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문학 사진
한강 작가가 11살이었던 1980년에 서울로 이사간 후에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비록 한강 소녀가 서울로 이사간 후이기는 하지만 광주시 북구 중흥동 동네 오빠들은 광주사태 때 중흥동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그녀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 '소년이 온다'는 그녀의 어릴적 동네였던 중흥동 동네 오빠의 시민군 활동애 대한 픽션 소설입니다.
한강 작가 동네 오빠들의 5·18 무용담
한강 소녀 시절의 고향 중흥동과 그 옆동네에서는 광주사태가 끝난지 20여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총과 실탄이 발견되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던 2005년 8월 27일에는 광주 북구 누문동 북성치안센터 옆 자전거보관소에서 발견된 카빈 소총, 실탄 290발, 다이너마이트 11발 등의 무기류가 발견되었습니다.
카빈 소총과 실탄 290발 등 한강 작가 옆동네에서 발견된 무기류들은 한강 소녀의 동네 오빠들이 중흥동에서 사용하다가 감춘 무기들로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었던 2019년 6월 4일에는 바로 한강 작가 동네에서 칼빈 소총이 발견되었습니다.
한강 소녀 동네와 그 옆동네를 왔다갔다 하던 복면난동자는 정체가 좀 수상해 보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숨기려고 복면을 하였을까요? 그리고 총을 파지하고 걷는 모습이 평범한 민간인 모습은 아닙니다.
한강 소녀가 살던 중흥동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총기류 및 그 일대에서 활보하던 복면난동자 사진은 5월 21일 점심시간 무렵 광주시 북구 중흥2동 평화시장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서있던 임산부 최미애씨가 누구 총에 맞아 사망하였는지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입니다.
한강 소녀의 동네 오빠들 및 한강 작가 소설 '소년이 온다' 주인공 동호의 동네 친구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아래 사진이 그 힌트입니다. 그런데 광주는 민간인들이 저렇게 동네에서 총 들고 다녀도 되는 무법천지였는가요?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는 광주상고 1학년 학생이었고, 아래 사진은 같은 학교 무장소년들 사진입니다. 5·18유공자 정희문이 자기도 이 사진 속에 있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 머리는 빡빡머리였는데 장발족에 턱수염이 자란 고등학생이 보이네요.
아래 영상 22초에서부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실제인물 문재학군의 모교 광주상고 무장학생들 모습이 보입니다.
양기남과 양동남 두 개의 이름을 사용하는 양동남은 광주 남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중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광성샷수공업사 샷수공으로 종사하다가 5월 27일 새벽 동호와 함께 도청구간에서 총 들고 정치를 하였습니다. 5·18유공자 양동남도 자기가 이 사진 속에 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동호 또래의 16세 소년이었던 위종회 군과 최영철 군은 비록 동호처럼 중흥동 토박이는 아니었지만 광주사태 기간 동안에는 한강 작가의 동네에서 총 들고 정치하던 동네 오빠들이었습니다. 위종회 군과 최영철 군이 5·18유공자가 된 주요 공적은 한강 작가 동네 교회를 향하여 총기난사를 한 것이었구요.
위종회와 최영철 등 동호 또래의 무장소년들은 한강 작가 동네 교회를 향해 총기난사한 것을 주요 공적으로 5·18유공자들이 되었습니다. 한강 작가 동네 오빠들이 교회에 대고 총기난사한 무용담은 5∙18 유공자 무용담 279쪽에서부터 자세히 보실 수 있어요.
한강 작가의 가까운 동네 시민군 오빠 최철(22세)은 평소 35세의 계모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가 5월 26일 새벽에 자기 아버지와 계모와 7세의 이복동생을 시민군 총으로 사살하였습니다. 민간인들이 총을 소지하면 이런 사고는 빈번히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민간인들이 총을 소지하자 경찰은 모두 도망갔기에 아무도 이 가족을 지켜줄 수 없었습니다. 시민군이 지배하는 광주해방구에서는 국가가 시민군의 폭력으로부터 부모와 어린 남동생을 지켜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홀로 살아남은 11세의 최은경 양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컸을까요? 한강 작가께서는 광주 시민군 오빠들의 폭력 희생자들을 위해서는 책을 쓰실 의향이 없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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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 5∙18전자도서관
한강 5∙18 소설 實話 도서
5∙18 유공자 무용담 문재인의 5·18 눈물로 뒤집힌 광주사태 문재인과 전두환의 5.18 역사전쟁
* 두번째
오10팔 당시 칼빈 탄환에 맞아 죽은자는 엄청나게 많다
공수부대원 중엔 그때 단 한사람도 칼빈은 소지하지 않았다
전원 M16 자동 소총이었다
그기에 대해서는 오10팔 단체에서와 더불어공산당 의원들은 지금껏
말 한마디 없다 숨길건 다 뭍어 놓은게 '진실'인가 ?
