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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원문보기 글쓴이: 맨유팀닥터
한 여인이 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왕은 끝내 외면했다
왕 의 며느리인 소현세자빈 강씨
그녀와 인조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세자빈은 시아버지에게 사약을 받아야 했던 것 일까?
인조 14년
명나라 를 따르는 조선을 응징하고자 청나라가 병자호란을 일으킨다
파죽지세의 청나라군은 순식간에 한성 턱 밑까지 들이닥친다
조정은 혼란에 빠졌다
인조는 우선 왕여성들과 왕자들을 강화도로 피난 시켰다
강 빈과 원손도 그 피난행렬에 있었다
전쟁 때마다 왕실의 피난처였던 강화도
당시 강화도로 가기 위해선 나룻터에서 배를 타야만 했다
그러나 강빈 일행은 강화도로 건너갈 수 없었다
왕실 피난을 책임진 검찰사 김경징이 자신들의 식솔을 챙기는데 모든 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배를 구하지 못한 강빈 일행은 강화도를 앞에 두고 이틀이나 발이 묶였다
때는 음력 12월
병자년엔 추위가 혹독했다
뒤에선 청나라군이 쫓아오고 있엇다
" 경징아! 네 어찌 이럴 수 있느냐! "
왕실 여성으로써는 무척 파격적인 언사였다
(여자의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가선 안된다던 그 시절,
강씨는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강빈의 일갈에 배가 마련되었고 일행은 비로소 강화도를 건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강빈 일행은 강화도에 도착했다
강화도는 천혜의 요새였다
아무리 막강한 군대라도 바다로 둘러쌓인 강화도는 쉽게 점령할 수 없었다
그러나 청나라 10만 대군은 철저히 준비했고
이에 맞서는 조선군은 싸울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산성의 방어를 강화해야 한다는 충고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사 김경징은 아무 대책도 없이 방 탕한 시간을 보냈다
(....ㄱ -)
스스로 화를 자초한 셈
결국 청나라 군은 바다를 건너 순식간에 강화 산성에 들이닥쳤다
이제 산성이 함락 되는 것은 시간문제 였다
강빈과 왕자들은 물론
돌도 안된 원손의 생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강빈은 결단을 내린다
" 나와 대군은 마땅히 이 곳에서 죽을 것이나
원손이 죽는 것은 차마 볼 수가 없다
너희들은 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피해 있으라
불행히 강을 건너지 못하거든 산골짜기에 숨어 있으라
죽든지 살든지 너희들이 잘 알아서 처리 하라 "
결혼 9년만에 얻은 귀한 아들
한 나라의 희망이 걸린 원손이었다
강빈은 그 불씨만은 남기고자 했다
마지막 책무를 다한 강빈은 자결을 결심한다
왕실 여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신하들의 강한 만류로 이 마저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병자호 란이 발발한지 52일만에
결국 조선은 청나라에 항복하고 만다
인조는 오랑캐로 멸시하던 청나라 황제에게 3번 절하고 9번 머리를 조아렸다
(삼전도의 굴욕)
인조 15년 2월 5일
강 빈과 소현 세자는 청나라 인질이 되어 만주로 향했다
4월 10일
60여 일의 여행 끝에
강빈 일행은 청나라의 수도 심양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많은 수행원과 세자까지 하릴없이 멈춰섰다
강빈이 결단을 내린다
스스로 가마에서 내려서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법도 때문에 여러 사람 고생 시킬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심양에서의 파격적인 생활이 시작됐다
당시 강빈의 나이 스물 일곱살
그 녀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
만주족 을 통합한 후금은
1636년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새 황제를 등극시킨다
그가 바로 누르하치의 후계자인 청태종 홍타이지다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팔기군을 앞세워 청나라는 점차 세력을 넓혀갔다
만주의 여진족들을 하나로 뭉친 청나라는 이제 명 나라를 넘보고 있었다
청에 패한 조선 백성들의 운명은 가혹했다
패전국의 세자빈은 나약한 조선의 처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소현세자의 심양생활을 기록한 심양일기는 당시 사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1637년 인조 15년 5월 7일
