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봉 전망대에서
코로나로 학생들의 등교와 교사의 근무 양상이 달라졌다. 개학이 한동안 미루어지다 지난 4월 중순 고3만 등교하다가 나중 2학년과 1학년이 격주 등교로 합류했다. 2학기에는 전 학년 등교를 예정했는데 광복절 이후 서울로부터 코로나가 다시 번져 차질이 왔다. 수시 전형 원서 접수를 앞둔 3학년은 매일 등교하나 나머지 학년은 종전과 같이 격주 등교로 한 학년은 원격수업이다.
구월 셋째 월요일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선 학년마다 일정이 달랐다. 2학년은 가정에서 원격수업이 이루어지고 3학년과 1학년은 등교를 했다. 등교한 3학년은 정기고사가 진행되어 오전에 시험을 보고 하교하고 1학년은 오후까지 정한 일과대로 수업이 이루어졌다. 교사들도 대면수업과 원격수업으로 갈렸다. 3학년 교과 담당은 수업에 임하지 않아도 되어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학교에 머물러도 할 일이 없는지라 퇴근 시각보다 일찍 교정을 나왔다. 코로나 감염이 우려되어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한다만 바닷가로 나가려니 시내버스를 타지 않을 수 없었다. 와실로 들어 옷차림을 바꾸어 연사 정류소로 나갔다. 고현을 출발해 구조라로 가는 22번 시내버스를 탔다. 송정고개를 넘어 옥포에서 아주를 둘러 두모고개를 넘으니 장승포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옥림을 돌아 지세포로 갔다. 시선은 차창 밖 검푸른 바다에 두었다. 지세포에서 와현고개를 넘어 모롱이를 돌아가니 구조라였다. 수정마을에서 구조라성으로 오르는 샛바람 소리 길로 들었다. 대숲을 지나면서 구조라 해수욕장 방향으로 되돌아봤다. 백사장 모래톱이 펼쳐져 있었다. 북병산이 둘러친 양화와 망치로 이어진 전원주택들이 그림 같았다. 바다 조망이 좋은 마을이었다.
마을 앞 바다에 무인도 윤돌도가 안산처럼 떠 있고 바깥으로는 외도와 해금강이 빤히 바라보이는 데다. 서녘으로 기우는 햇살이 비친 해수면은 윤슬로 반짝여 눈이 부실 정도였다. 구조라성은 몇 차례 둘러봐 해안가 약물바위로 갔다. 지난번 태풍 때 데크까지 밀려온 자갈돌을 치워 보행에 지장이 없도록 해두었다. 해안가 바위틈에서 약수 샘물이 나온다고 약물바위로 불려졌다.
대롱 끝에는 수량이 제법 되는 약수가 솟아났다. 약수를 두 모금 받아 마시고 돌아서니 빈 생수병을 가득 끌개에 담아 물을 받으러 온 새댁이 보였다. 구조라 수정마을 사는 사람이 거기까지 약수를 받아가 먹는 모양이었다. 갯바위에는 낚시에 여념 없는 사내가 둘 보였다. 나는 약물바위에서 수정산으로 오르는 숲길로 들었다. 비탈을 따라 오르니 구조라성에서 온 길과 합류했다.
북병산이 남단으로 흘러내려 구조라 반도가 생겼다. 반도의 낮은 봉우리가 수정산이었다. 수정 광석이 채굴되어 수정산이라 불렀다. 남녘 해안이라 식생은 난대림 활엽수들이 많았다. 내가 아는 나무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와 사스레피나무 정도였다. 약물바위에서 수정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묵혀지다시피 했다. 자손들이 벌초를 끝낸 무덤을 몇 기 지나니 수정봉 전망대가 나왔다.
지난번은 구조라성에서 올랐는데 이번엔 약물바위에서 해안가 숲길을 따라 정상에 닿았다. 전망대에 서니 대한해협 검푸른 바다가 탁 트였다. 한복판에 내도와 외도가 떠 있었다. 좌 전방으로 공곶이와 서이말등대 연안이었다. 우 전방은 해금강이 아스라했다. 바다에는 조업을 하는 어선이 점점이 보였다. 내해에서 흔히 보던 하얀 양식장 부표가 없는 쪽빛 바다는 수평선이었다.
수정봉 전망대에서 군부대 초소 체험관으로 가보았다. 가파른 비탈을 내려서니 간첩선 침투를 경계하던 초소를 원형대로 보존해두었다. 지금은 철수하고 없는 분대 병력이 상주했던 시설로 취사장을 비롯해 탐조장치도 있었다. 내도와 외도는 더 가까웠다. 모항으로 귀환하는 어선이 물살을 가르며 다가왔다. 초소에서 숲길을 빠져나가니 자갈해안이 나왔다. 건너편은 예구마을이었다. 2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