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2023.06.22. -
나이가 들면 누구나 세상만사에 무뎌집니다.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고 느끼는 날이 많아지지요. 긴 시간을 살아내는 동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수없이 경험하게 되면서 점점 “모서리”가 둥글게 마모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작고 사소한 일에도 감동하고 가슴 아파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살아온 날보다 남은 날들이 훨씬 더 많았던 그 시절에는 모든 것들이 빛나 보였습니다.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을 좇으며 스스로 빛을 내던 그런 시절이었지요.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에 이르러 젊은 날의 노트를 펼쳐 보면 그 시절에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