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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의 막내, 충주호를 돌아 드는 옥순봉, 구담봉에 오르다
1. 일자: 2015. 6. 27(토)
2. 장소: 구담봉(338m), 옥순봉(283m)
3. 행로 및 시간
[계란재(08:47) -> 삼거리(09:11) -> 전망봉/식사(09:33-53) -> 옥순봉(09:58) -> 삼거리(10:20) -> 구담봉(10:44) -> 삼거리(11:05) -> 계란재(11:34)]
< 구담봉, 옥순봉 산행을 준비하며 >
대간 11기와 함께 하는 점봉산도 윤대장님의 설악 ‘의리’산행도 속초 일원에 내려진 기상 특보로 물거품이 되었다. 비록 산행은 취소되었지만 모처럼 단비로 해갈에 기뻐할 농민과 식수난에 영업까지 단축해야 할 속초 친구를 생각하면 마음은 오히려 편해진다. 토요일 산행조차 포기해도 좋으니 비가 더 내려주기를…
대체 산행지를 찾아 나선다. 안내산악회에서는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모처럼 차를 가지고 토요 산행을 나설 계획이다. 일단 예전 만지작거리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충주로 부근 산엘 가려 한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산에서 굽어보는 호수 전경은 늘 근사했다. 월악산에서 본 충주호, 추월산에서 본 담양호, 명성산에서 본 산정호수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쉬운 건 이들 모두가 먼 거리에서 아스라한 풍경이었다는 점이다. 봄부터 시작된 오랜 가뭄에 온 나라가 타 들어 가고 있지만, 어제 내린 단비로 조금은 촉촉해진 여름 산과 푸른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이 가까이서 보고픈 마음에 이번 주 산행 장소로 충주호를 에워싼 구담봉과 옥순봉으로 정했다. 지도를 살피니 봉우리 바로 밑이 물이다. 시간과 컨디션이 허락한다면 제비봉도 올라볼 생각이다.
등산 잡지에 게재된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 본다. 단양팔경에 빛나는 호반의 절경이 눈 길을 길게 머물게 한다. 옥순봉은 희고 푸른 여러 봉우리가 죽순이 돋아나듯 우뚝우뚝 솟아있다 하여 이름 붙여 졌는데, 그 이름처럼 남한강 위로 솟아오른 봉우리가 특이하고 아름답다. 구담봉은 절벽 위에 바위가 거북의 등을 닮아 불리게 되었다는데 이곳에서 보는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펼쳐지는 장엄한 기암절벽이 절경이다.
가야 할 길을 조심스레 살핀다. 계란재에서 출발하여 367봉 삼거리에서 옥순봉 왕복, 구담봉 왕복 코스다. 특이한 것은 안부 삼거리의 높이가 옥순봉과 구담봉보다 높다는 것이다. 예전 적상산 향로봉 전 삼거리에서 경험한 한 지점을 네 번 밟는 특이한 경험을 이번에 또 하게 될 것이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살피며 길의 대강을 정리해 본다. “먼저 오를 옥순봉, 정상에 서면 산자락을 휘감고 있는 충주호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마치 외딴 섬에 온 기분이다. 옥순봉에 이어 향한 구담봉 길은, 372m봉으로 돌아와 갈림에서 동쪽 급사면을 횡단하게 된다. 수직 절벽을 이룬 구담봉에서의 조망도 막힘이 없어 훌륭하다. 구담봉을 에워싼 풍경은 충주호 전망 중에서도 으뜸이다.” 백문이불여일견 이라 했다. 직접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해 볼 일이다.
< 희망사항 >
예전 산행준비 기록과 새 정보를 바탕으로 가야 할 길의 대강을 머리에 넣었다. 3년 전, 산행 준비를 마치고도 미국 출장으로 아쉽게 마음을 접었던 때가 기억난다. 당시 푸르른 계절의 사진들 속에서 겨울 산의 풍경을 그렸었다. ‘녹음이 희고 누런 빛으로 변했을 뿐 도도한 물빛과 물 길을 돌아드는 나지막한 산봉우리들의 형상은 그대로이다. 제비봉에서 본 풍경이다. 눈이 물 길을 따라 가다 높은 산을 만난다. 끊어질듯한 물의 흐름은 좌측으로 물길을 낸다. 그 뒤로는 산들의 파노라마가 이어지고… 아무래도 안되겠다. 옥순봉, 구담봉에 이어 제비봉도 올라야겠다. 출발 시간을 조금 당기고, 점심은 산에서가 아니라 제비봉 들머리 음식점에서 먹어야겠다. 차로 이동한다면 12시 어름에 제비봉 산행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먼 거리를 달려 3시간 남짓만 산행을 하는 건 영 성이 차질 않는다.’2012년 1월 어느 날의 단상이다. 시간은 참 빠르게 흐른다. 이젠 여름날에 겨울의 구담봉을 마음 속에 그려야 하나? ㅋㅋ
단비에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차분한 마음으로 토요일 아침을 기다린다.
