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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 정의평화환경전문위, 택배 파업 연대 미사
CJ대한통운에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 이행 촉구
CJ대한통운 본사. ⓒ김수나 기자
택배 노동자 과로사를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미사가 21일 봉헌됐다.
한국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전문위원회가 주관한 이 미사는 파업하고 있는 택배 노동자들에 연대하기 위해 마련됐다. 현재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이하 택배노조)이 건물 점거 농성을 하고 있는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신자와 조합원 등 200여 명이 함께했다.
이날 미사는 김정대(예수회), 김종화(작은 형제회), 박상훈(예수회), 박성재(살레시오회), 상지종(의정부교구), 한경호(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신부가 공동 집전했다.
택배노조는 지난 2021년 6월 마련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이하 사회적 합의)를 CJ대한통운이 제대로 이행할 것을 요구하며 이날로 56일째 파업하고 있다. CJ대한통운 본사 점거 농성은 12일째다.
두 달 가까운 파업 중에 조합원들은 11명 20일 단식과 100명 집단 단식, 108배와 삼보일배에 이어 본사 점거 등으로 대화를 요구했지만 CJ대한통운은 답하지 않고 있다.
길어지는 파업으로 조합원들은 건강과 생계의 어려움까지 겪고 있어 지난 18일 시민사회와 종교계 등 90여 단체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CJ대한통운과 정부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상지종, 김종화, 김정대, 박상훈, 박성재, 한경호 신부. ⓒ김수나 기자
"내 가족을 괴롭히지 마라"
이날 김정대 신부는 강론에서 두 영화, ‘쉰들러리스트’와 ‘미안해요, 리키’를 들며 택배 노동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마음을 전했다.
그는 지난해 일어난 쿠팡 노동자들의 과로사는 “회사가 물류의 분류 양을 늘리라고 노동자들에게 강요한 데 따른 것”이라며 “노동자를 인간이 아닌 일하는 기계나 동물 정도로 취급했던 나치의 강제노동수용소를 다룬 ‘쉰들러리스트’가 떠올랐다. 강제노동수용소는 인간의 노동을 비인간화 해 도구로 전락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 6일, 하루 16시간 일하고 정해진 양을 배송하지 못하거나 일하다 다쳐도 보험은커녕 일하지 못한 만큼을 노동자가 오롯이 회사에 보상해야 하는 영국 택배 노동자의 현실을 다룬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들었다.
가족들과의 단란한 삶을 위해 택배업을 시작했지만 장시간 노동으로 가족과 멀어진 리키. 일하다 괴한들의 폭행과 절도로 다쳐도 직원이 아니므로 발생한 피해를 보상하라고 요구하는 회사. 이를 지켜본 리키의 부인은 회사에 소리친다. “일주일에 6일씩 일하고 하루에 16시간을 일하는데 어떻게 직원이 아닌가. 똑똑히 들으라. 내 가족을 괴롭히지 마라.”
김 신부는 “개인사업자로 돼 있는 택배 노동자는 택배사와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택배사, 대리점과 택배 위수탁 계약으로 일하는데 여기에는 여러분의 고귀한 노동이 빠져 있다”며 “이는 원청이 노동조건과 임금, 그 밖의 업무상 사고나 문제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한 계약”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러분이 당하는 매우 큰 수탈과 고통에 대해 이제 누군가는 리키의 부인처럼 외쳐야 한다”면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지금 그 부당함을 외치고 있다. 그 목소리가 우리 사회의 목소리가 되길 간절히 바라며 여러분의 파업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날 유성욱 씨(전국택배노동조합 CJ대한통운본부장)는 이 미사가 택배 노동자의 현실과 고통을 알리는 시간이라며 고마워했다. 이어 그는 2020-21년 택배 노동자 22명이 현장에서 일하다 과로로 숨졌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합의 이행의 주체인 CJ대한통운은 노동자 처우 개선에 쓰라고 국민 동의 아래 올린 택배 요금을 자신의 이윤으로 챙기려 하며, 또다시 일하다 죽어도 되는 현장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생존권을 포기하고 싸우고 있는 1900명 조합원은 56일 동안 너무 힘들고 많이 아프다. CJ대한통운 같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국민들이 야단쳐 달라”고 말했다.
