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서 빌려서 1주일 동안 읽었습니다. 집에 있는 책들을 어느 정도 알뜰하게 일독을 하고 나면 가급적이면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1권부터 350번대 정도까지는 세트로 구입해서 책장에 꽂아 놓았는데 사 놓은 것들은 그래도 일독씩은 했답니다.
책은 사 놓으면 책장에서 일종의 빚쟁이처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날 언제 읽어줄거니?'하고 말을 건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읽게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기 수입의 10% 정도는 책을 사든지 자기 성장을 위한 학습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질적으로든 양적으로든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학창시절에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이루어져야 할 과제라고 봅니다.
오르한 파묵은 대단한 이야기꾼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인생>,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하얀 성>은 민음사 전집으로 번역되어 있어서 읽었었고 이번에 읽은 것이 그의 성가를 가장 드높인 것으로 알고 있는 < 내 이름은 빨강>입니다. 그러고보니 그의 책들은 아직 읽지 못한 <검은 책>까지 포함하면 색을 제목으로 담고 있는 것들이 많군요. 파묵은 오스만 투르크의 역사 속에서 소재를 찾아내어 허구적으로 풀어내는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파묵과 마찬가지로 노벨상 수상자라는아우라를 품고 있는 욘 포세의 작품을 하나 둘 읽게 됩니다. <멜랑콜리아>는 '우울'이라는 뜻이지요. 포세의 작품은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비참한 한계를 직시하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삶을 긍정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킵니다. <3부작>에 나오는 '잠 못 드는 사람들'의 궁지에 몰린 처지는 토마스 하디의 <이름 없는 주드>의 그것과도 유사합니다. 포세의 또 다름 작품 <보트 하우스> 역시 우울한 영혼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이번에 읽은 <멜랑콜리아>에는 실존 인물이지만 서사적 허구로 재탄생한 라스 헤르테르비그라는 화가와 그를 둘러 싼 동시대와 후대의 인물들의 우울이 여러 겹의 무늬를 이루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올리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인공은 이해하기 어려워도 애정을 지닌 누이의 마음을 통해 우리가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봅니다. 그건 연민과 사랑이지요. '올리네'의 늙음과 소멸 과정은 또 다른 작품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 한 사람의 삶이 이 세상에서 떠나가는 순간 얼마나 많은 자잘한 파장을 남기는지, 그리고 고요해질 수 있는지를 유사하게 생각하게 합니다. 제가 보기에 욘 포세는 고타마 싯달타가 인간의 생로병사를 목격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길을 묻듯 글쓰기를 통해 그 길을 묻는 순례자처럼 보입니다. 그는 진지합니다. 저 역시 그런 독자이기를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