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7:14 누가복음 2:1-14
어느 방송극의 창사 특집으로 방영한 「기적」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내용이 참 좋고 감동적인 것 같아서 인터넷에 들어가 리서치를 해봤습니다. 이 연속극의 주인공은 '장영철'이라는 50대 중반의 방송 계열사 사장입니다. 극중 장영철은 누가 보더라도 자수성가한 사람이요, 성공한 사람입니다. 명문대를 나와 그 어렵다는 방송 고시에 합격해서 PD로서 착실한 기반을 다진 다음, 최연소 부장, 국장 자리를 거쳐 방송사 최대의 권력자리라는 편성국장까지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장영철은 자신이 그토록 숙망했던 계열회사의 사장자리에까지 승진합니다. 그런데 사장 취임을 코앞에 두고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자신이 폐암말기에 걸렸다는 의사의 판정입니다.
인생 최고의 영광에 올라간 시점에 가장 치명적인 소식을 들은 것이지요! 장영철은 자신이 폐암 말기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친구이자 사돈관계인 의사가 자세히 설명을 해도 막 불평하고 원망하고 항의하면서 자신의 사형 선고를 선뜻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믿지 않으려고 해도, 또 현대 의학을 원망해도 폐암 말기라는 현실은 되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그 때부터 장영철은 정신 없이 앞만 보고 살아왔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기 시작합니다.
먼저 장영철은 어린 시절의 상처가 깊었습니다. 팔순이 가까운 홀어머니는 시골에서 야채를 내다 팔며 사는데 속된 말로 하면 팔자가 사납고 성격이 아주 괴팍하고 괄괄한 노인입니다. 나이 열여덟 살에 시집와 장영철을 낳고 난리 통에 남편을 잃은 뒤, 먹고살기 위해 다시 나이 많은 분집에 재취로 들어갔다가 3년 밖에 못 살고 사별한 뒤, 또 다른 남자와 재혼했습니다. 장영철은 아버지가 다른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 결혼식에도 가지 않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원망 때문이지요. 이렇게 장영철은 가난과 평탄치 못한 가정 환경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상처를 많이 받고 자라났기 때문에 성공과 출세에 대한 집념이 그 누구보다도 강했습니다. 대개 이런 분들이 그 엄청난 집념 때문에 자수성가하는 경우가 많듯이 장영철도 보아란 듯이 방송계에서는 최고로 알아주는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장영철은 자기만 아는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유능해서 승승장구 높은 자리는 잘도 치고 올라가는데 아주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다혈질이어서 비열하다는 소리까지 듣습니다. 그러나 장영철은 어린 시절의 한을 풀기 위해 오로지 출세에만 눈이 어두운 나머지 그런 평판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녀들에게까지도 존경과 칭찬을 받지 못합니다. 고생을 하도 많이 하면서 어렵게 자수성가한 자신의 눈으로 볼 때 자식들의 모습이 눈에 차지 않기 때문에 사사건건 충돌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와 같이 오로지 자신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 가족이나 이웃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정신 없이 앞만 향해 달려오던 장영철이 폐암말기라는 사형 선고를 받은 후부터 옛날을 비로소 옛날을 찬찬히 되짚어 봅니다.
한 번은 자기가 옛날 아내에게 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극중 아내인 이미소는 자기 남편과 아이들 밖에 모르는 현모양처인데 항상 집안 일로 고생을 해서 어깨며 팔이며 파스가 떨어지지 않는 주부입니다. 어느 날 집안 일로 팔다리가 아프다며 남편에게 주물러 달라고 요구하자 남편은 기름걸레로 골프채는 정성을 다해 닦으면서 한 마디 툭 던진다는 것이 자기 건강은 자기가 챙겨야지 누구한테 부탁하느냐고 핀잔을 줍니다. 이제 불치병에 걸린 다음에야 자신이 얼마나 비정한 남편이었던지 깨닫게 됩니다.
「기적」이라는 드라마는 제목이 시사하듯이 장영철은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바르고 따뜻한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불치병을 치유하는 기적을 경험한다는 이야기가 주제가 아닌가 추측이 됩니다.
관계의 회복은 우리의 정신을 치료합니다. 또한 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야말로 영혼이 치료되고 건강해지는 길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곁에 오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절기가 바로 성탄절인 것입니다.
금년도의 성탄절은 우리의 인생이 바로 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웃들 앞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진정으로 맞이하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의 이웃을 미움과 질투에서 사랑의 관계로, 이용이나 질시가 아닌 섬김의 관계로 거듭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 성탄절은 구주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기쁜 날입니다. 영어 명칭인 크리스마스 (Christmas)는 그리스도께 드리는 예배(Christ mass)라는 단어의 줄임말로서 우리의 구주로서 성육신하여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 의식을 드리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성탄에 우리는 주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습니까?