현재 파업 상황을 설명하는 유성욱 씨.(전국택배노동조합 CJ대한통운본부장) ⓒ김수나 기자
사회적 합의 이행이 양호?
분류 작업 완전 배제, 전국 25개 터미널 가운데 7개소에 그쳐
사회적 합의의 핵심 사항인 ‘분류 전담인력 투입 또는 택배기사가 분류 작업 수행 시 별도 대가 지급’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가를 놓고 노조와 CJ대한통운의 입장 차가 크다.
지난 2020년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택배 물품 분류작업'은 배송 전 평균 7시간 이상 진행되며, 택배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의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분류작업은 택배 노동의 43퍼센트를 차지하지만 그동안 택배업계의 관행상 계약서에도 명시되지 않은 무급 작업으로 택배업계는 배송 수량에 대한 수수료만 택배 노동자에게 지급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가 잇따르자 2021년 6월 시민사회와 노동계, 정부와 택배업계는 ▲주당 노동시간 60시간 이내 ▲분류 작업은 택배사 책임으로 택배기사 업무에서 제외 ▲택배요금 인상분은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에 사용 등을 합의했고 올해 1월 1일부터 전면 시행하며 정부는 합의사항이 원활히 이행되도록 지속 점검, 관리,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노조는 현재 분류 인력이 제대로 투입되지 않는 상황, CJ대한통운의 표준계약서 부속합의서에 명시된 주6일 근무와 당일배송원칙이 장시간 노동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 인상된 택배 요금이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 및 처우 개선에 쓰이는지 등을 두고 CJ대한통운이 사회적 합의안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반면 CJ대한통운은 국토교통부가 진행한 사회적 합의 이행 상황 점검 결과가 양호하다는 근거를 들어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또 택배 노동자는 개별 대리점과의 계약 관계이므로 CJ대한통운은 협상 주체가 아니라면서 지난 10일 시작된 본사 점거 농성에 대해서도 노조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 1월 24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전국 25개 터미널을 불시 점검한 결과에 따르면, 터미널 25개 가운데 택배 노동자가 완전히 분류 작업에서 제외된 곳은 7개소(28퍼센트)에 그쳤다. 절반에 가까운 12개소(48퍼센트)에서는 여전히 택배 노동자가 일부 분류 작업에 투입됐다. 구인난 등으로 분류 인력을 두지 못해 택배 노동자에게 별도로 분류 비용만을 지급하는 곳은 6개소(24퍼센트)다. 또 분류 인력이 투입됐더라도 숙련도나 물품 재배치 등으로 추가 노동 시간이 발생했고 터미널 규모의 협소함 등 시설적 한계, 도심 외곽의 구인 문제도 있다.
국토부는 분류 전담인력 투입과 택배 노동자 분류 작업 시 별도 비용 지급은 이행 중에 있고, 택배 노동자가 완전히 분류작업을 하지 않게 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참여연대 등 15개 시민단체들도 지난 16일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CJ대한통운에 즉각 대화를 촉구했다. 또 국회에는 노사의 중재를, 정부에는 이행 여부에 대한 적극적 관리 및 노사 입장 차이가 일어나는 부분에 대한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점검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인상된 택배 요금이 CJ대한통운의 수익이 아닌 택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하고, 사회적 합의 이행에 대한 국토부의 점검이 충분하지 않으므로 소비자단체, 민생단체 등 지난 사회적 합의 기구에 참여했던 단위들이 함게 점검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택배 노조 조합합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수도자, 신자들. ⓒ김수나 기자
이날 미사에서는 교회 공동체가 택배 노동자의 아픔을 함께하길 기도했다.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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