첫댓글
하여간에 폭력을 미화하고 책임회피하기 급급한 2등 국민아!
소년이 보여준 정의와 사회정의를 위한 발걸음에 똥물 뿌리지 말거라.
그 날에 마귀 애비 따라 마귀똥자루 짊어지고 다니며 더러운 똥칠하는 자들에게 있을 일을 생각하고.....
킁..
미친놈들 교회마저 공격하다니 ㅉㅉ
내가 중흥동에 살았어요.
한강이 다녔던 효동국민학교 우리집에서 300미터 떨어진 곳이지요. 우리집은 중흥 파출소 앞이었죠. 전남대후문 쪽인데 시위대가 반드시 거치는 곳이었어요. 파출소는 화염병에 타깃이 됐고 그곳은 항상 최루탄과 화염병으로 뒤죽박죽이었죠.
효동은 너무 학생수가 많아 17반이 오전오후반으로 나눠서 수업해서 난 그 옆 국민학교 다녔지요.
님이 알고 있는 518은 엉터리입니다. 제 생각엔 당시 투입됐던 진압 부대원들이 죄의식에 거짓 정보를 뿌리고 있는 거 같네요. 자기들의 죄를 덮기 위해서죠.
518까지는 학생운동이 순수했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참여했던 시민들은 의식화되지 않았었죠. 전두환 군부의 무자비한 폭력적 진압에 항거한 민주운동이었어요
그러면 한가지 물어봅시다..81년 총선에서 광주, 전남 지역에서 전원 민정당이 당선된 이유는 뭐고 탈북자들이 방송에 출연해서 오시팔 때 부칸군 특수부대가 침투했었다는 사실을 증언했는데도 오시팔 단체들이 아무런 반박을 못했던 이유는 도대체가 뭐죠 ? 지금은 명칭 바뀌었지만 부칸에 오시팔 때 침투했던 부칸군 묘역까지 있습니다..이건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실텐가 ? ㅋㅋ
좆대즁이가 대텅할 때 좆대즁이가 전두환 각하에게 오시팔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인정해달라고 하자 전두환 각하께서는 " 오시팔은 내란이었다 " 라는 말을 하자 좆대즁이가 아무런 반박도 못한 이유는 ? ㅋㅋ
전두환 각하께서 회고록을 내셨을 때 오시팔 때 부칸군이 침투했었다는 내용이 책에 있자 오시팔 단체들은 아무런 반박도 못하고 출판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었죠 ?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 ㅋㅋ
@푸른메아리 전 5.18이 경고라고 보여집니다
@푸른메아리 혼자 노슈
확증편향 증세가 심각하구먼
@카리타스 그거는 전혀 반박을 못하는 댁의 이야기고...
@카리타스 어떻게 시민군이 일순간에 동시에 광주, 전남 지역의 무기고를 털 수 있는지 궁금하네 ㅋㅋ 이제는 호남 지역 말고 다른 지역에서는 오시팔이 폭동이라는거 대부분의 사람들이 압니다..광주 사람들도 오시팔 때 부칸군 내려왔다는거 다 안다던데요? ㅋㅋ
@푸른메아리
of course ~
@푸른메아리 그냥 죽을 때까지 악의 편에 서서 마귀의 종노릇이나 하세요
전두환이 간곳에 님도 있을거유
OK?
@카리타스 악의 편은 댁이 악의 편이지..어떻게 폭동과 내란을 그렇게 옹호할 수 있을까 ? Can you understand ? ㅋㅋ
@카리타스 그리고 당시에 시민군들이 무장한 사진을 한 번 좀 보면 시민군들이 저런 무장은 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을텐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