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에서
이 화 은
오래 아프던 어깨가 웬만해지니 어리둥절 할 일이 없다
아픈 것도 일이었구나
멀뚱멀뚱 천정에 전구 하나가 빠진 게 보인다
오래전에 빠진 듯
오래전에 빠진 이빨처럼 구멍이 메워졌다
벽시계의 분침이 죽었다
죽으면서도 유언처럼 굳이 가리키는 저기 저 방향
빈 벽뿐인데
유일하게 이 집안에서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은 홀로 빈 벽인데
추레한 벽지를 걸치고 벽은 혼자서 면벽하고 있었던 걸까
오늘따라 표정이 근엄하다
어깨가 아픈 동안 베란다에 새로 산 작은 화분 두 개가 죽었다
비 오는 날 리어커에서 급히 사느라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는데
세 분의 시인이 돌아가셨다 한다
전장에서 막 돌아온 병사처럼 이곳이 낯설다
아픈 어깨가 통치하던 그쪽과
화분과 시인과 분침이 죽은 이쪽, 국경은 늘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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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화요문학> 28호
첫댓글 분침이 가리킨 저 빈벽이 아픔니다...
그러게요 시가 아프네요
아프니까 청춘이겠죠? 아닌가...
아프니까 어깨 아닐까.
아프니까 사장이다 여기도 있어요 ㅎ
저는 언제나 선생님처럼 이런 깊은 시를 쓸 수 있을까요?
비 오는 날
아픈 어깨로 데리고 온
꽃,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사라져버렸네요..