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군 금일도 기행 최 건 차
일찍 든 6월 장마가 그치고 삼복더위가 무법자처럼 엄습한다. 노회장을 지낸 몇 분과 나는 현 노회장과 의기투합하여 남녘의 섬으로 낚시질과 해수욕을 하려고 아침 일찍 수원과 오산에서 회동하였다. 정오쯤에 완도군 약산면 당목항에 도착하여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는 철부선에 승선하여 해풍을 맞으니 시원하다. 노회장 이 목사의 고향이기도 한 금일도金日島 까지는 뱃길로 반 시간 정도의 거리라 금방인데,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다. 이 섬은 완도군에 속한 1개 면으로 1981년 인근의 섬 2곳을 합쳐서 읍으로 승격된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금일도를 읍이 되게 하는데 동의했던 이웃 섬들이 행정상 편의와 왕래가 불편하다며 떨어져 나가, 현재의 금일읍은 자체 섬만으로 인구가 고작 3500명 정도라 초미니 읍을 유지하고 있는 다시마의 섬이다.
금일도는 손을 펴 논 것 같은 리아스식 해안이라 가두리 양식장 하기에 최적이다. 전국 다시마 생산 80%와 미역, 전복양식이 잘 되어 섬 형세가 어망에 갇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일행은 노회장 이 목사와 친한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의 숙박 시설에 여장을 풀고서 곧바로 이 섬에서 제일 크다는 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이 없어 드넓은 해수욕장을 우리가 전세를 낸 듯이 마음껏 수영하고서 수박으로 갈한 목을 추겼다. 저녁은 맛집 식당을 찾아 토속 갈치 조림을 맛깔나게 먹고, 내 일은 바다낚시로 저녁에 매운탕을 해 먹자며 해안 길을 거닐면서 갯바람에 몸을 식혔다.
나는 유년 시절을 줄곧 냇가에서 보냈다. 물을 지나치게 가까이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사고를 여러 번 겪기도 했다. 그러다가 1950년대 중학생 때는 부산영도 바닷가에 살면서 멍게를 따고 해삼을 잡아먹으면서 물개처럼 바다를 끼고 살았다. 그러는 중에 일찍 군에 입대하여 1960년대 초반은 해운대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동백섬과 해운대 해수욕장이 내 집 안방처럼이었다. 해운대 해수욕장이 개발되기 전의 원초적인 상황이어서 내 성향에 맞았다. 한여름이면 해운대 바닷가부터 미포와 청사포를 휙 스쳐 송정과 기장으로 달려가 해수욕을 즐기며 해산물로 식욕을 돋우고 지냈다.
오늘은 한동안 바다를 찾지 못하고 지낸 것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은 심정이다. 내 삶이 어느덧 노년기에 들어섰지만, 해수욕장을 대하고 보니 심사가 요동치며 옛날 모습이 파노라마 친다. 바다 수영을 해 볼 참으로 물속에 발을 적시니 차갑지도 않고 뜨뜻하지 않아 물속에 몸을 담그기에 안성맞춤이다. 10대의 부산영도 시절과 20대의 해운대가 아련하게 펼쳐진다. 베트남전 참전 시에는 1960년대 초의 해운대 해수욕장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나트랑 해변에서 전쟁의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풀었다.
숙소를 제공해 준 교회에서 아침에 전복죽을 정성으로 푸짐하게 차려주어 원기회복에 좋았다. 섬에서 주업으로 하는 다시마를 외국인을 고용하여 가두리로 생산하여 식용으로 가공하고 전복의 먹이로 쓴다고 한다. 그 일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다시마 수확이 한 참일 때에는 섬에 거주하는 원주민 수 만큼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일을 처리해 주고 돈을 벌어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섬 주민들은 잘 보이지 않는데 안개 속으로 부지런히 나아 다니는 외국인들이 활기차 보이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것같아 앞으로 복병이 되지 않겠냐는 노파심이 들었다.
섬에는 읍사무소와 농협과 수협이 있고, 귀한 비파나무 열매가 잘 익은 살구처럼이다. 남해도에 갔을 때 비파나무를 봤는데 누렇게 익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것을 이곳에 와서 처음 보게 되어 신기했다. 동네 주민께 물으니 몸에 좋다며 따 먹으라 해서 몇 개를 따려고 빈집 담장 너머로 휘어진 가지를 붙잡았는데 잘 꺽지지 않고 무척 질겼다. 아무튼 열매 몇 개를 따먹고서 여러 개가 달린 작은 가지 하나를 꺾어다가 일행들에게 보여 주고 먹어보게 했다. 다시마 수확 철이 아니라서 동네는 조용하게 안개에 덮여있다. 그래도 섬 안에는 초등학교 두 곳과 중고등학교가 있다는데, 지금 섬 안에 있는 어린아이가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는 2명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환경의 상황에도 교회가 16곳, 불교 사찰이 2곳, 천주교 성당도 1곳이 있다고 한다.
마을을 둘러보며 노회장 이 목사가 태어나서 자랐다는 생가를 방문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지만 모두 함께 기도하고 나서는데, 화창한 날씨에 안개가 또 끼고 있다. 섬에 대한 미래가 안개 속에 가려져 뭔가로 다가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 어찌됐든 내 나름의 추론을 떨쳐버리려고, 텅 비어 있는 해수욕장을 찾아 수영이나 하고 낚시질을 하려고 한다. 바다 지렁이를 미끼로 파는 가게들이 문을 닫아 겨우 한 곳에서 야리야리하게 죽은 작은새우를 사서 해수욕 겸 바다낚시를 나섰다. 먼저 용굴이라는 곳을 찾아가서는 수영을 잠깐하고 어제 오후에 갔던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갔다. 몇이는 저녁 매운탕 거리를 잡자며 낚시질을 하고 나머지는 수영을 하며 고기가 잘 잡히도록 응원했다. 수영도 신나게 많이 하고 고기도 적당하게 10여 마리를 잡아 숙소로 돌아와 생선 매운탕을 끓여 저녁을 잘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짐을 챙겨야 하는 아침을 맞았다. 일찍 떠나려고 선착장으로 달려왔는데, 또 안개가 끼어 3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섬을 떠나게 되었다. 3일간 안개 속에서도 그간 못했던 해수욕을 실컷 하고 바다낚시도 재미있게 했다. 또 귀한 비파나무 열매를 따 먹어보았기에 금일도는 안개와 다시마 그리고 비파의 섬으로 기억될 것 같다. 202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