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은해사 무박2일 사찰체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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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잊고 나를 만나는 하룻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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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어릴 때 아득한 망상에 휩싸여 빨려 들어가던 기억처럼 은해사 ‘무박2일 산사체험’ 여행에 동참하기 위해 대구에서 하양으로 향하는 직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양버스 정류소에서 311번 좌석버스에 몸을 실으니 옛날 우시장을 지나 덜컹거리는 버스는 시골정취를 느끼게 한다. “어디 내리노, 세워 주까” 퉁명스러워 보이는 말투지만 정이 묻어 있는 운전기사는 정류소가 아닌 장소에 학생들을 필요하면 기꺼이 버스를 세운다.
와촌을 지나 청통면으로 접어든다. 불심이 깊은 지역이라 벌써부터 ‘부처님오신날’에 대비한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우리도 부처님같이’ 등 여기저기 사찰에서 내건 현수막이 차창 뒤로 멀어진다. 은해사 주차장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 버스에 내렸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붐비지 않았다.
어둠이 잔잔히 내리는 솔숲길을 지나니 물소리가 요란하다. 겨우내 움츠렸던 계곡물이 숨소리를 크게 하며 시원스레 흐른다. 보화루를 오르면 나타나는 은해사 전경. 정면에 대웅전이 서 있고 좌측에 승가대학원, 우측에 종무소 건물이 나그네들을 반긴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자 종무소옆 ‘신도의 방’에 모여드는 사람들. 은해사 포교국장이자 ‘무박 2일 사찰체험’ 행사를 지도하는 혜해스님이 찻상 앞에 앉아 40여명의 동참자들에게 뭔가 이야기를 나누며 미소를 지어보인다.
“오늘 사찰체험 여행에 동참해 주신 분들에게 간단하게 일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오후 7l부터 저녁예불을 올리고, 조금 쉬었다가 지장전에서 불교예법을 간단하게 배우겠습니다. 특히 오늘 동참하신 분들 가운데는 사찰에서 처음 하룻밤을 지내는 분들이 많으니 사찰예법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배우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거대한 망망대해에 고동소리를 울리듯 팔공산 깊은 산사에 대종(大鐘)이 ‘둥∼’ 하며 긴 여운의 소리를 울린다. 그 메아리는 이 산에 와 닿고 저 계곡에 와 닿으며 미묘한 떨림으로 귓전을 스치고, 가슴으로 파고든다. ‘신도의 방’에 나온 대중들은 산사의 맑은 공기와 긴 호흡을 하며 ‘산사에서의 하룻밤‘이 시작됐다.
저녁 예불후 108배 정진
‘나는 누구인가’참구하며
범종소리에 마음 깨우고
잠 못자도 맑아진 얼굴들
도심의 일상에서 찌든 번뇌를 씻기 위해 온 산사일까. 대중들은 별로 말이 없다. 교양불교대학에서 동참한 인근 주민들도 사찰 아래 살다가 사찰에서 지내니 느낌이 다른 듯하다. 대웅전에 가지런히 신발을 정리하고 부처님과 마주 대하는 예불시간. 목탁을 치며 경을 독송하는 스님들의 합송에 손을 모으고 지극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주어졌다.
“자신의 몸을 태워 타오르는 촛불처럼, 나도 살아왔던가. 나와 남이 하나로 묶여 서로를 위하며 살아왔던가. 왜 그렇게 살지 못했던가. 내가 살기 위해 남을 누르고, 끊없이 경쟁하며 살아온 우리의 삶. 그래서 괴로웠을까.”
합장한 손이 떨린다. 촛불도 미풍에 떨린다. 자리에 앉아 <천수경>을 독송한다. 저녁예불을 마치고 법당문턱에 발을 내리자 어느덧 어둠이 내린 사찰에는 적멸의 고요가 깔려있다.
지장전으로 자리를 옮긴 대중들은 대구 경북포교사단 포교사 4명이 지도해 주는 사찰예법을 배운다. “30년동안 사찰을 다녔는데 체계적인 예법을 배우니 마음이 새롭다”는 교양불교대학생. 예법속에 깃든 교리를 배우며 과거에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배우는 불자들의 눈이 초롱초롱하다. 영천에서 온 일반동참자도 경이로운 눈빛으로 사찰예법을 익혔다.
