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lickr
“저는 어린 시절 할머니를 엄청나게 따랐습니다. (중략)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철이 들면서는, 그렇게 좋아했던 할머니가 죽도록 싫었습니다. 왜 싫었느냐고요? 할머니는 곧 ‘김치’였기 때문입니다. 김치는 말할 것도 없이 한국입니다. 그 사실과 관련해 제 인생에 고통을 안겨준 온갖 일들이 있었습니다.
별로 예를 들고 싶지 않지만, 아무튼 힘든 일들이 대단히 많이 있었습니다. 숨을 죽여가면서, 숨어 살 듯 일본이름으로 살아가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았던 할머니가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일부러 피하려 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아버지가 피를 쏟고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의 위기였습니다. 저보다 한 살 위의 형은 고등학교를 중퇴했습니다. 형은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머니를 도와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아버지의 입원비를 대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도 쉴 새 없이 일을 했습니다. 위기는 삽시에 우리 가정을 휩쓸었습니다. 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기를 빠져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자,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날 것인가?
‘사업을 하자.’
저는 그때 단단히 결심했습니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일시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가족을 먹여 살릴 사업을 일으키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중학교 때 이미 앞으로의 길을 정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즈음에 <료마가 간다>를 읽었습니다.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주눅이 들어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제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인종이네 뭐네 하는 문제로 고민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시시한지 깨달았습니다.
그 길로 저는 사업가의 꿈을 세웠고, 미국으로 건너가자고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말하자면 료마의 탈번과 같은 행동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친구들과 선생님까지 죄다 뜯어말렸습니다. (중략)
그런 결심을 한 후, 저는 할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 그리도 끔찍하게 아껴주셨는데... 할머니가 꼴도 보기 싫다고 한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저를 한국으로 데려가 주세요. 미국으로 가기 전에 그토록 싫어한 조상의 고향을 보고 싶어요. 한국에 가보겠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마사요시, 진짜로 같이 갈 끼가? 우째 한국 갈 생각을 했노?” 하시며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할머니와 저는 2주 정도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대구의 어느 조그만 마을을 둘이서 찾아갔습니다. 자그마한 사과 말고는 아무것도 내놓을 것 없었던 동네. 땅이 척박해서 사과도 알이 조그마했습니다.
할머니와 저는 희미한 촛불 아래 저녁 밥상을 받았습니다. 컴컴한 불빛 저편에서 사람들이 시커먼 이를 드러내고 싱긋이 웃어주었습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할머니는 이리저리 기운 바지며 스웨터 같은 헌 옷가지들을 큰 보자기에 싸 들고 가셨는데, 나중에 마을의 아이들에게 선물이라고 나눠주셨습니다.
“고맙심다! 우와, 예뿌네. 일본 옷들은 와 이리 곱노?” 아이들은 얼굴 한가득 웃음을 지으며 할머니에게서 옷을 받아갔습니다. 그때 할머니 얼굴에서 본 행복한 미소를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다른 사람들 덕분이레이. 아무리 괴롭고 힘든 일이 있어도 도와준 분들이 있었으이까네 여까지 온 기라. 그라이까네, 절대로 남을 원망하믄 안 된데이. 전부 다 남들 덕분인기라.”
나중에 회사를 만들고 2년째 되던 해에 저는 큰 병을 얻어 입원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돈이 아니다. 지위도, 명예도 아니다. 할머니가 하셨던,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병실에 누워 지내는 동안 그 생각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지구촌 어딘가의 한 작은 소녀가, 흙투성이 얼굴로 사과 한 알 받아 들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제 존재조차 모르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감사’의 말 한마디를 누군가로부터 들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일이 허락된다면 참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단 한사람의 어린이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저와 소프트뱅크를 지켜봐 주십시오.“
<손정의 미래를 말하다, 114~121 쪽, 소프트뱅크 커머스 코리아>
이 글은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손정의가 지난 2009년 소프트뱅크그룹 사원 2만 명과 1년간 논의 끝에 수립한 ‘신 30년 비전’을 발표한 프레젠테이션의 마지막 연설 부분입니다.
