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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49 5월 13일 금요일
법화경 제7. 화성유품(化城喩品) 교재 214쪽
안녕 하십니까? 오늘 5월 13일 염화실 인터넷 방송법문 시작하겠습니다.
내일모레가 부처님오신 날입니다. 세월 참 빠르지요? 금방금방 지나가고, 또 새로운 날이 돌아오고 그렇습니다.
범어사도 등을, 일주문 쪽에는 일찍부터 달았고, 도량에도 등을 달기 위해서, (등줄을 친다. 이러지요.) 등줄을 곳곳에 상당히 많이 말뚝을 박고, 등줄을 많이 쳤습니다. 모든 사찰이 아마 똑 같은 광경 일거예요.
곳곳에 등줄을 치고, 또 미리 올라오는 길목에는 등을 달고, 전깃불로도 켭니다. 그런데 등도 옛날보다 상당히 많이 달지요.
옛날에 우리 어릴 때, 등을 달던 생각이 좀 나서 말씀을 드리면, 아주 옛날에는 등 모양새 내는 것을 대나무를 깎아서 했습니다. 또 그 다음에 싸리나무를 깎아서 하고요.
철사가 없으니까, [철사가 있기 전이지요.] 그럴 때, 사찰에서는 곧게 잘 생긴 싸리나무를 베어서 한다던지, 또는 대를 잘게 쪼개서 수박등, 삼각 등, 팔모 등 그것이 전부였지요.
삼각 등을 만들려면 대가 세 개만 해도 되지요. 수박등은 네 개로 4면이 되도록 해서, 거기다 수박을 그립니다. 간혹 팔모 등도 많이 만들고 그랬는데, 나중에 철사가 생겨서, 우리 때 에는 대나무로 만들거나 싸리나무로 만든 것은, 과거 스님들이 만들어 놓은 것은 볼 수는 있었지만,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드는 때는 아니었습니다.
상당히 비쌌지만, 철사를 사다가 만드는 것이 손쉽지요.
그 철사가 아주 질기고, 가늘기도 하고, 얼마나 깁니까. 철사를 필요한 만큼 펜치로 잘라서 만드는데, 큰 두루마리 철사를 사다가 구부려가면서 모양을 냅니다. 몇 센티씩 크기를 정하고, 큰 판자에다 간격에 맞게 못을 박아 놓고, 못이 각이 나게 해 놓고는, 장갑을 끼고 가서 척 대면, 척 휘어요. 팔모가 나도록 휘어서 탁 자르면, 알맞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아주 가는 철사로 서로 묶어요, 또 서로 엇갈리는 그 자리에는 철사로 묶고, 묶고 이런 식으로 묶으면, 비로소 등살이 하나 완성이 되지요. 그렇게 등살 을 만드는 것이 아주 힘든 일이었습니다. 손에서 피가 나기도 하고, 굳은살이 베기기도 하고, 그렇게 우리 어릴 때, 학인들이 다 만들었지요.
문종이는 비싸니까 값이 싼 누르지 라는 종이 중에서도 값이 싼 것으로 사다가 우리 손으로 서도를 하고, 정확하게 제도를 하고, 일일이 바르고, 모 난데는 선을 바르고, 칠을 하고요. 간혹 먹으로 직접 묵화도 치고, 그전에 제가 거들면서 글씨도 쓰고, 색지를 오려서 띠를 예쁘게 붙이기도 하고, 또수술 이라는 종이를 따로 사서 물들이든가, 물들어 있는 종이를 사기도 하고, 수술을 다섯 개쯤 붙이려면 종이가 많이 드니까, 세 개만 붙이다가 나중에는 한개만 붙이지요. 나비같이 생긴 리본을 만들어서 수술 위에 붙이는, 그 일이 얼마나 복잡 했는지 모릅니다.
그일 을 한 서너 달 전부터 준비를 해서 만든 등이 얼마나 아깝고 소중한지...
초파일이 지난 뒤에도 소중하게 잘 간수하고, [간수할 때도 부피가 많으니까 힘들었지요.]
