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놓친 금메달"
[시민사회칼럼] 김두현(평화연대)..."이명박 정부는 기회의 창을 닫을 것인가?"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지 1주일이 넘었지만 보름동안 함께 웃고 울었던 그 감동의 여운은 아직도 우리 가슴 한 켠에 물결치고 있는 것 같다. 개막 다음날 5연속 한판승의 기염을 토하며 첫 금메달을 안겨 준 유도의 최민호 선수부터 폐막을 하루 앞두고 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야구대표팀의 마지막 금메달까지 우리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외치며 하나가 되었다.
더욱이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단은 13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려 이명박 정부 이후 치솟는 물가와 경제난에 지친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또한 마지막까지 투혼과 감동을 안겨준 이배영 선수와 우생순의 주역인 여자 핸드볼 선수들을 비롯한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한 대한민국 선수단 전부에게 금메달을 줘도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상 최고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이번 베이징 올림픽의 주인공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중국은 올림픽 출전 사상 최고 성적인 51개의 금메달을 수확하며 종합 1위에 올랐다. 또 큰 실수 없이 베이징 올림픽을 치러냄으로써 중화민족이 부활했음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였다. 지난 8월 24일 관영 신화(新華)통신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베이징올림픽이 성공을 넘어 "민족부흥의 새로운 출발점이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개최지가 중국의 베이징이니 중국이 이번 올림픽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가 주인공이 될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살리지 못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난 2007년 평양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10.4 선언 6항에 나오는 다음 문항에 실려 있다.
남과 북은 2008년 북경 올림픽경기대회에 남북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처음으로 이용하여 참가하기로 하였다.
상상해보자. 만일 우리가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 남쪽의 응원단을 태운 기차가 부산에서부터 대구를 거쳐 대전 서울을 지나 군사분계선을 건너가는 모습을. 또 그 응원단을 환영하는 북측의 주민들의 환호하는 모습을. 이어서 북측응원단을 함께 싣고 개성, 평양, 신의주를 지나 국경선을 넘어 베이징에 도착하는 모습을.
그리고 남과 북의 응원단을 태운 열차가 경의선을 타고 국경을 넘어가는 모습, 그리고 올림픽 개막식에서 단일기를 들고 공동입장하는 모습과 이를 열렬히 환영하는 남북공동응원단의 모습이 실시간 세계언론을 타고 중계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런 모습이 현실화되었다면 중국이 비록 이번 올림픽에서 1위를 했을지라도 이번 베이징 올림픽의 주인공은 증국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다시 말해 우리민족이 되었을 것이다. 한반도에 사는 약소민족인 우리가 외세로 인한 전쟁과 분단의 지난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와 통일, 그리고 공동번영의 새시대를 이제 열어갈 것임을 전 세계에 천명하는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는 우리가 따야할 최대의 금메달인 남북의 화해와 협력, 평화와 번영의 금메달은 놓치고 말았다.
"낡은 레코드 ‘공안정국’...지난 시절은 다시 올 수 없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후 유니버시아드 대회, 아시안 게임등 모든 국제대회에서 볼 수 있었던 남북공동입장이 끝내 무산되었다. 또한 후진타오 주석이 주최하는 오찬에서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같은 자리에 앉았지만 대화 한마디 나누지 못하였다. 이는 이명박 정권 출범이후 제자리 걸음 아니 뒷걸음질 치고 있는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외교무대에서는 지난 7월말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는 10년만에 남북외교역량이 냉전시대와 같이 대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금강산 피격사건으로 인해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었고 개성공단과 개성관광 역시 지속된다는 장담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민간교류도 정부의 잇단 불허로 인해 위축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김영삼 정부 이후 다시 공안의 광기를 보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가보안법의 무리한 적용과 여간첩사건 등 공안정국 조성으로 정권의 위기를 넘기려 낡은 레코드를 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법당국의 영장기각에서도 확인될 수 있듯이 이명박 정부가 아무리 남북관계가 진전되어온 지난 10년을 부정하고 ‘아 옛날이여’를 목 놓아 부른다 해도 지난 시절은 다시 올 수 없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은 적이 아닌 동포로, 대결과 갈등이 아닌 화해와 협력으로 너 죽고 나 살기가 아닌 함께 승리하는 공영의 관계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1998년 금강산으로 열린 뱃길을 시작으로 해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우리는 하늘길을 열였고 2003년 다시 금강산 육로관광을 통해 땅길을 열여왔던 것이다.
