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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재복지회관과 마방집 중간 지점 중부고속도로 옆으로 난 나무계단을 오르면
쥐봉, 그리고 객산으로 이어지고, 사미고개를 거치면 매봉에 이른다.
객산과 매봉 중간에 위치한 사미고개(=새미재, 삼외고개)는 이 능선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광주 우(牛)시장에서 고골로 이동할 때 많이 활용하였다.
다시 매봉, 전망바위, 바람재를 거쳐 벌봉에 이르는 능선길은 길다.
흙길로 이어지는 편안함과 호젓함이 그만인데, 때로는 지루할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특징있는 바위들에
거북바위, 두꺼비 바위, 새바위, 개구리 바위, 갈라진 이빨바위, 전망바위 등 이름을 붙여 놓았다.
조선시대에는 각 지역에서 징수한 공물을 대부분 바다, 강을 활용하여 한양으로 운반하였다.
황해도 조읍포창과 금곡포창, 충청도 공진창과 덕성창,
전라도 영산강창과 법성포창, 강원도 흥원창과 소양강창이 그 곳이며,
경상도 공물은 문경 새재 넘어 충주 가흥창에서 배를 띄워 경창(京倉, 한양)에 다다랐다.
(자연 환경이 척박한 평안도와 함경도는 생산 물자도 많지 않기에
백성들에게 징수하되 한양으로 운반하지 않고 평양, 함흥 등에서 자체적으로 활용하였는데
이를 잉류지역[仍留地域]이라고 한다).
이 부근 지명이 상사창동(上司倉洞), 하사창동(下司倉洞)이다.
조선시대 향촌 자체의 민간 빈민 구호기관의 성격을 지닌 사창(社倉)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군량미, 혹은 관청의 저장미를 보관하는 창고인 사창(司倉)이 있었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강 소양강창, 남한강 가흥창에서 배에 실은 곡물 일부는
창우포, 둔지포(검단산 입구 창우동과 미사강변지구 주변)에 내리고 다시 마차에 실어 이곳에 보관하였다.
남한산성 유지를 포함한 군량미 비축이 주목적이었으리라.
언제부터인가 이곳에 가득 찬 물류창고들을 보면서 우연만은 아니겠다고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 (Ⅴ) 샘재복지회관 근처 – 쥐봉 – 객산(292m) – 매봉 – 전망바위 – 바람재 – 벌봉 (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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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체력만 허락된다면 샘재복지회관 근처에서 시작하여 객산 능선을 따라 벌봉에 이르고,
다시 남한산성 북문과 연주봉 옹성을 거쳐, 금암산과 광암교을 건너 이성산성에서 마무리 짓는 게 좋기는 하다.
17km에 이르는 이곳을 걸으면 선사시대에서 미래 신도시까지 아우르는 축소판 역사 답사길이기도 있거든.
한없이 능선길을 걷다 보면 저 아래 펼쳐지는 평야지대가 나도 모르게 더없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다.
한강을 향해 U자 말발굽 형태를 이룬 걸 확인할 수 있는데,
이곳이 행정구역상으로는 광암동, 춘궁동, 상사창동, 하사창동, 교산동, 항동 등이다.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 많았던 광암동(廣巖洞)은 넓다란 바위돌의 한자 표기이다.
춘궁(春宮)은 세자궁, 태자궁이라는 뜻도 있고, 예전부터 ‘궁안(궁터)’ 또는 ‘궁말’로 불리고 있다.
왕궁의 곡식 등을 저장하던 사창(司倉)을 지명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왕궁 주위로 관청이 즐비한 골목을 뜻하는 한자 ‘항(巷)’이나, 삼국시대 군직인 '항(項)' 을 쓰기도 하는
‘항동’ 역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교산동(交山洞)이란 이 지역 중심에 위치한 광주 향교와 객산에서 한자씩 따와 붙인 행정 동 명칭이다.
이 공간에는 광암동 고인돌 군락 흔적, 광암동 석식고분군, 삼국시대에 축조된 이성산성이 있다.
고골저수지 옆 고즈넉한 지금은 소실된 동사(東寺)라는 절터에 있는 5층 석탑과 3층 석탑,
객산 자락 선법사 마애여래좌상 등 세 점은 모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물론 하사창동에서 출토된 높이 2.88m에 이르는 철조 석가여래좌상은
국립중앙박물관 3층 불교 전시실 중앙에 소중하게 모셔져 있다.
‘궁안’자리에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광주향교를 복원해 놓았으며,
길다란 능선 한 자락에는 남한산성이 있다.
