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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4일(목) 대림시기에 일일피정이 있었습니다.
차동엽(로베르토)신부님의 말씀특강과 윤민재(베드로)신부님의 말씀과 특강미사와 치유안수기도가 함께 하였습니다.
1부 대림특강 ; 말씀위에 짓는 믿음의 집 - 차동엽(로베르토신부님)
가장 최근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대전교구주일 강의를 갔다가 본당신부와의 대화 중에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본당신부 안식년 중에 배낭여행을 심하게 37개국을 돌았다고 합니다. 중간에 6번 비행기를 놓치고, 죽을 고비를 4번 넘겼다고 합니다. 그 신부님은 용기 있고 건강한 체구인지라. ‘강도를 만났냐?’고 했더니 신부님 말씀 ‘내가 강도 같은데?’. 내용은 스페인 시골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합니다. ‘무섭지 않았냐?’ 그랬더니 ‘무서운 생각이 들 정도면 아직 살 만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 여러 번 겪으면 세상에 무서움이 없어집니다. 엄청난 체험입니다. 그 이후 어떤 상황에서도 무서움이 안 생깁니다. 그야말로 ‘아무 걱정 없어유’ 이제 그 신부님은 신자 사목에서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신자들이 일을 하지 않아도 ‘아무 걱정 없어유’ 무서움이 있다는 것은 아직 살만하다는 것입니다. 암으로 돌아가신 어떤 신자의 어머니가 용서하지 않는 이가 있었는데 끝내 용서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여러 번 종용을 하니, 어머니는 ‘이 상황에서 용서가 무슨 소용이여’. 어려운 상황, 너무 큰 절대 앞에서는 기쁨도 즐거움도 미움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집착, 희로애락이 의미가 없어지고 용서도 저절로 놓아지는 것이 우리의 마지막입니다. 미리부터 놓아지면 남은 생이 평화롭지 않을까요? 마음 편하게 ‘아무 걱정 없어유’ 가 필요합니다.
젊어서 아프면 늙으려고, 늙어서 아프면 죽으려고, 죽으면 천당 가는 것인데 뭐가 걱정인가요? 성복성당 사목어에도 있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우리는 고생하며 짐을 지면서도 오래 살아왔습니다. 비법이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의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이 대목을 잘 알아야합니다. 멍에를 왜 메라고 하는 것일까요? 이것이 비밀입니다. 식당에서 온유한 사람은 ‘아무거나’ 우유부단하게 말하지만 실은 ‘너가 먹고 싶은 것을 내가 먹어 주께’ 라고 말해야 합니다. 온유는 너의 뜻을 받아 주는 것입니다. 순명이 바탕인 것입니다. 겸손은 온유와 이웃입니다. 수고와 무거운 짐이 멍에가 됩니다. 내 희망대로라면 멍에가 됩니다. 스스로 멍에를 통과하면 온유가 되고 주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짊어준 것이니 아버지의 뜻대로, 소의 멍에를 소가 지는가요? 결국은 주님 뜻대로 해야만 멍에가 내려옵니다. 마음 편히 주님께 맡기면 가벼워집니다. 온유의 기도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일상의 온갖 잡념에도 잠들기 전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 난 몰라요. 그냥 잘래요.’ 이것이 주님께 맡기는 기도입니다. 하느님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자기 짐을 자기가 지려고 하는데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의 역할입니다.
올해 정리할 것 하나가 교황님의 메시지입니다. 우리에게 세 가지의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기억하라, 희망하라, 증거하라’
1.기억하라 ; 과거의 자랑스러운 신앙의 전통을, 한국 신자들 스스로가 학자들이 신앙을 받아들였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은총의 기억을 하십시오. 과거가 정말 은총이었나? 모세는 ‘기억’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모세 말년에는 교육에 집중했습니다. 신명기에 기록이 되었지요. 신명기는 교과서였습니다. 여기서 40여년 광야생활에서 하느님은혜를 기억하고 잊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40년 광야생활은 요즘 여행과는 다르지요. 민족의 대이동은 고생 중에 고생입니다. 민족의 대이동은 야훼하느님께서 특은으로 주신 은총의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모세는 고생과 시련 중에 받은 은총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해를 영성적으로 깨달은 바를 기억해야합니다.