< 충주호 가는 길에 >
예상보다 길이 멀다. 평촌에서 옥순봉 들머리 계란재까지는 200km 거리다. 그래도 집을 나서는 마음은 가볍다. 어제의 비는 일기를 초가을로 돌려놓았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 사이로 간간이 비취는 햇살이 강렬하다. 구름이 걷히면 날은 무척 맑을 듯하다. 아침 공기는 청명하고 시원하다. 등산하기 딱 좋은 날씨다.
중간에 길을 잠시 잘못 들었지만 들머리에 서니 아직 9시가 되지 않았다. 행장을 준비하고 입산한다.
< 계란재에서 옥순봉 >
등로의 초입은 콘크리트 포장이 된 널찍한 도로다. 길 너머에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산 길을 포장해 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시멘트에 닿은 발바닥 감촉이 거북스럽다. 800미터 정도 오르막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서니 널찍한 공터에 웬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조잡한 메뉴 판이 붙어있다. 국립공원 내에서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가 포장된 사유가 이것이었다면 국고의 낭비다. 하여간 공터를 지나며 본격적인 산 길이 시작된다. 비로서 발이 평화를 얻는다. 산에서의 포도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독이라 여겨진다.
출발 25분 만에 이정표 삼거리에 도착했다. 아마도 이곳이 옥순봉과 구담봉보다는 고도는 높다는 367봉 삼거리인가 보다. 옥순봉은 좌측으로 0.9km, 구담봉은 우측으로 0.6km 거리에 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옥순봉으로 향한다. 이제부터 진짜배기 산길이리라. ^^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좌측으로 입산금지 표지가 여러 보이고, 우측으로는 곳곳에 작은 바위 전망대가 나타난다. 벼랑에 서면 충주호와 인근 산의 전망이 드러난다. 물 빛은 녹조가 낀 누런빛이라 그리 감동적이지 않다. 평소에 비해 수량이 턱 없이 부족한 호수는 근근이 오랜 가뭄을 이겨가고 있는 흔적이 엿보인다. 곧 장마가 시작된다 하니 예전의 모습을 곧 되찾으리라 믿는다.
< 옥순봉 오르며 본 충주호와 인근 월악산 주변 풍경 >
옥순봉이러니 하고 우측 바위봉우리에 오른다. 멀리서 보면 진짜 거북 등 같아 보일 듯 하다. 너른 반석 위에 서니 옥순대교와 주변 풍경이 근사하다. 화려한 호반 풍경에 눈이 번쩍 뜨인다. 주변은 온통 산과 호수가 만들어낸 풍경으로 화려하다. 높지는 않지만 암릉이 만들어내는 절벽은 위압적이다. 소나무 그늘 밑에 앉아 간식을 먹는다. 이보다 더 훌륭한 식당 터가 또 있을까 싶다. 호수 풍경을 반찬 삼아 성찬을 즐겼다. ㅎㅎ
< 옥순봉 전망봉에서의 풍경 >
암릉과 호수가 어울리진 풍경을 한참 동안 감상하다 구담봉으로 향하려 하는데 반대편 봉우리에서 사람 소리가 들린다. 올려다 보니 여기보다 더 높은 봉우리다. 오를 땐 존재를 감지 못했던 곳이다. 늘 눈에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는 주의력 부족으로 하마터면 진짜 옥순봉엔 오르지도 못하고 구담봉으로 향할 뻔했다.
길을 튼다. 암봉을 기어오르자. 나무로 만든 옥순봉 정상 표식이 있고 주변 풍경은 밑에서 보다 더 화려하다. 아! 이곳이 진짜배기다. ^^
< 돌과 풀의 조화 / 암릉과 호수의 조화 >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산꾼들의 단체사진을 찍어주고 덤으로 내 사진도 부탁한다. 출발 전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옥순봉의 매력은 충주호를 바로 내려다 보는 놓임새에 있었다. 주변에 풍경이 화려하다 보니 굳이 품새가 크고 높지 않아도 명산 반열에 오른 게다. 한참이나 주변을 둘러본다. 조금 더 올랐다고 옥순대교는 저 만큼 멀리 있다. 그 뒤로는 멀리까지 충주호의 물 길이 조망된다. 이곳에 오길 잘했다. ^^
< 옥순봉 정상에서의 풍경 >
< 옥순봉에서 구담봉 >
왔던 길을 돌아 내려온다. 그 사이 산꾼들이 몰라보게 늘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산객들의 소리가 소음 수준으로 다가온다. 다시 대세 오르막 길을 올라 삼거리에 도착한다. 구담봉까지의 거리는 옥순봉보다 300미터가 짧다. 금방이겠지 하며 구담봉으로 향한다.