일본의 옛날 이야기 중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집이없는 사람이 산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몇 일간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기진 맥진하여 쓰러졌는데 세 마리의 동물들이 달려왔습니다. 원숭이와 여우, 그리고 토끼였습니다. 기진맥진하여 쓰러진 나그네를 위해 무언가 도우려 했습니다. 원숭이는 나무에 올라가 과일을 따가지고 왔습니다. 여우는 생선을 잡아다 주었습니다. 토끼는 산을 뛰어다니며 나무를 주어다가 나그네 옆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 엎드리며 나를 구워드시라고 했답니다. 불에 타죽어가는 토끼를 보고 온힘을 다해 일어난 나그네는 죽어가는 토끼를 안아주었답니다. 그 순간 나그네와 토끼가 함게 환하게 빛을 발하며 달나라로 올라갔답니다. 그래서 달에는 토끼가 살게되었답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을 뜻을 우리에게 전하기 위해이지만 결국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그 분의 몸을 내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 분의 사랑을 느끼는 절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분의 사랑을 느끼는 절기가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해마다 이 크리스마스가 되면 한 몇 가지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생각나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입니다. 캐나다에 온테리오에 크리스챤 엘레멘트리스쿨에서 이 사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는 어느날 이 학교에서는 성탄, 소위 크리스마스 피젼 플레이라는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극 그 스타들을 그 배우들을 모집을 하는데 한 학생이 너무 너무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랄프라는 학생이였습니다. 4학년 학생이였는데 정서 장애를 갖고 있었든 학생이였습니다. 이 학생이 너무 너무 연극에 나가고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말도 더듬고 생각도 민첩하지 못한 어떻게 그가 연극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크리스챤 Teacher는,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랄프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배역을 하나 맡겼습니다. 아무래도 액션을 많이 하거나 말을 많이 하는 배역은 맡을 수가 없었나봅니다. 그래서 아주 가장 말이 적은 배역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여관주인 이였습니다. 예수님을 출산하기 위해 요셉과 마리아가 빈방을 찿을 때의 여관주인역활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를 가진 마리아를 데리고 요셉이 여관의 문을 두들겼을 때 이 사관주인이 하는 말, 한마디 말만하면 돼는 역활이었습니다. 그 대사는 '방 없어요’ 방 없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랄프라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열심히 연극 연습을 시켰습니다. 한마디 말이니까 정성스럽게 또박 또박 발음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방 없어요’ 그 말만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자, 그것을 세 번 하기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한번에 물러간 것이 아니라 '큰일났는데요 이 사람이 아기를 낳을 것 같아요. 어떻게 좀 봐 주세요’ 그러면 한번 더 '방 없어요’ 세 번 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자,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자, 연극을 지도했든 모든 분들은 숨을 죽이고 랄프가 어떻게 역할을 감당하는 것인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요셉이 마리아를 데리고 여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여관 문을 두드립니다. 주인이 나왔습니다. 랄프가 나와서 또박 또박 연습한데로 말을 했습니다. '방 없어요’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가지 않고 한 번 더 매달렸습니다. '큰일났어요 이 사람이 곧 아기를 낳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저에게 방 을 줄 수가 없나요? '방 없어요’ 한 번만 더 하면 돼요. '어떻게, 사정하겠습니다 이 추운데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곧 아기가 나올 것 같은데요’ 이 이야기를 듣자 갑자기 랄프는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말하기를 '그러면요 제 방 오세요’ 제 방으로 오세요.
연극의 약속을 깼어요. 그러나 그것은 숙연한 감동이였습니다. '제 방으로 오세요’. 누가 그리스도를 받아드릴 수가 있을까요? 이런 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오실 수가 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것이 크리스마스의 사건인 것입니다.
