 된다....그런 뜻이예요.
김선종: ...
피디: 황 교수님같은 경우에는 다음 주에 저희가 따로 인터뷰를 할 것이고 검찰수사가 시작될 겁니다. (중략) 그거를 황 교수님으로만 정리했으면 좋겠어요. 그랬으면 좋겠고...그래서 젊은 분들이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아요.
김선종: 다른 데로 가는 게 어떻겠어요?
황우석 박사만 주저 앉히면 된다. 바로 2005년 10월 20일 미국 피츠버그 대학 의대에서 피디수첩이 한 말이다. 이후 그들은 김선종으로부터 황 교수의 사진 조작 지시 증언을 얻어냈고 끝. 그 때 그들이 인터뷰한 김선종 연구원은 4년 후인 2009년 가짜 줄기세포 조작 및 증거인멸로 황우석 팀 연구를 방해한 죄가 인정돼 '업무방해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방송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언급하는 걸 본 적 없다. 혹시 본 적 있는가.
플리 바게닝. 특정 타겟을 잡기 위해 또 다른 용의자와의 '의혹 거래'를 나누는 일은 언론의 책무가 아니다. 그러나 진실보도의 상징 피디수첩의 또다른 맨 얼굴이다.
6.
다음날 반격이 들어왔다.
황 교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미즈메디 세포 바꿔치기 의혹을 제기하며 수사의뢰를 시사한다.
그러자 노 이사장 역시 맞받아쳤다.
책임 회피하지 말라며 김선종 연구원을 위한 눈물을 터뜨린다.
"내가 형이 되어 줄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05.12.15)
그러나 한달이 채 되지않아 그의 말은 180도 바뀐다.
"바꿔치기까지 네(김선종)가 했다면 그럼 두 개를 속이는 거죠. 그거는 내가 모르겠어요. 그 인간을 내가 모르겠다고..."(SBS뉴스, 06.1.13)
형이 돼준다던 사람이 그 인간 나는 모르겠다고 한다.
바로 김선종 연구원의 꼬리가 밝혀지던 시점의 일이다.
미즈메디 조작의 꼬리를 잡은것은 서울대 조사위원회였다. 제일 먼저 만든 1번 줄기세포의 DNA를 분석해보니 어떤것은 정상, 어떤것은 미즈메디 5번 세포, 또 어떤 건 미즈메디 1번 세포 등으로 뒤섞여 나온 것이다. 만일 범인이 황우석이었다면 제대로 만든 1번 세포를 굳이 미즈메디 것으로 섞어심으라고 시킬 이유가 없지않는가. 딱 걸렸다.
알고보니 제대로 줄기세포를 배양하고 미국으로 간 박종혁 연구원의 뒤를 이어 배양을 맡은 김선종 연구원이 배양능력이 부족해 세포가 죽자 이를 감추려고 미즈메디 세포를 가져와 섞어 심은것이다. 그 와중에 미즈메디 연구원들간의 바꿔치기 행각까지 밝혀졌다. 미국 NIH에 등록된 미즈메디 줄기세포가 죽자 다른 세포로 바꿔치기 해놓은 통에 자기들끼리도 그게 미즈메디 1번인지 5번인지 헷갈렸던 정황이 드러난것이다.
모두 황우석 팀과 공동연구를 하기 전 진작부터 써 온 수법이었다.
7.
그러나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러한 공동연구자들의 학문범죄를 까발리지 않았다. 서울대의 조사 프레임 역시 매한가지였다.
줄기세포 없다. 논문은 조작됐다. 황우석이 이런 저런 조작 지시했다. 끝.
왜 그 정도 조사에 머물렀을까?
황 박사가 속전속결로 파면된 이후 법정에서는 또 다른 사실이 드러났다.
김선종 연구원이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했다가 지웠던 전화통화 녹취파일이 검찰수사 과정에복구된 거다. 참 한국의 IT 기술은 대단하다. 당시 서울대 조사를 앞두고 미국에 있던 그에게 걸려온 미즈메디 연구자들의 전화통화 내용이었다.
법정에서 확인된 내용. 당시 노성일 이사장은 서울대 조사위가 공식조사를 시작한 12월18일 김선종 연구원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말을 했다.
"서울대 조사에서 한 방에 끝내자. 시간 끌 필요없어. 힘내라. 숫자가 적어도 우린 이길수 있어. 문(신용) 선생도 다리 죽 펴고 자겠다고 하더라." (2007.8.28. 김선종 증인 공판 중)
나흘 뒤 서울대 조사를 받고온 윤현수 박사는 김선종에게 조사위 분위기를 귀띰해준다.
"어차피 서울대 조사위는 황을 죽이려고 하더라. 서울대 조사위는 (너를 찍은게) 아니야. 조사위원들 분위기는 확고하다." (2008.8.28. 김선종 증인 공판 중)
미즈메디 출신 연구자들은 서울대 조사를 이렇게 준비했다.
동업이 파국으로 치닫을 때 보여지는 전형적인 이해당사자들의 입맞추기였다. 따라서 무엇보다 객관적이고 엄중한 조사가 필요했다.
그런데, 서울대는...그러나...
(내일은 팟캐스트 방송으로 만나뵙겠습니다. '정 총장의 허그와 50인의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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