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 이야기, 부산 갈맷길과 거제도 동백꽃 여행
겨울바다에 피는 동백꽃 같은 이야기를 찾아서 남녘 항구로 간다.
햇살 좋은 날 바다는 먼 곳으로 떠나는 뱃고동소리처럼 아련하고
부두에는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선처럼 거꾸로 메달려 있다
항구는 부박한 인생유전이 모여들어 구원의 방주를 꿈꾸던 곳
비린내는 삶이 소주처럼 독한 눈물을 삼키거나 욕지거리를 쏟아낸다.
의지할 것이라고는 따뜻한 햇살밖에 없었던 사람들
지상에서 허락받은 한줌의 땅을 일구어 작은 영토를 꿈꾸었으니
바다가 보이는 산일번지에는 물속에 던져진 어초 같은 집들이 지어졌다
산복도로 아래 아미동은 왜놈들의 무덤이 즐비했던 곳
더러는 공동묘지 속으로 들어가 미제 포장박스로 바람벽을 치기도 했다.
무덤의 빗돌은 주춧돌이었고 우물가 빨랫판이 되기도 하였으니
지하도시 카타콤처럼 오래된 시간 속을 흐르는 마을이 되었다.
짐승들이 토굴 속에서 새끼를 기르듯이 체온을 나누며 살았다.
아이들은 산으로 바다로 뛰어다니며 천둥벌거숭이로 자랐고
아비들은 밤늦도록 돌아오지 못했다.
아무것도 계획된 것은 없었지만 삶은 예정된 시간처럼 흘러갔다.
옥황상제의 약속된 땅이라던 태극도 신자들의 태을주는 간절했지만
생계는 늘 산비탈을 오르는 가파른 계단길처럼 숨이 차올랐다.
누구나 평등하게 잘 사는 개벽의 세상을 염원하였지만
광야에서 샘물이 솟고 사막에서 물이 흐르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지나고나면 모두가 물거품 같았고 하늘의 별들만 총총하였다.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요란스럽게 세월이 흘러갔다.
민들레 씨앗처럼 멀리멀리 바람에 날리어 떠나가고 싶었으나
감천동의 길은 미로처럼 얽히고 얽혀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세월과 함께 주저앉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각보처럼 알록달록하고
골목길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노인의 뒷모습은 눈물겹다.
하루 종일 감천동 사람들의 가난한 어깨를 어루만지듯
눅눅해진 세간과 텃밭과 남루한 빨랫감에 머물던 햇살이 저물어 가면
뿔뿔이 흩어졌던 식구들이 모여들어 작은 등불을 밝힌다.
언제였던가, 세상에 대한 회의와 낙심이 깊어질 무렵
내 마음이 정처 없이 밤기차에 몸을 싣고 찾아갔던
하늘아래 첫동네 감천동 마을, 불빛은
잠들지 못하는 유년의 기억처럼 쓸쓸하게
화려한 산 아래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묵은 기침소리 새벽잠을 깨우는 흐릿한 골목길 어귀
서러운 눈물 한 됫박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감천동 이야기 - 이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