오늘 신약본문 1절과 2절에서, 예수님의 탄생의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로마의 황제인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제국은 물론 로마에 속한 모든 식민지까지 인구 조사를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인구조사의 목적은 정확하게 세금을 거두어들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일단 자신의 호적지로 가서 혼인으로 인한 새로운 가족의 출생이라든가 또는 다른 가족의 사망...... 그 동안의 변동상황을 신고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에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은 갈릴리 지방 나사렛이란 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본래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유대 땅 베들레헴이 있는 다윗의 동네로 마리아를 데리고 호적을 신고하러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들은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정혼한 사이였기 때문에 만삭이 된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일로 인해 마리아는 베들레헴 에서 예수님을 낳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이 때에 호적령이 내려지지 않았다면 마리아는 자신이 살던 나사렛에서 예수님을 낳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다면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의 탄생이 맞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이 때를 맞추어 하나님께서 로마 황제의 마음을 움직임으로 전국에 호적령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요셉으로 하여금 만삭이 된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 까지 가서 예수님을 낳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얼마나 정확하게 성취되는가를 다시금 보게됩니다. 예수님 이 탄생하기 약 700년 전에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미가 5:2~3절을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 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 에, 태초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한마디로 알기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메시아 로 이 세상에 오시는데 반드시 베들레헴에서 나오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할 당시에 유대 나라는 망하여서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더구나 불행하게도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는 어느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구약시대로부터 이제까지 그 많은 선지자가 메시아가 반드시 오실 것이라고 거듭해서 예언하였지만, 그 당시 사람 들은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 희미해 질 대로 희미해져서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거의 잊고 살았습니다. 이때를 가리켜 학자들은 영적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적으로 깜깜한 이때에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예루살렘에는 수많은 제사장이 있었고,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메시아 의 탄생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다 영적 소경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나타났을 때, 그 별을 보고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왔던 동방박사들만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고 했습니다(마 2:1~11). 그리고 그 밤에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천군천사가 전해주는 말을 듣고 베들레헴까지 가서 아기 예수님께 찾아와 경배하였다고 했습니다(눅 2:15~20).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고대하던 메 시아가 탄생하였지만, 막상 찾아와 경배한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동방의 박사들과 한 밤중에 양떼를 지키고 있던 몇 명의 목자들뿐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왕과 그 많은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탄생했다며 동방에서 부터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하는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고 했습니다 본문 7절을 보면 [마리아가 맏아들 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고 했습니다. 구유는 낙타나 나귀나 말의 먹이통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 마구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 리는 이를 통하여 그 당시 사람들의 고약한 인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젊은 여인이 산통이 있어 해산을 하려고 하는데 잠시라도 몸을 풀 수 있도록 방을 내어주는 사람이 그곳에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산모는 급한 나머지 마구간을 빌려 아기를 낳고 구유에 누일 수밖에 없었 습니다. 이 광경을 볼 때 참으로 그 당시 이스라엘의 인심이 얼마나 야박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우리의 이웃들에게 어떻게 행하며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만일 예수님을 해산하려고 마리아가 이 야마가타 땅에 나타나신다면 어떠했겠습니까? 우리가 평소에 사랑을 베풀며 살았다면 요셉과 마리아가 왔더라도 역시 사랑을 베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사랑을 베풀며 살지 않았다면 역시 영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머리에만 담아갑니다. 그 중에 몇몇 사람들은 마음속에 감동을 받아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순종하고 행하는 사람은 참으로 적습니다. 사랑만큼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이 이웃을 전도하기 원하십니까? 평소에 사랑을 많이 베푸시기 바랍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우리 모두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지역을 복음화 하기 위해서 우리가 행하며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데이빗 J. 리버만(David J. Lieberman)이라고 하는 분이 재미있는 책을 써서 온 세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나 에겐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런 책입니다. 영어로는 "인스턴트 어낼리시스(Instant Analysis)"라고 하는 책인데 이 책 가운데는 참 가짓수도 많습니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 일흔일곱가지를 지적해 놓았는데 모두 가만히 생각하면 일리가 있습니다. 다 나와 관련이 있는 얘기 입니다. 내게 향한 얘기입니다. 그 첫 장에서 "후 미(Who me)?" 그럽니다. 내가 누구냐? 그리고 일흔 일곱가지를 다 설명할 시간은 없기에 첫 번째만 보면 이렇습니다. 다른 사람이 실패할 때 은근히 나는 즐거워한다. 이건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또 마지막 일흔일곱번째는 뭐냐하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장을 바꾸지 않는다, 이게 마지막 소제목입니다. 