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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6천년의 성경역사 원문보기 글쓴이: 새상의 빛
말씀보존학회를 극단적 세대주의라고 매도하는 흠정역 정동수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672
해당 링크는 흠정역 정동수의 싸이트인 킵바이블 사이트이며 여기서 킵바이블 관리자인 정동수가 럭크만 목사님과 이송오 목사님을 극단적 세대주의자라고 인신공격을 했다. 그래서 필자가 정동수의 오만한 태도와 거짓말을 다시한번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정동수 이자는 본업이 목사가 아니라 인하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런데 언제 갑자기 어디서 누구한테 목사직을 안수받은 것인가? 필자가 분명하게 얘기하지만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는 기계공학을 가르치는 곳이지 성경을 번역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생각을 해보라! 하나님께서 인하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가르치는 교수(정동수)에게 성경번역을 맡기겠는가?
정동수 이자가 정말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자가 맞다면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직을 그만둬야 정상이다. 정동수가 정말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면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직을 그만두고 하나님의 사역만 충실해야 한다. 어떻게 신학과 기계공학을 병행해서 한단 말인가? 필자가 경고하는데 정동수 그대는 목회를 내려놓고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라는 본업만 해라!
아무튼 정동수 이자는 극단적 세대주의가 뭔지 모르며 극단적 세대주의는 누구의 교리인지도 모른다. 정동수 당신은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절대 못 속인다는걸 알아야 한다. 정동수 그대는 본인이 하는 거짓말을 사람들에게 숨길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선 당신의 거짓말과 악행들을 기억하고 계시며 당신이 백보좌 심판대 앞에 섰을때 당신의 거짓말은 낱낱이 다 드러날 것임을 기억하라!
그러니까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두고보자고! 필자가 분명히 얘기하지만 정동수 당신이 거짓말 하고 있는거 백보좌 심판대에서 낱낱이 다 드러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의 거짓말을 숨길 수 있다는 이유로 안심하지마라! 사람들은 정동수 당신이 거짓말 하고 있는걸 몰라도 하나님은 당신이 거짓말하며 사람들을 속이는거 다 아신다. 그러니까 두고보자고! 아무튼 정동수가 럭크만 목사님과 이송오 목사님을 인신공격 하는게 1년에 정기적으로 한두번씩 한다. 그러니까 정동수 이자가 럭크만 목사님과 이송오 목사님을 인신공격 하는것은 자기 집 문단속이며 자기 방어를 하는 것이다.
아무튼 미국에는 "극단적 세대주의"라는 잘못된 교리가 있다. 온건한 세대주의(존 다비, 무디, 스코필드, 클라렌스 라킨, 리 로버슨, 밥 존스 1세, 잭 T, 칙, 노아 허칭스, 사무엘 깁, 피터 럭크만 목사님 등)와 극단적 세대주의(벌링거, 스템, 오헤어 등)를 나누는 대표적 기준 잣대는 사도 바울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 은혜복음을 계시받기 전에 신약교회는 시작되지 않았다고 가르치는 것이 극단적 세대주의다. 이들(벌링거, 스템, 오헤어)은 신약교회가 계시되기 전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전천년주의 학자들이 알다시피 신약교회는 오순절에 시작되었고 그때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한몸된 교회라는 계시가 사도들에게 주어지지 않았고 신약교회는 시작되었지만 그들은 지금 이방인 신약교회가 드리는 방식으로 예배하지 않았고 이방인들을 수용하지 않았으며 성전 경배가 계속되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사도행전은 신약교회의 역사와 시작을 다루는 역사서에 속한다는 것이고 현재 우리가 속한 시대가 똑같은 신약교회시대이긴 하지만 사도행전 때는 우리에게 알려진 모든 신약 서신서의 진리들이 다 알려진 게 아니란 것이다. 왜 성령께서 사도행전을 우리한테 주셨고 여기서 무슨 교훈을 얻으라는 뜻인가? 우리의 뿌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직시하라는 것이고 뿌리없는 사람, 근본없는 후레자식 같이 행동하지 말고 지금 너희가 받은 계시와 은혜가 족한 줄로 알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래서 사도행전을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사도행전 없이 복음서와 서신서만 공부한 사람들은 교회가 처음부터 다 이랬던 것으로 안다. 다시 말해 무식해진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지식에는 무식해도 상관없지만 자기 뿌리인 사도행전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필자가 킵바이블이라는 정동수 사이트에서 정동수 본인이 쓴 것으로 보이는 글 하나를 최근 보게 되었는데 정동수 이자가 쓰는 <극단적 세대주의>라는 용어에 문제점을 발견하고 지적하는 것이다.
정동수 이자가 무척 긴 글을 영양가도 없이 썼기 때문에 골자만 뽑아서 반격 대응하도록 하겠다. 나머지 쓰레기들은 그냥 처리하는 걸로.
정동수 이자의 글 앞부분 상당한 내용이 럭크만 목사님은 상스럽고 럭크만 목사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상스럽고 말을 함부로 하고 정동수 자신이 인격적 모욕을 당했으니 참을 수 없다는 개인 신상 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필자가 정동수 당신에게 얘기하는데 먼저 공격한게 정동수 당신이다. 정동수 당신이 먼저 럭크만 목사님과 이송오 목사님을 공격한건 인정 못하겠다는 건가?
