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7:1-5 비판하지 말라 하신 뜻.
무안 당해본 적이 있습니까? 자존심이 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모두가 그런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무안하게 한 적은 없으십니까?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적은 없으십니까? 생각해 보면 있었을 수가 있고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보이지 않는 배후에 어두움의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마귀의 역사가 사람들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것은 고소하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계12장10절]은 마귀의 정체를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참소'라는 말은 '법정에서 죄인을 고발하고 정죄하는 검사'를 뜻합니다. 구약 슥3장에도 보면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사탄이 옆에 서서 "하나님, 이 사람을 보십시오! 거룩해야 할 대제사장의 옷이 더럽혀져 있습니다!"라며 그를 대적하고 고발합니다. 이처럼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자 영적인 고발자입니다. 그의 영향이 사람들을 비판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안을 당하고 다른 사람의 인격에 피해를 입히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 환경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회와 언론, SNS는 남의 허물을 찾아내 정죄하고 비판하는 일을 스스럼없이 하게 하고 그런 일에 익숙해지게 만듭니다. 인터넷 댓글이나 대화 속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남의 잘못을 판정합니다. 결국 이런 영의 배후와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삶의 희망을 잃고 심지어 삶의 끈을 놓아버리기도 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도 그런 고소를 당하는 것입니다. 물론 친구나 부모 형제 아내나 남편은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생명 기능을 마비 시킵니다. 그것이 인격 살인입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사랑한다며 폭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고 세우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을 거꾸로 합니다. 자녀들이 잘하면 그냥 지나가고 잘못하면 엄청난 지적합니다. 어떤 분은 2등 했어도 칭찬받지 못하고 꾸지람을 들었다고 말씀하기도 하셨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칭찬에 인색합니다.
비판은 적대감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변명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런 것을 아시기에 오늘 본문에 비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분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법정에서 죄인을 고발하듯 하는 태도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절의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재판관처럼 앉아 남을 자기 기준으로 정죄하는 습관을 중단하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심판 주의 위치에 서서 타인을 정죄하는 오만한 태도를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에 잘 믿는다고 자부했던 바리새인들이 [마23:2]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사람을 정죄했기 때문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깁니다. 이 말은 자존감이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짓밟아서는 안됩니다.
물론 훈육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굉장히 섬세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미 지난 일들을 꾸짖지 않는 것, 칭찬을 먼저하고, 장점을 발견하고, 사랑의 마음의 온도를 높인 후, 격려하며 훈육해야 합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칭찬과 감사의 말로 시작하고 문제는 간접적으로 동의하는 선에서 양념 곁들이듯 하고 상대를 훈계하기 전에 자신의 실수부터 이야기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마귀의 참소는 우리를 자책과 절망, 하나님과의 분리로 끌고 갑니다. 마귀의 거짓된 정죄의 음성에 귀를 닫고 주님을 바라봅시다.
보좌 앞에서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대언자가 되셔서 당신의 십자가 상처를 하나님 앞에 보여주시며 "아버지,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 사람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이미 피를 흘렸고 완전히 값을 치렀습니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슥3:4]에 보면 더러운 옷을 입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보며 정죄하시는 분이 아니라, 독생자 예수의 피로 우리를 덮으시고 [사41:10] 말씀처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하시고 [이사야43장1절] 말씀처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시며 일으켜 세우시는 격려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하나님도 [롬8:26]절에 보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삼위 하나님이 우리를 날개아래 품으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 33절과 34절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 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으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라고 선포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평가만이 진리입니다. 세상과 마귀의 평가에 속지 마십시오.
그리고 본문 12절에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 지자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따뜻한 격려로 마음의 평안을 회복하시고, 나아가 마귀의 참소로 낙심해 있는 이웃과 형제들에게 하나님의 격려와 사랑을 전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마귀의 참소는 영혼을 시들게 하지만, 하나님의 격려와 사랑은 죽은 영혼을 살려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