이제 남은 것은 동참한 대중들이 같은 마음으로 부처님께 108배를 하는 시간. 포교사가 내리치는 죽비소리에 맞춰 한동작도 틀리지 않고 같은 자세로 부처님 앞에 절을 한다. 초등학교 어린이에서부터 70세가 된 노인들까지 이 깊은 산사에서 죽비 일성에 맞춰 참회의 절을 하며 무언가 발원을 올린다. 참석한 저 대중들은 지금 무슨 원을 세우고 있을까.
사찰수련회가 아닌만큼 ‘무박 2일 사찰체험’에는 어떤 강제된 조항은 없었다. 힘들면 휴식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누구도 힘들다며 쉬는 사람은 없었다. 5명의 가족이 동참한 서종수씨 가족의 두 아이 성민(10)과 아림(6)은 저녁 10시가 넘어 탈의실 옆 대중방에서 이미 꿈나라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제일 큰 녀석인 영민(11)이는 야간 산행에서 별님을 보겠다는 각오를 보이며 프로그램에 동참하고 있었다.
흐린 날씨에 은해사를 나온시간은 새벽 1시. 음력 13일임도 주변은 칠흙같이 어두웠다. 하지만 ‘무명을 뚫고’라는 주제의 야간산행에는 일체의 불빛을 밝힐 수 없는 관계로 오로지 마음의 눈으로 산내암자인 백흥암까지 걸어가야 한다. 전기불빛을 벗어나자 주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사찰체험 지도법사인 혜해스님(은해사 포교국장)은 “참다운 마음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중생계를 헤쳐나간다는 생각으로 한발한발 나가면 이내 길이 보일 것”이라고 조언한다.
잔뜩 흐린 하늘 사이에서 내리는 몇가닥 빛이 길을 비췄고, 동참자들은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돌돌돌’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물 소리. 간간히 불청객에 놀라 버스럭 거리는 산새들의 나래짓 소리. 고요한 사위에 자연이 들려주는 작은 소리들에 감복하고, 자연이 제공하는 맑은 공기에 감사하며 2시간이 넘는 산행길이 이어졌다.
새벽 3시가 넘어 사찰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하자 새벽 산사를 깨우는 목탁소리와 함께 도량석이 시작된다. 이어 뭇 중생들의 잠을 깨우는 북소리와 종소리가 팔공산을 감싸고, 목탁소리와 함께 예불이 이어진다.
새벽이 밝아오는 소리를 들으며, 계곡에 나선 나그네들은 찬 새벽 계곡물로 번뇌를 씻어낸다. 간단한 미음공양을 한 뒤, 경내를 포행(산책)하며 아침이 오는 전경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 날이 밝을수록 산새들의 재잘거림이 거대한 오케스트라처럼 다가온다. 은해사 동쪽 박물관건물 너머로 해가 솟아오르며 ‘무박 2일 산사체험’의 막이 내린다.
잠을 자지 않았지만 각자의 눈에는 생기가 흐르고, 동참자들은 “다시 오겠다”는 인사말을 남기며 일주문을 떠난다.
영천 은해사=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은해사 오는 길
버스로 하양터미널에서 하루 15회가 있으며 영천에서도 10회 정도 운영된다. 기차로는 영천이나 하양역에 내려 오면 된다. 자동차는 경부고속도로 하양 인터체인지에서 하양/신령방향으로 들어오면 된다. 은해사종무소 (054)335-3318~9
/ 주변 볼거리
은해사를 올때는 불교문화재를 공부하겠다는 마음으로 방문해야 한다. 주변의 서원이나 농원 등이 있기는 하나 은해사와 관계된 문화재를 관람하는 게 훨씬 유익하다.
팔공산에서 나오는 산나물과 도토리 등으로 만든 산채음식점 30여곳이 즐비한 길을 돌아보고, 버섯전이나 파전같은 토속음식을 맛보아도 뜻깊은 여행이 될 듯하다. 산사체험 후 은해사 뒷길을 쭉 올라 저수지에 내린 안개를 구경하고, 다시 백흥암의 극락전(보물 790호)과 수미단(보물 486호)의 아름다운 목조각 예술을 감상해 봄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백흥암까지는 승용차로도 가능하다. 시간이 좀더 허락되면 승용차로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정혜결사를 발의했던 거조암에 들러 국보 14호인 영산전과 그 안에 봉안된 526분의 나한상도 친견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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