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선택에 엇갈린 운수… ‘의형제’로 손잡아
태조 이성계와 개국공신 활약관직 내려온 후엔 불교에 귀의
이지란(李之蘭·1331~1402)은 원나라 간섭기에 함경도 북청주군 건주여진족 촌에서 태어나 조선시대 동북면 함주군 함흥목에서 72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고려 거류 여진족 출신으로 고려 말기의 무관, 조선 시대 개국공신, 무신, 정치가, 시인이며 만년에 불교 승려가 된 다양한 삶을 살았다.
본관은 청해(靑海), 처음 성씨는 퉁(?), 초명은 쿠룬투란티무르, 자는 식형(式馨), 남송 악비(岳飛)의 6대손이다. 여진의 금패천호(牌千戶) 아라부화의 아들이다. 혜안택주 윤씨(惠安宅主 尹氏)와 첫 번째 혼인을 했고, 조선 태조(朝鮮 太祖)의 2번째 왕후인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의 친정 조카딸인 군부인 강씨(君夫人 康氏)와 두 번째 혼인을 했다. 이성계(李成桂)는 그의 처고모부다. 이성계보다 4살 위인 이지란은 의형제(義兄弟)를 맺어 동생이 됐다. 나이 많은 관우(關羽)가 한황실(漢皇室)의 적통인 유비(劉備)를 형으로 모셨듯이, 이지란도 왕기(王氣)가 서린 이성계를 형으로 섬긴 것이다.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 사이로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점쟁이가 있어서 점을 쳤다. 이성계를 본 점쟁이가 “글자를 짚어라”라는 말에 ‘問’ 자를 짚었다. 이것을 본 점쟁이가 “왼쪽으로 봐도 임금이고 바른쪽으로 봐도 임금이구나. 당신은 다음에 임금이 되겠소.”라고 했다. 그러자 이지란은 이성계의 복채(卜債) 두 배를 주고 역시 ‘問’ 자를 짚었다. 점쟁이가 이지란의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문 앞에 입이 달렸으니 이 빌어먹을 것아, 천생 얻어먹을 복을 타고났다.”고 했다. 이것은 거지 팔자를 말하는 것이다. 똑같은 글자를 짚었는데 한 사람은 임금이 된다 하고, 한 사람은 거지가 된다고 하니 이지란은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때 이성계가 달래면서 제안해 두 사람은 의형제가 된 것이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하루는 이성계가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 이지란이 이성계를 향해 활을 쏘았다. 이성계가 별안간 ‘?욱’ 하고 화살 소리가 나서 손을 내밀어 화살을 잡았다. 이를 본 이지란은 이성계 앞으로 나가 자신의 잘못을 빌었다고 한다. 결국, 둘은 손을 잡고 나라를 건국해 이지란은 개국공신이 됐다. 태조 이성계가 보위에서 물러난 후에도 정종을 섬기고 관직을 지내며 1399년 문하시랑평장사에 보임됐다. 1400년 태종이 즉위한 지 얼마 안 돼 문하시랑평장사를 끝으로 관직을 사퇴하고 함흥으로 낙향해 형 태조를 시종하는 일을 맡았다.
이때 여러 전쟁터에서 많은 인명을 죽인 것에 대해 속죄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자신의 자(字)이기도 한 식형(式馨)을 법명(法名)으로 불교 승려가 됐다. 후손들이 고향인 중국 청해성(靑海省)을 본관으로 해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청해 이씨는 외국에서 귀화한 이른바 원조 다문화 가족이다. 그의 아들 이화상(李和尙)과 이화영(李和英)은 아버지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이 됐으며, 고위직에 진출하는 등 가문의 기틀을 마련했다.
현재 청해 이씨는 3713가구 총 1만2002명이 있는 것으로 돼 있다. 드라마에 묘사되는 이지란은 우직하고 단순한 성격같으나, 이 분의 섬세하고 인간미 넘치는 일화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