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이러냐!" 50일만의 장례 방해한 경찰, 엉엉 운 가족들
2023. 6. 21. 18:03
https://v.daum.net/v/20230621180303401
[현장] 건설노동자 양회동 영결식, 빗속 도심 상여 행렬... "건설 노동자도 평범한 아빠"
[김성욱, 권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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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된 가운데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 광화문네거리로 운구행렬이 도착하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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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된 가운데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
ⓒ 권우성 |
"에헤 에헤, 에헤에야. 못 가겄네, 못 가겄어. 인간 대접 받고 싶었을 뿐인데, 양회동이 억울해서 못 가겄네. 서울시민 여러분, 건설 노동자도 집에 가면 평범한 아빠, 남편, 우리 이웃인데."
21일 오전 비 내리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상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흰 삼베 옷을 입고 트럭에 오른 선소리꾼의 상여 소리 뒤로 검고 긴 장례 행렬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부터 종로, 경찰청 앞을 지나 서소문로, 세종대로로 이어졌다.
수천 명의 건설노동자들에게 둘러싸인 운구차는 걱정스런 얼굴로 지켜보는 종로 귀금속 거리의 상인들, 담배를 문 채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태평로의 양복쟁이들 앞을 천천히 지나쳤다. 차도 위에서 클랙슨을 울리며 욕을 해대는 자동차들, 서소문 고가 밑 누워 자는 노숙자들을 지나갔다. 덕수궁 앞에서는 영문도 모른 채 셔터를 누르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맞딱뜨렸다.
상여 행렬 맨 앞의 운구차 안에는 지난 5월 1일 노동절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에 항의하며 분신한 뒤 하루 만에 숨진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시신이 누워있었다. 유가족들은 3시간 넘게 비를 맞으며 양 지대장 뒤를 따라 걸었다. 양 지대장이 사망한 지 50일만인 이날에서야 노동시민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영원한 빛을 내리소서"... 운구차에 실린 아빠 보며 엉엉 운 자녀들
https://youtu.be/4W4Si5sKhs0
▲ 양회동 지대장 운구차 앞에서 마지막으로 오열한 가족들 21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운구차가 떠나기 전 가족들이 울고 있다. ⓒ김성욱 ⓒ 김성욱 |
양 지대장이 안치돼있던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이날 이른 아침부터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건설노동자들로 가득 찼다. 오전 8시 발인 미사에서 흰 옷을 입은 신부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며 "나쁘고 비참한 것은 약자들의 평범함에, 그들과 함께 연대하는 삶에 있지 않다"라며 "정녕 나쁘고 비참한 것은 평범함을 상대로 불의를 일삼는 권력에 있다"고 했다.
"더 나아가 사과하지 않으며, 되레 불의를 당한 이들을 겁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나쁘고 비참한 것입니다. 주여, 억울한 이들의 피를 소중히 여겨 주소서. 오늘의 빗속에서도 양회동 미카엘에게 영원한 안식과 빛을 내려주소서. 아멘."
상복을 입은 양 지대장의 부인은 성호를 긋고 아멘을 되뇌며 오열했다. 차분한 표정으로 감정을 추스르던 중학생 쌍둥이 자녀는 운구차에 아버지의 시신이 실리는 걸 보고서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장례 행렬 중간에 끊은 경찰... "마지막까지 이러냐"
https://tv.kakao.com/v/438978324
▲ 양회동 장례 방해한 경찰 21일 서울 도심에서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장례 행렬이 이어진 가운데, 경찰이 상여 행렬 중간을 끊어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강하게 항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김성욱 ⓒ 김성욱 |
운구는 오전 9시께 시작됐다. 장례식장을 빠져 나온 행렬은 서대문구에 위치한 경찰청으로 향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부터 200일간 1계급 특진 포상을 걸고 대대적인 건설노조 수사를 벌여왔다. 양 지대장 역시 경찰 수사를 받다 분신했다. 노조활동 일환으로 건설사에 조합원 고용과 노조 전임자를 요구한 것이 '공갈' 혐의를 받았다. 양 지대장은 유서에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고 한다.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는다", "먹고 살려고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열심히 살았다. 윤석열 검사독재 정치에 제물이 됐다"고 썼다.
