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버님은 2번을 찍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나는 무조건 1번이라고 각을 세웠다. 연세 높은 촌로들 때문에 나라가 이 지경이 됐다고 한 마디 했더니 입을 다무신다. 눈치가 보여 아버님 찍고 싶은 분 찍으시면 된다고 투표장으로 모셨다. 저녁 내내 개표 결과를 지켜보며 당선이 예정됐던 대통령 후보가 계속 1위를 달리는 것을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누가 됐던 결과는 나올 것이다.
대통령 당선인이 누가 됐던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 선거일 날 우리 지역은 약비가 내렸다. 고사리 발아율이 저조해서 은근히 걱정했는데 해갈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사리 농사가 생업이니 수확량이 많았으면 좋겠고, 잘 팔렸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본심이다. 마이너스 통장을 채울 길이 고사리 판매에 있으니 거기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 해도 소문난 음식점은 연휴 내내 손님으로 북새통을 이루었다는 소식이다.
등 너머 한우촌도 읍내 한우촌도 자리가 없어 손님을 못 받을 지경이고, 저녁도 되기전에 고기가 떨어져 손님을 돌려보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무리 경제가 힘들다해도 어버이날은 자식들의 호주머니가 열리는 날이다. 늙은 부모 모시고 가족과 함께 한우 고기라도 대접해야 효자노릇 한 것 같으니 말이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 형님네 가족이 와서 마당에서 한우 등심 숯불구이를 했다. 진짜 질리게 먹었다. 아주버님의 사업이 잘 된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형님이 옷 한 벌 사 입으라며 촌지를 주고 갔다.
문제는 두 노인이다. 큰 아들 가족이 다녀가자 또 몸살을 앓는다. 어머님이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투표하고 정형외과 모시고 갔다 왔다. 노인이 삼시세끼 챙겨먹는 것도 힘에 부친다는 것을 알지만 요즘 세상에 며느리가 해 주는 밥 먹는 노인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세상 탓이라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그나마 우리가 옆에 사니 국이며 밑반찬 해 대는 것만도 고맙다 생각할 수는 없는지. 만들어 놓은 반찬도 챙겨먹기 싫다는 어머님이지만 아직 정정하신 아버님의 불효령이 기다리니 울며 겨자 먹기 식이다. 어쩌면 그것이 어머님의 건강을 챙겨주는 길은 아닐까. 대충 먹을 것도 아버님 때문에 제대로 된 밥상을 챙기니 두 분 건강이 유지되는 것일 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는지 궁금해 컴퓨터부터 열었다. 예상대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앞으로 5년, 넘어야 할 고개가 많지만 무난히 지혜롭게 잘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다. 덕분에 국민이 안정을 찾고 생활에 활력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나는 날이다. 참 서민적이고 소탈했던 그 분, 문재인 대통령도 잘 해 낼 수 있으리라. 후덕하고 부드러운 인상이니 이 나라를 복지국가로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으리라. 더불어 민주당이 여당이 되었다. 정치판의 철새들은 어디에 내려 앉을까. 이해찬 국회의원의 말이 떠올라 빙긋 웃는다.
약비도 내렸고 황사와 꽃가루도 한풀 꺾였다. 산을 둘렀던 안개가 슬그머니 사라져간다. 햇볕 짱 나는 것도 좋은 징조 아닐까. 새로 탄생한 대통령의 앞길을 환하게 비춰주는 햇살이길 기원해 본다. 서민이나 농민의 삶이 달라지리라 믿지 않지만 경제가 안정되어 농산물 값이라도 제 값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인 스님이 전화를 하셨다. 우리 집 고사리를 해마다 사 먹지만 어쩜 고사리가 그렇게 한결 같고 맛있느냐고 하면서 고맙다고 하신다. 그래서 더 기분 좋은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