아무튼 정동수 이자가 럭크만 목사님을 친견했다, 정동수 자신이 미국 유학생활을 오래 했고 미국 목사들과 미국 기독교계에 발이 넓은 듯이 은근히 자랑하는데 피터 럭크만 목사님은 특정인만 선별해서 만나주는 사람이 아니고 누구든 그분을 존경하는 사람들은 교회로 찾아가서 거리낌없이 만날 수 있고 악수할 수 있는 그런 소탈한 사람이다. 때문에, 정동수 이자가 럭크만 목사님을 만나서 "말씀보존학회의 언행"을 꼰질렀고 그때문에 말씀보존학회 성도들이 발끈하여 자기를 인신공격했다는 말은 상당부분 허위이거나 과장일 것이다.
물론 피터 럭크만 목사님은 <한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과정에 대해 자세히는 모른다. 그러나 럭크만 목사님께선 이송오 목사님의 인격을 믿고 오래동안 교제해 왔으며 그 교제가 김영균, 이우진, 이준승, 라영석, 박노찬, 구정민, 김세창, 홍성율, 이재명, 음영진, 임동선, 장익성, 이준오, 임재영, 강찬재, 김용목, 김재근, 피터윤, 노영기, 김재욱, 김종설등 이간질꾼들의 작업으로 몇년 교제가 끊어진 적은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관계가 원활한 상태다. 만일 피터 럭크만 목사님께서 헬라어 공인역본(TR)에서 <한글 킹제임스 성경 신약 27권>이 1차 번역되어 나오고 <영문 킹제임스 성경 신약 27권>으로 2차 검수를 거친 그 번역 과정을 못마땅히 여긴다거나 한다면 분명히 미국 성경침례교회 성도들과 우리나라 성경침례교회 성도들 간의 교류는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피터 럭크만 목사님은 헬라어 공인역본(TR) 본문을 들고 <영문 킹제임스 성경>을 뜯어고치려 하는 잘난체 하는 미국 근본주의, 보수주의 학자들과 전쟁을 치렀었다.
그래서 럭크만 목사님의 책에는 종종 변개된 헬라어 원문뿐만 아니라 바른 헬라어 원문 자체를 가지고 <영문 킹제임스 성경>을 수정하려고 덤벼드는 위선자들이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것은 미국의 상황이고 우리나라는 바른성경 자체가 전혀 없었던 상황에서 이송오 목사님에 의해 <킹제임스 성경>이 도입된 것이다. 사실 헬라어 공인역본(TR)에서 번역하건 <영문 킹제임스 성경>에서 신약 27권을 번역하건 큰 차이는 없다. 만일 큰 차이가 있었다면 흠정역 옹호자들은 이미 <한글 킹제임스 성경 신약 27권>에서 결정적인 오류들을 찾아내서 우리에게 결정타를 먹였을 것이나 그자들은 사소한 트집, 형편없는 비판은 늘어놓을지언정 결정타는 결코 내놓지 못한다.
참고: 흠정역의 공개질의서에 대한 말씀보존학회의 답변서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PsU0/14
극단적 세대주의에 대한 정동수 이자의 비판은 매우 후지다. 필자는 매우 유치하다고 표현하겠다.
피터 럭크만 목사님은 히브리서나 야고보서를 유대인 환란 성도에게만 적용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정동수 이자가 럭크만 목사님의 주석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고 읽어보았더라도 매우 피상적으로 읽고 넘겼음을 알수 있다. 럭크만 목사님의 성경해석 방침은 어떤 책이, 가령 히브리서, 야고보서가 교리적으로 신약교회시대가 아닌 대환란 시대에 중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구절을 해석하면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구절은 우리한테도 영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선별해서 가르친다. 그러나 히브리서와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교리적인 적용은 되지 않는다. 신구약 성경 66권을 신약성도들에게 영적인 적용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신구약 성경 66권을 모두 신약성도들에게 교리적인 적용을 하면 안된다. 신구약 성경 66권을 신약성도들에게 영적적용을 하여 교훈을 줄 수 있어도 신구약 66권을 모두 교리적인 적용을 하면 결국에는 다른복음(대환란 시대, 천년왕국 시대의 행위구원)을 전하게 된다. 그러니까 말씀보존학회는 결코 히브리서, 야고보서는 대환란 시대의 교리니까 우리는 히브리서, 야고보서의 말씀을 교리적으로 아무것도 믿을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적이 없다. 그런데 정동수 이자는 사악한 입을 놀리며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버릇없이 말씀보존학회 공격을 시도하는데 그것은 가소롭게도 럭크만 목사님과 이송오 목사님과 말씀보존학회 성도들을 "극단적 세대주의"라고 매도하는 것이다.
말씀보존학회가 말하는 극단적 세대주의와 정동수 이자가 말하는 극단적 세대주의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신구약 성경 66권을 나눠서는 안되는 부분까지 지나치게 나누면 극단적 세대주의가 된다. 그러나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는 당연히 나누어서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신약 27권도 나누어야 하는 부분이 있으면 나누는게 당연하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3복음서는 구약에서 신약으로의 과도기(전화기) 시점이다. 사도행전은 유대인 신약교회에서 이방인 신약교회 시대로 넘어간 과도기(전환기) 시점이다.