장례 행렬 도중 경찰과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광화문 사거리 이순신 동상 앞에서였다. 앞서가는 상여 차량과 운구차를 먼저 보낸 경찰이 갑자기 뒤따르는 건설노동자들의 행진을 제지하면서 상여 행렬이 중간에 끊어진 것이다. 앞에 있던 유가족들과 노동자들이 돌아와 "마지막까지 이러냐"고 강하게 항의한 뒤에야 경찰은 길을 비켜섰다. 일부 충돌이 있었지만 큰 몸싸움으로 번지진 않았다. 창경궁 앞 장례식장부터 서대문구 경찰청까지 행진은 두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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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된 가운데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앞에서 노제가 열리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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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된 가운데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앞에서 노제가 열리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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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된 가운데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앞에서 노제가 열리고 있다. |
ⓒ 권우성 |
동료 건설노동자들은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허근영 건설노조 사무처장은 "이곳이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 충견을 키우는 곳, 양회동 열사를 죽게 만든 강압수사의 총본산인 경찰청"이라고 했다. 양 지대장의 친형이자 상주인 양회선씨는 한참이나 경찰청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유가족들과 건설노조는 그간 정부의 공식 사과와 윤희근 경찰청장의 파면 등을 요구하며 장례를 미뤄왔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동지만 보내고... 쌍둥이 아이들에게 알려질까 무섭다는 게 그저 푸념이 아니었는데. 평생 지킨 아빠의 자존감이었는데. 그걸 몰랐습니다. 그날 악수가 작별의 악수였음을 몰랐습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양 지대장의 동료 김정배 강원건설지부 지부장이 경찰청 앞에서 추도사를 읊었다. 마이크를 쥔 그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유가족, 영길식서 "원희룡 장관 발언 가슴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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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된 가운데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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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엄수된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 영결식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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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 행렬은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멈춰 섰다. 오후 1시, 다시 굵어진 빗줄기 속에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영결식이 치러졌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양회동 동지는 우리에게 윤석열 정권을 끌어내리지 않고서는 노동자들의 자존을 지킬 수 없다고 온몸으로 보여줬다"라며 "양회동 동지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영결식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6개 정당 대표들도 참석했다.
양 지대장의 형 양회선씨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언급했다. 양씨는 "세상에 남아있지도 않은 동생은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다"라며 "얼마 전 원희룡 장관은 제 동생의 죽음을 두고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양씨는 "그 순간 저희 가족들은 동생의 죽음 소식을 들었던 순간만큼이나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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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된 가운데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고인의 친형 양회선씨가 유족 인사를 하고 있다. |
ⓒ 권우성 |
"제 동생은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지키며 살아왔는데, 왜 비난 받아야 할까요. 정권의 말을 들으면 국민이고 다른 의견을 가지면 죽음도 외면 받아야 하는 겁니까."
젖은 아스팔트 도로 위에 자리를 깔고 앉은 건설노동자들은 비를 맞으며 훌쩍였다. 노동자들은 "양회동을 살려내라", "윤석열 정권 퇴진하라", "건설노조 탄압 중단하라"를 외쳤다. 유가족과 노동자들은 눈물을 닦으며 마지막으로 영정에 흰 국화꽃을 바쳤다.
이윽고 곳곳에서 울음 소리가 났다. 양 지대장의 쌍둥이 자녀가 쓴 편지가 대형 화면에 송출되면서였다. "아빠, 열심히 살게. 미안해. 고마워" 영결식이 끝난 뒤 운구차는 장지인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으로 떠났다.
[관련기사] 양회동 쌍둥이 자녀의 편지 "나 요즘 아빠 꿈을 조금씩 꾸고 있어"
https://omn.kr/24h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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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된 가운데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유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