조선을 떠나온지 석달
비로소 강빈과 소현세자는 심양관에 자리를 잡았다
함께온 궁녀와 신하 등 조선인 일행은 모두 192명
당장 이 대식구가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하는 것 부터가 문제였다
게다가 명나라와ㅤㅇㅢㅇ 전쟁중인 청나라는
수시로 조선군 파병과 군수물자를 요구하며 소현세자를 압박했다
심양 생활 3년 째
난국을 타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청나라 왕족 중 한 사람이 은밀히 사람을 보내 은자 500냥과 편지를 전해왔다
면포 표범가죽 수달피 등등 그는 조선의 물건을 원하고 있었다
문제의 인물은 팔왕
청태조 누르하치의 12번째 아들이다
청의 최고의 왕족이 밀거래를 요구한 것이다
당시 군사력은 명나라를 위협할 정도로 막강한 청나라지만 생활 수준은 높지 않았다 부족한 물품들은 무역을 통해 해결 해왔다
유목민족인 청나라 사람들은 농사와 수공예에 서툴렀고
-
종이와 담배 등 일상용품에서부터 홍시와 배 등 과일에 이르기 까지
그 대상과 양이 점점 늘어났다
이런 무역을 통해 심양관은 급한 생계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다
모든 거래는 강빈이 직접 챙겼다
청의 요구를 조정에 전달하는 공식 문서인 장계도 반드시 강빈의 손을 거쳤다
강빈은 새로운 무대 중국에서
세자빈의 통념을 깨고 경제 활동에 앞장섰다
덕분에 심양관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조선의 질 좋은 물품과 청나라 지배층의 두둑한 재력을 연결하는
일종의 국제 무역시장이 만들어진 셈이다
재물도 쌓이기 시작했다
처음 심양관 식구들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장사는 강빈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인조는 이러한 심양관의 무역 활동을
매 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왕실의 세자빈이 오랑캐를 상대로
돈벌이에 나선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조의 찌질함)
하지만 소현세자는 심양관의 재력을 바탕으로
청나라의 실력자들과 교분을 쌓아나갔다
세자와 조선을 압박하던 이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 할 수 있었다
심양 생활 5년 째
청나라는 생각지 못한 제안을 한다
"황제께서 조선의 왕자가 이 곳에 온지 5년이 됐으니
더이상은 식량을 드릴 수 없고
내년 봄 부터는 직접 농사를 지어 먹어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스스로 농사를 지어 먹으라고 하는 것은
어린 아이의 젖을 빼앗아 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 먹으라는 것과 같은 것이니
어찌 울부짖지 않겠습니까 "
농 사는 곧 정착을 의미했다
관리들은 조선에 돌아가지 못할 것을 우려해 계속 반대했다
그 러자 청나라는 다른 조건을 제시한다
" 이곳 조선의 포로들을 직접 속환하여 농사를 짓게한 뒤
조선에 돌아갈 때 데려가면 되지 않소 "
새로운 제안에도 반대는 여전했다
그러나 강빈의 생각은 달랐다
노예시장의 조선인 포로들
강빈은 그 참사를 잊지 않았다
농사는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청나라가 준 땅은 사실상 황무지였다
그 땅을 일구어 논 밭을 만들고 곡식을 심었다
당시 심양관의 농장은 모두 6곳
그 중 하나인 사하보
강빈은 사하보를 포함해 천일갈이
즉 천일동안 농사를 지어야 할 넓이의 광활한 넓이의 농장을 경영했 다
거칠고 험한 유목민족의 땅에서
강빈은 조선의 우수한 기술을 살려 농사를 지었다
성과는 대단했다
양식을 마련하고자 시작한 농사로 수년 후에는
필 요량의 3배가 넘는 곡식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청나라 것 보다 품질이 좋았고
자 연히 왕족들에게 높은 값에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농장의 성공엔 강빈의 경영도 한 몫 했다
농사를 잘 지은 이들에게 상을 주고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는
일종의 성과급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심 양장계엔 상을 받은 이름이 있다
특이한 것은 그들의 출신 성분
그들은 해방된 조선인 노예였다
강 빈은 곡식을 팔아 번 돈으로 포로들을 사서 농장에서 일하게 한 것이다
절망을 벗어나 희망을 찾은 이들은 그만큼 열심히 일했다
나라와 가족으로 부터 버림 받은 조선인 포로들에게
강빈과 소현세자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벌어들인 돈으로 해방시킨 포로들이 어느덧 수백명에 달했다
그러나 인조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찌 질..찌질.....)