로마서부터 빌레몬서까지의 바울서신들은 신약교회 시대의 교리이며,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2,3서, 유다서, 요한계시록등 일반서신들은 신약교회시대에서 대환란 시대와 천년왕국 시대로 넘어간 과도기(전환기) 시점이다. 당연히 이것들은 나누어서 구분하는게 당연하다. 나누어야 하는 부분을 나누는 것은 극단적 세대주의가 아니다. 나누어야 할 필요가 없는 부분을 나누면 극단적인 교리가 되지만 나누어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을 나누는건 극단적인 교리가 아니다. 그리고 럭크만 목사님은 극단적 세대주의를 매우 잘 아는 전문가 프로급이다. 정동수 그대가 럭크만 목사님을 그렇게도 욕하고 싶으면 뒤에서 몰래 욕하지 말고 럭크만 목사님에게 직접 대놓고 극단적 세대주의자 라고 욕하고 정죄하면서 그분에게 서신을 한번 보내보지 그러는가? 영어도 잘할텐데, 미국 유학했다면서, 그런데 정동수 그대는 왜 맨날 1년에 한두번씩 뒤에서 몰래 욕이나 하는 그런 뒤통수나 치는가? 정동수 그대는 럭크만 목사님 앞에서 대놓고 욕은 못하면서 온라인, 오프라인에 찌질한 글이나 올리면서 뒷담화 스킬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정동수 그대는 어지간히 못된 놀부, 팥쥐같은 인간이다.
참고: 1. 우리조상들은 어떻게 구원받았는가?(경륜에 따른 구원방법)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WJkH/11
2. 언약과 시대들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OLEh/77
3. 세대적 진리(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OLCd/83
4.사도행전(유대인 교회시대에서 이방인 교회시대로 넘어간 과도기(전환기) 서신)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WQbA/3
5.히브리서(신약교회시대에서 대환란 시대로 넘어간 과도기(전환기) 서신)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WQbA/4
6.야고보서 20장 20-24절에서 말하는 행위구원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OLDu/20
7.요한일서(교회시대에서 대환란 시대로 넘어간 과도기(전환기) 책)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WQbA/8
8.극단적 세대주의와 온건한 세대주의의 차이
그리고 필자는 다시한번 재창조론에 대한 정동수 이자의 얍삽한 공격을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흠정역 정동수는 창세기 1:28의 {replenish}를 "충만하라"라고 번역했다. 말씀보존학회는 replenish를 "다시 채우다." 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이 올바른 번역이다. 그런데 정동수의 <흠정역>은, <개역한글성경>과 똑같이 "충만하라" 라고 번역했다. (1) 창세기 1:1-3을 주의깊게 읽기 바란다. {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2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 3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더라.} 창세기 1:1과 1:3 사이의 2절 말씀은 창조된 세계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서 벗어나 있는 혼돈의 상태에 있음을 기록하고 있으며, 1절과 3절 사이에 어떤 큰 변화가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창세기 1:1-3의 창조의 순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다음과 같다.
첫째, 하늘과 땅이 창조되었다(창 1:1). 이것은 "최초의 창조"다.
둘째, 사탄의 반역으로 처음 창조된 하늘과 땅에 심판이 있었는데,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물들)의 표면에 있었다(창 1:2).
셋째, 심판 이후에 하나님께서 빛을 시작으로(창 1:3) 현재 있는 하늘과 땅을 포함한 만물을 6일동안창조하셨다. 이것이 "재창조"다(창 1:3-31). 반면 오늘날 수많은 우리나라의 성경학자들은 이와 같은 두 번의 창조를 거부하고 창세기 1:1이 창조에 대한 종합적인 선언일 뿐이며, 창세기 1:1과 1:3을 같은 것으로 보고 단지 한 번의 창조만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창조가 없었다면 성경에는 심각한 오류와 모순이 있는 것이다. 창세기 1:1의 최초의 창조와, 1:2의 심판과, 1:3-31의 재창조를 거부할 때 답변할 수 없는 문제점들은 무엇이겠는가?
① 창세기 1장에서 창조가 한 번만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기 전에 창세기 1:2의 {땅}, {어두움}, {깊음}(물들)이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경 말씀을 읽으면, 셋째 날에 창조된 "땅"은 셋째 날 이전에 이미 물 속에 있었으며 단지 마른 곳이 드러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마른 상태로 드러났을 뿐이다(창 1:9,10 -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의 물들이 한곳으로 함께 모이고 마른 곳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마른 곳을 땅이라 부르시고...}). 또한 첫째 날에 빛이 창조되기 이전에 "어두움"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빛이 생김으로써 빛은 어두움에서 나뉘어졌다(창 1:4 -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그것이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그 빛을 어두움에서 나누시더라.}).
둘째 날에 창공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깊음(물들)" 역시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며 창공에 의해 창공 위의 물들과 창공 아래의 물들로 나뉘었다(창 1:7 - {하나님께서 창공을 만드시고 창공 위에 있는 물들에서 창공 아래 있는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니라.}).
이와 같이 첫째 날의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창세기 1:2의 땅, 어두움, 깊음(물들)은 언제, 누가 창조했겠는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기 이전에는 하나님 외에 누구도,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지 않는가?
골로새서 1:16,17에 따르면 "만물"은 모두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창세기 1:2의 땅, 어두움, 깊음도 창조된 것이며 저절로 생겨난 것이 결코 아니다.
땅, 어두움, 깊음이 창조된 것이라는 사실은 잠언에서 "지혜"가 언제부터 있었는가에 관한 말씀에 잘 설명되어 있다(다음 구절에서 "내가"는 "지혜"를 말한다).
{영원부터, 태초부터, 땅이 있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느니라. 깊은 곳들이 없었을 때 내가 났으니, 물이 솟는 샘들이 없었을 때라. 산들이 세워지기 전에, 작은 산들이 있기 전에 내가 났으니 그가 아직 땅도, 들도,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의 흙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라. 그가 하늘들을 마련하실 때 내가 거기 있었으며, 그가 깊은 곳의 표면 위에 범위를 정하실 때에도 내가 거기 있었느니라}(잠 8:23-27).
