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의 한탄강을 걷다 & 고석정의 저녁
1. 양동의 단기 거주를 마치고 새로운 답사 여행을 시작한다. 이번 주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진행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철원의 고석정 앞에 숙소(파레스 모델)을 잡고 승리교에서 출발하는 철원 한여울길 2코스 ‘한탄강 생태탐방로’를 걸었다. 승리교에서 시작한 길은 곧바로 한탄강을 끼고 있는 숲 속으로 이동한다. 날씨는 덥고 바람도 적어, 숲 속에서의 답사도 칙칙하고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뜨거운 열기가 숲 속으로 들어와 신선한 기운을 제거해버린 것이다. 원래 도착점까지 거리는 약 5km 정도이지만 산길이며 더위때문인지 몰라도 이동시간이 상당히 지체되었다. 한 낮의 열기는 모든 것을 정지시킨다. 숲 또한 여전히 덥고 더구나 곳곳에 거미줄이 길마다 설치되어 짜증을 배가 시켰다. 몇 차례 뱀을 만나고 풀어놓은 개도 만나고 끊임없이 거미줄을 제거하면서 탐험하듯이 걸었다. 분명 기존의 정돈된 코스임에도 사람들이 발길이 적어서인지 야생상태로 숲은 다시 돌아가려하고 있었다. 코스 막바지에 다리가 붕괴되어 길도 끊겨있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는 인상이다. 전국의 둘레길은 점점 많아지지만, 때론 이처럼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무너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길은 짧지만 마치 20km 이상 행군처럼 힘이 들었다.
2. 출발점으로 돌아오자 끊임없이 물을 들이켰다.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이때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었지만 며칠 전의 과음으로 술은 포기했다. 항상 한때의 과잉이 필요할 때의 어떤 기쁨을 빼앗는 것이다. 절제와 적절함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숙소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지친 몸으로 대충 저녁을 먹은 후에, 고석정을 천천히 관찰했다. 그러고 보니 항상 이 곳 또한 그냥 스쳐지나가며 대략적으로 바라보았던 것같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람들이 없는 고석정의 고석을 관찰한다. 상당히 특이한 모양임을 알 수 있다. 비록 높지는 않지만 신비스런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돌 중간에 깊은 동굴도 숨어있다고 한다. 50만 년 전 태고의 지질학적 변동이 만들어낸 장소, 무엇이든 ‘여유’와 ‘시간’을 갖추었을 때 바라보는 대상의 의미는 새롭게 다가온다. 고석정 바위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다시 확인한다.
3. 몽롱하고 피곤한 몸을 고석정 앞에 있는 공원 벤치에 놓았다. 잠도 오고 피로가 몸 전체로 번져갔다. 아마도 며칠 전 마신 술과 오늘 걸은 답사의 피로가 겹치고 혼합되어 현재의 몸을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 가야할 곳이 없고 단지 휴식할 자유만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서서히 저가는 태양의 잔해를 느끼며 아무런 생각도 없이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육체의 소진은 때론 이런 정신적 자유를 준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현재를 느끼게 하는 이런 직관적 상태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걸은 후에 흘린 땀이 가져온 특별한 선물인 것이다. 그렇게 1시간 넘게 앉아 있었다. 생각이 정지된 시간 사이로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어두워지자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나는 들어갈 시간이다.
첫댓글 -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현재를 느끼게 하는 이런 직관적 상태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걸은 후에 흘린 땀이 가져온 특별한 선물" : [無念無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