인조의 우려에는 이유가 있었다
병자호란에서 승리한 청 태종은 인조에게 굴욕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인조는 불안했다
세자는 민심까지 얻고 있었다
(꼴에 왕은 계속 해먹고 싶었던 듯)
증오의 화살은 이런 일을 가능케 한 강빈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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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 생활 7년째
아버지 상을 치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며느리에게
인조는 친정에 가는 것 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아래사진 오타 - ' 인품은 간장종지 보다 ' 이긔 )
" 8년 만에 천리길에서 돌아와 어버이를 만나지 않고
어찌 그냥 돌아갈 수가 있습니까 "
그러나 며느리를 향한 인조의 증오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세 자빈이 부친 빈소를 찾는 것은
왕실 법도에는 없는 예의라며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인조, 너는 반성하셈. 그러니 드라마 "일지매" 에서 악랄한 왕 표현을 위해 인조시대로 배경을 설정했지 ㅉㅉ)
결국 강빈은 허망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둘은 점점 멀어져 갔다
-
1644년
소현세자는 조선이 그토록 섬기던 명나라의 최후를 생생히 목격했다
세자를 따라 강빈과 심양관 식구들도 북경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이 곳에서 전혀 다른 세계에 눈을 뜬다
그들의 거처에서 멀지 않았던 천주교 남당
당시 북경에는 서양 선교사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담 샬 신부
그는 소현 세자와 깊은 만남을 나눴다
예수회 신부 아담샬과의 만남을 통해
강빈과 세자는 천주교를 알게 되었다
성 리학을 최고의 학문이자 유일한 진리로 알아온 이들에게
그것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리고 아담 샬과의 만남은 서양 과학과의 만남이기도 했다
명 나라와 청나라때의 국립천문대인 흠천감
아담샬은 이 흠천감의 최고 책임자였다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천문학자였던 그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는 그 혼란속에서도 자리를 유지할 만큼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의 뛰어난 서양 과학은 소현세자와 강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는 천 주교와 서양과학에 관한 많은 물건들을 선물했다
그리고 소현세자는 조선에 신부를 데려가려 했다
아담샬은 대신 천주교 신자인 명나라 환관과 궁녀를 소개했다
특히 천주교 신자인 궁녀의 조선행은 많은 추측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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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23년
강빈과 소현세자는 드디어 귀국길에 오른다
인 질 상황은 두사람에게 큰 시련이었지만
또 많은 것을 얻게 한 기회이기도 했다
이 제 강빈은 새로운 조선을 꿈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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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고비를 넘어 다시 돌아온 맏아들 내외
그러나 인조의 반응은 차가웠다
중국에서 가져온 서양 서적과
과학기기, 천주교 물품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세자부 부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그리고 2달 뒤
소현세자가 돌연 사망했다
누 가 봐도 의문스러운 죽음이었다
시 신의 상태가 이상했다
사관조차 독살 의문을 제기했다
소현 세자가 죽고 난 뒤 더욱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다른 이를 세자로 책봉한 것이다
세자가 죽으면 세자의 아들,
즉 원손에게 왕통을 잇게 하는 것이 법도 였다
그러나 인조는 원손이 아닌
동생인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한 것 이었다
급 작스런 남편의 죽음과 전격적인 세자 책봉
강빈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인조는 끝내 외면했다
그리고 강빈을 감금 시켰다
당시 그녀는 유복자를 임신한 상태였다
홀로 갇힌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결국 사산되었다
계속해서 강빈에게 칼날이 겨눠졌다
인조는 자신의 독살기도 사건의 배후에 강빈을 지목했다
(아오!!! 빡쳐!!!!!!!!!!!!!!!!!!!!!!!!!!!!!)
