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계시제?
요즘 초여름 같았는데 오늘은 청량하다. 출근길에는 귀찮겠지만 농촌엔 고마운 비가 내린다.
어제 부산구포시장에 들러 고구마 순 사가지고 고향에 왔다. 오늘 비온다기에 고구마 순을 놓을까 해서다. 고구마 순을 땅에 묻는 것을 '심는다' 하지 않고 '놓는다' 라고 한다.
'아이구 이기 무슨 짓이고. 아이구 허리야. 사서 고생을 하네. 고마 사 먹고 말지.'
고구마 순을 놓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이다. 혹시 입 밖으로 말이 나오면 고구마 순이 들을까봐 속으로만 말했다. ㅎ
지난 해에는 굼뱅이 좋은 일 많이 시켜 이번엔 땅 살충제도 뿌렸다. 굳이 농약을 쳐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난 가을 성한 것 하나 없었던 고구마를 생각하면 농약 사용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굼뱅이한테 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옛날과 달리 농약 안 치면 아무 것도 못 해 먹는다는 동네 노인들의 말씀이다.
제초제 살충제 살균제 영양제 등 종류도 많다. 지난 해 고추 40포기 심었는데, 고추에 달려드는 병충해가 무슨 그리도 많은지 놀랬다. 올해 심지 않을려다 풋고추 따먹기 위해 몇 포기 심었다.
가짜 농부 노릇한 지 4년째 접어들었는데 아직도 시행착오가 많다. 아니 모든 게 시행착오다.
돈 벌려고 농사짓는 건 아니지만 들어간 비용만큼 손해보는 것 같다. 왔다갔다 하는 교통비까지 포함하면 억수로 비싼 농사를 짓고 있다. 그돈이면 시장에서 더 좋은 걸 사먹을 수 있겠지만 못난이라도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는 있다.
비록 몇 포기씩이지만
봄배추, 브로콜리, 비트, 콜라비, 고추(비타민 고추, 아삭이고추, 땡초) 오이(가시오이, 조선오이), 방울토마토(노랑, 빨강, 검정), 정구지, 머위, 양파(백, 적) 대파, 상추 4종류, 쑥갓, 원추리, 코끼리마늘, 치커리, 아스파라거스, 방풍, 눈개승마, 땅두릅, 토란, 잎당귀, 강낭콩이 자라고 있고, 밭가에는 민두릅나무, 가죽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누가 들으면 대단위 농장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ㅎㅎ 와서 보면 소꼽놀이 수준이다.
좀더 빨리 고향에 내려왔으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일을 좀 많이 했다 싶으면 입술이 터지기도 한다.
평생을 현장에서 일한 친구에게 하소연했더만, 사무직 현장직에 맞는 적성이 따로 있다며 적성에 맞지도 않는 노동을 한다며 고소해 한다.
'하면 하는 거지. 뭐 적성이 따로 있나'하는 마음이 아직이다만 나이 70에 무리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침 밥상에 밭에서 딴 가죽나무, 방풍, 눈개승마, 잎당귀, 머위, 정구지가 올랐다. 이런 찬으로 밥을 먹는 것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행복 같다.
오늘은 동네 노인회에서 점심 드시러 간다고 (단체 회식?) 같이 가자 하였다. 다대포에 있으면 몰라도 고향집에 있으면서 못 간다고 해기도 해서 운전기사 역할을 수행했다.
40여명이 참석했다. 우리 동네에 노인들이 이리 많다니 깜짝 놀랬다. 예전엔 100호 가까이 되는 제법 큰 동네였다. 고향이래도 그냥 왔다갔다만 했지 가까운 친척 아니면 별 왕래가 없었던 터라 모르는 분이 더 많았다.
삼천포참게장집 고향 친구가 하는 식당이었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게를 참 좋아했다. 생각만 해도 죄송스럽다. 드시고 싶은 대로 사 드리지 못한 것 같다. 객지 생활한다고 고향 가면 돌아가기 바빴다. 얼마나 서운했을까.
아이들이 손녀 데리고 우리집에 왔다 자지도 않고 저들 사는 집으로 간다고 할 때 아이들의 일상을 이해하면서도 서운한 감정이 든다. 인생은 뿌린대로 거두는 것 같다.
고향 동네 형님 또는 아재들이 그런다. 이제 힘든 일 안 하고, 시간나는 대로 산책도 하고 놀러 다닌다. 자기 아프면 아이들이 고생한다면서 아이들 돕는 게 자기 건강지키는 일이란다. 아는 이야기지만 가슴에 더 와 닿았다.
그렇다. 동네에 일밖에 모르던 아제 몇 분은 아예 바깥 출입도 못하고 있다. 다들 그런다. 나이들어서도 심하게 일을 많이 하셨다고...
내 나이가 우리 나이로 올해 70인데 나보다 어린 친구가 셋이나 있었다.
어린 친구들이라지만 나보다 한두살 적다. ㅋ
가는 4월 잘 보내시고
오는 5월 행복한 마음으로 맞이 하시기 바란다.
2024.4.29. 삼천포에서
김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