나중에는 그것을 공장에서 만들었지요. 등살도 전부 찍어서 나오고, 또 바르는 종이도 오색종이가 찍혀서 나와서, 붙이기만 하면 아주 이쁘 는 데, 요즘은 아예 완성품이 나오더군요.
아무것도 할 일이 없게 완성품이 나오는 그것이, 발전인지 퇴보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초파일을 맞으면서, 여기저기서 등줄을 치면서 등이 내걸리는 것을 보니까, 과거에 제가 어릴 때, 등을 만들던 기억이 생생해서, 과거엔 등을 이렇게 만들었었다는 것도 들려 드릴 겸, 말씀을 드립니다.
등 하나 만드는데 참 정성이 많이 들지요. 힘도 많이 들고 그렇습니다.
그렇게 등을 만들었는데, 오늘날은 참 쉽게 만들지요. 그만큼 여러 가지 발달했고, 또 전야제 행사 때 나온 등들을 보면 기상천외한 등 모양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등 모양 도 일정 하지가 않고 별별, 뭐 사천왕 모습의 등, 부처님모습의 등, 보살형상의 등, 별별 등 을 그렇게 만들어서 축제를 벌이는 것을 보면, 참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이 변하고, 발전되어 가는구나 하는 것을 절감합니다.
오늘은 법화경 214쪽 옛 인연을 말하다. 대통지승불의 이야기에 의하면 성불하는 데, 10겁 이라고 하는 길고 긴 세월이 걸려서 그런지, 이 대통지승불 이야기가 빨리 넘어 가지가 않네요.
사실 이것은 화성유품 이라 해서, 품 이름을 생각하면 화성유의 이야기를, 화성비유 이야기를 길게 해야 옳은데, 그 이전에 서론 격으로 나오는 대통지승불 이야기가 이렇게 길게 여러 날 이어지고 있습니다.
옛 인연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제야 결론을 맺을 차례가 되가는가, 봅니다.
p.214
(8)옛 인연을 말하다
29 이 때에 십육 보살사미는 부처님께서 방에 들어가 고요히 선정에 드신 줄을 알고 각각 법상(法床)에 올라가서 팔만 사천 겁 동안 사부대중들을 위하여 묘법연화경을 분별하여 널리 해설하였느니라.
아버지인 부처님은 선정에 들어있고 십육 보살사미는[16명의 아들이지요.] 이들은 아버지 부처님으로부터 법화경을 배웠으니까 그것을 다시 많은 사부 대중들에게 묘법 연화 경을 분별하여 널리 해설했다. 그것도 팔만 사천 겁 이라고 하는 오랜 세월동안 걸핏하면 불교에서는 팔만 사천, 팔만 사천 그런 말을 하는데, 인도에서 많다는 숫자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얼마나 많더냐?” “아이고, 그거 뭐 천지더라.” 예를 들어서 어느 산에, “금정산에 갔더니, 고사리가 많더라” “고사리가 얼마나 많더냐?” “아이, 고사리 천지야” 이런 표현을 하지 않습니까? 하늘과 땅이 모두가 고사리라는 그런 말인데, 뜻 데로라면 많다는 뜻이지요. 어디 하늘과 땅이 그대로 고사리인 곳이 있습니까?
뿐만 아니라 다른 걸 표현할 때도, 천지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그와 같이 인도에서는 팔만 사천, 팔만 사천, 많다는 숫자를 우리가 천지라고 하듯이, 인도에서는 팔만 사천이라고 흔히 표현을 합니다.
여기도 보면, 팔만 사천 겁 동안 사부대중들을 위하여 묘법연화경을 분별하여 널리 해설하였느니라. 하나하나의 보살들이 육백만 억 나유타 항하사 중생들을 제도하여 보여 주고 가르쳐서 이롭고 기쁘게 하였으며 여기 시. 교. 이. 희라고 해서, 示(보여주고), 敎(가르쳐 주고), 利(이롭게 해주고, 이익이 돌아가게 해주고), 喜(기쁘게 하였으며),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게 하였느니라.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경지까지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게 하였다 는 그런 표현이지요. 그 다음에 대통지승불이 팔만 사천 겁을 지내고 나서 삼매(三昧)로부터 일어나 법상(法床)에 올라가 편안히 앉으시어 대중들에게 말씀하였느니라.
