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5월과 3월 차이는 있지만 지난 대선(大選)과 마찬가지로 ‘봄의 대선’이다. 그런데 19대 당시와 비슷한 분위기는 단순히 시기적인 부분 외에도 생각보다 많다. 대표적으로 대중문화 분야와 연결되는 부분, 즉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 없는 분위기가 19대에 이어 20대 대선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2007년 12월 6일 이명박 후보 지지 선언을 한 연예인들. 이런 모습은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사진=조선DB
간혹 보이더라도 무명(無名)에 가까운 연예인들이 인지도 상승을 위해 벌이는 듯한 지지 선언만 있는 정도다. 왜 연예인들은 정치판 ‘꽃’이라 할 수 있는 선거판에서 점점 멀어지려 하는 걸까. 또 그게 왜 2017년 대선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걸까.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이 급격히 줄었던 2017년 제19대 대선 당시 언론에서 상황을 분석한 원인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 19대 대선은 워낙 급작스레 치러진 선거이기에 미리 연예인들을 포섭하고 단체를 꾸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점. 얼핏 맞는 얘기 같기도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왜 예정대로 진행돼 시간적 여유가 풍부했던 20대 대선에서도 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한편 또 다른 원인으로 제시되는 게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졌던 이른바 ‘연예계 블랙리스트 파문’이다. 자신이 지지하던 후보가 낙선(落選)하는 경우 정권으로부터 블랙리스트에 올라 탄압받는 일이 생길까 두려워 좀처럼 지지 선언을 하지 못하는 추세로 가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2017년 대선은 더불어민주당 지지 연예인들에 있어 상당히 ‘안전한’ 대선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파로 줄곧 문재인 후보의 압도적 우세가 이어지고 있었고 실제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 그럼 최소한도 문 후보 지지 연예인들만큼은 19대 대선 때 다수 튀어나왔어야 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양 후보 진영 모두 연예인 지지 선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일각에서는 어찌 됐건 블랙리스트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진 이상 애초에 정치권과는 연을 맺지 않는 게 유리하다는 인식을 불렀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연예계 블랙리스트란 게 과연 실체로서 작동이 된 문서인지 여전히 알 수 없고, 그에 피해를 입었다는 사례조차 제대로 규명된 게 없는 데다, 애초 한국 대중문화계는 민간(民間) 비중이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크기에 현실적으로 정권이 연예인들에게 탄압을 가하고 불이익을 준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블랙리스트 파문이 연예인들에게 정치 알레르기를 심고 심리적 압박을 줬다는 게 과연 납득할 만한 가설(假說)인지 의문이다.
◇소셜미디어 등장
그런 점에서 사실 보다 설득력 있는 원인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꾸 정치권과 연계해서만 생각하려다 보니 무리한 해석들이 나온다. 실제로 2012년과 2017년 사이 가장 큰 사회·문화적 변화 중 하나는, 그 사이 소셜미디어(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인터넷 기반 여론문화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활성화됐다는 점이다. 웬만한 연예인 커리어를 단번에 나락으로 떨어뜨릴 정도 힘이 인터넷 세상 속 대중에 주어졌고, 그 대중은 시시콜콜한 연예인 스캔들뿐 아니라 연예인 입에서 튀어나오는 이런저런 정치·사회적 메시지나 행적 등에 대해서도 자신들 생각과 맞지 않으면 여지없이 거센 비판을 가했다.
물론 이런 현상은 2002년과 2007년 대선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긴 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인터넷 세상 여론은 주로 좌파 성향 대중에 의해 좌지우지(左之右之)되고 있었고, 그만큼 좌파 진영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연예인들은 나름 ‘안전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2007년 대선 이후 상황은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디시인사이드, 에펨코리아, 일베저장소, 엠엘비파크 등 우파 성향을 띠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점차 규모를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2010년대 유튜브 열풍이 일고부터는 신의한수, 가로세로연구소 등 우파 유튜브 채널들도 구독자 수를 늘리며 영향력을 떨쳐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2000년대 초반에 우파 성향 연예인들이 그저 지지 성향을 밝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인터넷 세상에서 ‘두들겨 맞았던’ 것처럼, 좌파 성향을 내비치거나 좌파 진영 대선 후보 등을 지지하는 연예인들도 같은 입장에서 숱한 공격을 받고 혹 작은 실수라도 범하면 반대 성향 인터넷 대중에 의해 비난이 끊이지 않는 흐름이 이어졌다. ‘어느 쪽이건’ 정치와 맞닿게 되면 연예인으로서 활동에 지장이 갈 정도로 분위기가 험해지게 됐다는 얘기다. 그것도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끈질기게 비난이 이어지는 장기전(長期戰)이 속속 연출되곤 했다.