잘못된 걸 알면서도 생각을 고치려고 하질 않습니다. 익숙한 것에 매여서 생각을 돌이키질 않습니다. 그게 망하는 길입니다. 자 우리는 깊이 생각 해야됩니다. 늘 소원합니다. 기도합니다.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소원이 현실화되어야 되는 데 소원은 항상 소원대로 두려고 합니다. 결정적인 허물입니다. 나에게 문제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메사아 익스펙테이션 (Messiah Expectation), 메시아 대 망사상, 그건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스라엘 믿음의 중심입니다.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 장소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장소, 그 베들레헴에 나실 거라고.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 어떤 사람들은 베들레헴에 가서 살았다지 않습니까.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다가도 진짜 메시아가 왔다 하니까 안 믿었습니다. 이게 인간의 결정적인 허물입니다. 그것도 예루살렘 그 누가 이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고 멀리 있는 동방박사가 찾아와 서 '여기에 메시아가 났을텐데 어디에 났을까요?' 저들은 성경을 연구 했던대로 '베들레헴입니다' 그래요. 베들레헴이라고 해서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으로 가게하고 난 그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합니다. 예루살렘은 소동을 했다고 그랬습니다. 메시아가 났다는데 소동하기만 하고 아무도 거기에 가지를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대망하던 메시아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했다고 하면 거기에 수 많은 사람들이 달려갔다고 기록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왜 그 기록이 없을까요? 소동하기만 하고 베들레헴으로 간 사람이 없어요. 엉뚱하게 헤롯왕은 메시아가 났다는 말만 듣고 당장 죽일 생각만 합니다. 오늘 여기 예수님이 탄생하신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잘못된 행실과 불신앙을 모두 버리실 수 있습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은 오늘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면서 실제로는 믿지 않는 이들입니다. 당신의 바리새인들은 도리어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습니까? 오늘도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교회를 욕되게하고, 예수믿는 진실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영적으로 어리석은 이들은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의 손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입니다. 왜요? 자신의 욕심, 거짓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잘 못된 생각과 잘못된 행실을 고치고 싶질 않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는 기다리면서도 오신 메시아는 영접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모순입니다. 여기에 아이러니가있습니다.
어느 돈 많은 홀아비가 외아들을 키웠습니다. 어머니 없이 키운 아들이었기에 금이야 옥이야 정성을 다해서 길렀습니다. 그러다가 나라 안에 전쟁이 일어나서 징집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전보 한 장이 날라 왔는데 외아들의 전사 소식을 알리는 비보(悲報)였습니다.
그 후부터 아버지는 외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평생 깨어진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아들을 잊지 못한 아버지는 유명한 화가에게 아들의 사진을 실물 크기의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해서 집 거실에다가 걸어놓고 밤낮으로 그 그림을 쳐다보았습니다.
드디어 부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홀 아버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이나 골동품을 모으는 수집광(蒐集狂)이었습니다. 유산을 물려줄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평생 수집해 온 세계적인 골동품들과 고가의 명화들을 경매 처분하는 날이 찾아 왔습니다. 전 세계로부터 최고의 골동품 감식가(鑑識家)들과 딜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경매를 시작하기 전 이 경매의 사회를 맡은 사람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주인께서 돌아가시기 전 몇 가지 규칙을 유언으로 정해놓으셨는데 제일 먼저 주인 아드님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부터 경매를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을 사시고 싶은 분은 앞으로 나오세요."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도 이 그림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고서는 이내 불평했습니다. "그 따위 그림은 집어치우고 유명한 그림들부터 경매합시다!" 하면서 빈정거렸습니다.
그러나 경매꾼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경매를 맡은 사람은 한 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아드님의 그림부터 경매 처분을 먼저 해야만 합니다. 100불에 경매를 하겠습니다. 누구 사실 분 없으십니까?"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는데 한 남자가 뒤쪽에서 손을 들었습니다.
그 남자는 세상을 떠난 주인의 종으로서 수십 년 동안 주인집에서 살면서 주인의 아들을 길러 준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100불은 큰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종은 주인의 아들을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그 그림을 자기가 꼭 보관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이 남자 이상으로 주인 아들의 그림에 돈을 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값어치가 많이 나가는 다른 골동품이나 그림에 관심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주인 아들의 그림은 100 달러를 건 주인의 하인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제 다른 골동품들과 명화들을 경매 처분할 것을 기대했던 군중들 앞에 경매를 맡은 지배인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경매에 와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경매는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돌아가신 주인께서 유언장에 남기신 또 다른 한 가지의 규정이 있는데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내 아들의 그림을 가지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머지 모든 것을 갖게 될 것이다'--'Whoever takes my son, gets everything.'"
그렇습니다. 오늘 아기 예수님을 사랑해서 그 아기 예수님을 여러분 마음 속에 모시는 분들은 누구든지 아기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아름다운 성탄절 아침에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을 유업으로 이어받는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사랑으로 우리 곁에 오신 임마누엘의 축복이 오늘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기를 축원드립니다.
첫댓글 크리스마스.. 부끄럽게도 그리스도께 드리는 예배라는 뜻이었다는걸 오늘 첨 알았네요.. 크리스마스를 입에 담을 때마다 그런 깊은 뜻을 항상 마음에 되새겨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