그 길고 긴 세월, 팔만 사천 겁 동안 삼매 에 있다가 그때야 비로소 이제, 삼매에서 깨어났고, 그동안은 자기 아들들 인 십육 보살사미 들이 법화경을 설했다. 그런 광경을 우리가사실로, 이렇게 상상해 보면 그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모습이지요. 그래서 대중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이 십육 보살사미는 매우 희유하니라. 육근이 영리하고 지혜가 총명하며 이미 한량없는 천만 억 부처님께 공양하였느니라. 여러 부처님 계신 곳에서 항상 범행을 닦았으며 부처님의 지혜를 받아 지니고 중생들에게 열어서 보여 주어 그 안에 들어가게 하였느니라.
당신의 아들들이지만 삼매에 들어서 이들의 과거를 가만히 살펴보니까, 과거의 행적이 낱낱이 이렇게 영화의 스크린에 비쳐지듯이 그렇게 떠올랐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대들은 모두들 마땅히 자주자주 친근하여 모시며 공양하라. 왜냐하면 만일 성문이나 벽지불이나 보살들이 이 십육 보살이 설하는 경법(經法)을 능히 믿고 받아 지녀서 훼방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마땅히 최상의 깨달음과 여래의 지혜를 얻으리라.’ 라고 하였느니라.
부처님이 십육 보살사미에게 그렇게 당부합니다. 여기에 표현을 가만히 보면 은, 처음에는 십육 왕자 이랬다가, 십육 사미 그랬다가, 십육 보살사미 그랬다가, 나중에는 십육 보살 이렇게 표현이 됩니다. 이런 것들도 경전을 편찬 하시는 분들의 마음이 엿보이는 그런 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30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십육 보살이 항상 묘법연화경을 설하기를 좋아하였느니라. 저도 법화경을 아주 좋아해요.
그래서 걸핏하면 법화경이야기 하고, 법화경 강설, 법화경 교재도 내고, 법화경이야기도 내고, 또 어록으로서는 임제록을 좋아합니다.
"이 십육 보살들은 항상 묘법연화경을 설하기를 좋아하였느니라. 하나하나의 보살들이 교화한 육백만 억 나유타 항하사 중생들은 세세생생에 보살과 함께 나서 [그들 보살이지요. 그들이 들은 십육 보살입니다.]
함께 나서 그의 법문을 듣고는 모두 믿고 이해하였느니라.
이렇게 정말 제대로 된 선지식이 세상에 처~억 나타나면, 선지식으로서 제대로 선지식 역할을 세상에 펴는 데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그래요.
여기 보면 “십육 보살사미 들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들이 과거 생 에 교화했던 그 중생들이, 교화한 보살들이 6백만 억 나유타 항하사 나 되는 이들이, 세세생생 에 보살과 함께 나서 그의 법문을 듣고 모두 이해하였다.” 하는 것은, 따라서 교화하는데 필요한 요원으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대개 선지식이 교화를 펴는데 있어서는 몇 가지 인연이 갖춰줘야 된다고 그렇습니다.
첫 번째: 道緣(도연)! 그 사람의 도가, 법을 펼만한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土地 緣(토지 연)! 그 사람이 그 지방에 인연이 있는 가, 없는 가, 다른 조건은 다 되는데 그 지방과 인연이 없으면 그것도 교화를 펴는데 제대로 안 된다고요.
저도, 여기저기 옮겨 다녀보니까 내 딴에는 힘들여서 살려고 했는데, 그게 토지 연이 없는가. 안 될 때가 있었어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도연과 토지연이 있어야 됩니다.
