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러브' 시작한 다리, 그곳의 진짜 가치는...
[김천령의 한국 정원 이야기23] 경북 안동 만휴정원림
오마이뉴스 기사 등록 : 2018.10.13. 19:29
"합시다, 러브. 나랑!"
이 한마디로 연인들이 꼭 가야 할 곳이 생겼다. 경북 안동의 만휴정이다. <미스터션샤인>에서 도공(김갑수)의 집이자 유진(이병헌)이 애신(김태리)에게 '러브'하자고 말했던 다리가 있던 곳이다. 만휴정은 고산정, 정여창 고택과 더불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소로 남았다.
사실 만휴정은 '한국의 정원 이야기'에 넣을지 말지를 고민했던 곳이다. 그러던 차에 방송에 나왔고, 지난 10월 3일 만휴정을 다시 찾았다. 오후 5시에 가까운 시각이었는데도 만휴정 일대는 길게 늘어선 차량과 인파로 북새통이었다. 처음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면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지만 만휴정에 도착했을 때 생각이 바뀌었다. 만휴정을 찾은 수많은 관광객들의 관심은 오로지 드라마에 나왔던 다리에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만휴정과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드라마에 나왔던 장면, 특히 다리에 온 시선이 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글을 써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생겼다. 만휴정의 원림적 요소와 여기에 깃든 정신적 가치 등을 조금이나마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안동 지역 정자의 백미
만휴정은 안동시 길안면 묵계 마을의 송암동천에 있다. 묵계는 예전 거묵역 혹은 거무역으로 불리기도 했다. 보백당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이 이곳에 우거하면서 묵촌(黙村)이라 했다. 마을 앞의 냇물을 묵계로 부르면서 지금의 묵계 마을이 태어났다.
묵계 마을은 긴 여울이 마을을 크게 휘돌아 흐르고 사방으로 산봉우리가 넉넉하게 빙 둘러 있다. 깊은 골짜기임에도 전혀 답답하지 않은 이 산중 마을은 볕이 잘 드는 고장이다. 시내를 건너 작은 마을을 지나면 이내 깊은 산중으로 이어지고 별안간 비경이 펼쳐진다.
작은 물줄기인줄로만 알았던 계곡물이 폭포수가 되어 거대한 암반에서 쏟아진다. 송암폭포다. 폭포 아래는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시커먼 소가 못을 이루고, 폭포 위로는 놀랍게도 정자 하나가 그림처럼 앉아 있다. 학이라도 한 마리 날라 온다면 폭포 위는 아득한 선계임에 틀림없다.
그 날아갈 듯한 정자가 바로 만휴정(晩休亭)이다. 지금은 다리가 놓였지만 예전엔 다리 옆 돌계단을 통해 오솔길로 드나들었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바라본 만휴정은 한 폭의 그림이다.
햇빛이 감싸는 부드러운 솔숲을 배경으로 정자 한 채가 살포시 앉아 있고, 그 앞으로는 맑은 시내가 하얀 암반 위를 쉼 없이 흐르고 있다. 계곡 위로는 푸르다 못해 검은 소가 보이고, 그 너머로 100명은 너끈히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가 하늘로 나는 듯 펼쳐져 있다. 이 반타석을 타고 흘러내리던 폭포수는 한 번 깊은 못을 이루었다가 암반을 미끄러지듯 흐르다 정자 앞에서 몸을 비튼 후 폭포수가 되어 떨어진다.
정자 옆에는 작은 일각문이 있고 다리는 그 앞으로 걸쳐 있다. 다리를 건너려면 물을 거슬러 십여 보 올라가야 한다. 그 사이 정자의 위치도 가늠해보고, 정자를 둘러싼 주변 풍경도 감상해본다. 입구에서 정자로 곧장 다리가 놓였다면 긴장감은 훨씬 덜했을 것이다. 아주 잠시지만 다리를 건너기 전에 이 에둘러가는 길을 걸음으로써 만휴정은 더욱 아름답고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만휴정을 둘러싼 풍경이 정자와 솔숲, 푸른 계곡과 폭포, 흰 반타석과 가마솥 같은 세 연못 등으로 아주 다채롭다는 걸 서서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안동 출신의 문신 이돈우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는 1883년 7월에 만휴정을 유람하고 그 감회를 이렇게 썼다.
"산이 더욱 높고 물이 더욱 맑았으며 세 폭포가 연못을 이루어 구비마다 더욱 기이했다. 정자가 그 위에 있었는데 새가 놀라 날개를 펼치는 듯하고 꿩이 날아가는 것 같아 우리 고을 제일의 산수임을 알았다."
늦게 얻은 휴식, '만휴'
만휴정 안에는 그 내력을 알 수 있는 현판이 걸려 있다. 쌍청헌(雙淸軒)이다. 쌍청헌은 원래 김계행의 장인인 남상치의 당호였다. 그는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는데, 두 딸을 각각 김한철(金漢哲, 1430~1506)과 김계행에게 시집보냈다. 남상치는 부귀와 거리를 두고 청백의 정신을 지킨 인물로, 1453년 계유정난으로 단종이 폐위되자 이곳 묵계로 낙향하여 쌍청헌을 짓고 은일적인 삶을 살았다. 김계행은 장인의 숨결이 서려 있는 옛터에 만휴정을 조성하여 그 정신을 이어갔던 것이다.
