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 夢想
이정식
7월이 되면 여름방학을 한다, 학생들은 방학 전 2박3일간 야영 수련활동에 들어간다. 고등학교 1학년 12학급 600여명의 학생을 이끌고 남한강기슭 푸른 숲속에 자리한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야영활동을 하게 되었다.
한사람이라도 불행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어떻게 무사히 수련활동을 끝내야 할 터인데... 나는 담임교사들과 함께 인솔 책임자로서 걱정이 태산 같았다.
첫날은 무사히 보냈다. 이튼 날 초저녁부터 부슬비가 내리더니 차차 빗방울이 굵어져 장대비가 줄기차게 쏟아졌다. 삽시간에 운동장은 물바다가 되고 야영하던 텐트가 붉은 물에 둥둥 떠내려갔다. 학교교실로 대피하지 못한 일부학생들이 물에 휩쓸려 생사가 불분명했고, 그중 몇 학생은 실종되었다. 119소방대원들이 달려왔고, 학부형들이 때를 지어 몰려왔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 ”시신이라도 찾아내라“ ”책임자가 누구냐“ 소리치며 야영장은 아우성치는 학부형들로 난장판이 되었다. 나는 온몸이 덜덜 떨리고 말을 하려해도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린학생들을 물에 떠내려 보내고 어떤 말을 하겠는가, 이 엄청난 재난이 모두 나에게 책임이 있거늘 어찌 산다 하겠는가. 단원 고 교감은 바다 속에서 살아나왔어도 목을 메여 죽었다는데 나도 그래야 마땅하리라.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떤 학부형이 ‘내 아들 살려내라’ 소리치며 내목을 조르고, 머리를 탁치는 바람에 놀라 눈을 번쩍 떠 보니 한바탕 꿈이었다.
악몽(惡夢)에 시달린 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내 마음은 퇴직하고 현실이 아닌 꿈이라는데 안도(安堵)했고, 어찌나 마음이 가벼운지 악몽이 길몽(吉夢)이 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늙어가는 몸에 마음까지 허약해서인가. 나는 가끔 이와 비슷한 꿈을 자주 꾼다. 그 옛날 교직에 있을 때 학생 야영은 물론 수학여행을 많이 인솔했다. 담임교사로, 학년주임교사로, 또는 인솔 총책임자가 되어 제주도여행을 수 없이 다녀왔었다. 그때 마음 조리던 잠재의식이 있어서인가. 요즈음 세월호 참사를 TV에서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 것이라 나름대로 해몽을 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freud.1856-1936)는 꿈이란 현실과 잠재의식 관계에서 과거에 연유한 어떤 소원을 꿈속에서 충족시키는 현상이라 했다. 그렇기에 꿈에서는 왜곡(歪曲)과 과장(誇張)이 심해서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이 꿈에서는 가능 해지고, 비합리적인 것도 타당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어떤 꿈 연구가는 꿈은 자기만화경(自己漫畵鏡)에 제멋대로 놀아나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까지 말한다.
나이가 들어 살아온 세월의 무게만큼 꿈만 늘어가는 것 같다. 젊어서 겪은 일들이 잠재의식으로 남아있어 악몽에 시달리는 일이 많다.
그래도 우리 인간은 살아가면서 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꿈을 꾼다. 꿈은 옛일에서 비롯된 잠재의식潛在意識에서 온다지만 미래를 예견하는 예지 몽(叡智夢)은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일이여서 공허하기보다 현실과 인과 관계가 깊다. ‘내 꿈이 딱 맞아!’ 하듯 인간의 영감(靈感) 능력은 초감각적 예지능력을 발휘할 때도 있다. 이것은 물리적 기준으로 설명할 수없는 초월적인 것이라 생각된다.
인간은 꿈을 먹고사는 동물이기에 꿈이 없는 삶은 죽음과 다름없다. 꿈이 있는 사람! 꿈을 가진 학원! 꿈 많은 청춘! 꿈에 그린사랑! 말만 들어도 우리 삶에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비전(vision)이 아니던가.
예부터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요,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한때의 부귀영화가 꿈만 같다 했다. 불경(佛經) 금강경(金剛經)의 사구게(四句揭)에
‘우주만물의 일체 법칙이 꿈같고, 물거품, 그림자, 이슬 같고 또는 번개, 같으니 응당 그렇게 보는 것 이라했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電, 應作如是觀)
잠깐 왔다가는 인생! 꿈같이 흘러간 세월에 추억의 잔영(殘影)들을 무심히 그려본다. 흘러간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 해도 살아온 옛일은 앞으로 살아갈 길을 굽어보는 거울 이 되고 디딤돌이 아니던가.
꿈같이(如夢)흘러간 옛 추억에서, 내가 살아갈 예지 몽(銳智夢)은 무엇일까. 오늘도 끊임없이 변해가는 세파(世波)에 내 꿈같은 여생을 실어보리라.
첫댓글 잠깐 왔다가는 인생! 꿈같이 흘러간 세월에 추억의 잔영(殘影)들을 무심히 그려본다. 흘러간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 해도 살아온 옛일은 앞으로 살아갈 길을 굽어보는 거울 이 되고 디딤돌이 아니던가.
아효...선생님 처음에 읽다가 놀랐습니다.
꿈이어서 다행이옵니다. 감상 잘 했습니다. 늘 건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