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소래포구로 이사 온지 벌써 3년째다. 코로나로 인하여 이웃의 얼굴도 익히지 못하고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내가 사는 곳은 1km반경 내에 생활에 필요한 슈퍼마켓, 병원, 도서관, 아트센터, 우체국, 은행, 공원, 영화관, 지하철 역, 학교 등이 다 포진하고 있다. 걸어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서 생활하기는 아주 편하다.
그런데 한 가지 어려운 점은 내가 그동안 2,30년 넘게 다닌 내과, 치과, 안과, 정형외과 병원들을 옮기지 못해서 서울로 다녀야 하는 것이다. 아직은 3개월에 한 번씩 건강 점검하는 수준이니 큰 문제는 없어 보이나, 나이가 들수록 병원 출입이 늘어나면서 서울을 오가는 일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소래포구는 인천의 변두리이다. 지하철도 다 연결되고, 광역버스도 있는데 서울 나들이를 하려면 적어도 왕복 다섯 시간이 소요되니 힘에 부친다. 그래서 서울 나들이를 하려면 한 가지 일이 아니라 두세 가지 일을 만들어, 나간 김에 일처리를 모두 끝내고 돌아오려 하고 있다.
2월. 친구들과 모임이 있던 날. 그날은 사당역 근처에서 친구들과 만나 점심 먹고 노는 것도 좋지만 그 한 가지를 위해 서울 나들이를 하기는 좀 아쉬웠다. 그래서 서울 가는 길, 오전에 부평 한의원에 가서 진료 받고,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할 이야기도 많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고기 먹는 일이 별로 없는데 추운 날씨 때문인지 고기를 먹으러 가잔다. 화롯불에 고기를 구워 신나게 먹었다. 늘 소식하는 친구도 즐겁게 먹어서 보기에 좋았다. 대개는 점심 먹고 좀 걷는데 그날은 바람도 심하게 불고 너무나 추워서 아담한 카페에 앉아 그동안 지냈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제는 오래 놀지도 못한다. 세 시쯤 되면 돌아갈 궁리를 한다. 나도 어떻게 돌아갈까 머리가 복잡하다.
사당역에서 두 친구는 북쪽으로, 나는 남쪽으로 가는 4호선 전철을 탔다. 이제는 오이도역까지 눈을 감고 잠을 자야 할 판이다. 배부르니 잠이 솔솔 온다. 그러나 고개 끄덕이며 자는 것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으니 잠을 쫒아야 한다.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 구경도 하고,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 4호선 노선도에 눈이 갔다. 그런데 갑자기 ‘금정’이라는 두 글자가 튀어 오른다.
‘이 전철이 금정역을 지난다고? 그러면 임명자 권사님을 만나고 가야지’ 잠은 이미 멀리 달아났고, 급하게 임 권사님께 전화를 건다. 너무 오래 보지 못해서 궁금하고 만나보고 싶다. 익숙한 권사님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건너온다. 건강하게 들리는 그 목소리가 반갑다.
“권사님. 내가 금정을 지나가는데 권사님 집에 계시면 보고 가고 싶어요. 번개팅 합시다.”
“아 그래요. 좋아요. 어서 오셔요.”
금정역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관악역에 내려 가까이에 있는 권사님 댁으로 걸어가니 권사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다리 아픈 내가 4층 집까지 올라가기 힘들거라 생각하고 미리 내려오신 거다. 둘이 반갑게 코로나 시대에 알맞은 인사를 나누고, 멀리 갈 것 없이 집 앞 분식집에 마주 앉았다. 먼저 권사님의 건강과 내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어서 우리교회식구들의 안부를 서로 아는 만큼 나누었다. 다들 못 만나고 사니 언제나 볼 수 있을까 걱정하며 그동안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만두 두 접시가 눈앞에 있어도 그것에 눈과 손이 가지 않고, 그저 이야기하느라 입이 바쁘다. 나는 여전하신 권사님이 반갑고 고맙고, 권사님은 딸들 보러 멀리 다녀온 내가 반갑다고 하신다. 손님도 끊어진 분식집에서 우리는 신나게 번개팅을 즐겼다.
헤어짐이 아쉬워 전철 타는 입구까지 같이 걸음하신 권사님. 어서 우리교회식구들이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