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과원에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모여든다.
참새, 찌르레기, 산비둘기, 박새, 오목눈이
등인데 그 중에서도 둥지를 틀며 정착하는
종류는 참새와 찌르레기이다.
찌르레기는 모양새가 별로 볼 폼이 없지만
목소리 하나만은 그래도
알아 줄만하게 요란스럽다. 가만히 소리를
들어보면 그 소리가 여간
다양하질 않다. 어쩌다 내가 제 둥지 근처에 가면
이리저리 어지럽게
날아다니며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처음엔 저 새가
왜 저리 호들갑을
떨까하고 의아해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저의
둥지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귤나무를 심기 전에 이곳은 가축들이나 놓아먹이는
목야지(牧野地)라서
종달새가 많았었다. 종달새는 둥지랄 것도 없이
잡초 사이에 알을 낳고는
사람들이 지나갈 때에 위험하다 싶으면 거짓 병신 노릇을
하면서 관심을 끈다.
그렇게 관심을 끌며 사람 손에 잡힐 듯한 거리를
두면서 도망을 친다.
그리고는 높은 하늘로 솟아오르고 안도의 노래를
부르곤 하는 것이다.
과원을 조성하려고 땅이 일구어지자 종달새들은 떠나버렸다.
그들은 광활한 들판을 필요로 하는 새들이니
어느 넓은 들판을 찾아갔을 게다.
그들이 살던 땅에 내가 그들의 둥지를 빼앗은 셈이 되고 말았다.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고 그런 거창한 뜻은 아니지만,
과원을 개원하면서
일하기 불편한 한구석은 예전 그대로 남겨 놓았다.
장비(裝備)가 좋은 때이니 그 곳을 일구는 것도 쉬운 일이지만,
부디 그 곳까지 없애버리고 싶지 않아서이다.
굴참나무 몇 그루에 댕댕이 덩굴이 얽혀있는
몇 평 되지 않은 조그만
공간인데도 다양한 식물들이 어우러져 있다.
봄이면 방울방울 꽃 초롱이
들려있는 둥굴레가 포기를 이룬다. 여름철이면
그 위를 붉가시나무가 넓은
잎으로 덮어주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놓는다.
그 밑에 남색 빛깔의 박새들도
쫑알거리고 때까치들도 모여든다. 언제부터인가 오목눈이가
제법 그곳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관심을 두지 않을 때에는 볼 수 없었던 정경들인데,
그들이 내 곁에서
둥지를 틀고 있는 그런 일들이 참 신기하기도 하다.
쉽게 그들의 둥지들이
눈에 띄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비어 있는 둥지들을
보노라면 흐뭇해지기도 한다.
올망졸망한 새끼들을 그 둥지에서 키웠을 것을 상상하고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그들의 삶에 내가 많이
동화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좋은 일만 있을 수 없음인지,
요전에는 걱정거리가 되는
둥지를 보게 되었다. 찌르레기 둥지 같은데 알이
부화되지 않은 것이다.
네 개정도의 알을 본지가 꽤나 오래 되었었다.
그래도 못 본 체 하고
며칠을 지나다가 궁금하여 확인해 보았더니
마른 나무 잎들만 둥지에
어지럽게 덮여있는 것이었다. 알에는 온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날짜를 계산해보아도 부화되고도 남을 날짜이다.
어떤 이유에선가 어미 새들이
이미 둥지를 포기하였거나 무슨 변고를 당한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둥지를 포기했다면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내가 너무 기웃거려서 그랬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지만 그럴만한 이유는 못된다.
늘 내가 둘러보는 곳이고
때로는 곁에 나무를 손질하거나 여러 작업을 하는
곳이니 그만한 일들은 이미
익숙해진 새들일 것이다. 그 곳에 둥지를 틀만한
배짱이 있는 새이니 사람들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았음직도 하다.
처음에 둥지 속의 완두 콩알보다 조금 큰 얼룩한
새알들을 보았을 때 그 설레임은 대단한 것이었다.
예전에도 둥지에서 눈도 뜨지 못한 조그만 병아리
새들이 입을 쪽쪽 벌리고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적이 있었기에,
이 번에도 그 좋은 구경거리를 보게 되었구나 좋아하고 있었다.
내가 그 둥지에 신경 쓴 것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둥지가 있는 나무는 아예
가지 고르기도 하지 않으면서 그 곁을 지나칠 때에는
그들이 놀랄까 천천히
조심스레 다니곤 했었다.
온기도 없는 싸늘한 새알들을 보게되니
여간 서운해지는 것이 아니다.
알이 있는 여문 둥지를 볼 때마다 속이 편해지질 않는다.
둥지를 떠나지 못하는 새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하지만 아직은 어미 새가 돌아올 날을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 볼 참이다.
내 과원을 둘러볼 때에 빈 둥지가 보이면 거기에
아련한 추억이며 미래로
뻗어지는 여러 가지 상념들이 가슴을 젖게 한다.
고것들이 지금쯤은 어느 만큼이나 자랐을까,
그 둥지를 비워내기까지
어미 새들은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그러고 보면 그들의 부르던 노래도
즐거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언뜻 무료할 것만 같은 내 과원에는 들여다보면
다양한 조화 속에 많은
애환들이 있다. 새들이나 여러 곤충들의 한살이도 그렇고,
풀과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일 년 중의 그 변화들을 보면 놀라운 일들 뿐이다.
봄철이 그렇게 요란한 것도 잠시이고, 금새 여름이고 그냥 가을이고
겨울로 넘어가 버린다. 세월이 굽이 져 갈수록 아무렇게나
지저귀는 듯한 새소리,
작은 풀 잎새 하나도 예사롭지가 않다.
빈 둥지는 언제인가 비워질 내 집 같기도 하다.
내 곁을 떠날 차비를 하는
아이들을 물끄럼히 바라보아지는 날이면
'저 놈들이 어느새.......' 하고
대견함일까, 나와 멀어지는 아쉬움일까,
목까지 차 오르는 그 무엇이 있다.
내가 제 둥지 가까이에 있을 때 안타까운 듯이
소리지르던 그 새들도
둥지를 떠나려는 새끼들을 보며 이런 심정들은 아니었을까.
그들이 살다간 빈 둥지에 적막이 드리워지면
쓸쓸하고 허전함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 더 많은 둥지를 지을 것이고
그들의 고운 노래를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줄 상상에 내 마음은 풋풋해지기도 한다.
못내 알을 깨지 못한 둥지 하나가 마음에 옹이로 남아 있지만
언제인가 그들도
하늘 높이 날아 오를 날이 있을 거라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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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문학서재에 있는 것을 잠시 옮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