이 구절에서 "땅"과 "깊은 곳"(깊음/물들)이 창조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시 148:4,5 참조), 또한 {주께서 어두움을 지으시니}(시 104:20)라는 말씀은 창세기 1:2의 "어두움"이 창조된 것임을 분명히 알려 준다. 이와 같이 창세기 1:2의 땅과 어두움과 깊음(물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라면 그 시점이 언제인가? 그 때는 창세기 1:1과 1:3 사이다.
다른 말로 하면 최초의 창조와 재창조의 사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1의 "최초의 창조", 1:2의 사탄의 반역에 대한 심판(형체가 없고 공허한 상태의 땅, 땅이 어두움과 깊음 속에 잠겨 있는 상태), 1:3의 "재창조"가 창세기 1:1-3에 기록하고 있는 그대로다.
만일 창세기 1장에 한 번의 창조만 있었다면,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이런 것들에 대한 창조를 설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경 자체가 모순되는 것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② 창세기 1장에 단지 한 번의 창조만 있었다면, 기름부음 받은 그룹이었던 사탄의 반역, 곧 사탄의 타락이 언제인가를 설명할 수 없다(사 14:12-15, 겔 28:11-19). 사탄의 타락은 창세기 1:1의 최초의 창조 이후이고 이 반역에 대한 심판이 내려진 상황이 창세기 1:2이며, 다시 현재의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것이 창세기 1:3 이후인 것이다. 사탄의 실체를 확증해 주는 성경 구절은 창세기 1:2이다.
(2) 창세기 1:2의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라는 말씀은 땅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심판받은 땅의 상태를 설명하는 말씀이다.
이 구절의 의미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예레미야 4:23-27의 말씀과 비교해 봐야 한다.
{내가 땅을 보았더니, 보라, 형체도 없고 공허하며 하늘들에는 빛도 없더라. 내가 산들을 보았더니, 보라, 그것들은 떨고 모든 작은 산들도 가볍게 진동하더라. 내가 보았더니, 보라, 사람도 없고 하늘들의 모든 새들도 날아 갔더라. 내가 보았더니, 보라, 비옥한 곳이 광야가 되었으며 거기에 있는 모든 성읍들이 주의 면전에서 그의 맹렬한 진노로 무너져 내렸도다. 이는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완전히 끝내지는 아니하리라.} 예레미야의 이 구절들은 창세기 1:2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사건을 말씀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이 미래에 받게 될 심판을 설명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예레미야 4장의 말씀들은 창세기 1:2의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라는 말씀의 의미를 알려 주는 용례이기도 하다. 즉 땅이 형체가 없고 공허하다는 의미는 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일그러지거나 변형되거나 황폐된 심판의 상태에 놓여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3) 창세기 1:1-3의 관련 구절인 베드로후서 3:5-7은 재창조를 증거하는 중요한 말씀이다.
먼저 베드로후서 3:3,4은 마지막 날들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 주님께서 오신다는 약속을 부인하고,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고 말하면서 조롱할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헐뜯고 비방하는 박만수, 정동수, 서달석을 포함해서 창세기 1:1-3의 말씀에 대해 "최초의 창조 - 심판 - 재창조"라는 변화가 있었음을 부인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조종하는 자들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3:5-7은 창세기 1:1-3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는 그들이 이것을 고의로 잊으려 함이라.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다는 것과, 땅도 물에서 나왔고 물 안에 있었다는 것이니 이로써 이전에 있던 세상은 물이 범람해서 멸망하였느니라. 그러나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보존되어 있으되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려고 간수되어진 것이니라.} 이 구절에서 땅은 물 가운데서 나왔다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베드로후서 3:5의 {땅도 물에서 나왔고 물 안에 있었다는 것이니}라는 말씀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재창조 이전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다.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곧 우주는 펼친 옷의 모양과 같은데(히 1:11,12), 창세기 1:1 이후 사탄의 반역에 대한 심판으로 온 우주가 어두움과 물들로 차게 되었다(창 1:2). 바로 베드로후서 3:5-7이 이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다. 특히 베드로후서 3:6은, 창세기 1:2 이전의 "최초의 창조" 세계를 {이전에 있던 세상}이라고 설명하며, 그 세상은 물이 범람해서 멸망했다고 설명함으로써 창세기 1:2을 설명해 주고 있다. 물이 범람해서 멸망한 것이 노아의 홍수(창 6장)를 지칭하지 않는 이유는, 노아의 홍수 때에 있었던 세상은 베드로후서 3:7에서 {현재 있는 하늘과 땅}이라고 말씀하며, 이것은 창세기 1:3 이후에 창조된 현재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있는 하늘과 땅}은 앞으로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타 없어지고(벧후 3:7), 베드로후서 3:13에 기록된 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은 세상을 크게 셋으로 구분하는데, "전우주적인 물의 범람"을 기준으로(창 1:2, 벧후 3:6) 창세기 1:1의 {이전에 있던 세상}과 창세기 1:3-31의 {현재 있는 하늘과 땅}으로 구분되며, 또 "전우주적인 불에 의해 하늘들과 우주의 구성요소들이 불타 없어짐으로써"(벧후 3:10- 12) 새롭게 생성되는 {새 하늘과 새 땅}(벧후 3:13)이 있는 것이다.