세 번째: 檀越 緣(단월 연)! 시주하는 신도들이 많이 따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조건이 안 갖춰지면 뭐합니까? 누가 도와주는 신도가 없으면, 아무리 도력이 출중하다 하더라도, 제대로 감당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단월 연이 있어야 합니다.
네 번째: 外護 緣(외호 연)! 정치적으로나 아니면, 여러 가지 외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는 단월 연이 되겠고요. 뭘 하는데 대외적으로 어떤 큰 힘이 되 주는 사람들, 예를 들어서 요즘 말로 하면, 빽 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이 좀 도와주고, 또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衲子 緣(납자 연)! 직접 그 슬하에서 공부하겠다는 수행자들을 뜻하는 것 입니다. 그게 출 가인이 되었든지 재가 인이 되었든지 간에 어쨌든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다른 조건은 다 갖추었는데, 정말 이 몸을 다 던져서 공부하겠다는 그런 사람이 없으면 뭐 합니까? 그야말로 하나마나한 일이지요.
절이 부자이고, 외호도 아주 잘 되어있고, 시주들도 많고, 그 지역과도 인연이 깊고, 자기 도력도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정작 알맹이가 되는, 출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는 제자가 없으면, 그것 참 허망하기 이를 데 없지요. 그래서 그런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된다. 도연. 토지 연. 단월 연. 외호 연. 납자 연 이렇게 五種(5종)연을 갖추어야 비로소 선지식으로서, 선지식 행세를 제대로 합니다.
요즘 말하자면 포교하는 사람들을 두고 말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어느 지역에 가서 포교를 좀 하고 싶다 그러면은, 포교하는데도 그런 다섯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혼자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자기의 포교 실력이 있어야 하지요? 불교를 아는 그 포교 실력! 그것이 도연이 되겠고, 그 지역이 자기하고 인연이 맞아야 되어요.
단월들이 있어야 되지요. 신도들이 많이 따라야 그게 포교가 되는 것이지 혼자 무엇 합니까?
그 다음에 널리 사람을 모은다던지, 건물을 짓는다던지, 사람들이 들락날락 한다던지, 그래도 행정적으로 도움을 주는 외호 연이 있어야 되지요. 그 다음에 납자 연이라고 하는 것은 거기서 같이 도우면서 보조를 맞출 스님들, 목탁도 같이 쳐주고 염불도 같이 해 주고, 혹 다른 일이 있으면 대신 법회도 해주는 납자가 갖춰져야 됩니다.
그런 다섯 가지 조건이 제대로 갖춰졌을 때 포교도 제대로 할 수가 있습니다.
옛날 깨달음 을 성취해서, 자기 제제가 어느 한 지방에 가서 법을 편다고 할 때는, 반드시 다섯 가지 인연이 갖춰져야 된다는 분부를 내리고, 알려 주는 일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도 보면 세세생생에 보살과 함께 나서 그의 법문을 듣고는 모두 믿고 이해하였느니라. 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같이 따라 가 가지고, 법문을 하는데 와서 열심히 듣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주 교화하기가 좋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사백만 억 부처님 세존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끝나지 아니 하였느니라. 계속하고 있다 이것이지요.
십육 왕자의 현재의 모습 이제 서서히 끝나 갈 무렵이지요. 지금까지는 옛날이야기이고, 그러면 십육 왕자들은 오늘날 어떻게 되었느냐? 이렇게 우리가 물었을 때, 여기 이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9)십육 왕자의 현재의 모습
31 여러 비구들이여, 내가 이제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저 부처님의 제자 십육 사미들이 지금 모두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 현재에 시방 국토에서 법을 설하고 한량없는 백 천 만억 보살들과 성문들이 귄속 이 되어 있느니라.
많은 권속들이 따르고 있다 그래요. 그러면서 하나하나 소개를 합니다.