이러니 어느 쪽 성향이건 연예인들이 대선 후보 지지는커녕 정치적 입장을 뚜렷이 밝히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게 된 것이다.
◇“당신이 멍청해 보이니 이용한 것일 뿐”
연예인들의 정치적 입장 표명에 가장 너그럽고 그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미국과 유럽의 현재 상황을 살펴보자.
지난 미국 대선 당시 인기가수 카디 비가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을 지지하며 그와 인터뷰까지 갖자 우파 논객 캔디스 오웬스가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오웬스는 카디 비를 향해 “조 바이든과 버니 샌더스는 당신 노래에 관심도 없다. 당신이 멍청해 보이니 이용해 먹기 쉬워 당신을 이용한 것일 뿐”이라며 “(조 바이든과의 인터뷰 도중) 세금 줄여달라면서 의료·복지 시스템의 확충을 원한다고 말한 건 무식의 극치다. 당신이 음악에만 집중하면 아무도 당신에게 뭐라 하지 않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치판에 들어와 무식을 드러내니 당신을 지적하는 것”이라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이처럼 뉴미디어를 통해 자기 언로(言路)를 확보한 정치 논객들에 의해 연예인의 정치 발언 및 행적이 바보 취급당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연예인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입장 표명에도 조금씩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다.
더 큰 차원에서는, 근 몇 년 사이 미국과 유럽에 걸쳐 연예인들의 정치 개입 자체를 비판하는 사회 분위기가 점차 확산돼 가는 추세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미국 매체 더힐의 2019년 여론조사가 한 예다. 해당 조사를 통해 할리우드 연예인들의 정치적 지지 선언은 유권자들의 투표에 거의 영향을 못 미친다는 점이 드러남은 물론, 설문에 응한 이들 중 24%는 연예인들이 지지를 호소한 후보를 ‘더 꺼리게 된다’고까지 밝힌 바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영국 시장조사 및 데이터 분석 기업 유고브의 2018년 조사에서도 63%의 영국인들은 연예인의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이 자신들 투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밝혔고, 25%는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해당 후보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된다는 의견을 표했다.
◇‘정치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연예인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방증하듯, 2018년 미국 테네시주(州) 주지사 중간선거에서 젊은 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세계적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공개적으로 지지한 민주당 후보 필 브레드슨은 그 지지에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공화당 후보 마샤 블랙번에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예상보다도 더 벌어진 격차로 참패를 겪게 됐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론 논조(論調)도 바뀌어간다. 영국 BBC 뉴스 한국판 2018년 4월 5일 자 기사 ‘연예인이 정치에 뛰어드는 이유’에서 영국신문사 샤웃아웃UK 대표 마테 네르가미니는 “정치인들이 젊은 층에 매력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유명인사들의 영향력에 의존하는 것은 상투적이고 구시대적(舊時代的)인 발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요즘은 정반대로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할리우드 연예인들도 속속 늘어가는 추세다. 미국 폭스뉴스 2020년 11월 1일 자 기사 ‘정치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연예인들’에 따르면 인기 코미디언 케빈 하트, 컨트리 여왕 돌리 파튼, 배우 조시 더멜 등 많은 연예인이 정치적 발언을 스스로 금하는 자세를 취하거나 그런 선언들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한다.
결국 2017년에 이어 2022년 대선에서도 똑같이, 많은 부분 더 심화된 형태로 펼쳐지고 있는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 부재(不在)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흐름이라고 볼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