2. 창세기 1:28의 "다시 채우다"라는 의미
(1) 창세기 1:28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시 채우고 그것을 정복하라. 그리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에서 "다시 채우다"는 의미는 말 그대로 이전에 있던 상태처럼 "다시" 채운다는 것이다. 이 단어가 최초의 창조와 재창조를 입증하는 것이며, 또 창세기 1:1-3을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2) <한글 킹제임스 성경>에서 "다시 채우다"라고 번역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단어는 "replenish"이며, 히브리어 성경의 단어는 "말레"다. 그렇다면 "말레"가 "다시 채우다"라고 번역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현대의 변개된 성경을 번역한 학자들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replenish"는 오역이며, "fill"이나 "full"이 정확한 번역이라고 억지부리며 잘못된 해석을 한다. 또한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헐뜯고 비방하는 박만수, 정동수, 서달석을 비롯해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왜곡하는 자들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replenish"라는 번역은 맞지만, 그 뜻은 "다시 채우다"가 아니라 단순히 "채우다/충만하다"(fill, full)의 뜻이라고 해석해야 맞다고 억지부리며 끝까지 자기들만의 해석이 옳다고 우긴다. 그들은 즉 "replenish"는 "fill," "full"의 동의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우리나라 성경학자들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왜곡하는 자들의 해석이 오류임을 입증하는 근거를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히브리어 "말레"를 "replenish"로 번역한 것은 "말레"에 "fill"이나 "full" 등의 뜻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오역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채우다/충만하다"는 의미 이외의 뜻이 있기 때문에 문맥에 맞게 번역한 것이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말레를 번역한 용례들은 "full"(118회), "fullness"(9회), "fully"(14회), "fill"(107회), "fulfill"(14회), "replenish"(7회)다. 이와 같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252회에 걸쳐 "말레"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그 의미와 문맥에 맞는 정확한 단어들로 각각 구분해서 번역했으며, 그 중에서 "말레"란 단어를 "replenish"로 일곱 번 번역했다(창 1:28; 9:1, 사 2:6; 23:2, 렘 31:25, 겔 26:2; 27:25). 이 용례를 현대 번역자들이 분별하지 못하고 놓친 것이다.
히브리어 "말레"의 용례는 단지 "fill"이나 "full"만이 아니라 "replenish"(다시 채우다)의 뜻이 분명히 있다. 오늘날 수많은 우리나라 성경학자들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배격하기 때문에 "말레"라는 히브리어의 뜻에 "replenish"의 용례를 포함시키지 않지만, 그 외의 객관적인 사전들은 이 용례를 기록하고 있다. 옥스퍼드대학의 <The Oxford English- Hebrew Dictionary>, 이스라엘의 <User- Friendly Dictionary>, <The Complete English-Hebrew Dictionary> 등에서 말레의 용례에서 "replenish"(다시 채우다)를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② 창세기 1:28의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시 채우고}라는 말은 이전에 채웠던 것이 있기에 다시 채우라는 의미다.
그런데 정동수는 창세기 1:22과 1:28의 예를 들어 [두 구절은... 똑같은 문맥이며 심지어 히브리어도 두 구절이 동일합니다.]라고 말하며 둘 다 "충만하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우긴다. 그러나 창세기 1:22과 1:28은 "대상"이 다른 문맥이다. 1:22의 "그들"은 "동물들"이며, 1:28의 "그들"은 "사람"(아담과 이브)이다. 따라서 1:28은 아담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 불린 영적 존재(천사)들이 창세기 1:2 이전에 있었기 때문에 재창조 이후에 "다시 채우라"는 말씀을 하는 것이다. 창세기 9:1에서도 노아의 홍수 이후에 노아와 가족들에게 이전에 땅이 사람들로 채워졌던 것처럼 "다시 채우라"는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반면 첫 번째 창조에서는 1:22의 동물들의 창조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채우라"는 말씀이 아니라 단지 "충만하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히브리어 원어로는 창세기 1:22과 1:28이 동일하게 "말레"이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 1:22에서는 "fill"(충만하라)로 번역하고, 1:28에서는 "replenish"(다시 채우고)로 번역한 이유다. 히브리어는 한 단어 "말레"로 이 두 의미를 모두 표현하지만, 영어와 한글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각기 적합한 단어로 해석해야 맞는 것이다.
(3) 히브리어의 용례뿐만 아니라 영어 "replenish"에 대한 <Oxford English Dictionary, OED>의 용례는 단지 "채우다/충만하다"가 아니라 "다시 채우다"의 뜻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OED에서 "replenish"를 찾으면, 9번의 뜻은 다음과 같다. [II. In ordinary transitive uses. 9. To fill up again; to restore to the former amount or condition.](II. 보통 타동사의 용례. 9. 다시 채우다, 이전 양이나 상태로 회복시키다.) 이와 같은 분명한 뜻과 함께 1612년에 이 뜻으로 쓰인 사례를 제시하고 있으며, 그 이후에도 1666, 1748, 1776, 1832, 1883년에 쓰인 많은 사례들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1611년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은 이후의 용례들을 선도적으로 이끄는 사례가 된 것이다.