김계행은 성종 11년인 1480년 50세의 늦은 나이로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1498년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태장을 당했으나 대사간에 임명됐고, 다음 해에는 옥사에 갇혔으나 대사성과 대사헌에 임명되는 등 부침을 겪었다. 결국 1500년 그의 나이 70세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묵계에 우거(寓居)했다. 김계행은 이듬해인 1501년 그의 나이 71세 때 만휴정을 지었다. 그는 폭포 위 계곡 가에 자신의 별서를 지어 세상과 절연하고 자신을 수양하는 이른바 '장수지소((藏修之所)'를 경영했다. 그리하여 늦게 얻은 휴식, '만휴(晩休)'를 즐겼던 것이다.
그 뒤 25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만휴정은 거의 폐허가 되었는데, 1750년경에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의 9세손인 묵은재(黙隱齋) 김영(金泳, 1702~1784)이 중수를 결심하게 된다. 김양근의 '만휴정중수기(晩休亭重修記)'를 보면 김영은 김계행이 지은 만휴정 옛터에 절벽을 깎아내는 등 매우 힘들게 공사를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김영은 기초 공사로 터만 닦아 놓은 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어 둘째 아들 김동도(金東道, 1734~1794)에게 만휴정 중수를 완성할 것을 당부하게 된다. 그리하여 김동도는 1790년 2월에 토대를 구축했고. 3월 22일에 기둥을 세웠고. 3월 30일 사시(巳時)에 상량식을 했으며, 5개월이 소요되어 마침내 만휴정을 다시 지었다.
오로지 보물은 하나, '청백'
김계행의 호는 보백당이다. 김계행은 68세 되던 1498년에 지금의 안동시 풍산읍 소산2리에 해당하는 설못(笥堤)에 살았다. 이때 집 근처에 작은 집을 짓고 당호를 '보백당寶白堂'이라 했다. 그는 일찍이 "우리 집엔 보물이라곤 없는데, 오직 청백만이 보물이다(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라고 읊었다. '보백'은 거기서 취한 말이다.
반타석 바위에도 새겨져 있는 이 글은 만휴정에선 꼭 한 번 되새겨봐야 할 글귀다. 만휴정이 어떤 곳이냐고 물으면 이 글귀로 대신할 수 있다. 만휴정의 인문 정신은 바로 '청백'이다. 김계행의 자 또한 취사(取斯)인데 공자가 칭찬한 제자 복자천이 청백리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것과 연관되어 있다.
김계행은 81세 되던 해인 1511년 2월에 가족과 친척들이 다 모였을 때 자손들에게 "몸가짐은 삼가고 남에겐 정성을 다하라(지신근신 대인충후持身謹愼 待人忠厚)"며 경계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임종 때에도 자손들에게 청백을 전했으며, 장례는 소박하게 치르고 미사여구를 써서 묘비를 짓지 못하도록 했다.
처음 만휴정이 지은 지도 5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만휴정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변함없는 것처럼 김계행의 아름다운 정신문화도 그 세월 속에 녹아 있을 것이다. 만휴정은 보백당 김계행에게 유유자적한 만년의 휴식 공간이었다. 만휴정은 2011년 '안동 만휴정 원림'명승 제82호로 지정됐다.
만휴정을 찾는 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아낍시다, 만휴정. 우리 모두!"
만휴정 유람기
만휴정의 아름다운 풍경을 잘 묘사한 옛 글로는 석오(石塢) 권병섭(權秉燮, 1854~1939)의 '만휴정 유람기'를 꼽을 수 있다.
"정자는 황학산(黃鶴山) 북쪽 자락의 폭포 위에 있었다. 산 아래에서부터 모든 돌들이 시냇물 바닥에 깔려 있었다. 모두 희고 매끄러운 돌이었고, 끊어진 곳에는 하얀 모래가 펼쳐져 있었다. 정자 아래에 물이 이른 뒤에 양쪽 기슭이 우뚝 솟아 있고 그 가운데가 비어 있어 문을 이루었다.
물이 바위 위로 흘러내리다가 이곳에 이르러 문과 다투다가 급히 떨어져 성내고 노한 기세로 눈처럼 흰 폭포를 이루었다. 그 아래에는 커다란 솥 모양처럼 생긴 웅덩이가 검푸르면서도 깨끗했다. 이러한 기세로 연달아 두 웅덩이가 있는데 깊이와 넓이는 위의 것에 비해 조금 모자란다. 오랜 가뭄으로 폭포가 장엄하지 못했으나 장마 때가 되면 반드시 커다란 물소리를 내며 기이한 볼거리가 될 것이다.
정자에서 술을 마셨다. 국화가 반쯤 피었고 단풍도 조금 붉었다. 숲 속의 새들도 재잘거렸다. 날은 이미 저물었다. (…)"(권병섭의 『석오집』 권8, 「유만휴정기遊晩休亭記」)
안동 만휴정 관광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