하느님은 개입에도 역사의 법칙이 있습니다. 부족하고 모자라고 힘든 사람에게 동행하고 역사하십니다.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에게는 거절당하고, 가장 어려운 시기가 하느님이 가까이 있는 시기였습니다. 꼭 달라붙어 계셔 주십니다. 2014년은 더 가까이 오신 한해입니다. 과거는 은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등4학년 고향 서신에서 서울 산동네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북출신인 아버지는 공무원생활을 접어야 했고 쌀가게를 시작하셨습니다.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와 군대 간 큰형과 권투한다고 집나간 작은형 아래 저는 아이가 질 수 있는 지게를 만들어서 어머니를 도와 연탄배달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망했지요. 고등학교 등록금은 없지요. 대학을 가기 위해 장학금을 주는 공고를 다녔고 서울대에 입학했습니다. 자라면서 늘 모자라고 부족하고 늘 궁핍이 있었습니다. 에너지나 경제에서나 모든 것에서. 유복하게 남아도는 것이 있었다면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저의 빈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하느님이 오시고 싶은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과거는 은총입니다.
2. 교황님의 두 번째 메시지는 희망입니다. 절망을 다 겪은 백전노장이 파악한 희망입니다. 이것은 처절한 주문입니다. 당신의 역사가 그러합니다. 아르헨티나는 슬픔의 나라입니다. 빈민의 나라입니다. 영적으로 허물어진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슬프다는 소식은 모두 바티칸으로 매일 아침 접수되어 읽으십니다. 논리적으로는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끼리 답을 청하지 말고 하느님께 청하면 도와주십니다. 그것은 약속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핵심적인 금맥은 ‘약속’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약속을 읽어내야 합니다. 학교선생님은 성경에서 잔소리꺼리를 찾아 낼 것이고 어떤 학자는 딴지 꺼리를 찾아냅니다. 그래서 은혜를 입지 못합니다.
영성가들은 약속의 말씀에 밑줄을 쳐야 합니다. ‘불행의 날에 나를 불러라. 나 너를 구하여 주고 너는 나를 공경하리라’(시편50,15) 이것이 전형적인 대표적인 약속의 말씀입니다. 인생에서 한 구절만 찾으시면 인생이 바뀝니다. 인생이 달라집니다. 끝까지 매달려 있어야 승리합니다. 신자들은 불행이 닥치면 어떻게 하시나요? 평균적으로 형제님들은 포장마차에서 세상 친구를 부릅니다. 인생이란 운 때가 있어야 한다고 이곳저곳에서 현혹된 일을 하다가 돌다가 성당으로 찾아갑니다. 하느님은 기도내용만 듣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왔는지 참조하십니다. 돌다가 온 사람, 그날 아침 곧 바로 달려와 무릎 꿇는 사람을 보십니다. 돌다가 오면 훈육을 한 후 응답을 주십니다. 곧 바로 온 사람에게는 곧 바로 응답해 주십니다. 이것을 확인하셔야 합니다. 하느님은 질투가 많으십니다. 최강자, 유일한 해결사이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항상 첫 번째 마음, 첫 번째 순서, 첫 번째 시간을 마련하시고 차지하시게 하시면 주님께서 잊지 않으십니다.
약속을 활용하는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빈 종이에 제목을 씁니다.
‘영적약속어음’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0~11)
시편 50장 15절은 필수입니다. 5개나 그 이상을 적어 두시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약속어음으로 기도합니다. 뒤로 갈수록 힘이 없어지는 기도는 약속어음 없이 하는 기도입니다.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약속의 주님, 약속을 지킬 것을 믿나이다. 뒤로 갈수록 힘이 생깁니다.
성탄절은 신학적으로 교환의 은총입니다. 주님은 아무래도 갑이고 우리는 을입니다. 근데 주님의 자비가 우리를 갑으로 만드시고 주님이 을이 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분이 사람이 되어서 우리를 데려 가시려고 내려 오셨습니다. 당신이 비천해져서 양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없어서 굶주리는 것입니다. 경제가 꼬이면 영적인 것이 꼬입니다. 지혜가 꼬이고 영이 꼬여서 경제가 꼬입니다.
‘주님께서는 영혼을 들이 높이시고 눈을 밝혀주시며 치유와 생명과 복을 내려 주신다’ (집회 34.20)
‘이집의 새 영광이 이전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하까 2,9)
이집트종살이, 바빌론종살이 두 번의 종살이 이후 초토화된 상태에서 첫 번째는 성전재건이고 두 번째는 에즈라 대사제가 말씀봉독을 시작하셨습니다. 이전에는 성경이라는 책이 없었지요. 두루마리 읽어 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집안이 일어나는 공식입니다. 먼저 가정제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중심의 삶의 시작입니다. 아이들에게 아침에 주모경, 자녁에 주모경 이것이 시작입니다. 이집에 새 영광이 이전의 것보다 더 크리라. 이것이 정석입니다. 예외가 없다는 말입니다.