정동수는 <노아 웹스터 사전>의 초판(1828년)과 1913년판의 차이를 예로 들면서, "replenish"가 "다시 채우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이 마치 19,20세기에 와서 진화론에 편승하여 생겨난 이론이라고 우기는 것은 매우 왜곡된 주장이다. 그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입술로는 최종권위라고 믿는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현대의 변개된 영어 번역본(NIV, NASB, 리빙 바이블)들과 같이 "replenish"를 단지 "충만하라"고 해석하는 것은 <킹제임스 성경>을 부인하는 행위다. 또한 <노아 웹스터 사전>에서 "다시 채우다"의 뜻은 자동사로 쓰일 때의 용례라며 창세기 1:28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 이는 <노아 웹스터 사전>이 자동사의 용례와 타동사의 용례를 잘못 구분한 오류를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똑같이 오류를 범한 것이다. 창세기 1:28의 {replenish}는 OED의 정의처럼 "타동사의 용법"이지, 자동사가 아니다. 그래서 잘못된 지도자를 따라가면 언제든지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replenish"에는 "다시 채우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은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문맥에서 히브리어 "말레"를 단지 "fill"이 아니라 "replenish"로 번역한 것이며, <한글 킹제임스 성경> 역시 "다시 채우다"라고 올바르게 번역한 것이다. 어떤 성경이 바른 하나님의 말씀인가에 대한 증거는 분별력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마음의 자세와 믿음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
참고
1.재창조론 연구: 아담이전의 세상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OLDa/21
2.재창조론 연구: 창세기의 간극이론의 해석을 넘어서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OLDa/1
3.재창조론 연구: 궁창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OLDa/22
4.베드로후서 3장 물의멸망은 노아의 홍수가 아니다. http://cafe.naver.com/jinri1611/1029
5.미지의 영역으로부터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OLDa/35
이제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도달했으므로 독자 여러분들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 그자들의 위선이 폭로된다.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 <영문 킹제임스 성경>보다 우리에게 최종권위 되는 성경이다라고 가르치므로 문제 있다고 하는 정동수와 포천침례교회 홍성율 목회자의 주장은 사실인가?
정동수, 홍성율 이자들이 "악의적"으로 하는 말인 "개정"이라는 표현을 <한글 킹제임스 성경>에 덮어씌우는 것을 주목하라.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개정된 적이 없으며 교열을 거쳤다. 흠정역 또한 교열을 지속해 왔고 작년인가 와서야 교열이 얼추 끝났다고 정동수, 홍성율 이자들이 자랑을 하지 않았던가? 필자는 이자들에게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니들 코가 석자인데 감히 누구를 지적하느냐?"
<영문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개정된 적이 없다? 맞는 말이지, 그러나 <영문 킹제임스 성경>도 사소한 오류들을 바로잡는 교열은 몇번 거쳤다. 심지어 100년 이상 걸려서 교열이 또 되었다.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이제 태어난지 21년 된 성경이고 지금까지의 교열들이 <한글 킹제임스 성경>의 명성에 흠이 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자들(정동수, 김영균, 이준승, 이우진, 라영석, 홍성율, 김종설, 노영기, 김재욱)은 그렇게 받아들이겠고 우리는 전혀 아무렇지 않다.
정동수, 홍성율 이자들은 고의적인 저주와 악담을 담아서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개정"된다는 표현을 쓰는데 다시 말해 Revised(개정) 되고 있는 성경이므로 개역성경 부류로 묶겠다는 심보다. 허나 정동수의 흠정역의 교열은 틀린 것을 더 틀리게 만드는 "개악"에 속하고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온전한 것을 더 빛나게 하는 의인의 연단이다.
그러나 의인의 길은 빛나는 빛같이 점점 더 빛나 완전한 날에 이르거니와(잠언 4:18)
한글성경 최종 권위를 문제삼는 데 대해서는 주제가 역시 너무 크기 때문에 별도로 다룰 기회가 있을 때 더 다루겠다. 혹시 참고자료가 필요한 독자 여러분들은 본 카페에 자료들이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참고: 1.흠정역의 공개질의서에 대한 말씀보존학회의 답변서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PsU0/14
2.흠정역에 속지마라(짝퉁성경에 속지마라)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PsU0/17
3.흠정역 정동수 그는 정말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인가?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PsU0/20
4.현대종교 이용규 기자가 취재한 흠정역 정동수의 정체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PsU0/23
5.신뢰할 만한 번역본vs신뢰할 수 있는 번역본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PsU0/12
6.흠정역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PsU0/22
7.박만수의 권위역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WOpi/1
8.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과 근본주의자들은 무엇이 다른가?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OLCP/127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정동수와 그의 추종자들이 대환란 시대와 천년왕국 시대의 교리를 부인하는 이유에 대해서 필자가 설명하고자 한다.
정동수파(사랑침례교회)와 김영균파(진리침례교회)는 대환란 시대와 천년왕국 시대에 대한 교리와 재창조론에 대한 교리가 다르다. 김영균파(진리침례교회)는 <한글 킹제임스 성경> 대신 흠정역을 주워다 쓰긴 하지만 여전히 럭크만 목사님의 성경해석을 커닝해서 그 명성과 지식을 가지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흉내내는> 위선자 장사꾼들이다. 정동수파(사랑침례교회)는 애초부터 반럭크만 미국 근본주의 목사들(럭크만 목사님의 성경해석을 반대하는 미국 근본주의자들)과 손잡고 있으므로 또 재창조론도 부인하므로 대환란 성도와 천년왕국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에 대한 교리(대환란 시대와 천년왕국 시대에 구원받는 방법)도 부정한다. 그러니까 정동수파(사랑침례교회)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열처녀가 대환란 때 환란성도들인 것을 모르며 대환란 시대의 구원은 믿음과 행위로 끝까지 견뎌야 하는것도 모른다. 마태복음 24장이 예수님의 지상재림임을 모른다. 그리고 산상수훈이 천년왕국의 헌법이며 천년왕국때 태어난 사람들이 지켜야하는 법인지도 모른다.