이 연설은 지난 2010년 ‘손정의의 눈물’이라고 해서 “Stay Hungry, Stay Foolish."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 연설만큼이나 유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30년 비전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회장의 개인사를 고백함으로써 자칫 딱딱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에서 감동을 이끌어냈다’고 평하며 ‘PPT를 잘 하려면 나를 담아라’는 팁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연설의 본질은 ‘PPT 기술‘이 아닌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우리 회사는 무엇을 위해 사업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하는 기업이념을 “정보혁명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겠다.”로 삼고, 그 행복의 기원을 ‘할머니의 행복한 미소’로 둔 점입니다.
소프트뱅크 '새로운 30년' 손정의 회장 엔딩부분 1,2 ⓒYoutube
지난 2010년 6월 25일 손정의 회장이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 30년 비전’을 발표한 이 연설은 손정의 인생 50년 계획 중 네 번째인 50대에 해야 할 일, 즉 자신의 사업체인 소프트뱅크의 비즈니스 모델의 완성을 담았습니다. 손정의는 이 연설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연설”로 평가했습니다.
그는 소프트뱅크의 이념은 “정보혁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손정의는 “인터넷 혁명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해 추구하는 철학은 사람들의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프트뱅크는 상장회사이기에 신제품도 만들고, 비용 경쟁도 해야 하고, 수익도 올려야겠지만, 그렇게 숫자를 늘리는 일에 열정을 바친다면 인생은 무의미해진다고 그는 단언합니다.
그리고 회사를 통해 단 한 번 뿐인 자신의 인생이 목숨을 바쳐서 할 일이란 정보혁명을 통해 사람들의 최대 슬픔인 고독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반면 인생의 기쁨은 더욱 크게 하는 것, 그것이 자신과 소프트뱅크가 나아갈 바라고 강조했습니다.
1981년 9월. 후쿠오카 현 오도리로 시에 위치한 허름한 2층 건물에서 직원 두 명과 함께 소프트뱅크의 문을 연 손정의 사장은 귤 상자 위에 올라 30년 뒤에는 조 단위의 매출을 이룰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다음 날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사장이 미친 사람이다’라고 생각한 때문입니다.
그의 천재성을 일본 최고의 전자업체인 샤프(Sharp)사의 사사키 전무의 도움으로 소프트뱅크는 단번에 매출 35억 엔을 올리는 중견 기업으로 뛰어올랐습니다. 하지만 손정의는 뜻밖에 복병을 만났는데, 바로 만성간염 판정을 받은 겁니다.
5년의 생존기간 판정을 받을 만큼 상태가 심각했지만 그는 병상에서 허송세월하지 않고 3년간 무려 4,000여 권의 책을 읽으며 자기 인생의 나침반이 되는 ‘제곱병법’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병마와 치열한 사투를 벌인 끝에 극적으로 건강을 되찾고 1986년 회사로 복귀합니다.
1994년 7월. 소프트뱅크는 기업공개를 통해 단번에 2,000억 엔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자금을 확보해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36세의 손정의는 그 돈을 들고 병상 독서를 통한 영감과 그가 평소 구상하던 아이디어를 합해 일생일대의 승부를 걸게 됩니다. 즉 미국으로 날아가 반년에 걸쳐 총 31억 달러 규모의 인수합병을 체결한 겁니다.
그는 바로 ‘머지않아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800억 엔을 주고 세계 최대의 컴퓨터 전시회인 ‘컴덱스’를 사들였습니다. 또한 컴퓨터업계에서 세계 최대의 출판사인 지프데이비스를 사들입니다. 이때 들인 돈은 2,300억. 총 3,100억 엔. 업계에서는 쓸데없는 기업을 거액에 사들이며 빚쟁이가 되었다며 손가락질 했습니다.
하지만 손정의는 “보물찾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도 아니고, 약도 아니고, 대포도 아니고, 바로 지도와 나침반이다.”라며 탁월한 선택이라고 자평했습니다. 당시 그에게 지도와 나침반은 컴덱스와 지프데이비스였던 겁니다.