그 중 두 사미는[보살사미니까, 두 사미라 그렇습니다.]동방에서 성불하였는데 한분은 아촉불(阿佛)이니[들어본 이름이지요?] 환희국(歡喜國)에 있고, 또 한 분은 수미정불(須彌頂佛)이니라. [이 분도 아마 이름 들어 보셨을 거예요.] 백팔참회 해본 분들은 백팔 참회에, 여기 소개되는 부처님 이름들이
다 나옵니다.
동남방의 두 부처님은 한 분은 사자음불(獅子音佛)이요, 또 한 분은 사자상불(獅子相佛)이니라. 남방의 두 부처님은 한 분은 허공주불(虛空住佛)이요, 또 한 분은 상멸불(常滅佛)이니라. 서남방의 두 부처님은 한 분은 제상불(帝相佛)이요, 또 한 분은 범상불(梵相佛)이니라. 서방의 두 부처님은 한 분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이요, [아미타불, 잘 아시지요? 아미타불이 십육 왕자 중에 한분이라는 뜻입니다.
경전의 여기저기에서 아미타불이다, 석가모니불 이다, 연등불 이다 이렇게 소개되는 부처님들이, 이리저리 모두 비록 경전의 말이지만, 여기서 이 역할하고, 저기서 저 역할하고, 여기서 이렇게 활용되고, 저기서 저렇게 활용되고, 다 그렇습니다. 또 한 분은 도일체세간고뇌불(度一切世間苦惱佛)이니라.
서방에 두 부처님이 있다는 말 처음 듣지요? 아미타불이 서방에 계신다는 것을 다 잘 아시지만, 두 분이 계시는데 한 분은 도일체세간고뇌불 이라는 것도 법화경에 근거를 하면은 이런 것도 처음 듣게 되는 것이지요.
서북방의 두 부처님은 한 분은 다마라발전단향신통불(多摩羅跋전檀香神通佛)이요, 또 한 분은 수미상불(須彌相佛)이니라. 북방의 두 부처님은 한 분은 운자재불(雲自在佛)이요, 또 한 분은 운자재왕불(雲自在王佛)이니라.
동북방의 부처님은 괴일체세간포외불(壞一切世間怖畏佛)이니라.
제 십육은 나 석가모니불이니 사바세계에서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었느니라. 이렇게 자기 자신 최후의 부처님은 바로 나 석가모니불이다. 사바세계에서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었다 라고 이야기하지요. 그럼 무엇입니까?
석가모니불도 과거에 대통 지 승불 의 십육 아들 중 막내아들 이었고, 아버지가 출가해서 성불했다는 말을 듣고 함께 십육 명이, 발 심 출가해서 수행을 했고 또 법화경을 대통지승불 에게 배워 가지고, 그것을 팔만 사천 겁 동안 법화경을 설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는 여기저기서 시방세계 곳곳에서 팔방에, 말하자면 여기서 상방 하방은 빠졌지요? 십육 분이니까 팔방에서 한방에 두 분씩 부처가 되어서 계신다. 그 중에 석가모니불! “나 석가모니불이 사바세계에서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었니라.” 당신의 이야기에 까지 그 淵源(연원) 을 밝히게 된 것입니다.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 꼭 사실이다 아니다 보다도, 다양한 세월이전부터 우리는 늘 이런 인연 저런 인연으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는 것이고, 또 우리가 아무리 싫든 좋든 간에, 기억이 되 든 안 되든 간에, 우리는 함께 더불어서 계속 살아가고, 또 새로운 생을 맞이하면서도, 또 계속 살아가고, 그러면서 또 새 인생을 맞이하고, 그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기억을 못하니까, 전생도 기억을 못하고 과거 생을 기억을 못하니까 그것을, 꼭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기억은 못해도 그렇게 우리는 더불어서 많은 생을 반복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인연의 깊고 깊은 관계들을 여기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이해 하시면 되겠습니다.
(10)옛 제자와 지금의 제자
32 여러 비구들이여, 우리들이 사미로 있을 적에 각각 한량없는 백천만 억 항하사 중생들을 교화하였으며, 그들은 우리들에게 법을 들었으니 최상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였느니라.
