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히틀러와 나치에 관한 역사적 미스테리들..
출처 : Through My Heartscape
2차세계대전 당시의 히틀러와 나치 독일에 대해서는 여러가지의 역사적 미스테리가 존재하고 있다.
그중에는 진실성이 의심스러운 것도 있고.. 도저히 믿기 어려운 점도 있으며
또한 근거자료가 부족하긴 하지만 진실 가능성이 높은 것도 있다.
몇가지를 소개해본다.
1. UFO
히틀러는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우수한 병기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V-2로켓이나 U-보트 등은 실전에 배치된 우수 병기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독일이 원자폭탄의 개발을 거의 완료했었다는 사실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많은 병기들을 연구하고 있었으며
전후 미국과 소련의 기술 발달은 이들 독일 과학자들 덕분일 정도이다.
그러한 독일의 비밀병기중의 하나가 바로 원반 형태의 신종 비행기였다.
날개도 없고 방향타도 없는 독일의 원형의 소형 전투기에 대한 증언과 정보기록들이
독일과 미국, 소련, 특히 영국에 많이 수집되어 있으며..
최근에 독일의 일간지에서 이에 대한 기사를 다뤄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독일의 이 원형 전투기는 개량을 거듭하여 3번째의 모델까지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실전에도 투입되어 미 공군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전세를 뒤집기에는 시기가 너무 늦어버렸고
이 신형 전투기의 기술만큼은 연합군에 넘길 수 없다고 판단한 히틀러는
이에 관한 모든 시설과 자료를 파괴하도록 지시하였다고 한다.
하여 모든 것이 폐기처분되고.. 관련된 기술자들과 과학자들은 모두 행방불명이 되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남극과 아르헨티나 등지에 비밀기지를 세우고
최후의 전투를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2. 히틀러의 죽음
히틀러의 죽음도 역사적인 미스테리의 하나이다.
알려져있는 바로는 히틀러는 에바 브라운과 함께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권총으로 자살하였고 시체는 소각이 되었다.
알다시피 종전 직전에 베를린에 먼저 입성한 것은 소련군이었고..
전쟁을 속히 종결짓고자 했던 스탈린은 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불에 탄 시신의 치열 조사 결과만을 가지고서 서둘러 히틀러가 자살한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히틀러가 죽지 않았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으며..
이를 확인하고자 뼈만 남은 히틀러의 시신을 꺼내어 확인한 결과로는
3사람의 뼈가 섞여 있으며 그 어느 것도 히틀러의 것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어찌된 일일까..
그에 대해 의심되는 것중의 하나는.. 대역 히틀러가 있었다는 점이다.
뭇솔니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면
히틀러의 키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후세인이 그러했던 것 처럼 히틀러도 자신의 대역(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지하벙커에서 죽임을 당한 것은 이 대역 히틀러가 아니었겠는가..
하는 것이 미스테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추정이다.
뿐만 아니라 히틀러 자신의 지시에 의해 여러개의 비밀 탈출 루트와
탈출 부대를 준비시키고 있었다는 것이 이러한 의혹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
3. 나치와 바티칸
의혹이라기 보다는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 하나는..
2차대전 동안의 나치와 바티칸의 협력관계 여부이다.
2차대전 동안 나치의 전쟁 행위에 대해 바티칸이 침묵을 지킨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바티칸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내왔었다.
하지만 알려진 바로는 바티칸이 나치가 소련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 동조를 하였으며..
전쟁이 끝나갈 무렵 나치가 소유하고 있던 금괴의 절반 가량을
바티칸에게 넘겨주었다고도 한다.
나치가 바티칸에게 이 엄청난 양의 금괴를 넘긴 이유는..
독일군 장교들이 유럽을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대한 댓가라고 알려져 있다.
하여 이른바 [지하철]이라고 알려져있는 루트를 통해
바티칸은 수많은 나치 장교들을 중남미로 탈출시켰으며
이들 장교들은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 지역에서
이스라엘 첩보기관의 추적을 피해가며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이 이를 승인하였는지.. 아니면 묵인하였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한 고위장교가 자신이 바티칸의 교황청 지하에 숨어있었으며
그곳에서 3천명의 SS 장교들을 만났다고 증언한 것에 의한다면..
교황이 이를 모르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4. 아우슈비츠
사실성이 떨어지고.. 믿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아우슈비츠에서의 유태인 학살이 조작된 것이라는 의혹도 있다.
만일 이러한 대학살이 진정 존재했었다면..
독일군이 이들 시설을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달아났다는 점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일본군이 731부대의 시설과 자료를 모두 폐기처분한 것과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600만명의 유태인이 학살당했다고 하는 그 이면에는
그 진실성이 의심가는 많은 자료들이 존재하고 있다.
히틀러가 유태인을 미워하거나 싫어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문제의 요지는.. 히틀러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들 유태인 문제로 골치를 썩다가
영국과 미국에게 이들 유태인들의 국가를 따로 세워주자는 제안을 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거절당했다.
그후 히틀러는 다시 미국에게 유태인들의 집단 이주를 제안했다.
미국은 이에 응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다시 미국은 이를 거절하였고..
결국 히틀러는 유태인들을 수용소에 수감하고 말았다.
미국이 유태인 이주를 거절한 배경에는 국제유태인협회의 압력이 있었다고도 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는 매우 어려운 노릇이지만..
미국의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동족들을 배반하고 만 것이다.
이들 역사적 미스테리에 대해 더 자세하게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이 역사라는 것은 모호하고.. 이상하며.. 비밀이 많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밝혀내는 것은 역사가의 몫일 뿐이고..
우리는 그저.. 그 이야기들을 읽고 아하.. 그렇구나.. 하고 고개만 끄덕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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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히틀러와 나치에 관한 역사적 미스테리들..
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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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20 10:5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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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UFO만 빼고 위의 내용들은 모두 사실입니다.....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유태인 숫자의 경우에 약간 부풀려진 것도 있고요...예를 들어 독가스에 희생된 방에 들어갈 수있는 사람의 숫자와...독가스를 살포하여 유태인들을 죽이는 시간등을 고려할 때....하루에 처형되는 유태인 수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방식과 수용소의 수용능력등을 복합적으로 계산할 때....약간 과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요....연합군의 드레스텐 폭격으로 사망한 독일인들의 숫자도 상당한 숫자였습니다...나치의 금괴의 상당부분은 전쟁중에도 영국에서 배로 나치에게 전달되었습니다..따라서 2차대전의 성격은 지금과는 달라질 소지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