참고
1.다른 복음을 전하지 말라!!! -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종류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TVsw/143
2."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 (이것은 신약시대 교리가 아니고 대환란 때의 교리다.)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TVsw/129
3.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마 24:13), 주석들의 심각한 오류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OLDu/43
4.열 처녀와 환란성도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TVsw/72
5.우리조상들은 어떻게 구원받았는가?(경륜에 따른 구원방법)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WJkH/11
6.성경에 휴거는 총 몇번 등장했는가?
http://cafe.daum.net/jesuschristreign/OLEp/44
7.백보좌 심판 교회도 대상인가?
그런데 김영균파(진리침례교회)도 처음부터 럭크만 목사님의 교리를 흉내낸 것은 아니었고 정동수와 비슷한 소리도 하다가 다시 럭크만 목사님의 교리를 흉내내는등 줏대가 없다. 이자들은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 같은 자들이다.
게다가 사랑침례교회에서 한글자막 올리고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인 <킹제임스 성경이 도데체 뭐야?> 그 동영상에 나온 사무엘 깁 목사님은 럭크만 목사님의 <펜사콜라 신학원>을 졸업했고 펜사콜라 성경침례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럭크만 목사님의 제자다.
필자는 정동수의 사랑침례교회 출판사인 <그리스도 예수안에>출판사가 럭크만 목사님의 제자인 사무엘 깁 목사님의 책을 출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떻게 아냐면 필자는 사랑침례교회에서 출판한 책들 일부 구입해서 읽어봤으니까. 그러니까 사랑침례교회 출판사 <그리스도 예수안에>출판사는 럭크만 목사님의 제자인 사무엘 깁 목사님의 책을 번역하여 출판했단 말이다. 정동수가 번역하여 출판한 럭크만 목사님의 제자의 책이 바로 사무엘 깁 목사님의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195256> 책이다. 필자는 사랑침례교회 출판사에서 출판한 이 책을 읽어보았다. 이 책을 읽어보면 정말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정동수가 번역하여 출판한 사무엘 깁 목사님의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책을 읽어보면 사무엘 깁 목사님이 그 책에서 럭크만 목사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얘기한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사무엘 깁 목사님의 책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책 197-199페이지 에서 럭크만 목사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것을 보았다.
출저: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197-199페이지 내용>
질문: 럭크만주의자(Ruckmanite)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사무엘 깁 : 럭크만주의자(Ruckmanite)란 킹제임스 성경 비평학자들(반 킹제임스<킹제임스 성경 반대자들>)이 자기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인 킹제임스 성경 수호자들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1921년에 태어난 피터 럭크만(Peter Sturges Ruckman) 목사님은 수년 간 성경 필사본의 역사에 대해 공부했고 밥 존스(Bob Jones)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개인적으로 수백, 수천여 개의 독립침례교회를 세우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으며, 직접 세우기도 했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펜사콜라 킹제임스 성경신학원의 원장이자 펜사콜라 성경침례교회 설립자이기도 한 그분은 수백 명의 설교자와 선교사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훈련시켰으며, 또한 200권이 넘는 책들과 <킹제임스 성경 66권 주석서들>을 썼습니다.
피터 럭크만 목사님은 의심할 바 없이 이 시대에 오류가 없는 <킹제임스 성경>을 위해 가장 거침없이 말하고 싸우는 투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완전하게 보존하지 않으셨다고 가르치는 학자들이 그분을 위험한 적으로 간주합니다.
그분의 무기고는 비범한 지력과 성경 필사본에 대한 수년간의 연구 그리고 신랄한 언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분의 강렬한 설교 스타일은 오늘날의 여자같이 소심한 '주의 군사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므로,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와 혹은 그가 제시하는 사실들과의 대립을 회피합니다.
모든 근본주의 성경학자들은 자기들도 "<킹제임스 성경>이 실수가 섞이지 않은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임을 믿는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그렇게 말하는 것 뿐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집회에 참석한 어떤 사람이 럭크만 목사님의 저서들 중에서 한 권을 집어 들고 읽고는,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성을 믿는다는 주장을 발견하게 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늘 불안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으로 성경 즉 <킹제임스 성경>이 절대적이고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순진한 그들은 목사들이 가르치는 '성경 개선'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되었을 때, 자기들의 목사가 자기들을 가리켜 럭크만주의자(Ruckmanite)라고 비난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럭크만(Peter S. Ruckman) 목사님에 대해 들어본 적조차 없는데도 말이지요.