3. 증거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신앙선조들의 기도는 묵상하면서 깨달으면서 적은 글입니다. 말씀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성경 읽으실 때 창세기 전체는 꼼꼼하게 여러 번 읽으십시오. 성경의 가닥을 다 잡게 됩니다. 그러다가 요한묵시룩에서 정리가 됩니다. 우선은 영성적으로 배워야 할 부분은 ‘노아’는 두 번째 아담입니다. 실제로 노아는 두 번째 아담입니다. 첫 번째 인류 타락 후 죄가 창궐해서 하느님이 쓸어버리고 노아가 새 인류 출발을 했습니다. ‘순명의 영성’에서 아담이 실패했으나 선악과는 왜 필요했을까요? 인간은 피조물이고 하느님은 창조주이므로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인간 내재 창조력에 제어장치로 금단의 열매가 필요했습니다. 금지한 것은 이유 불문하고 안해야 하고, 이해하지 못해도 부모말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고수의 수를 이해 못해도 순명해야 합니다. 노아에게 방주제작을 하고, 생명체를 이동시키고, 2월 15일 날에 뭍으로 나오라 하였지요. 노아는 그대로 하였다 합니다. 이것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노아는 하느님이 시키는 대로 하였습니다. 이전에 홍수가 끝났지만 2월 15일에 나왔습니다. 순명은 덕중에서 으뜸입니다.
하느님이 좋아하는 세 부류 중 세 번째가 착한 사람입니다. 등급 내에 들어온 것이 다행입니다. 우유부단한 것이 착한 사람이지요. 두 번째는 성질은 있으나 열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단점보다 중요한 것이 열정입니다. 성인은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조용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허물이 있어도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첫 번째는 순명입니다. 군인영성이지요. 부족해도 순명을 최고로 보십니다. 아브라함에서 배우는 영성은 믿음입니다. 인간적인 믿음을 25년 걸려서 완벽한 믿음으로 바꿨습니다. 하느님의 권능을 믿지 못하는 사라 때문에 25년 걸렸습니다. 부족한 영성에 맞춰 진행됩니다. 절대 믿음 때문에 이삭을 제물로 바칠 수가 있었습니다. 방법 고민하지 마시고 절대 믿음을 가지십시오.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약아빠진 야곱을 눈감아 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할아버지 때문입니다. 형제간에 붉은 죽이 유혹꺼리는 아니지요. 에사우는 이방인여자 때문에 유혹꺼리를 찾고 있었지요. 이집트여자(세상재미) 때문에 장자권을 포기한 에사우입니다. 여러분은 야곱과 같이 장자권을 대수로 여겨야 합니다, 지혜는 영적인 축복 속에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청하였지요. 집요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복음이 처음에는 유대인에게 선포된 것이었으나 대수로 여기지 않았지요. 이방인 사도바오로는 복음을 대수로 여겼습니다. 야곱의 축복의 주인공 , 영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2부 윤민재베드로 신부님(죽전 하늘의문 성당) : 대림특강 미사와 특별히 치유안수기도를 하셨습니다.
찬미예수님~
신앙에서는 노력하고 응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노력을 보시고 필요한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긴 시간동안 차분히 앉아서 노력하시는 것입니다. 사제의 말에 책임지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성체 조배중에 보여 주셨습니다. 큰 됫박에 토실토실한 알밤이 담겨있었습니다.
저는 루르드에서 3가지를 청했습니다. 기도하는 사제, 사람의 영육을 치유하는 사제, 지금까지의 죄를 사해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새벽만 되면 일어나서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께 청한 것은 노력하게 됩니다. 기도가 습관이 되었습니다. 꾸준하게 항구히 청해야 합니다. 매달 두 번째 화요일 치유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누구나 원죄가 있으므로 내 탓이 아니더라도 기도하고 미사를 드려주어야 합니다. <상처입은 관계의 치유>에서 인간이 누군가 죽었을 때 충분히 애도의 기간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내 영혼은 치유되어야 함을 느낍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울증에 있게 됩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고해하고 합당하게 보속하면 정리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성체 조배실에서 생명의 축복을 주시겠노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수 있도록 내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성전입니다. 대림 시기 보내시면서 주님의 사랑, 평화로 채워 가시면 어느 때보다 기쁜 성탄이 되실 것입니다. 오늘 그런 노력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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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날 성전안은 열기가 대단하였습니다 . 우리본당뿐 아니라 타본당 자매님들도 함께하여 주었습니다
특히 윤민재 신부님 이 말씀하신 하루의 삶을 열어주는 축복이 매일미사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남니다 .
미사를 올때 영혼없는 그런자세로 성당에 오지말고 그날의 미사지향을 두고 일깨워주는 그런미사를 하라고 한다.
그날 미사의 중요성에 대하여 일깨워주신 말씀 깊이 묵상하여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