한량없는 백천만 억 항하사 중생들이 우리들에게 법을 들었다. 이것이지요.
그 모든 중생들이 지금의 성문의 지위에 있는 이들도 우리가 항상 최상의 깨달음으로써 교화하였느니라. 그런데 지금은 성문 지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사실은, 최상의 깨달음으로서 교화 하려고 했는데, 최상의 깨달음의 경지가 아닌 성문의 지위에 있다. 지금 성문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사실은 최상의 깨달음, 법화경으로서 교화하였다. 그런 것이지요.
이 사람들은 마땅히 이 법으로 점점 불도(佛道)에 들어가리라. 무슨 까닭인가. 여래의 지혜는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니라. 그러니까 아직도 저 밑에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 점점 불도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왜 얼른 못 들어가겠느냐? 그렇게 오래 동안 법화경 공부했는데도 왜 못 들어가지느냐? 여래의 지혜는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니라. 너무 고차원적이기 때문에, 너무 고차원적이기 때문에 쉽게 들어가지가 않는다. 그래서 아직도 성문으로 있다 하는 그런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 때에 교화한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은 그대들 여러 비구와 내가 열반한 뒤 미래 세상의 성문제자들이니라.
이것은 지금 우리 염화실 법우님 들을 두고 하는 소리예요.
‘열반한 뒤 미래 세상의 성문 제자들이니라.’
이 법화경을 가지고 아직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고 있는 이들이, 그때 제대로 공부를 해 마치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공부를 하고 있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다. 라는 말입니다.
내가 열반한 뒤에 어떤 제자가 이 경을 듣지 못하며, 보살의
행할 바를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얻은 공덕에 대하여 멸도(滅道)하였다는 생각을 내고[열반을 얻었다는 그런 생각이지요.] 마땅히 열반에 들 수 있다고 한다면 내가 다른 세계에서 성불하여 다른 이름을 가지리라.
그 때에 이 사람이 비록 멸도 하였다는 생각을 내어 열반에 든다 하였더라도 저 세계에서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여 이 경전을 듣게 되리라.
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결국은 이 법화경을 듣게 되고, 최상의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지요.
오직 일불승(一佛乘)이라야 멸도를 얻는 것이요, 다른 가르침은 없느니라. 이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소리지요. 이런 이야기를...
간혹 흙을 보면, 흙 속에 흙이 이렇게 절개 지에 무너진 데를 보면, 흙 속에 알맹이 같은 이주 야문 돌이 있어요. 그것이 그 큰 흙더미 속에, 하나의 알맹이로써 그런 역할을 하듯이, 많은 말씀 중에서 이런 것들이 그런 알맹이 역할을 합니다.
지혜를 구하여 이 경전을 듣게 되리라. 오직 일불승이라야 멸도를 얻는 것이요. 일불승이라야 진짜 완전한 열반을 얻는 것이고, 다른 가르침은 없느니라. 그랬습니다.
일불승! 법화경이 지향하는 바이지요. 회 삼 귀 일! 여러 가지 양상의 삶을 다 모아서 부처의 삶으로 귀의를 시키는 가르침! 그것이 일불승 입니다.
우리의 삶은 부처로서의 삶뿐이다! 그 외의 다른 삶은 없다! 죽 으나 사나, 죽 어도 부처님으로 죽고, 살아도 부처님으로 살고, 아파서 누워있어도 부처님으로서 아파서 누워있고, 건강해서 펄펄 뛰어도, 부처님으로서 펄펄 뛰는 것이고, 웃어도 부처님으로 웃는 것이고, 울어도 부처님으로 우는 것입니다. 화를 내도 부처님으로 화를 내는 것이고, 모든 희로애락의 인간적 표현은 그대로 부처님으로서의 표현 이다 하는 정신이 바로, 그러한 정신이 일불승 정신이고 일불승사상 입니다.