이같은 공공연하게 럭크만 목사님을 비난하는 것은 단순히 자포자기에서 나온 공격전술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어는 누구도 "사람을 추종하는" 죄를 범하길 원치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킹제임스 성경 비평학자들(킹제임스 성경 반대자들)은 만일 킹제임스 성경 수호자들을 "사람을 추종하는 자들"로 고소할 수만 있다면, 그들이 자기들의 신념을 버리고 겸손히 자기들의 말을 따르리라는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예전에 필자는 자신이 럭크만주의자라고 불릴 것이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은 오류가 없는 완전한 성경이라고 믿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거부했던 목회자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나는 어떤 사람도 따르지 않아요."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경건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는 후에 필자에게 자신이 칼빈주의자(Calvinist)가 되었으며 장로교 목사가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따라서 비진리가 난무하는 오늘날 <킹제임스 성경>은 오류가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럭크만주의자>라고 불릴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사무엘 깁 목사님의 책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197-199 페이지에서 럭크만 목사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정체를 밝힌 내용이다. 그런데 정동수는 자신과 믿음이 다른 사람의 책을 도용하여 출판한 것이다. 그것도 정동수 본인이 그토록 욕하고 싫어하는 럭크만 목사님의 제자의 책을 도용하여 출판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동수파(사랑침례교회)와 김영균파(진리침례교회)는 럭크만 목사님의 이름만 교묘하게 피해가고 다른 기존 전천년주의 학자들(스코필드, 클라렌스 라킨, 잭 T, 칙, 노아 허칭스)이나 럭크만 목사님의 제자들(사무엘 깁 목사님)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분들(럭크만 목사님의 제자들)의 가르침을 인용하며 자신들이 <성경대로 믿는 정통 그리스도인 행세>를 한다. 이게 위선이다.
아무튼 대환란 성도와 천년왕국 성도를 별도 부류로 나누어 공부하지 않으면 정동수 이자의 성경해석이 그럴듯해 보인다. 다른시대(구약시대, 대환란 시대, 천년왕국 시대)의 교리를 자꾸 같은 부류로 묶어서 보려고 하면 보는 자의 관점에 따라 유사해 보인다. 사람과 침팬치가 유사하게 생겼다는 선입관을 갖고 계속 연구하면 둘이 사촌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다. 대환란 성도와 천년왕국 성도와 신약교회시대 신약성도들은 유사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유사점은 이들 그룹은 전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란 것이다. 신약성도들은 거듭(영생을 얻음)났고 구약성도들, 대환란 성도들, 천년왕국 성도들은 거듭남 없다(영생을 얻지 못했음)는걸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신약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고 영접함으로서 영생을 얻은 것이기 때문에 영원시대(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구약성도들과 대환란 성도들과 천년왕국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만으로서 거듭난게 아니기 때문에 영원시대(새 하늘과 새땅)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영생을 얻게된다. 모든 것은 논리적으로 성경적으로 연결되는 것이지 유추 같은 것은 없다.
정동수 이자가 럭크만 목사님 앞에서는 럭크만 목사님의 뛰어남을 칭송하는 체 하면서 뒤에서는 대환란 시대와 천년왕국 시대의 교리를 전면 부정하고 재창조론을 전면 부정하는 그게 바로 뒤통수 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약성경 27권 중에 요한복음과 로마서부터 빌레몬서까지의 바울 서신들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3복음서(마태,마가,누가)와 일반서신들은 대환란 시대와 천년왕국 시대의 교리이며 은혜복음이 아닌 왕국복음이다. 대환란 시대와 천년왕국 시대의 교리를 제거해 버리면 장로교, 감리교인들처럼 다른복음(구약시대, 대환란 시대, 천년왕국 시대의 행위구원)을 전하게 되는 것이다. 정동수 이자가 럭크만 목사님 앞에서는 럭크만 목사님을 칭찬하면서 존경한다면서 뒤에서는 럭크만 목사님의 성경적인 해석을 바빙하는 것은 전형적인 "칭찬하면서 뒤통수치기"라는 고양이 같은 얍삽한 수법인 것이다. 이제 필자는 정동수에게 경고의 메세지를 날리고 끝내고자 한다.
정동수에게 경고의 한마디: 당신이 남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싶다면 우선 자신의 신앙과 자질부터 검증받고 성경을 바르게 공부한 다음에 남에게 성경을 가르쳐라 자기가 배운 신학교리만이 진리라고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세뇌시키는 행동을 즉시 중단하고 또한 자신이 믿는 신학교리 뒤에 숨어서 검증받지 못해서 정체가 불투명한 자신의 믿음의 본질을 가린채 자신의 카페에 가입하는 회원들에게 자신의 믿음이 유일한 진리인양 오도하는 일을 중단하고 회개하고 오프라인 목회를 비롯해서 온라인 목회까지 다 내려놔라! 자기가 배운 신학만이 진리라고 사람들에게 퍼뜨려 세뇌시키는 마귀짓을 당장 그만둬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만한 악한 행위들을 보고 계시며 기억하고 계신다는걸 잊지마라! 이 일을 중단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당신은 심판날에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당신이 행한 행위대로 심판받게 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면 당신의 모든 행위들이 낱낱이 전부 다 드러나게 될 것이란걸 기억해야 한다.당신이 목회를 하고싶으면 교인들에게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던가? 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가르치지말고 뉴 월드 오더(세계정부수립)에 관련된 것이나 가르쳐라!
그대로 두라. 그(정동수)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고 하시더라. (마15:!4)
그러나 위선자인 서기관 바리새인(정동수)아, 너(정동수)에게 화가 있으리라! 이는 너(정동수)가 사람들에게 천국을 닫아 버려서 너(정동수)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 위선자인 서기관 바리새인(정동수)아, 너(정동수)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정동수)가 과부들의 집을 삼키며 남들에게 보이고자 길게 기도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정동수)는 더 큰 심판을 받으리라. 위선자인 서기관 바리새인(정동수)아, 너(정동수)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정동수)가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으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고 나면 그를 너(정동수)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라. (마 23:13-15)
너(정동수)는 너(정동수)의 아비 마귀에게서 나와서 너(정동수)의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자기 안에 진리가 없음이라. 그가 거짓말을 할 때는 자신에게서 우러나와 한 것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요한복음 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