그렇게 열린 뱃길, 하늘길, 땅길로 사람들과 물자가 오고 갔으며 북녘의 식량난을 걱정하는 남녘동포들의 마음도 오고 갔다. 남과 북이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개성공단이 2003년 6월 착공되고 2004년 12월 15일 첫 제품이 생산된 이래 생산액이 3억달러를 돌파하고 북측근로자 수 역시 3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렇게 남과 북이 함께 만들어 온 지난 10년의 역사가 어찌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인가?
"남북은 사업상 ‘갑.을’ 관계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6개월이 지난 지금 남북관계가 뒷걸음질 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현 정부가 6.15공동선언과 10.4평화번영선언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시기에 이루어진 남북의 협력을 ‘퍼주기’로 규정하고 북에게만 도움이 되고 우리는 손해만 봤다고 보고 있다. 지난 10년간의 남북관계를 북이 갑이고 우리가 을이된 불평등 계약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우리가 갑이 되어야 남북관계가 정상적으로 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 정상화란 마치 사업상 계약관계를 맺는 당사자처럼 남과 북의 관계를 보고 있으며 게다가 우리가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입장에 다름 아닌 것이다. 개인대 개인의 계약관계에서도 가능한 상호 존중이 되고 서로가 이득이 된다고 판단을 해야 계약이 가능한데 하물며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아닌 민족내부의 특수관계인 남북관계를 갑과 을의 계약 관계로 보아서야 상생하는 관계를 맺기 힘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인 것이다. 이러니 이명박 대통령이나 통일부 장관이 다소 유화적인 발언을 한다고 남북관계가 정상화될리 만무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비핵 개방 3000’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여론에 따라 공식적인 대북정책의 명칭을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으로 명명하였다. ‘비핵 개방 3000’은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의 하위 실천지침의 하나로 격하되었고 ‘평화공동체’,‘경제공동체’,‘행복공동체’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부의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 해설책자를 살펴보면 이 새로운 대북정책에도 ‘6.15공동선언’과 ‘10.4평화번영선언’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이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면 부시행정부에 의해 이미 실패로 드러나 철지난 ‘선핵폐기론’과 대북우월의식에 입각한 ‘비핵개방 3000’에 대한 공식적인 철회와 지난 10년간 남과 북의 최고 정책결정권자에 의해 합의된 ‘6.15공동선언’과 ‘10.4평화번영선언’에 대한 존중과 이행의 의사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남북간의 긴장이 완화되면서 이루어진 숱한 외자의 유치, 개성공단이 중소기업의 새로운 활로로 각광받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난 10년간 남북관계의 발전으로 인해 남도 분명 이득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10년간을 손해본 장사라는 인식을 고집한다면 앞으로의 남북관계 역시 개선될 여지는 크게 없다고 보여진다.
"콜 수상이 따먹은 통일의 열매...씨앗 뿌려진 한반도 기회의 창"
독일통일의 기반은 사민당 당수인 빌리브란트가 닦았다. 동방정책으로 동서독간의 화해와 협력의 길을 턴 것이다. 하지만 그 열매는 기민당의 헬무드 콜 수상이 따먹었다. 남북통일의 씨앗 역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행정부가 뿌렸다. 이명박 정부가 하기에 따라 그 열매를 딸 수도 있다. 마침 한반도 주변정세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북일수교의 걸림돌이었던 납치문제도 북이 재조사를 하고 있고 북미관계 정상화의 길도 열리고 있다.
물론 최근 북핵 검증문제로 다소 주춤거리고 있지만 이럴 때 바로 필요한 것이 남의 역할이다.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안정화되면 북은 그야말로 대륙으로 가는 기회의 창이 될 것이다. ‘퍼주기’가 아닌 ‘퍼오기’의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공약인 ‘747’이 실현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상상해보자. 남북관계가 뒷걸음치고 있는 상태에서 북핵검증 문제로 북미관계도 주춤한 지금, 미국에 강경보수파인 매케인이 당선된다면 한반도에 무슨일이 벌어질까?
남북화해와 평화를 지키고자 했던 의지가 강했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도 부시정권의 대북적대정책으로 인해 한반도에 전쟁의 위기가 찾아왔던 것을 돌이켜보면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서 한반도의 긴장의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747’이 물건너가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파탄의 위기가 오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의 ‘6.15공동선언’과 ‘10.4평화번영’선언에 대한 확고한 존중의사 표명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회의 창’이 닫히고 ‘위기의 문’이 열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 칼럼] 김두현(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