오직 일불승이라야 멸도를 얻는 것이요, 다른 가르침은 없느니라. 다만 여래가 방편으로 법을 설하는 것은 제외할 것이니라. 방편으로 뭐 이런 소리 저런 소리 하는 것, 그거야 다 칠 수 있느냐? 이것이지요. 방편으로 별소리 다했는데 그것은 제외한다 이랬습니다.
꼭 이런 점을 우리가 확여~언 히 이해하게 되면 은, 뭐 불교의 경전이 많고 말씀이 많고 하더라도, 그것 저~언부 가닥을 다 칠 수 있지요. 宗旨(종지)를 추릴 수 있습니다. “가닥을
진다.” “종지를 추린다.” 이런 표현은 전통적으로 경전공부 하는데 쓰는 말 입니다.
33 여러 비구들이여, 만약 여래가 스스로 열반할 시기에 이
르렀고 대중들도 청정하여 믿고 이해함이 견고하여, 공(空)한 법을 통달하여 선정(禪定)에 깊이 들어간 줄을 알면, 곧 여러 보살들과 성문들을 모아놓고 이 경을 설하느니라.
이것이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법화경 차원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나도 이제 죽을 때가 되었고, 열반할 시기에 이르렀고, 또 대중들도 아주 훌륭해. 그리고 이해하는 것이 아주 깊어. 그리고 특히 중요한 것은, 공한 법을 통달 한다 는 것이지요. 모든 존재의 공성! 사람도 그렇고, 모든 존재가 근본적으로 공하다고 하는 사실을 통달해서 선정에 깊이 들어간 줄을 알면, 공성을 다 통달 했을 때, 그 때 비로소 곧 여러 보살들과 성문들을 모아놓고 이 경을 설하느니라.
그러니까 법화경은 그 공성을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차원에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말씀 드렸던 이야기인데, 법화경에 궁자의 비유에서 아함경, 그 다음에 방등경, 그 다음에 반야경! 반야경이 비로소 공한 법을 통달하여 선정에 깊이 들어간 그 경지거든요. 공한 법을 통달한 경지가 반야부 경전입니다. 전부 空 아닙니까? 색즉시공 공즉시색. 시고 공중무색무 안이비설신의 무 새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전부 없다고 하는, 공의 도리를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 다음에 종단법화 우 팔년 또 법화경을 8년 동안 설했다. 그렇게 딱, 아주 일목요연하게 그런 차원이 그렇게 정해집니다.
여기서 한 마디 더 붙일 것은, 그럼 선 은 무엇이냐? 선 법문은 무엇이냐? 법화경이 대승불교의 경전이고 일반 불교로서 최고도로 발전했고, 거기서 한걸음 더 발전한 것이 선불교다, 이렇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법화경경지보다, 화엄경경지보다, 더 높고 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해야 그게 선 법문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공 이야기를 한다던지, 연기이야기를 한다던지, 중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아직 반야 부 경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그 말 입니다. 우리가 자기의 살림살이든지, 실질적으로 자기가 체험한 것, 자기가 깨달은 것은 어느 차원에 있느냐 하는, 이 문제와는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런 것은 다른 데에서 논의해야 할 일이고, 이론 적으로라도 경전에 다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공한 법을 통달하여 선정에 깊이 들어간 줄을 알면, 그때 곧 여러 보살들과 성문들을 모아놓고 이 경을 설하느니라. 한 단계 높은, 그래서 법화경은 敎菩薩法(교보살법)!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다. 그리고 佛所護念(불소호념) 부처님이 차~암 아끼고, 보호하고, 가슴깊이 간직하는, 그러한 가르침이다. 법화경이 그런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뭐 공 이야기다, 연기 이야기다, 모든 존재는 뭐 연기로 되었다, 공으로 되었다. 그것도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이니, 연기니 하는 것도 상당히 어떤 중심 교리를 맡고 있어요 사실은...
그러나 법화경의 차원은 아닙니다. 법화경에도 공 이야기를 자주 하지마는 여기 표현 했듯이, 공한 법을 통달하여 선정에 깊이 들어간 줄을 알면, 곧 여러 보살들과 성문들을 모아놓고 이 경을 설하느니라.