오귀굿을 주관하는 나랏장군당에서는 지금도 날마다 굿판을 벌이고 있더라.
그러하기에 우리네 역사의 축소판이고, 촌락을 형성하는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는 뜻이려니.
이곳이 바로 머지않아 하남교산지구 신도시가 조성될 것이고,
그러면 나는 여기로 이주하여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Ⅵ)코스 17km = (Ⅴ) 샘재복지회관 근처 (30-3 버스 마방집 정류장) - 쥐봉 – 객산 – 매봉 – 전망바위 – 바람재 – 벌봉 - (Ⅱ-2) 제3암문 – 동장대 터 – 북문 - (Ⅱ-1) 연주봉 옹성 – 금암산 – 광암교 – 이성산성 (30-5 버스 이성산성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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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버스 100번 종점인 법화골 입구에는 제법 넓은 주차장을 조성해 놓았다.
이곳에서 시작하여 북문에 이르는 길은 가장 짧고 평탄한 코스이다.
북문에서 동장대 터 방향으로 걷다 보면 굽이치는 산성과 소나무 군락이 어울린 한 폭의 풍경화가 펼쳐진다.
동장대에 오르면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와 적당히 허물어진 성곽이
시리도록 맑은 하늘의 조화를 이루어 늘상 매력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벌봉(蜂峯)은 암문 밖에서 바라보면 봉우리가 벌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안내문에는
병자호란 때 청(淸)나라 태종이 정기가 서려있는 벌봉을 깨뜨린 후 남한산성을 정복했다고
에둘러 설명하고 있다.
벌봉(512. 7m)은 수어장대(497m)보다 높기에 서쪽 내부와 동쪽 성벽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청(淸)나라가 전략적 요충지인 벌봉을 점령함으로써 성 내부의 동태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으며,
화포로 성안까지 포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오를 때마다 당시 조선 조정의 무능함, 실력은 하나도 갖추지 못한 채
오랑캐에게 항복할 수 없다는 헛된 대의명분만 앞세우면서,
무수히 죽어가는 백성들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무기력하고 비겁한 사대부들의 행태를 다시 보는 듯 하여
비참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고골계곡으로 내려와 법화골 주차장 부근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곳 올 때마다 늘 찾는 <좋은집> 9,000원짜리 약식 한정식은
반찬이 20가지나 되기도 하지만 모두가 깔끔하고 맛있다.
집사람은 반찬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 얼마나 양념에 정성을 들였나 연신 그 손맛에 감탄하더이다.
사람만 배부르면 되겠는가?
향교 근처 개나리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가득’ 넣고, 오랜만에 세차도 하였다.
짧지 않은 산행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차 외관만큼이나 깔끔하여 기분이 날아 갈 듯했다.
동행한 집사람은 어느새 곯아 떨어져 있다.
운전 중 옆지기가 잠들면 책임감이 발동하여 나는 오히려 집중하게 된다.
나른한 오후 클래식 전문 방송 2시간 동안 전곡 집중감상 시간대라,
귀에 익숙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Ⅶ) 법화골 (100번 종점 / 주차 무료) – 북문 – 포대 터 - 동장대 터 – 제3암문 – 벌봉 – 고골계곡 – 법화골 (7km)
(2020. 4)
첫댓글 지금은 많은 분들이 산을 찾아 이름도 둘레길로 바껴 길도 좋게 변했는데 그냥
산이 좋아서 무작정 다닐 적에 그곳은 사람이 적게 다녀 다소 무섭기도 했지요.
전 아카시아꽃이 필때 그곳을 자주가는데 요즈음은 깜박 넘길 때가 있답니다.
조용하고 편안한 길에서 잘 알지도 못한 옛이야기하면서 걷다보면 조그마한 벌봉에
도착하지요. 벌봉 주변은 옛스러워서 좋답니다.
올해는 아카시아 필때 그곳에 가자고 전번 번개산행때 얘기했지요.
좋은 글 덕분에 추억을 더듬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_^*
이즈음은 버스를 이용하다 보니, 전철 탈 일이 별로 없습니다.
헌데, 며칠 전 잠실 지하상가로 오는데,
9시 훨씬 이전인데도 상당수가 상점 문을 닫았더군요.
세상에나! 예전 같으면 한참 붐빌 시간인데 ....
사람은 늘 자기 중심으로 판단한다고,
저는 은퇴하신 분들 위해 쓴 글이라는 게
아! 이렇게 실례가 될 줄 미처 몰랐습니다.
C형님, L형, G형, 용서해 주세요. 꾸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