그녀의 무고함을 말하던 궁녀들은 고문속에 죽어갔다
인조에게 강빈은 이미 역적이었다
"강씨가 소시에는 불순한 일이 없었는데
심양을 다녀온 뒤로부터는 전과 많이 달라졌소
귀국할 때 황금과 비단을 많이 싣고 왔으니
이것을 뿌린다면 무슨 일을 못하겠소 "
" 강씨가 장계를 가져다가
마음대로 써넣기도 하고 삭제하기도 하였다 하옵니다
어찌 부인으로서 바깥 일을 이런데 까지 관여한단 말입니까"
결국 인조는 강빈의 지위를 박탈하고 궁궐에서 내쫓았다
17살에 궁에 들어와 세자빈이 된지 19년
이제 그녀는 대역죄인 이었다
명 분과 형식에서 벗어나 실리를 추구했던 그녀
강빈이 꿈꾸었던 새로운 조선도 그녀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다
그녀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역적이 되서 죽임을 당한 강빈은 남편인 소현세자의 곁에 묻히지 못하고
홀로 집안의 선산에 묻혀야 했다
그로부 터 73년 후
숙종은 강빈의 억울함을 인정해서 그녀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그 슬픔을 위로한다는 뜻의 민회빈이라는 시호를 내린다
혼란스 러운 시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비운의 여인 강빈
그러나 오늘날 역사는 강빈을 현실의 고난을 스스로 헤쳐나간
강인한 생명력의 여성 리더로 평가하고 있다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출처 :ALL IN THE DRAMA STORY 원문보기▶ 글쓴이 : 꿈은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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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을 보여주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첫댓글 진짜 이런 세자빈이계셨다니....
에효 그놈의 왕위가 뭐라고 찌질한인조
인조 개찌질한새끼 ㅡㅡ
인조는 진심...정말 무능한 왕이다 인조 대신 광해군이 왕이 됐으면 우리나라 역사는 바꼈을수도 있겠지..
아오 인조 진짜ㅡㅡ
와... 완전 파격적인 여성이였네...ㅎㄷㄷ
이런분이 국모가 되셨으면 어땠을까.....
시대를 잘못타고난분이시네
인조 빡쳐 ㅡㅡ
인조 찌지리 새퀴가...ㅡㅡ
소현세자빈강씨도 영화같은걸로 나오면 좋겟다
와 진짜...인조 자기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민심을 다스릴수 있었을까 참 의문이다
에휴.... 저런 사람을 조금만 더 인정해줫으면 우리나라가 더 좋은 나라가 될수 잇었을텐데... 왜 다들 자기 욕심채우기 바빠서 ....
인조 찐따같아ㅠㅠ
인조 ㅡㅡㅋㅋㅋㅋㅋㅋㅋㅋㅋ찌질
찌질인조ㅡㅡ
와 ㅋㅋㅋ인조진짜 머같네
이때만 잘됬어도 나라가..참 좋았을텐데 ㅎㅎㅎ^^ 찌질이하나가 나라를 망친가구나 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22 병신왕 덤앤더머 커플
인조찐따찌질이....
인조 찌질한새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강빈 멋있으셨어ㅜㅜ
ㅠㅠㅠㅠㅠㅠㅠㅠ 강빈진짜대단하신분이다 안타깝다 시대를 잘못만낫어 ㅠㅠ
인조 진짜 못났다ㅡㅡ 만약 세자랑 강빈이 살아있고 인조가 찌질하게만 안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강빈 진짜 멋있어!
아.. 인조가 존나 개객끼구나 ㅠㅠ
하여간 인조개새끼ㅡㅡ아오 잘한일이 하나도없네 쉬발 언니잘봐써...빡쳐
아 ㅠㅠㅠ 진짜 조선은,,,,,,,,,,,
아 정말 안타깝다..
강빈 대단하다.... 멋지다 ㅠㅠㅠㅠㅠ 저런 여자가 되어야지 ㅜㅜㅜㅜ
진짜 멋있고 맘이 너무 먹먹하다... 시대만 잘타고났다면 조선의 운명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오 인조 쪼다 개갞끼 병신!!!!!!!!!!!!!!!111111
[소현세자강빈이야기] 저찌지리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