이 법화경 이야기를 합니다. 법화경 차원은 거기다. 이것입니다.
세상에서 두 가지의 가르침으로는 열반을 얻을 수 없고, 오직 일불승(一佛乘)으로만 열반을 얻을 뿐이니라.
이게 대열반 진 열반 참다운 열반을 말하는 것이지요. 저 앞에서 말한 것은 열반 이라 하는 용어도 여러 가지로, 쓰는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뜻으로 그렇게 표현되는데, 다른 법으로서는 진짜 열반을 못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법화경의 이치만이 열반을 얻는다. 그러니까 여기의 표현대로 라면, 공 도리, 연기도리 가지고도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반야부 경전 차원이니까요. 21년 동안 반야부 경전을 설하고 나서야 비로소 법화경을 설한 것으로 되어있으니까요.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라. 여래는 방편으로써 중생들의 성품에 깊이 들어가서 그들이 소승법(小乘法)을 좋아하여 다섯 가지 욕망에 깊이 탐착한 것을 알고는 그들을 위하여서 열반이라고 말하는 것을 그 사람이 듣고는 그대로 믿고 받아 지니느니라.
그러니까 어떻게 근기가 그것뿐이니까 할 수 없이 ‘됐다 됐다, 그 정도면 열반을 얻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온전하지는 못해도 인가를 하는 사례들도 그런 방편이 아닐까? 그래서 한 단계 끌어 올려주고, 끌어 올려주고 하는, 그런 방편으로서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역설한 내용을 가만히 이렇게 듣고 말 것이 아니라, 경전을 유심히 읽고 사유해보고, 그래서 자기의 살림살이가 될 때, 종지가 환하게 드러나지요. 그래서 이러한 장황한 대통지승불의 이야기를 이끌어 와 가지고 오늘날 내가 역사가 있는 인물이라고 하는 석가모니 자신을 밝혔고, 그래서 이 석가모니 지금 이야기 하는 법은, 이렇게 傳統性(전통성)이 있는 것 이다. 전통성이 있는 법이야말로 正統(정통)한 법이다. 정통한 법은 전통성이 있는 것입니다.
전통이 없으면 그것을 안 알아주잖아요. 알아주지를 않습니다. 오~랜 역사적으로 전통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만치 검증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검증이 그만치 오랫동안 되었으면, 그것은 정법이라는 것입니다. 전통성이 있는 법은 곧 정통성이 있는 법이고, 전통성이 있는 것이라야, 정통성이 있는 법이다. 정법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 여기서 은근히 비추면서,
‘나의 법은 나 혼자 떠드는 소리가 아니다. 이렇게 오랜 역사 속에서 공증을 받는 그런 법이다.’ 그러면서 깊고 깊은 인연의 이야기를 하고, 결국은 법화경 일불승! 일불승을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일불승에 미치지 못한 그런 사례들도 많이 소개를 하면서,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진짜는 이 경의 가르침이라야 말로 비로소 일불승으로만이 열반을 얻는다. 이렇게 까지 아주 못 박아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비유로서 다시 이해시키지요. 우리들에게 비유로써 다시 이해를 시키는데, 비유 내용은 짤막합니다마는, 그것이 화성유품의 주안점 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다음 시간에 화성의 비유로서 한 번 더 명확하게 밝히게 되겠습니다.
오늘 법화경공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기록: 수경심, 정리: 진여혜, 대원성.
첫댓글 감사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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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내가 열반한 뒤에 어떤 제자가 이 경을 듣지 못하며, 보살의 행할 바를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얻은 공덕에 대하여 멸도(滅道)하였다는 생각을 내고[열반을 얻었다는 그런 생각이지요.] 마땅히 열반에 들 수 있다고 한다면 내가 다른 세계에서 성불하여 다른 이름을 가지리라....나무묘법연화경
우리의 삶은 부처로서의 삶뿐이다! 그 외의 다른 삶은 없다!...나무묘법연화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