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4일
결혼기념일
경주로 여행을 떠났다. 오랜만에 결혼기념일에 여행을 왔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서툴게 엄마 아빠 노릇에 우왕좌왕 거리며 아이들 키우느라 단둘이 여행 간다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을 때도 여행보다는 서로 축하하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보냈다. 주말부부로 지내면서 기념일을 함께 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28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보냈다. 곁에서 서로 친구가 되어주었다. 서로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경주에서 핫 플레이스로 뽑히는 황리단길을 걸었다. 경주 황남동과 이태원 경리단길이 합쳐진 단어이다. 황남동의 경리단길이라는 뜻이다. 황리단길은 1960~70년대의 낡은 건물 등이 그대로 보존이 되어있다. 휴일이고 화이트데이라서 젊은 친구들이 많이 보였다. 옷차림도 가볍고 손에 꽃다발을 든 연인들이 꽃처럼 웃으며 걷는다. 우리도 사람들 대열에 끼어서 손잡고 데이트를 했다.
봄볕을 맞으며 걸었다. 28년을 함께 살았어도 아직도 연애하는 기분이다. 오랫동안 주말부부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볼 때가 많았다. 주말마다 보는 것은 여러 여건상 어려운 일이었다. 떨어져 지내서인지 여전히 연인처럼 나를 설레게 한다. 교촌마을에서 말랑말랑한 인절미도 사고 경주법주 한잔 얻어 마시고 불국사를 갔다. 봄에 취하고 약주에 취해서 초등학교 때 친구랑 손잡고 사진 찍던 청운교 백운교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불국사 앞 소나무는 여전히 비스듬히 지지대에 몸을 의지한 채 힘겹게 반겨준다. 불국사 경내를 둘러보고 주변 벚나무 공원을 걸었다. 벚꽃이 필 때쯤 다시 오자고 약속을 했다.
코로나로 세상이 어지러운 탓에 많은 것을 접고 자동차 데이트를 즐겼다. 바닷가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와인도 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자동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봄 바다를 감상했다.
감포 바닷가를 걸었다. 봄이 오는 바다는 겨울 바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포근하고 감미로운 음악을 듣는 기분이었다. 감포 회 센터에서 생선회를 포장했다. 아이들과 술 한잔하면서 축하 파티를 하기로 했다. 큰아들이 케이크를 사 왔다. 작은아들은 분홍 하트 상자에 초콜릿을 가득 담아서 축하를 해줬다. “엄마 아버지의 아들임이 다행이고 행복하다”라는 짧은 편지를 받았다. 엄마도 너희들이 아들로 와줘서 정말 행복하다. 해마다 화이트데이에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프러포즈를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