보물찾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와 나침반이다. ⓒshutterstock
손정의는 지프데이비스의 직원들에게 21세기 세상을 이끌 사이트 5개를 찾아내라고 지시했습니다. 몇 개월 후 보고된 벤처기업 중에 발견한 보물이 바로 야후였습니다. 당시 야후의 미국 직원은 겨우 5~6명. 손정의는 이제 막 설립된 야후에 100억 엔을 투자하여 야후의 지분 49%를 사들이며 최대주주가 되었습니다. 1996년 5월 야후 본사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고, 이듬해에는 야후 재팬도 일본 자스닥에 상장되면서 1999년 말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야후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4,586억 엔에 이르게 됩니다.
30대의 재일교포 3세 손정의에게 이러한 승부를 가능하게 해 준 것은 바로 독서의 힘이었습니다. 그는 지금도 인생의 중요한 포인트마다 『료마가 간다』 를 읽는다고 합니다. 한편 사업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얻는 <제곱병법>은 그가 최고로 꼽는 책 『손자병법』을 모티브로 한다고 합니다.
손정의의 재산도 점점 불어나 단 사흘이었지만 빌 게이츠를 누르고 IT업계 최고 부자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이후 소프트뱅크는 200년 닷컴 버블 붕괴를 시작으로 지금껏 수많은 부침을 거듭했지만 그 때마다 보란듯이 오뚜기처럼 일어나 일본 3대 대기업으로 남아 있습니다.
얼마 전 손정의 회장은 ‘미다스의 손‘이라는 평과 함께 한 때 전 세계 뉴스의 중심이 된 적이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중국의 알리바바가 다음 달인 8월 초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데, 소프트뱅크가 2000년 신생기업 알리바바에 2000만 달러(약 205억 원)를 투자해 최대주주가 되어 있기 때문에 상장한다면 소프트뱅크의 지분 가치는 578억 달러(약 59조 원)로 불어나 약 3000 배의 투자 수익률을 기록할 거라는 내용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드라마 같은 그들의 만남입니다. 야후의 창업자 제리양이 중국여행을 간 적이 있는, 그 때 가이드를 맡은 사람이 마 윈 회장이었다고 합니다. 며칠 동안 함께 여행을 하면서 친해진 두 사람은 마 윈이 현재 알리바바라는 신생업체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업 아이디어가 마음에 든 제리양이 마 윈을 손정의 회장에게 소개했다고 합니다. 손 회장은 마 창업자를 만나 알리바바의 사업 모델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지 단 6분 만에 투자를 결정했다네요. 소설 같은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 달이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거부로 거듭날 그지만, 그는 닷컴 버블 붕괴 전 한 때 재산이 매 주 ‘1조 엔’씩 늘어나는 것을 이미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그 때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갖고 싶은 것도 없었습니다. 무엇이 사고 싶다고 하면 백화점을 통째로 사도 거스름돈을 받을 정도로 많은 돈을 가졌으니까요. 당시 ‘나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고 스스로 하기도 했습니다.
‘일주일에 일 조원이 늘어날 때‘ 그는 “이렇게 돈을 더 버는 것보다, 사람들이 기뻐할만 한 무언가 그런 일을 하고 싶다. 돈 이상으로 기쁘게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손정의 회장은 돈이 아닌 그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나를 알지 못하는 지구 반대편 5살짜리 여자 아이가 하늘을 보고 ‘감사합니다’ 라고 말해준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 300년 기업수명을 내다보는 소프트뱅크의 차기 회장을 배출하기 위해 아카데미를 만들고 직접 교장이 되어 세계의 인재를 대상으로 후계자를 양성하는 사람, ‘나의 성공은 나를 도와준 사람들의 덕분’이라는 할머니의 말씀을 사업에 적용하는 사람.
소비자라면 이런 포부를 가진 경영자가 운영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지갑을 열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가 꿋꿋이 걸어가는 그 길을 끝까지 목격하며 응원하고 싶지 않을까요?
첫댓글 좋은 책 추천 고맙습니다. 돈이 아닌 남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넘 와 닿네요.
나의 성공은 나를 도와준 사람들의 덕분~
감사합니다.~
손정의회장님 이름에서정의가느껴집니다..불굴의의지와정의.
손정의회장님 참 존경스럽네요. 마윈 알리바바를 6분만에 투자결정을 하고... 어떻게 그런 혜안이 생기는지...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
너무 좋은 내용 잘보고 듯고 갑니다^^눈물이 날여고 하네요^^감동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