작은 언덕을 오르자 구담봉의 전모가 드러난다. 시원하게 뚫린 암릉 길을 내려서고 다시 올라서며 이곳이 구담봉이면 너무 밋밋한데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멀리 철계단을 힘겹게 내려서는 사람들이 보인다. 트랭글은 아무 소리도 없다. 맞다, 구담봉은 한참을 더 가야 한다. 구담으로 향하는 600미터는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다행이다. 이제 몸이 좀 풀리려 하는데 벌써 끝나면 이곳까지 기름 값이 아깝다. ㅋㅋ
< 구담봉 가는 길 풍경 >
난간과 암릉을 조심스레 내려서자 긴 계단이 앞을 막고 있다. 직벽 수준이다. 겁을 먹은 아주머니들로 등로가 분주해진다. 묵묵히 내 갈 길을 간다. 겨울 구담봉 산행을 위험하다 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종아리에 묵직한 느낌이 좋다. 계단의 끝, 구담봉 정상석이 날 반긴다. 뒤편으로는 장회나루가 바로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주변 풍경이 옥순봉보다 더 호쾌하다.
전망대 난간에 선다. 곳곳에 흙을 드러낸 호수가 보인다. 마음이 아러온다. 빈 선착장에는 유람선도 없다. 장회나루 뒤편으로 제비봉이 보인다. 옥순/구담봉과는 차원이 다른 높이다. 오르는 길도 험악해 보인다. 기온이 빠르게 오른다. 이 더위에 제비봉엘 또 오르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다음에 와야지 하고, 현실의 힘겨움을 피한다. 그 다음이 또 언제가 되려나. ^^
< 구담봉에서 본 풍경 >
다시 철계단에 당도한다. 이번엔 내림이다. 그리곤 암릉을 치고 오른다. 내려설 때 보다 더 먼 느낌이다.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하다. 같은 길도 마음 상황에 따라 다르게 와 닿는다. 봉우리에 올라 주위를 바라본다. 우측으로 ‘거시기’ 모양의 오묘한 바위가 떡하니 서 있다. 직감적으로 ‘아, 너무 닮았다.’하는 탄성이 나온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나만의 건 아니었다 보다. 인근을 지나던 객들도 같은 생각인가 보다. 서로 사진을 찍어준다. 이 사진은 나중에 어디다 써 먹을까? 산에서도 엉큼한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ㅋㅋ 하여간 기묘한 바위로 인해 암릉 오르내림에 대한 긴장감은 쑥 들어간다.
삼거리에 당도했다. 이제 짧은 하산 길만 남았다. 터벅터벅 길이 짧아 아쉽다는 마음과 그래도 볼 껀 충분히 다 봤는데 뭐 하는 생각이 공존한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이쯤에서 만족해야겠다. 날이 좋아 기대보다 훨씬 더 화려한 풍경을 보지 않았던가?
내림 길, 과연 휑한 비닐하우스에 산객들이 드나들까 하는 내 생각은 틀렸다. 제법 많은 이들이 비닐하우스 안에 있나 보다.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크다. 그들 나름의 삶의 방식이니 굳이 내 잣대로 판단하지 말아야겠다.
< 거시기 바위 앞에서 / 장회나루에서 본 구담봉 풍경 >
< 에필로그 >
예상대로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짧지만 화끈한 산행이었다. 날머리에 서니 제비봉 생각은 더 안으로 들어간다. 장회나루에 가서 매운탕으로 식사나 하고 귀경해야겠다. 문뜩 점봉산 대신 소백산 간 이들은 날이 좋아 참 멋진 산행을 했겠다 하는 생각과 설악이 취소된 이들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하는 괜한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박스 구해 다음 주말 속초 친구 만나러 갈 때 가져갈 책이나 정리해야겠다. ㅎ
< 옥순봉, 구담봉 산행 궤적 >
첫댓글 좋아요. 좋아.
호수를 낀 산은 풍광이 좋아 기대 이상입니다. 함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